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호 (15세기)
생애
편집1455년(세조 1) 삼군진무소사용(三軍鎭撫所司勇)으로서 원종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1456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좌랑(佐郞)을 역임하고, 1463년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승직하였다. 이후 공조정랑(工曹正郞)·영천군수(永川郡守)·간경도감사(刊經都監使)·경기도경차관을 역임하였다.[1]
성종 초에 당상관에 오르면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1475년(성종 6) 행홍주목사(行洪州牧使)로 파견되고, 다음해 사적으로 홍주에 출래한 권신 한명회의 종복에게 관속을 동원하여 주었다고 탄핵되면서 국문을 당한 후 파직되고, 고신(告身)을 돌려받기는 하였으나 다시 서용되지 못하였다.[2]
가족
편집- 부 : 최득하(崔得河)
- 장인 : 송처공(宋處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