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라파르그
폴 라파르그(Paul Lafargue)는 19세기에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던 사회주의자이다.
폴 라파르그는 1842년 6월 15일 쿠바의 산티아고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와 코레올(creole) 혼혈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에 가족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하여 의학을 공부해 의사로서 일하였고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이며 무정부주의자인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을[1] 따르면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프랑스 제1인터내셔널에서 대표로 있으면서 마르크스, 엥겔스와 접촉하게 되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868년에는 마르크스의 둘째 딸인 로라 마르크스와 결혼하여 앵겔스의 지원을 받으며 정치 활동을 함께 하였다.
1870~1871년에는 파리와 보르도(Bordeaux)에서 정치 활동을 전개하고 파리 코뮌이 몰락하자 스페인으로 망명하여 마르크스주의 총회를 구성하는데 주력하였다. 폴 라파르그는 또한 개량주의와 밀레랑주의(Millerandism)에 반대하였으며[2] 여성 권리 신장을 위해 활동하였다. 1911년 나이 70에 그는 더 이상 운동에 참여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의 아내와 함께 자살했다.
대표적인 글로는 "게으를 권리"(Right to Be Laz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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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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