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백기완

마지막 의견: 1년 전 (InternetArchiveBot님) - 주제: 외부 링크 수정됨 (2023년 6월)


‘의도적인 거짓유포’항목 정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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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적인 거짓유포’항목은 기존 항목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않습니다. 잘 정리되어 있는 다른 항목이 백기완의 삶 전체를 조망하고 있는 반면, 이 항목은 단일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모든 항목만큼 분량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평가 항목을 두고 그 아래 비판 항목을 놓은 다음 대폭 정리하고, 제목도 비난이 담기지 않은 객관적인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3일 (목) 16:57 (KST)답변

정리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백기완 문서에 편집하시는 분이 안 계셔서 어떤식으로 해야될지 잘 모르겠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3일 (목) 17:09 (KST)답변
내용을 찬찬히 살펴본 결과 정리할 필요도 없이 삭제해야 할 내용이라 지웠습니다. 일단 이 항목의 주제는 백기완의 ‘의도적인 거짓유포’였다가 ‘일화?’로 바뀌었는데요. 백기완 선생은 김두한과 관련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거짓 유포한 적이 전혀 없군요. 백기완 선생은 어린 시절 ‘가대기 형님’이란 분이 김두한의 부정 제의를 거절한 얘기를 한 것뿐이네요. 고은 시인이 백기완 선생을 쌍도끼로 오해한 것이지 해당 항목에 제시된 인용문의 주체는 백기완 선생이 아니군요. 일단 여기에 중대한 착오가 있습니다.(제시된 출처 중 경향신문에 나온 고은 자전소설과 한겨레신문에 나온 백기완의 육성 및 대담을 확인하세요.) 결코 거짓 유포가 아닌 것이지요. 고은의 오해를 백기완의 거짓 유포로 잘못 뒤집어 씌운 것입니다. 게다가 나머지 내용 대부분은 김두한의 됨됨이에 대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으니 백기완 문서에 더군다나 어울리지 않는군요. 그 내용들이 필요하다면 김두한 문서에 반영해야 합니다. 혹시 일화로 항목을 두고 내용을 남기더라도 김두한과 얽힌 어린 시절 ‘가대기 형님’에 대한 것이라거나 고은이 백기완이 김두한을 제압했더란 오해를 했다는 식이 사실인데, 굳이 백기완 문서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4일 (금) 02:44 (KST)답변
본인이 정리에 동의한다고 했지 삭제에 동의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4일 (금) 12:38 (KST)답변
내용을 확인하셨는지 의문이 드네요. 해당 문서에 인용문 내용은 언론 기사 내용이며 백기완 씨 자신의 저서에서는 언론에 내용보다 더 깁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4일 (금) 12:39 (KST)답변
본인은 어제 분명히 정리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백기완 문서에 편집하시는 분이 안 계셔서 어떤식으로 해야될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의견을 남긴 바 있습니다. 중립성을 위해 조금 내용을 수정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4일 (금) 12:42 (KST)답변
주된 질문은 이렇습니다.
  1. 고은의 이야기를 백기완이 말한 것처럼 싸잡은 것에 대한 해명(쌍도끼 운운은 고은의 이야기입니다. 저야말로 내용을 확인하셨는지 의문이군요.)
  2. 백기완이 얘기한 ‘가대기 형님’ 일화가 꼭 백기완 문서에 있어야 하는가
  3. 결정적으로 해당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김두한에 대한 우호적 평가가 왜 백기완 문서에 있어야 하는가--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4일 (금) 12:44 (KST)답변
기사 내용을 확인하신 게 맞나요? (전략)"20대에 국토 개조의 운동을 했는가 하면 폐허 명동에서는 김두한을 제압한 쌍도끼라는 어깨 역할도 했다."(하략)

