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닌

에도 시대에 도시에 거주하던 장인, 상인을 총칭하는 말

조닌(町人)은 에도 시대에 도시에 거주하던 장인, 상인을 총칭한 말이다. 조(町)는 ‘도시’ 또는 ‘도회지’를 의미한다.

에도 시대 후기의 에도 후카가와 후카가와 에도 자료관 Archived 2013년 10월 29일 - 웨이백 머신)
상가의 실내 (후카가와 에도 자료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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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기에 사회적 분업에 기초한 신분 제도(사무라이, 백성, 서민)가 성립되었다. 각 영주는 라쿠이치, 라쿠자(樂市·樂座) 정책[1]을 실시하여 면세 특권과 영업의 자유의 승인 등으로 상공업을 마을에 유치했다. 이에 따라 직업으로 농업과 분리가 촉진되어 더 전문성이 높아졌다.

우수한 기술력과 풍부한 자본은 사무라이를 압도하였고, 자신의 도시 문화(상인 문화)를 형성,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조닌들은 특히 집과 대지를 소유한 가지층(家持)으로 큰길에 점포를 짓는 부르주아 계급인 부유한 무리부터 뒷골목의 하층민까지 계급적 차이가 있었고, 부유한 조닌은 도시의 정치와 공무에도 참여하며 도시의 관리를 선택할 수 있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갖는 등 사회적 신분이나 공적 권리, 의무도 있었다.

또한 부유한 상인으로서 사회적 역할의 하나로 임대 주택을 지어 임대료를 받고, 임차인에게 빌려주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대가를 고용하는 임차인에게 임대료 징수와 여러 잡무 등 공동 주택의 관리 운영을 맡기고 그 대가로 임대료 면제 등 혜택을 주었다.

도시는 부자, 하층 조닌과 다른 몰락한 도시 하층민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만담 등에 나오는 팔공(八公), 웅공(熊公)은 세입자였기 때문에 조닌은 아니었다.[2]

전후 실증주의적 역사 연구에서 조닌(町人), 직인(職人), 상인(商人) 등 근세 사회 집단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었다. 1975년에 나카이 노부히코는 조닌 소학관, 《일본의 역사》(日本の歴史)에서 체계적인 조닌론을 펼쳤다. 1980년대 이후에는 중세사 분야에서 아미노 요시히코사쿠라이 에이지 등 상인, 장인 연구와 상호 관계하여 요시다 노부유키, 츠카 다카시 등 도시사(都市史) 연구 진척에 따라 조닌 연구가 진전되었다.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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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뇨오보(町女房)는 에도 시대의 도시, 조닌 가정에 사는 여성의 총칭이었다.[3] 도회지는 마을 쪽, 산 쪽, 포구 쪽에 대한 ‘도시성’, 무가, 사찰에 대한 ‘민간성’, 유곽에 대한 ‘현세성’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며[4], 마치뇨오보는 즉 에도 시대 도시의 민간에 사는 일반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야마기시 카요(山岸荷葉)의 소설 《마치뇨오보》(町女房)(1906년)는 에도 시대의 도시 생활의 연장선상에 있는 메이지 시대의 도시 여성을 그린 것이다.[5]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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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町女房』, 山岸荷葉, 春陽堂, 1906년 7월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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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봉건 영주의 보호 속에 점포 독점권을 유지하던 특권적 동업자단체인 이치자(市座)의 특권을 폐지해 시장을 자유롭게 한 조치
  2. 司馬遼太郎1990『この国のかたちニ』2頁
  3. デジタル大辞泉(일본어)町女房』 - Kotobank、2012년 8월 9일 확인
  4. 大辞林 제3판(일본어)町方』 - Kotobank, 2012년 8월 9일 확인
  5. 山岸、p.1-2.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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