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나키야(산스크리트어: चाणक्य) 또는 카우틸랴(산스크리트어: कौतिल्य)는 마우리아 왕조의 창시자인 찬드라굽타를 도운 아차리야이다.

차나키야
चाणक्य
마우리아 제국아마티야
임기 기원전 322년 ~ 기원전 275년
군주 찬드라굽타 마우리아
빈두사라

신상정보
종교 브라만교

저서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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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저서인 아르타샤스트라고대 인도의 정치와 외교와 군사의 지침서로서 가장 유명한 책이다. 3세기 경에 바라문의 학자가 편찬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중에는 카우틸랴(전 4세기 후반∼전 3세기) 자신의 주장이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국왕즉국가’(國王卽國家)라는 주장을 기본으로 저작된 것이다. 그가 최고 목적으로 생각한 국가라는 것은 국왕이나 혹은 국왕의 이익에만 한정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영토를 확장하며 어떻게 하면 국왕의 이익을 증대하겠는가 하는 것이 그의 최대 관심사였다. "인민에게 기초를 두지 않은 국왕은 쉽게 멸망한다"고 하지만, 인민은 다수 수단으로서의 의의밖에 갖고 있지 않았다. 서민 천명의 손실보다도 지도자 한 사람의 손실이 더 큰 손실이다.

그는 왕이 소유하는 비책(秘策)을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국왕은 정치의 법식을 좇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불법적인 정치에 의하여 왕국과 자기 자신을 멸망시키는 일이 된다. 동맹 체결을 해야 할 가능성이 있을 때는 타국과 동맹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외교에 관한 많은 일을 교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방(友邦)을 우리 편으로 삼기 위해서는 역시 무력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군대의 양성과 성곽을 쌓는 일에 힘을 경주해야 할 것을 역설하고, 또 전승(戰勝)을 거두기 위하여 준수해야 할 많은 규칙을 서술하여 선전(宣戰)·진주(進駐)·정전(停戰)에 대한 여러 가지 교시(敎示)를 주고 있다. 그러나 무력을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국내 정치기구의 개혁과 경제력의 충실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참으로 실행력이 있는 인물을 대신으로 등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관리가 중심이 되어서 일체의 사업을 수행시키도록 하였다.

카우틸랴의 인생관은 공리주의라는 입장에 서 있었다. "실리(實利)야말로 가장 주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법도 애욕(愛欲)도 실리에 근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화(財貨)는 일체의 사업을 달성시킨다"고 했다. 그의 학문론에 의하면 학문으로서는 철학과 베다학과 실업학과 정치학의 네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철학을 독립의 학문으로서 인정한 것은 그가 최초이다. 그렇지만 학문의 학문된 보람은 이들 네 가지 종류에 의하여 법과 실리를 아는 데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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