가대기 이야기는 2003년 통일이야기 저서에서 언급했고 저서뿐만 아니라 가십거리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야인시대 방영시기에 의도적으로 폄하하기위해 언론 등에서도 공공연하게 발언된 내용입니다.[1] 또한 2010년에도 계속해서 이어왔습니다. 우호적 평가 전혀 할 생각도 없으며 처음엔 이 정보를 알게 된 후 사실인지 궁금하여 조사했고 자료 한두 개만 제시해놓으면 중립성 이의제기에 대비해서 자료 나오는 대로 제시해놓은 겁니다. 왜 백기완 문서에 있어야 되냐고 말씀하셨는데, 이 내용은 백기완 씨 본인이 당사자입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4일 (금) 12:51 (KST)답변

어허 자꾸 왜 이러시는지요? 그 경향신문 기사는 고은의 자전적 소설의 한 회라니까요. 누가 얘기한 것입니까? 고은이지요. 그리고 기여하신 내용 대부분이 김두한에 대한 것인데 왜 백기완 문서에 있어야 합니까? 혹 필요하다면 김두한 문서에 부정적 평가 항목 아래 이 일화를 제시하고 대폭 줄인 반박을 올릴 수는 있겠으나, 이 내용은 전혀 백기완 문서에 어울리지 않습니다.--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4일 (금) 12:54 (KST)답변
방금 다시 기사를 읽고 왔습니다.

(전략) 이 무렵 이같은 종로 5가 쪽의 운동비중에 한가닥 이의를 일으키고 있는 백범사상연구소 백기완과의 의기 투합은 깊어간다. 그는 어린 시절 여운형의 연설장에 갈 정도로 생득적인 정치감각을 가겼을 뿐 아니라 문학과 미학에 관한 한우리의 민중성은 갖추고 있는 진보적 역량을 확신하고 있었다. 20대에 국토 개조의 운동을 했는가 하면 폐허 명동에서는 김두한을 제압한 쌍도끼라는 어깨 역할도 했다"(하략) [2]

이 문장 이전과 이후 내용에 백기완 외 다른 인물을 지칭하는 이름은 없습니다. 이 내용하고 백기완 씨 통일이야기 저서에서 백기완 씨 본인이 이야기하는 내용하고 비교하면 내용이 비슷합니다. [3] 여기서 본문내용 미리 볼 수 있습니다. 사건 또는 논란이 있는 타 문서를 보아도 더구나 당사자이므로 제외하는 것이 이상합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4일 (금) 13:10 (KST)답변

