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펠릭스 폰 하르부르크

하인리히 펠릭스 폰 하르부르크(Heinrich Felix von Harburg: 1080년경 ~ 1153년 9월 1일)는 1142년에서 1153년 사이 마인츠 대주교후였다.

대주교 재임 초기에는 알젤름 폰 하펠베르크 주교후의 보좌를 받았다.[1] 콘라트 3세 사후 차기 독일왕으로 프리드리히 4세 폰 슈바벤 공작을 밀었다.[2]

제2차 십자군 당시 하인리히 대주교후는 1096년 마인츠에서 십자군이 유대인을 학살했던 것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 때 시토회 수도사 라둘프라는 자가 유대인 학살을 선동하고 다니자 이를 단속하기 위해 시토회 총장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를 초빙했다.[3] 1147년 벤트 십자군에는 몸소 참전하기도 했다.

하인리히 대주교후는 힐데가르디스 빙겐시스의 지지자였다.[4][5] 그는 1152년 루퍼츠베르크에 힐데가르시스가 세운 수녀원교회를 축성해 주기도 했다.[6] 그녀의 저작들을 교황 에우제니오 3세와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에게 보여준 것도 하인리히라고 한다.[7]

하인리히는 마인츠 대주교후로서 신성로마제국 대재상이기도 했다(대재상은 열후 중 필두인 마인츠 대주교후가 통상 겸직했다). 말년에는 부르군트에서 지내다 죽었다.[8]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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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ay Terry Lees, Anselm of Havelberg: Deeds Into Words in the Twelfth Century (1998), p. 60.
  2. Cawley, Charles, 《GERMANY, Kings》, Medieval Lands database, Foundation for Medieval Genealogy 
  3. St. Bernard of Clairvaux
  4. History: Woman under monasticism: chapters on saint-lore and convent life between A.D. 500 and A.D. 1500: Browse Text
  5. Keith C. Sidwell, Reading Medieval Latin (1995), p. 286.
  6. The Rupertsberg
  7. St. Rochus' Chapel near Bingen
  8. “보관된 사본”. 2007년 2월 1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11월 19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