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구치 내각
하마구치 내각(濱口内閣)은 입헌민정당 총재, 중의원 의원 하마구치 오사치가 제27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되어, 1929년 7월 2일부터 1931년 4월 14일까지 존재한 일본의 내각이다.
하마구치 내각 | |
---|---|
내각총리대신 | 제27대 하마구치 오사치 |
성립연월일 | 1929년 7월 2일 |
종료연월일 | 1931년 4월 14일 |
여당·지지기반 | 입헌민정당 |
시행된 선거 | 제1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중의원 해산 | 1930년 1월 21일 |
내각각료명단 (총리대신 관저) |
재직 기간
편집개요
편집일본 제국 시대를 통틀어 가장 자유주의적 정권이라 간주되곤 한다. 입헌민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당내각이지만, 한편으로 귀족원의 친(親)민정당 의원을 많이 입각시켰다는 점에 특색이 있다. 외무대신에 전문 외교관 출신의 남작 시데하라 기주로를 재기용했으며, 그의 대(對)영미 협조외교는 '시데하라 외교'로 지칭되었다. 또한, 재계에서 신임이 있는 이노우에 준노스케 대장대신은 금 해금(金解禁), 긴축 재정, 산업 합리화를 단행시켜 러일전쟁 당시 발행된 국채의 차환과 더불어 일본 경제의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한편, 야당 입헌정우회 및 추밀원과 해군 군령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런던 해군 군축 조약을 체결 ・비준시켰다.
이러한 노선이 우익의 반감을 사면서 1930년 11월 14일, 하마구치 수상은 도쿄역 구내에서 애국사(愛国社) 당원 사고야 도메오(佐鄕屋留雄)에게 총격을 받아 집무가 불가능하게 되자, 관례에 따라 각료 가운데 궁중(宮中) 석차가 가장 높았던 시데하라 외상이 내각총리대신 임시 대행을 겸임했다. 그러나 시데하라는 민정당원이 아니었고, 위의 임시 대행이 장기간 계속된(결과적으로 최장 존속 기록 116일) 사정 등에서 그의 실언을 계기로 정우회의 거센 공격을 받게 되었다. 치료 입원중이던 하마구치가 지팡이를 짚으며 의회에 복귀했지만, 결국 병세의 악화로 총사퇴하였다. 그로부터 4개월 후에 하마구치는 사망했다.
각료
편집외부 링크
편집- (일본어) 수상 관저 - 하마구치 내각
일본의 역대 내각 | ||
전임 내각 다나카 기이치 내각 |
하마구치 내각 1929년 7월 2일 ~ 1931년 4월 14일 |
후임 내각 제2차 와카쓰키 내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