백기완을 지칭하는 것과 문서에 나온 “백기완은 1996년에 20대 당시 명동에서 쌍도끼라는 별명을 가진 정체불명에 인물이 김두한을 무릎을 꿇게 하였다는 일화[3]와 2003년 저서 《백기완의 통일이야기》, 2008년과 2010년 한겨레 등 언론을 통해서는 10대 당시 가대기라는 정체불명에 인물과 김두한에 대한 일화에 대해 말했다.”는 엄연히 다른 것이지요. 제 첫 번째 질문은 아직 유효하군요. 그리고 내용 대부분이 김두한에 대한 것이니 그렇게 긴 내용을 백기완 문서에 둘 이유가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지금 외출하는데, 찬찬히 생각해 보시고 들어내 주기 바랍니다. 계속 이대로 유지된다면 위백 대중에게 여러 방식으로 의견을 구하겠습니다.--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4일 (금) 13:15 (KST)답변
그런 내용은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삭제는 납득되지않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4일 (금) 13:18 (KST)답변
그 부분 삭제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4일 (금) 13:22 (KST)답변
최대한 우호적으로 보려고 애썼으나,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군요. 일단 떠돌이 씨가 기여한 내용의 제목이 백기완의 ‘거짓 소문’인데요. 저는 백기완을 비난하려는 의도밖에 느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일화는 ‘거짓’인지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옛 경험담의 토로에 불과한 것인데 거짓이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논란이 상위 항목인데 언제 논란이 됐나요? 혹 논란이 있었다면 그 내용을 전하면 될 것입니다. 양쪽 의견을 균형 있게 제시해야 할 것이고요. 근데 이것은 논란이 아니라 백기완이 일방적으로 거짓 소문을 냈다는 전제하에 내용이 서술되고 있지요. 그래서일까요? [마지막 편집]에 나오는 두 번째 인용문은 마치 백기완의 직접 서술처럼 보이는데 더욱 노골적인 편집입니다.(해당 인용문의 주체는 일화 속 주인공인 ‘가대기 형님’이지 백기완이 아니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거짓임을 증명하는 논리적 과정이 허술합니다. 지금 이 항목 내용의 순서는 우선 ‘백기완이 김두한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여기저기서 하고 다닌다.’가 나오고요. 다음에 이어질 내용이 논증의 핵심인데 이렇습니다. 매우 기~~일게 여러 사람의 ‘김두한은 이러이러하게 훌륭한 사람이다.’가 나옵니다. 이것이 이 기여의 가장 큰 맹점이자 약점이고 그래서 사라져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어떤 언설을 거짓이라고 말할 때는 그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이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훌륭함이란 것이 주관적인 것이고 직접적인 증거가 아니라 정황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정황 증거가 대부분인 논증은 ‘아니면 말고’식 이야기나 다름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쌍도끼 일화와 방동규 일화가 비슷하니 백기완은 거짓 소문을 냈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앞서 얘기했듯이 쌍도끼 운운은 고은이 했기 때문에 그것은 고은의 오해일 뿐입니다. 이것을 자꾸 백기완의 거짓 소문이라고 남기려는 그 의도를 묻고 싶군요. 이런 일차적 자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결국 내용에 대해 그때그때 상황이 달라지는 등 여러 정황으로 보았을 때, 이는 거짓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매우 악의적인 독자연구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위키백과:독자연구 금지를 읽어 보세요. 굳이 가대기 일화가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으나 위백에 어울리게 정리해 놓을테니 살펴 보십시오. 또 막무가내로 되돌릴 경우 필요한 절차를 밟겠습니다.--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1:29 (KST)답변
가대기라는 일화는 10년 전부터 가십거리 식이 아닌 실제로 겪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 일화입니다. 방동규 기사와 고은 기사 내용 문장과 백기완 본인이 말하는 가대기 일화와 비교해보시죠. 어느 부분이 김두한을 훌륭했다는 내용이 있는지요? 하나라도 있다면 바로 제시해주시길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백기완 씨에 대해서도 그 어떤 깎아내리는 의도도 전혀 없으며 그런 마음도 없습니다. 본인은 오히려 2010년 12월 24일 (금) 02:44에 남기신 의견 등 사용자:Dalgial님께서 말하시는 주장이 더 앞뒤가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은 씨가 백기완 씨를 쌍도끼로 오해했다는 부분도 고은 씨가 백기완 씨를 쌍도끼라고 오해를 한 것이 아니라 쌍도끼라는 인물과 어깨노릇(같이 다녔다는 말이죠.)을 했다는 말인데 이 문장을 어떻게 그렇게 읽으신지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대기 일화에서도 백기완 씨가 가대기라는 짐꾼 형님을 만나고 이 형님과 같이 다니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교훈을 준 인물이라며 말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김두한이 부정제의를 거절했다는 내용 등 사용자:Dalgial 님 스스로 단정을 짓고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본인이 김두한을 높게 평가하기 위해 편집이 아니라 백기완의 흠집을 내기 위한 좋게 말하면 편집으로 반달로 단정 짓는 게 아니신가요? 논란 항목은 타 문서를 생각해서 한 건뿐 다시 수정하면 되고, 사용자:Dalgial 님은 이 내용에 본질을 고은 씨가 백기완 씨를 오해해서 고은 씨의 자작으로 말하고 있는 거 같습니다만, 내용을 다시 확인해보시고 의견을 올려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2:08 (KST)답변
