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오브 구찌
"하우스 오브 구찌"(영어: House of Gucci)는 2021년 개봉한 미국의 전기, 범죄 드라마 영화로, 리들리 스콧이 감독을 맡았다.
하우스 오브 구찌 House of Gucc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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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리들리 스콧 |
각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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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안 | 베키 존스턴 |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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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사라 게이 포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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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 |
촬영 | 다리우시 볼스키 |
편집 | 클레어 심프슨 |
음악 | 해리 그레그슨윌리엄스 |
제작사 | |
배급사 | 유니버설 픽처스 |
개봉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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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158분 |
국가 | 미국 |
언어 | 영어 |
제작비 | 7500만 달러 이상[1] |
출연진
편집- 레이디 가가 - 파트리치아 레지아니[2] 역
- 애덤 드라이버 - 마우리치오 구찌[3] 역
- 재러드 레토 - 파올로 구찌[4] 역
- 제러미 아이언스 - 로돌포 구찌[5] 역
- 살마 아예크 - 주세피나 "피나" 아우리엠마[6] 역
- 알 파치노 - 알도 구찌[7] 역
- 잭 휴스턴 - 도베니코 데 솔레[8] 역
- 리브 카니 - 톰 포드[9] 역
- 카미유 코탱 - 파올라 프란치[10] 역
- 빈센트 리오타 - 페르난도 레기아니 역
- 알렉시아 머리 - 실바나 레기아니 역
- 미아 맥고번 자이니 - 알레산드라 구찌 역
- 플로런스 앤드루스 - 제니 구찌 역
- 머덜리나 디아나 게네아 - 소피아 로렌 역
- 유세프 커코어 - 네비르 키르다르 역
- 메디 네브부 - 사이드 역
- 밀루드 모라드 베나마라 - 오마르 역
- 안도넬로 아눈지아타 - 카를 라거펠트 역
- 캐서린 워커 - 애나 윈터 역
- 마르티노 팔미사노 - 리처드 애버던 역
여담
편집- 2011년 처음에 영화화가 기획되었을 때 마우리치오 구찌 역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였으나, 디카프리오의 스케줄이 맞지 않았고, 리들리 스콧도 유니버설과 갈등을 빚어 무산되었다. 나중에 다시 영화화가 기획되었을 때는 크리스찬 베일이 마우리치오 구찌 역에 고려되었다. 그러나 이번엔 리들리 스콧이 마우리치오 구찌 역에 애덤 드라이버를 원했고 실제 캐스팅이 그렇게 이루어졌는데, 촬영 초반 애덤 드라이버에게 스케줄 문제가 있었다. 만약 애덤 드라이버의 스케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면 대타로 크리스 에반스를 기용하려던 계획이 있었는데, 촬영 문제가 해결되며 애덤 드라이버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각주
편집- ↑ “Lady Gaga on Mining Personal Pain for ‘House of Gucci’”. The Hollywood Reporter. 2021년 11월 17일. 2021년 11월 19일에 확인함.
- ↑ 밀라노 기반의 운수회사 사장의 딸. 20대 초반부터 마우리치오와 만남을 이어오다 결혼했다. 결혼 초기에는 조용히 두 딸 알레산드라, 알레그라를 키우며 내조에 충실했으나, 마우리치오가 권력을 잡게 된 후부터 사업의 결정에 개입하기 시작했고 결국 관계가 소원해진다. 오랜 별거 끝에 두 사람은 이혼하게 된다. 이혼 후에는 영매술사를 불러 마우리치오에게 저주를 퍼붓는 의식을 치른다거나 폭언이 담긴 테이프를 보낸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다 마침내 1995년 3월 27일 마우리치오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것으로 징역 29년 형을 선고받았다.
