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달수
지달수(池達洙, 1909년 8월 6일~1969년 5월 16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이다.
지달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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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본명 | 지경옥(池景玉) → 지달수(池達洙) |
출생 | 1909년 8월 6일 대한제국 한성부 종로방 |
사망 | 1969년 5월 16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 부속 병원 | (59세)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30번지 |
국적 | 대한민국 |
본관 | 충주(忠州) |
별칭 | 일명: 이경옥(李景玉)·이달수(李達洙) |
학력 |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1기(1956년 2월) |
부모 | 지청천(부), 윤용자(모) |
형제 | 지복영(여동생) 지정계(남동생) |
친척 | 이재석(매제) 지재선(친조부) 이준식(생질) 지운영(삼종조부) 지석영(삼종조부) |
활동 정보 | |
관련 활동 | 독립 운동 |
활동 기간 | 1931년 3월 2일~1964년 12월 9일 |
주요 활동 | 대한독립군 대한정일군 대한광복군 존 리드 하지 미군정청 군정장관 등을 비롯한 삼팔도선 이남 미군정 시대 |
경력 | 대한광복군 중령 전역(1945. 08. 22.) 대한독립군 특무별동대 예하 소대장 대한독립군 특무별동대 작전장교 대한독립군 특무별동대 정보장교 대한독립군 특무별동대 예하 중대장 대한독립군 특무별동대 예하 대대장 대한정일군 항일반만군단 예하 대대장 대한광복군 제2지대 예하 구대장 1931년 만주 지린 성 지린 독립군 전투 참전 1931년 만주 헤이룽장 성 솽청 정일군 전투 참전 1932년 만주 주둔 정일군 항일 반만 전투 참전 1937년 중일 전쟁 참전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안재홍 미군정청 민정장관 비서실 보좌관 직무대리(1947년 2월 26일~1947년 6월 18일)를 지냄. 대한국민당 당무위원 겸 중앙위원 민주국민당 당무위원 겸 중앙감찰위원 한국독립당 당무위원 겸 중앙대표위원 대한광복군동지회 부회장 겸 고문 대한독립동지회 상임위원장 겸 상임고문 |
웹사이트 | 지달수 : 독립유공자 공훈록 - 국가보훈처 |
대한광복군 총사령관 등을 지낸 백산 지청천 장군의 맏아들이며, 본관은 충주(忠州)이고, 흔히 일명으로는 이경옥(李景玉)·이달수(李達洙)라 불리우기도 했다.
생애
편집아버지 지청천을 따라 중화민국 국민정부 본토 시대 둥베이로 건너가서 지린 성 지린의 검성중학을 졸업하였다. 우창 현에서 농촌청년을 규합하여 청년회를 조직하여 항일독립사상을 고취했고 1931년 대한독립군에 들어가 총사령관인 지청천 밑에서 하사로 활동했으며 지린 성 지린 독립군 전투와 헤이룽장성 하얼빈 부 솽청 현 정일군 전투에 각각 참전했다. 1932년 항일 반만군과 연합하여 소대장이 되어 30차례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1933년 중국중앙군관학교 제2분교에서, 1934년 중국군관학교 뤄양분교 한국인특별반에 입학하여 군사교육을 받았다. 1936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화북·평수지구공작단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는 한편,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위원 겸 쑤이위안성 지구당위원장을 역임하다가 1940년 한국광복군 편성에 참가하여 총사령부 경리에 임명되었고, 이듬해 광복군 제2지대 예하 구대장으로 활약했다. 8·15 광복이 되자 귀국하여 미군정청에서 잠시 일하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한국민당 중앙위원, 민주국민당 중앙감찰위원, 한국광복군동지회 부회장, 대한독립동지회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으며 1969년 5월 16일 서울대학병원에서 숙환으로 사망했다.[1][2]
학력
편집가족 및 친척 관계
편집각주
편집- ↑ 獨立(독립)투사池達洙(지달수)옹[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경향신문 1969년 5월 17일 작성
- ↑ 愛國志士池達洙(애국지사지달수)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동아일보 1969년 5월 17일 작성
같이 보기
편집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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