이것 참. 고은 회고록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20대에 국토 개조의 운동을 했는가 하면 폐허 명동에서는 김두한을 제압한 '쌍도끼'라는 '어깨' 역할도 했다.” 어떻게 이것이 고은이 백기완을 쌍도끼로 본 것이 아닌가요? 어깨 역할이란 것을 쌍도끼의 어깨로 읽으셨나요? 쌍도끼와 어깨는 동격이고, 어깨는 주먹 쓰는 사람의 다른 말입니다.--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2:14 (KST)답변
기사를 읽으셨는지 의문이 드네요. 전체 내용을 보면 이 무렵 이같은 종로 5가 쪽의 운동비중에 한가닥 이의를 일으키고 있는 백범사상연구소 백기완과의 의기 투합은 깊어간다. 그는 어린 시절 여운형의 연설장에 갈 정도로 생득적인 정치감각을 가겼을 뿐 아니라 문학과 미학에 관한 한우리의 민중성은 갖추고 있는 진보적 역량을 확신하고 있었다. 20대에 국토 개조의 운동을 했는가 하면 폐허 명동에서는 김두한을 제압한 쌍도끼라는 어깨 역할도 했다" 여기에 쌍도끼라는 어깨노릇을 했다. 이 문장이 어떻게 백기완이 쌍도끼로 말하는것인지요? 앞에 내용에 분명히 20대에 국토 개조의 운동을 했는가 하며 폐허 명동에서는 김두한을 제압한 쌍도끼라는 어깨 역할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깨가 불량배를 속되게 하는 말인 거 잘 알고 있습니다. 본인에게 가르치려는 언행은 삼가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백기완 본인이 말하는 가대기 일화에서도 가대기(짐꾼을 말하는 말이죠.) 형님과 같이 다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토론 의견에 중립성 이야기하시고 정리라는 이름으로 백기완 가대기 일화만 남겨놓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2:25 (KST)답변
그 이유는 앞에 수차례 말씀 드렸는데요. 올리고자 하는 내용은 김두한 문서에 대폭 정리해서 올릴 내용이라고요. 그리고, 가대기와 쌍도끼를 왜 동일인물로 생각하고 계신가요? ‘쌍도끼라는 어깨’를 어떻게 ‘쌍도끼의 어깨’로 읽을 수 있지요?--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2:33 (KST)답변
기사 내용처럼 김두한을 제압했다는 쌍도끼라는 어깨 노릇을 했다는 내용으로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동일인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 비슷하다는 내용을 편집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2:35 (KST)답변
바로 앞 격앙된 말씀이 허망하군요. 아직도 두 번째 인용문은 마치 백기완이 말한 것처럼 보이므로 가대기의 발언이란 것을 제가 편집한 것처럼 바꿔야 합니다. 마지막 결론은 쌍도끼와 가대기를 동일 인물로 보고 떠돌이 씨가 독자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므로 당연히 지워야지요.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김두한에 대한 길고도 긴 평가를 백기완 문서에더 당연히 다 들어내야 합니다. 지금 고쳐 놓은 항목 제목이 ‘백기완이 말하는 가대기 일화’라는 것을 상기하십시오. 고작 방동규 일화랑 비슷하다는 의혹만 간신히 남길 수 있는데, 그것의 출처를 제시하십시오. 아까 정리한 편집으로 돌려 놓겠습니다.--2010년 12월 26일 (일) 12:46 (KST)
기분이 나쁘셨다면 사과하겠습니다. 그런 의도는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고은이 말하는 기사에 어디에 백기완이 쌍도끼라는 별명으로 김두한을 제압했다는 내용이 있는지 혹시나 본인이 잘못봤나? 생각으로 해당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았지만 백기완 외 지칭하는 이름은 전혀 없습니다. 설령 고은이 백기완이 쌍도끼라는 별명으로 김두한을 제압했다는 내용으로 말한다고 해도 김두한은 1918년생, 백기완은 1932년생인데 백기완이 20대 당시 1950년대인데.. 한국 전쟁 당시에는 참전한 김두한 행적과 54년에는 3대 민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두한의 행적하고 비교를 해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이는 김춘삼이 김두한을 동생으로 삼아서 서로 호형호제했다는 일화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본인은 가대기라는 짐꾼 인물과 쌍도끼라는 인물을 동일인물이 아닌 내용이 비슷하다고 했지 제 독자연구가 아닙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2:55 (KST)답변
토론 결과..? 정리에서 토론결과로 바꾸신 이유가 무엇인가요?--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3:00 (KST)답변
바로 앞 제 얘기로 충분하지 않나요? 이 토론의 결과가요. 저는 김두한과 관련한 님의 고찰이 김두한 문서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부디 열심히 찾으신 내용을 김두한 문서에 반영해 주십시오. 백기완과 관련한 내용은 지금 편집해 놓은 것이 일화라는 이름으로 어울릴 뿐입니다. 일화는 일화니까요. 그것이 누군가에게 누를 끼치는 내용이라면 그것의 직접적인 반론을 제기해야 합니다. 님의 고찰도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밝히신다면 언제든지 해당 문서에 반영될 수 있겠지요.--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3:04 (KST)답변