- ↑ 창업주 구찌오 구찌의 손자. 아버지 로돌포 구찌의 극력 반대를 무릅쓰고 파트리치아와 결혼했다. 파올로 구찌와 함께 1970년대 후반부터 구찌를 경영하며 기성복 분야 진출을 추진했다. 1984년에는 바레인의 투자회사 인베스트코프와 손을 잡고 지분을 확보해 구찌 회장에 취임하나, 직감에 의존한 경영의 실패와 과도한 개인 부채로 인해 1993년 인베스트코프에게 지분을 매각한다. 1995년 3월 27일, 파트리치아 레지아니의 살인 청부로 4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마우리치오 구찌 사망 사건은 이탈리아 현대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살인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 ↑ 알도 구찌의 둘째 아들. 아버지 알도, 삼촌 로돌프의 사업을 도왔으나 이견이 많았고, 아버지를 분식회계 혐의로 고발하는 등 권력다툼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와 삼촌이 사망한 이후, 본인의 브랜드(‘Designed by Paolo Gucci’)를 내건 전략을 펼쳤는데 결과는...
- ↑ 창업주 구찌오 구찌의 막내아들이자, 마우리치오 구찌의 아버지. 가업보다는 영화 배우로 일하는 데에 관심이 많았고, 영화 촬영을 계기로 만난 배우 알렉산드라 빙클하우센과 결혼하여 마우리치오를 낳게 된다. 로돌포는 2차 대전에 연예 병사로 참전한 후 배우 일을 그만두고, 구찌 밀라노 지점의 관리를 시작으로 경영에 뒤늦게 참여하게 된다.
- ↑ 영매술사이자 파트리시아 레지아니의 오랜 친구. 마우리치오 구찌가 인베스트코프에 지분을 매각한 것에 분노한 파트리시아가 <구찌 대 구찌>라는 500쪽 짜리 책을 썼을 때 원고의 마무리를 도왔다. 파트리시아가 마우리치오를 청부살해 하기로 계획을 세운 이후, 파트리치아 대신 청부업자들에게 돈과 정보를 전달하는 중개인 역할을 했다. 이것으로 징역 25년 형을 선고받았다.
- ↑ 창업주 구찌오 구찌의 셋째 아들이자 구찌의 황금기를 이끈 인물. 피렌체 지역에서만 운영하던 구찌의 사업을 확장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특히 뉴욕을 시작으로 미국 진출에 각별히 신경을 쏟았는데, 이탈리아 브랜드인 구찌가 미국에서 부유층의 상징으로 자리잡자 존 F. 케네디가 그를 두고 ‘초대 주미 이탈리아 대사’라고 칭할 정도였다. 참고로 구찌오 구찌의 첫째 아들 우고는 의붓아들로, 베니토 무솔리니가 만든 국가 파시스트당에 참여하는 등 부모의 속을 썩였다. 둘째 아들 엔초는 불과 9살에 사망했고, 넷째 바스코와 다섯째 로돌포는 초창기의 사업에 큰 관심이 없었다.
- ↑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세법 전문 변호사. 알도 구찌가 전권을 잡고 사업을 운영할 무렵,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자격으로 구찌의 국제 세무 컨설팅을 맡다가 회의 중 ‘알도 구찌에게 대들 수 있는 기백’을 보여 로돌포 구찌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아 구찌로 적을 옮긴다. 마우리치오가 회장에 오른 후에는 구찌 아메리카의 사장으로 있다가 1995년 7월 구찌 본사의 CEO로 임명되어 2009년까지 경영했다.
- ↑ 마우리치오 구찌는 구찌의 기성복 진출을 위해 버그도브 굿맨 백화점의 뉴욕지사장 던 멜로(Dawn Mello)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스카웃한다. 던 멜로는 젊고 혁신적인 디자이너들을 채용했는데, 그중 가장 특출난 디자이너가 톰 포드였다. 1994년 5월, 던 멜로가 버그도브 굿맨 백화점에 CEO로 복귀하면서 자신의 후임으로 당시 32세였던 톰 포드를 추천했고, 인베스트코프 회장 네미르 키르다르와 구찌 CEO 내정자 도메니코 데 솔레는 이를 받아들여 승진하게 된다. 톰 포드가 1994년 10월 컬렉션을 시작으로 디자인 전권을 갖게 된 이후 구찌는 구찌가 부활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매출이 폭증했다.
- ↑ 마우리치오 구찌가 파트리시아와 별거 기간 동안 만난 내연녀. 파올라 본인도 마우리치오와 만날 당시 남편이 있었고, 별거 중이었다. 마우리치오와 파올라는 1990년 한 파티에서 만나 관계를 이어오다 1991년에 각자의 부인/남편과 이혼했고, 1994년부터 베네치아에 있는 호화로운 대저택에서 동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