제22보병사단 (대한민국)
대한민국 육군의 사단
제22보병사단(第二十二步兵師團, The 22nd Infantry Division, 상징명칭: 율곡부대)은 대한민국 육군의 제3군단 예하 보병사단이다.
제22보병사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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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二步兵師團 | |
활동 기간 | 1953년 4월 16일 ~ 1958년 12월 24일 1970년 4월 21일 ~ 현재[1] |
국가 | 대한민국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병과 | 보병 |
역할 | 동해안 및 GOP 경계 |
규모 | 사단 |
명령 체계 | 제3군단 |
본부 |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
별칭 | 율곡부대(栗谷部隊) |
표어 | 수사불패 율곡지혼 (雖死不敗 栗谷之魂) |
군가 | 22사단가 |
참전 | 한국 전쟁 |
훈장 | [대통령 부대 표창 9회, 국무총리 표창 2회 |
지휘관 | |
사단장 | 소장 강봉일 (육사 51기) |
역사
편집제1차 편성
편집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에서 1953년 4월 21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의 부대기 친수와 함께 육군 본부 직할대로 창설되어 한국전쟁 말기에 활약하고, 육군 감축계획에 의해 1958년 12월 24일 해체되었다.
제2차 편성
편집1975년 사단의 전신인 제88보병여단이 재창설, 동해안방어사령부가 제1해안전투단으로 재편성되고 동해안경비사령부(현재 제7기동군단) 예하 제56보병연대와 통합, 1975년 8월 1일 새로 창설된 제88보병여단과 또다시 통폐합 및 증편되면서 1982년 8월 16일, 강원도 고성군에 재창설되어 남·북 동해선 교통행 및 교류를 군사적으로 보장하며 현재까지 주둔하고 있다.
부대
편집- 사단본부
- 본부근무대
작전부대
편집- 제53보병여단 "북진"
- 여단본부
- 제1대대 (동호리)
- 제2대대 (탑동)
- 제3대대 (기사문) : 해안 경계 임무
- 제4대대[3] "비사" : 해안 경계 임무
- 군수지원대대
- 제55보병여단 "쌍호"
- 여단본부
- 제1대대 "백호" (어천리)
- 제2대대 "비호" (장신리)
- 제3대대 "맹호" (건봉산)
- 군수지원대대
- 제56보병여단 "금강산"
- 여단본부
- 제1대대 (동호리)
- 제2대대 (석문리)
- 제3대대 "전방" : GOP 및 해안 경계 임무
- 군수지원대대
- 포병여단
- 여단본부
- 제278포병대대
- 제279포병대대
- 제280포병대대
- 제639포병대대
직할부대
편집- 제28전차대대 "번개"
- 공병대대
- 군수지원대대[4]
- 화생방지원대
- 수색대대
- 정보통신대대
- 의무근무대
- 군사경찰대
- 방공중대
- 제1해안감시장비운용대
- 보충대
전투·부대표창 내역
편집- 1953년 7월 14일 - 한국 전쟁 당시 "대성산전투"참가
- 1982년 5월 15일 - "5.15 대침투작전"
- 1996년 9월 18일 ~ 11월 7일 - "강릉무장공비 대침투작전"
- 부대표창 : 대통령 9회, 국무총리 2회
사건 및 사고
편집제22보병사단은 여타의 사단에 비해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나기로 악명 높은 부대이다. 때문에 별들의 무덤이라는 멸칭으로 불린다.
- 1984년 6월 26일 - 22사단 소속 조준희 일병이 총기를 난사하고 월북했다. 이로 인하여 사단장 장기하 소장(육사 14기)이 보직해임 당했으며 소장으로 예편한 후 (주) 청보식품 회장이 되었다.
- 1998년 12월 5일 - 22사단 소속 강창원 상병이 90mm 무반동총 불발탄을 습득 후 몰래 보관하고 있다가 병사 휴게실에서 탄피를 분리하던 도중 폭발했다. 이 사고로 강창원 상병을 포함한 병사 3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으며 병사 5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로 인하여 사단장 류선준 소장(육사 27기)이 문책 및 엄중 경고를 당했다.
- 2005년 4월 13일 - 당시 57세였던 황홍련 선장이 술에 만취한 채로 자신의 어선 황만호를 조타해서 월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하여 사단장 임치규 소장(육사 31기)이 문책을 당했다.
