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D. C. 윌러드
펠리스 도메스티쿠스 체스터 윌러드(Felis Domesticus Chester Willard, 1968년 ~ 1982년)[1] 또는 F. D. C. 윌러드(F. D. C. Willard)는 미국 미시간 주립 대학교 소속 물리학자인 잭 헤더링턴(Jack H. Hetherington)이 키우던 시암고양이인 체스터(Chester)가 사용했던 필명이다.[A] 미국 미시간주 잉햄군 홀트 비법인지구에서 태어났다.[1]
1975년 헤더링턴은 학술지 피지컬 리뷰에 저온물리학에 관한 자기 연구 성과를 논문으로 투고하려고 했는데, 투고 전에 원고를 점검해준 동료가 헤더링턴이 "나(I)"를 사용해야 할 곳에 "우리(We)"라는 말을 사용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수정이 귀찮았던 헤더링턴은 자기 고양이를 공저자로 올렸는데,[2] 이것이 바로 설치류 포식 컨설턴트(Rodentia Predation Consultant)이자 물리학자인 소위 F. D. C. 윌러드 박사다.
1980년에는 프랑스의 대중과학잡지 《라 르셰르슈》(La Recherche)에 이번에는 체스터 단독 명의로 기고문이 올라갔다.[3] 체스터는 1982년 사망했고,[1] 그 이후 F. D. C. 윌러드는 학술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배경
편집F. D. C. 윌러드 명의로 발표된 최초의 논문은 1975년에 《피지컬 리뷰》에 투고한 "Two-, Three-, and Four-Atom Exchange Effects in bcc ³He" 로, 잭 헤더링턴과 F. D. C. 윌러드의 공저품이었다.[4] 논문의 내용은 헬륨 동위원소 ³He가 등축정 결정계의 고체 상태로 존재함에 관한 것이었다.
잭 헤더링턴은 고양이를 제2저자로 삼은 이유를, 본래 논문의 1인칭 대명사들을 단수가 아닌 복수로 쓰는 실수를 저질렀고, 《피지컬 리뷰》의 편집자들이 이러한 형식에 대하여 저자가 최소 두 명 이상일 경우에만 허용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5] 논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복수대명사들을 찾아서 단수대명사로 바꾸느니 귀찮았던 헤더링턴은 제2저자를 "만들어 내기로" 했다.[2] 그래서 그는 "F. D. C. 윌러드"라는 제2저자를 만들어냈고, 여기서 F.D. 라는 이니셜은 집고양이의 학명인 "펠리스 도메스티쿠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C. 는 고양이 이름 "체스터"이고, "윌러드"는 콜로라도주 애스펀에 살던 시암고양이로, 다름 아닌 체스터의 아비고양이였다.[5]
뒷일
편집논문의 발행본을 받아본 헤더링턴은 체스터의 앞발을 잉크에 담그고 그것을 도장처럼 찍어서 이것이 "F. D. C. 윌러드"의 서명이라고 제출했다. 그리하여 두 명의 저자의 "서명"이 된 논문 10여 부가 발행되어 동료들에게 발송되었다.[5]
헤더링턴의 논문은 상당히 우수한 것으로서 여러 차례 피인용되었기 때문에,[6] 자연히 공저자도 같이 유명해지게 되었다. 미시간 주립 대학교의 헤더링턴의 사무실에 전화가 왔을 때 헤더링턴이 부재 중이자 전화 건 쪽이 공저자 윌러드 박사를 바꿔달라고 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7] 그 뒤 F. D. C. 윌러드는 각주들에서 여러 번 등장하면서 “유용한 의논” 및 의사소통에 관한 기여를 감사받았다.[2] 심지어는 교수직을 제안받기도 했다.[8]
1978년, 프랑스 그르노블에서 개최된 제15회 국제저온물리학회는 "윌러드 박사"가 그전까지 어떠한 학회에도 참여한 바 없었기 때문에 그를 학회에 초청했다. 그러나 학회 참여자 중 한 명이 F. D. C. 윌러드의 정체가 아마 고양이일 것이라고 증언하여 초청은 철회되었다.[9]
1980년 프랑스의 대중과학잡지 《라 르셰르슈》(La Recherche)에 F. D. C. 윌러드 명의의 두 번째 글이 올라왔다. 이번에는 단독 저자였다.[3] 이 경우는 기사 내용의 특정 세부사항에 동의할 수 없었던 실제 저자들 중 한 명이 가명을 사용하여, 만일의 오류가 발생했을 경우 그 책임이 F. D. C. 윌러드에게 돌아가게 만들려고 한 장난질이었다.[9] 이 글의 주제도 ³He였고, 이번에는 ³He의 반강자성에 대해 다룬 글이었다.
고양이 체스터는 1982년 미국 미시간주 잉햄군 해슬렛 비법인지구에서 사망했다. 1968년에 태어났기에 나이는 만 14세였고,[1] 인간 나이로 환산하면 72세 정도이다.
이런 역사로 인해 F. D. C. 윌러드는 "유명한 고양이"를 꼽을 때면 자주 목록에 이름이 오른다. 미국 물리학회(APS)는 2014년 만우절 장난으로 앞으로 고양이가 쓴 논문(당연히 헤더링턴과 윌러드가 1975년에 쓴 것을 포함)은 무제한 열람이 가능하다[B]고 발표했다.[10]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내용주
- 참조주
- ↑ 가 나 다 라 P.I. Engineering. “F. D. C. Willard”.
- ↑ 가 나 다 Heinrich Zankl (2008), 〈Einsteins preußischer Schatten und Hetheringtons Kater [Einstein's Prussian shadow and Hetherington's cat]〉 (PDF), Von Dunkelbirnen und Leuchtkaninchen, 《Erlebnis Wissenschaft》 (독일어), Weinheim: WILEY-VCH Verlag GmbH & Co., 14–15쪽, ISBN 978-3-527-32114-8
- ↑ 가 나 F. D. C. Willard: L’hélium 3 solide. Un antiferromagnétique nucléaire. In: La Recherche, Nr. 114, 1980 [1][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J. H. Hetherington and F. D. C. Willard: Two-, Three-, and Four-Atom Exchange Effects in bcc ³He. Phys. Rev. Lett. 35, 1442–1444 (1975)
- ↑ 가 나 다 Robert Lemmerman Weber: More Random Walks in Science. CRC Press, 1982, p. 110. ISBN 0-85498-040-7.
- ↑ Beispiel, 《Journal of the Physical Society of Japan》
- ↑ 《Academia Obscura, Academic Animals》
- ↑ Woodruff Letter (from MSU Dean Truman O. Woodruff to Professor Jack Hetherington, dated 26 November 1975)
- ↑ 가 나 Robert Lemmerman Weber: More Random Walks in Science. CRC Press, 1982, p. 111. ISBN 0-85498-040-7.
- ↑ 《APS Announces New Open Access Initiat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