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림 묘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에 있다. 1997년 12월 10일 용인시의 향토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다.

황림 묘
대한민국 용인시향토문화재
종목향토문화재 (구)제40호
(1997년 12월 10일 지정)
시대조선시대
소유황규춘
참고1기
위치
용인 고기동은(는) 대한민국 안에 위치해 있다
용인 고기동
용인 고기동
용인 고기동(대한민국)
주소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 산14
좌표북위 37° 20′ 42″ 동경 127° 05′ 00″ / 북위 37.34500° 동경 127.08333°  / 37.34500; 127.08333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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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림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여온(汝溫), 호는 겸재(謙齋)이다. 1552년(명종 7) 검열을 시작으로 명종 대에 정언·지평·헌납·선공감판관·수찬·병조정랑·장령·시강원문학·사간·교리·동부승지·호조참의·우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73년 선조 나주목사로 나갔고 1575년에 여주목사가 되었다. 1578년 왕실의 종계(宗系)를 개정하기 위해 황림을 비롯한 19명의 주청사(奏請使)를 명나라로 파견하기에 이르렀고, 이들은 귀국 후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록되었다. 황림은 의성군(義城君)에 봉해지고 수충익모광국공신(輸忠翼謀光國功臣)으로 칭하게 되었다. 이후 공조판서(工曹判書)·호조판서(戶曹判書)·이조판서(吏曹判書)에 이르렀고 1597년 선조 30년 10월에 81세로 사망하였다. 시호는 평장(平莊)이다. 황림 묘는 1597년 축조되었다. 이 분묘는 앞쪽 정 중앙에 묘표를 세웠는데 여타의 묘표가 우축에서부터 비명(碑銘)을 시작하여 좌측에 배위(配位)를 기록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중앙 좌측으로부터 <수충익모 광국공신 정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경연 의금부사 오위도총관 의창군 황공지묘(輸忠翼謨光國功臣 正憲大夫 吏曹判書 兼 知經筵 義禁府事 五衛都總管 義昌君 黃公之墓)>라 새겨 시신이 있는 쪽으로 글자가 표기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