- 2009년 10월 26일 - 제22보병사단에서 복무한 강동림 예비역 병장이 제22보병사단이 담당하는 철책을 와이어 커터로 절단하고 월북했다. 이로 인하여 사단장 이양구 소장(육사 35기)이 보직해임 당했다.
- 2012년 10월 2일 - 22사단 관할구역에서 북한군이 철책을 넘고 노크하여 귀순하였다. 그 동안 해당 부대에서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로 인하여 사단장 조성직 소장(육사 38기)이 보직해임 당했다.
- 2014년 6월 21일 - 20시 15분에 임도빈 병장이 총기를 난사하여 5명이 숨지고 7명이 부상당했다. 이후 임도빈 병장은 탈영한 후 교전 과정에서 1명이 더 부상 당했다. 이 사건으로 22사단장 서상국 소장(육사 40기)을 비롯하여 연대장, 대대장, 중대장이 보직해임 및 징계위원회 회부 처분을 받았다. 소대장으로 있다가 감시장비 분실 사유로 보직해임 되었던 소대장 역시 추가 징계 및 구속 수감 되었다. 서상국 소장은 제22보병사단장에서 보직해임 당한 이후 한직인 육군훈련소장으로 좌천한 후 임기를 채운 뒤 다시 교육사령부로 재좌천한 이후 소장으로 예편했다.
- 2020년 11월 3일 - 북한의 신원미상 남성이 헤엄쳐 귀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이후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하는 기간인 2022년 2월 16일 민통선 내부에서 민간인이 발견되었다. 이로 인하여 사단장 표창수 소장(육사 47기)이 보직해임되었으며,[5] 결국 표창수 소장은 제2신속대응사단장을 한 번 더 역임하고 난 이후 대한민국 국군 장성급 장교 보직 중 가장 한직인 육군보병학교장[6]으로 좌천당했다. 표창수 소장은 제2신속대응사단장으로 재직할 당시 그의 직속상관인 제7기동군단장이 타 출신 동기인 고현석 중장(학군 29기)이었으며, 표창수 소장이 육군보병학교장이 되기 직전, 표창수 소장과 동기인 손식 육군특수전사령관(육사 47기)이 대장에 진급했다.
- 2022년 1월 1일 - 탈북자가 제22보병사단 관할구역을 통해서 재월북했다. 이로 인하여 사단장 이승오 소장(육사 49기)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으나 취임한 지 불과 2주일 만에 발생한 일이라 지휘 책임을 묻기 어려워서 주의로 끝났으며 이후 이승오 소장은 제22보병사단장 임기를 만기 퇴임한 이후 요직인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으로 영전했다. 그 대신 바로 직전 사단장이자 사건 당시 제22보병사단장의 직속상관인 제8군단장 여운태 중장(육사 45기)이 육군참모차장으로 좌천한 후 다시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재좌천 후 2023년 7월 중장으로 예편했다.
사단가
편집대륙 땅 주름잡던 우리 겨레 힘찬 기상 이어받은 율곡 부대 민족의 통일 대업 가슴에 안고 전진의 깃발아래 뭉친 너와 나 전선의 최북단 이 땅을 지키고 내 부모 내 형제 내 조국 위해 적진을 쳐부순다 멸공통일 그 날까지 아아아 우리들은 대한의 건아 승리 향해 전진하는 22사단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육군 22사단 장병, 화재 진압·자살 시도자 구조”. 《연합뉴스》. 2015년 1월 8일. 2015년 1월 13일에 확인함.
- ↑ 지형철 (2021년 4월 15일). “軍 "동해안 경계 인력 보강... AI 경계시스템 구축"”. 《KBS 뉴스》. 2021년 3월 9일에 확인함.
- ↑ 2021년 11월 30일 해체된 제23보병사단의 제58보병여단 제2대대 (또는 제1대대 "비호"
- ↑ 기존 정비대대, 보급수송대대의 통합 (각 연대가 여단으로 개편되면서 여단에 자체 수송대를 확대 개편한 군수지원대대가 편성되었는데, 이때 사단 정비대대, 보급수송대대의 전력 일부가 각 여단 군수지원대대로 이전되었다.
- ↑ 유현민 (2021년 3월 4일). “군 '헤엄귀순' 문책…22사단장 보직해임·8군단장 엄중경고(종합)”. 《연합뉴스》. 2021년 3월 9일에 확인함.
- ↑ 중장에 절대로 진급할 수 없는 소장들로만 보직되는 전역대기직이다. 2000년 1월 1일 이래로 현재까지 육군보병학교장이 중장으로 진급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