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성 (고조선)
고조선의 수도
개요
편집《삼국유사》는 《고기》를 인용하여 단군이 조선을 세우고 평양성에 도읍을 하였다가 백악산 아사달로 옮겨 1천 5백년을 다스렸으며, 주나라 초기에 기자(箕子)를 피해 장당경으로 옮겼다고 했다.[1]
위치
편집평양성의 현재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1993년 10월 평양시 강동군 문흥리 대박산 기슭에 위치한 단군릉(檀君陵)을 발굴하여 고조선의 수도라고 발표하였으며, 단군릉을 복원하였다. 이러한 발표에 대해 대한민국의 역사학계는 주체사상 및 정권 보전 차원에서 선전한 것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 평가하고 있다.[2] 실학자 박지원, 신채호, 윤내현, 복기대 등은 중국의 랴오닝성(요녕성, 遼寧省) 번시 시(本溪市)라고 주장하나[3], 한국의 주류사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일연(1281), 《삼국유사》 〈권제1〉 고조선 條 “古記云 [...] 都平壤城今西亰始稱朝鮮又移都於白岳山阿斯逹 [...] 御國一千五百年 周虎王即位己卯封箕子於朝鮮壇君乃移於藏唐亰 ” (고기에 이르기를 [...] 평양성지금의 서경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다. 다시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 [...] 주나라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封)하니, 단군은 이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겨갔다...)
- ↑ 〈논란 '단군릉' 남북공동조사 필요하다〉, 《한겨레신문》, 1995년 10월 3일,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100300289115001&editNo=5&printCount=1&publishDate=1995-10-03&officeId=00028&pageNo=15&printNo=2357&publishType=00010
- ↑ 윤내현, 《고조선 연구》, 일지사, 1990년, 355~3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