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만석
하만석(河萬錫, Ha Manseog 1658년 2월 20일 ~ 1737년 7월 28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로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여인(汝仁), 호는 초암(樵菴), 정2품 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 아버지는 종2품 가선대부를 지낸 하응철이다. 조부는 유학자 하도(河圖)이며, 증조부는 진양하씨 사직공파 사천조동 문중을 창문(創門)한 하태원(河太沅)이며 고조부는 좌찬성 하경담 선생이다.
가선대부 하만석
嘉善大夫 河萬錫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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門中紋章 | |
정2품 지중추부사 | |
군주 | 효종, 영조 |
이름 | |
별명 | 자 여인(汝仁) 호 초암(樵菴) |
신상정보 | |
출생일 | 1658년 2월 20일 |
사망일 | 1737년 7월 28일 |
사망지 | 사천조동 |
국적 | 조선 |
경력 | 지중추부사 |
본관 | 진양 |
부모 | 부 하응철(河應澈, 가선대부) 모 정부인 밀양박씨 |
배우자 | 정부인 전주 이씨 |
자녀 | 하유서(河有瑞) |
직업 | 문신, 유학자 |
종교 | 유교(성리학) |
생애
편집하만석은 부친인 하응철 선생에 의해 5세부터 유학의 근본부터 배우기 시작하여 관례의 나이에 이를쯤에 학문됨이 출중하여 경서의 깨우침과 필서가 뛰어났다. 그는 진양하씨 사직공파 제23세손이자 사천조동 문중의 제4세 장손으로 문중을 현달케 했다. 그는 평소에 자녀들에게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교육하고 하문(河門)이 삼한시대부터 고려조에 이어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충과 효'를 근본으로 하는 가풍과 가훈의 정신을 진작(振作)하고 고양(高揚)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벼슬은 효종조에 이어 영조조에 이르기까지 가선대부에 이어 정2품 지중추부사를 역임했다.[1]
가계
편집- 증조부 : 하태원(河太沅, 진양하씨 사직공파 사천조동 문중 創門)
직계 후손
편집참고 자료
편집- 晉陽河氏大同譜(乾隆丙子譜,1756년)
- 晉陽河氏大同譜(乾隆壬辰譜,1772년)
- 晉陽河氏大同譜(乾隆乙酉譜,1789년)
- 晉陽河氏大同譜(道光戊子譜,1828년)
- 晉陽河氏大同譜(咸豐丁巳譜,1857년)
- 晉陽河氏大同譜(戊午譜,1858년)
- 晉陽河氏大同譜(庚辰譜,1880년)
- 晉陽河氏大同譜(庚子譜,1900년)
- 晉陽河氏大同譜(甲寅譜,1914년)
- 晉陽河氏大同譜(丁巳譜,1917년)
- 晉陽河氏大同譜(甲子譜,1924년)
- 晉陽河氏大同譜(戊辰譜,1928년)
- 晉陽河氏大同譜(壬辰譜,1952년)
- 晉陽河氏大同譜(乙未譜,1955년)
- 晉陽河氏大同譜(丁酉譜,1957년)
- 晉陽河氏大同譜(庚子譜,1960년)
- 晉陽河氏大同譜(乙酉譜,1969년)
- 晉陽河氏大同譜(甲子譜,1984년)
- 晉陽河氏大同譜(庚辰譜,2000년, 인제대학교 족보도서관 전자판)
- 河承武의 晉陽河氏 家門人物硏究(2015년)
각주
편집- ↑ 河承武의 晉陽河氏 家門人物硏究(2015)
- ↑ “'한국신학교육자상'수상 연합뉴스”. 2018년 8월 27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12월 15일에 확인함.
- ↑ “한국신학교육자상 수상 매일종교신문”. 2020년 9월 24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9년 12월 15일에 확인함.
- ↑ 하승무 가문, 부산지역 유일, 대한민국 병역명문가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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