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흔
주흔(周昕, ? ~ 196년)은 중국 후한 말의 정치인이다. 자는 대명(大明)이며 양주(揚州) 회계군 사람이다. 원술과 손책에게 저항하다 죽었다.
주흔 周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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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회계군 |
사망 | 196년 회계군 |
성별 | 남성 |
국적 | 후한 |
직업 | 정치인 |
경력 | 단양태수 |
생애
편집어릴 때 수도 낙양으로 가 태부(太傅) 진번에게서 학문을 사사하였다. 많은 책을 읽었으며 풍각이라는 점술에 능했다. 태위부(太尉府)의 부름을 받은 후 단양태수까지 올랐다.
190년(초평 원년) 동탁의 횡포에 반동탁 연합군이 궐기했다. 여기에 참가한 조조가 형양(滎陽)으로 진격했다가 서영에게 깨지고 병사가 부족해졌다. 하후돈과 조홍[1]이 양주로 와서 모병하므로 자사 진온과 함께 4,000명을 지원해줬다.[2]
이후 반동탁 연합군은 원소와 원술의 양 진영으로 분열하여 싸웠다.[3] 주흔은 원술의 지나친 잔학함을 싫어하여 원소에게 붙었다. 동생 주앙, 주우와 함께 원술의 예주를 취하려 했지만[4] 그 자사 손견에게 패하였다.[5] 원술이 오경을 보내 단양을 공격하였다. 이를 막아내니 오경은 주흔을 따르던 백성들을 죽였다. 주흔은 “내가 부덕한 것이지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는가.” 라며 군사를 해산시키고 고향 회계로 돌아갔다.[6]
196년(건안 원년)[7] 손책이 회계를 침공하기에 그 태수 왕랑과 함께 맞섰다. 손책이 사독(査瀆)을 통해 고천둔(高遷屯)으로 우회 기습하자 급하게 나섰다가 전사하였다.[8]
삼국지연의
편집사서가 아닌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왕랑이 손책에게 항전할 때만 등장한다. 태사자와 어우러져 싸우는 왕랑을 도우러 나와 이를 저지하는 황개와 대결한다. 손책이 사독으로 기동하자 쫓다가 복병을 당해 그 창에 찔려 죽는다.
가계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삼국지》9권 위서 제9 조홍
- ↑ 《삼국지》1권 위서 제1 무제 조조
- ↑ 《후한서》75권 열전 제65 원술
- ↑ 《후한서》 공손찬전·원술전은 주흔, 《삼국지》 공손찬전과 《전략》(배송지 주석, 《삼국지》 공손찬전에서 인용)은 주앙, 《오록》과 《회계전록》(배송지 주석, 《삼국지》 손견전에서 인용)은 주우라고만 하여 동시가 아니거나 인명의 오기일 수도 있다.
- ↑ 《후한서》75권 열전 제65 원술, 《자치통감》60권 한기 제52 헌제 초평 2년, 《회계전록》 ; 배송지 주석, 《삼국지》46권 오서 제1 손견에서 인용
- ↑ 《헌제춘추》 ; 배송지 주석, 《삼국지》51권 오서 제6 손정에서 인용
- ↑ 《자치통감》62권 한기 제54 헌제 건안 원년
- ↑ 《삼국지》51권 오서 제6 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