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항
주요 사항
편집충주(忠州: 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서기(書記)를 지낸 적이 있다.[2]
임춘과 교유가 깊었다. 그가 과거에 급제하자 임춘이 축하해 주었고,[3] 임춘이 병이 들었을 때 병문안을 가기도 했다.[4] 임춘은 그를 "학식이 넓고 뜻은 한 결 같고 기억력이 강하고 문장이 호방하며, 정직하기는 거문고의 줄과 같고 청렴하기는 갑 속의 거울과 같았다."라고 평가했다.[5]
《보한집》에 시 한 수가 전하며,[6] 악장(樂章)에도 능통했다.[7]
이인로·오세재·임춘·함순·이담지·조통 등과 사귀면서 시작(詩作)과 술로 세월을 보냈다. 이들은 당시 중국 진(晉)나라의 죽림칠현에 견준 강좌칠현으로 알려져 있다.[8]
참고 자료
편집- 《고려사》
- 《서하집》
- 《보한집》
- 《동국이상국집》
각주
편집- ↑ 《고려사》 권74, 〈지〉28, [선거2], 과목2, 승보시, 명종 6년(1176) 10월
- ↑ 임춘, 《서하집》 권3, 제공(諸公)들은 중원(中原: 현 충청북도 충주시)의 서기로 임명된 황보약수를 전별했으나 나는 병을 앓고 있어서 가보지 못했으므로 시를 지어 보냄[諸公餞皇甫若水赴中原書記。僕以病不往。作詩寄之。] 및 권5, 송황보항부충주서(送皇甫沆赴忠州序) 참조.
- ↑ 임춘, 《서하집》 권2, 하황보항급제 2수(賀皇甫沆及第 二首) 참조.
- ↑ 임춘, 《서하집》 권4, 여조역락서(與趙亦樂書)
- ↑ 임춘, 《서하집》 권5, 송황보항부충주서(送皇甫沆赴忠州序)
- ↑ 《보한집》 권 중
- ↑ 임춘, 《서하집》 권4, 여황보약수서(與皇甫若水書)
- ↑ 《고려사》 권102, 〈열전〉15, 이규보; 이규보, 《동국이상국집·전집》 권21, 칠현설(七賢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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