앞에 내용은 귀하께서는 가대기는 사실이다 백 선생을 흠질 내는 내용은 삭제해야 한다는 된다는 의견 같으신데 이 내용이 결과이신가요? 반론자료는 Dalgial 님께서 본인이 제시한 자료가 부정적이다는 반론을 제기하셔야 옳음이 아니신가요.--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3:10 (KST)답변
이 토론에서 제가 할 만큼 충분히 노력했음에도 오로지 귀하의 뜻대로 계속 되돌리니 이제 위백 다중에게 물어 토론을 확장하겠습니다.--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3:14 (KST)답변
사용자:Dalgial 님은 백선생을 흠질 내는 내용과 고은이 백기완이 쌍도끼라는 별명으로 김두한을 제압했다는 이 두 내용밖에 하시지 않으셨습니다만, 충분히 노력에도 토론이 진행되지 않은 거처럼 말씀하시네요. 그런 발언은 토론 거부로 생각됩니다. 중재는 토론이 더는 안될 때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3:18 (KST)답변
첫 문장은 무슨 말씀인가요? 문제의 핵심은 백기완 문서에 왜 그토록 길게 김두한을 고평가하는 증언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어떻게 백기완이 얘기한 김두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한 직접적인 논증이 될 수 있으며, 결론이 어떻게 백기완이 거짓을 말한 것이다로 끝날 수 있는 것인가 등입니다. 저는 이 질문을 계속 묻는데 떠돌이이 전혀 논리적 답변을 제시하지 않고 문서를 일방적으로 되돌렸으므로, 더 이상 토론이 진행되지 않아서 사랑방에 이 토론을 널리 알린 것입니다.--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3:34 (KST)답변
Dalgial 님이 남기신 2010년 12월 24일 (금) 02:44 (KST) 의견이 오히려 단정을 짓고있습니다. 고평가에 대해서 그 질문에 답변했지만 하나라도 있다면 말씀해달라고 밝히며 본인은 김두한에 어떤 옹호적 평가도 백기완에 어떤 폄하도 의도도 없으며 그런 생각도 없다고도 밝혔습니다. 토론 본질을 흐리지마시고 본 내용만 말씀하세요.--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3:37 (KST)답변
저는 떠돌이 님이 김두한을 고평가하건 말건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문제는 왜 백기완 문서에 김두한 평가의 내용이 문서의 반이나 차지해야 하며, 허술한 논증과 결론이 남아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그것이 떠돌이 님이 처음에 원했던 문서의 ‘정리’입니다. --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3:42 (KST)답변
무슨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용자:Dalgial 님이 김두한을 고평가를 하고 백기완을 왜 흠질 내냐고 말씀하셨는데, 뜬금없이 본인이 김두한을 고평가하는 거처럼 말씀하시는 저의는 무엇인가요? 그 허술한 논증과 결론이라는 자료를 제시하시길 바랍니다. 백 선생을 흠질 내는 내용이라는 부분은 객관적이고 그 반대되는 내용은 반달행위라는 귀하의 논리가 허술하고 유치한 논리라고 생각되지 않으신가요? 토론의 본질이 서로 인신공격으로 변질하는 거 같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3:46 (KST)답변
진정하시고요. 김두한을 고평가하는 내용만 그렇게도 많이 열거하셨으며, 본인도 인정한 ‘와전’에 입각한 결론이 “백기완의 말은 거짓이다”로 내리시어 누구나 그 편집의도를 김두한 띄우고 백기완 흠집 내는 것으로 볼 수 있을 텐데요. 님께서 정말 객관적으로 서술하셨다면 믿지요. 그런데 여기서 토론의 핵심은 그게 아니라니까요. 객관적으로 서술해야 할 위백에 어울리지 않는 ‘기술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고요. 왜 백기완 문서에 김두한 평가의 내용이 그렇게도 길게 백기완 일화 항목에 있어야 하는지 묻는 겁니다. 그럴 이유가 없으므로 들어내야 한다고요. 그리고 소위 논증인 그것을 들어내야 하는 이상 마지막 결론까지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정리를 해 놓았더니 계속 되돌리고 있어서 사랑방에 의견을 구한 것이고요.--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3:55 (KST)답변
본인은 흥분한 적 없습니다. 본인은 백기완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일화에 그 반대되는 자료만 편집만 했지 단정을 한 적이 없습니다. 어느 가십거리 식도 제삼자에 의견도 아닌 당사자 내용을 삭제해야 된다는 의견이 더 납득이 되지 않으며 사랑방에 올리신 중재 관련 글이 어떻게 정리인가요? 정리->토론결과라는 이름으로 딱 그 일화만 남겨놓은 것은 객관적 자료라고 말씀하시는 사용자:Dalgial님의 논리가 앞뒤가 맞지 않다고 생각됩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3:59 (KST)답변
반대되는 자료를 ‘적절히’ 기존 문서와 조화롭게 편집하자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위백은 자료를 나열하는 곳이 아니니까요. ‘정리’는 문서 역사를 살펴 보면 나오는 제가 한 편집이고, 그것을 매우 자주 되돌리고 계시며 제 의견은 전혀 귀기울이지 않으셔서 사랑방에 공개 구언 한 것입니다. --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4:06 (KST)답변
가대기 일화가 적절히 자료인가요? 언제부터 토론 의견을 말씀하셨다고 이제는 본인이 의견을 기울리지 않았다.. 기만하시는 거 아니십니다. 아무튼. 내용 조금 다시 수정해봤습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4:08 (KST)답변

