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 (가수)
현미(玄美, 본명: 김명선, 金明善, 1938년 1월 28일~2023년 4월 4일)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방송인이다. 1957년 미8군 무용수로 처음 활동하였고 1962년 정식 가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66년 영화 《워커힐에서 만납시다》의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배우로도 활동하였다.
현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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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김명선 金明善 |
출생 | 1938년 1월 28일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동군 |
사망 | 2023년 4월 4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85세)
성별 | 여성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
직업 | 가수 |
활동 시기 | 1957년~2023년 |
학력 | 덕성여자대학교 무용학과 명예 학사 |
가족 | 이영곤(첫째아들) 도미숙 (첫째며느리) 이영준(둘째아들) 원준희(둘째며느리) 한상진(조카) 박정은(조카며느리) 노사봉(조카) 노사연(조카) 이무송(조카사위) 아일리(조카) |
종교 | 개신교(그리스도의 교회)[1] |
생애
편집현미는 1938년 1월 28일에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동군(현재의 평양시 강동군)에서 8남매 중 셋째로 출생하였다. 원래는 출생지였던 강동과 평양에서 살았으나 한국전쟁이 한창 전개되던 1951년에 1·4 후퇴를 계기로 월남하게 되었다.
월남 후, 1957년 미8군 칼춤 무용수였던 현미는 공연에 불참한 여가수의 대타로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1958년 미8군 SHOW 무대에 출연하면서 명성을 얻으며 1962년에 이봉조가 지난 1941년에 미국 재즈 음악가 벤 버니가 연주하고 냇 킹 콜이 노래한 〈It's A Lonesome Old Town〉을 개사, 편곡한 〈밤안개〉라는 곡으로 가요에 정식 데뷔하였다. 이 곡을 통해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1963년에는 〈보고싶은 얼굴〉이라는 곡을 불러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이던 당시 그들의 아픔을 노래로 달래주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패티 김, 이미자 등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 여성 가수로서 인지도를 넓혀갔다.
현미를 눈여겨봤던 작곡가 이봉조는 현미에게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을 줬고 그때부터 팝과 트로트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불렀다. 이봉조의 노래만 불렀던 현미는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히트곡을 발표하면서 한국 가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98년에는 48년 만에 이북에 있는 가족과 상봉하였다.
2007년 53번째 앨범 마이 웨이(MY WAY)를 발표하였다. 가수 활동 외에 방송인으로서 방송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였으며, 노래 강사로도 활동하였다.
2023년 4월 4일 85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4월 11일 화장을 비롯한 모든 장례 절차를 마치고, 고인의 유해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미국에서 안치될 예정이다.
학력
편집- 덕성여자대학교 가정학과 명예 졸업
경력
편집- 2023년 〈한국전통문화예술협회 고문〉
- 2012년 〈대한적십자사 서울지사 홍보대사〉
- 2010년 〈현미먹기운동 홍보대사〉
데뷔
편집- 1962년 노래 "밤안개"
대표곡
편집- 1962년 〈밤안개〉
- 1963년 〈보고 싶은 얼굴〉
- 1964년 〈떠날 때는 말 없이〉
- 1966년 〈무작정 좋았어요〉
- 1967년 〈몽땅 내 사랑〉
방송 활동
편집- 2018년 《2018 TV는 사랑을 싣고》
- 2013년 《슈퍼스타K 5》
- 2010년 《슈퍼스타K 2》
- 2009년 《놀라운 대회 스타킹》
- 2001년/2003년/2007년 《TV는 사랑을 싣고》
- 2001년 8월 16일 《행복채널》
기타
편집- 가수이자 대학 교수인 옥주현은 슈퍼스타 K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동료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현미를 무례한 태도로 대하는 것 같은 모습으로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았다. 심사위원이였던 현미와 이승철은 출연자들에 대하여 관대한 평을 내린데 반하여 옥주현은 엄격한 기준을 들어 불합격시켰으며 간간히 동료 심사위원의 말을 끊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그러나 현미는 네티즌들의 비난 여론 속에서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내세울 수 있다는 점도 분명 좋은 것이다"라며 후배 옥주현을 격려했고,[2] 슈퍼스타 K 제작진도 옥주현의 심사가 결과적으로 심사 과정에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3]
- 현미는 이봉조의 아이를 임신 한 뒤 혼인신고를 하러 갔으나 이봉조는 이미 유부남이었다. 이후 이봉조는 이혼서류를 내밀며 현미와의 동거를 원했으나 그 이혼서류는 가짜였고 현미는 이로 인해 다시 상처를 받게 된다. 이봉조와는 20년간 같이 살았으며 현미와 이봉조 사이에는 아들이 2명 있다.
가족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예수사랑교회 권사로 있었다.
- ↑ 현미 "옥주현, 젊은 혈기..예쁘게 봐달라"(인터뷰)
- ↑ '슈퍼스타K 2' 제작진, 옥주현 심사위원 자질 논란 일축, 스포츠조선
- ↑ 조용호.현미 "왜 사냐고 묻거든…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세계일보.2007년11월17일.
- ↑ 인터넷뉴스팀.현미 “임신하고 나서야 이봉조가 유부남인줄 알았다” Archived 2016년 3월 4일 - 웨이백 머신.동아일보.2009년9월22일.
- ↑ 신현정.현미 “남편 이봉조 죽기 전 13년간 혼자 살게 한 것 후회” 눈물고백 Archived 2023년 4월 4일 - 웨이백 머신.메디컬투데이.2010년10월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