토론

편집
  1. 2010년 12월 24일 (금) 02:44 판
(본인) [4]
  1. 2010년 12월 24일 (금) 12:44 판
(본인) [5]
  1. 12월 24일 (금) 12:55 판
(본인)[6]
  1. 2010년 12월 24일 (금) 13:15 판
(본인)[7]

2010년 12월 26일 (일) 11:29 판 여기서부터 토론 본질이 서로 인신공격으로 변질하였군요.--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4:19 (KST)답변

다시 한번 호소합니다. 다른 어떤 문서를 보세요. 해당 표제와 상관 없는 인물에 대한 평가가 문서의 반이나 차지하고 있는 문서가 하나라도 있는지. 오래 끌 문제도 아니므로, 제 정리 안으로 되돌리겠습니다. 충분한 토론을 했고, 서로 벽을 확인했으니 다시 되돌리시면 바로 위키백과:사용자 관리 요청에 심판을 청구하겠습니다. 그렇게 결판을 내고 서로 귀한 시간에 의미 있는 기여를 계속해 갑시다.--Dalgial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4:26 (KST)답변
또 편집 요약에 정리라는 이름으로 와전하시고 토론란에서는 토론 의견을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토론의견을 말했다며 자신의 의견이 객관적이라고 말씀하시는 저의가 궁금합니다.--떠돌이 (토론) 2010년 12월 26일 (일) 14:37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23년 6월)

편집

안녕하세요 편집자 여러분,

백기완에서 1개의 링크를 수정했습니다. 제 편집을 검토해 주세요. 질문이 있거나, 봇이 이 문서나 링크를 무시하기를 바라신다면 간단한 자주 묻는 질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세요. 다음 변경사항을 적용했습니다:

봇의 문제를 수정하는 것에 관해서는 자주 묻는 질문을 참조해 주세요.

감사합니다.—InternetArchiveBot (버그를 제보하기) 2023년 6월 19일 (월) 21:00 (KST)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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