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정태후 (만력제)
효정황태후 왕씨(孝靖皇太后 王氏, 가정 44년 정월 17일(1565년 2월 27일) ~ 만력 39년 9월 13일(1611년 10월 18일))는 만력제의 후비이자 태창제의 생모이다. 아버지는 영녕백(永寧伯) 왕천서(王天瑞)이고, 어머니는 영녕백부인(永寧伯夫人) 갈씨(葛氏)이다.
효정황태후 왕씨
(孝靖皇太后 王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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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후 | |
재위 | (추존) |
신상정보 | |
출생일 | 가정 44년 정월 17일(1565년 2월 27일) |
출생지 | ? |
사망일 | 만력 39년 9월 13일(1611년 10월 18일) |
사망지 | 북경순천부(北京順天府) 자금성 |
부친 | 영녕백(永寧伯) 왕천서(王天瑞) |
모친 | 영녕백부인(永寧伯夫人) 갈씨(葛氏) |
배우자 | 만력제(萬曆帝) |
자녀 | 태창제(泰昌帝) 주상락(朱常洛) 운몽공주(雲夢公主) 주헌원(朱軒嫄) |
능묘 | 정릉(定陵) |
생애
편집만력 6년 2월 2일(1578년 3월 10일), 왕씨는 궁녀로 들어와서 자성황태후(慈聖皇太后)의 궁녀로 일을 하고 있었다. 3년 후인 만력 9년(1581년), 청년 만력제는 왕씨에게 눈이 맞아, 몰래 궁에서 합방을 하였고 혼전회임까지 하게 되었다. 궁녀 왕씨가 회임을 한 것을 황태후에게 발각되었고, 그것을 안 만력제는 황태후에게 왕씨를 회임시킨 것을 자수를 하고, 왕씨를 후궁으로 만들었다. 만력 10년(1582년), 후궁이 된 왕씨는 공비(恭妃)로 봉하였고, 같은해에 혼전 회임을 해서 낳은 아이는 바로 훗날 태창제가 될 주상락(朱常洛)이었다.
만력 29년(1601년), 황자 주상락은 황태자가 되었고, 5년 후인 만력 34년(1606년), 공비 왕씨도 황귀비(皇貴妃)로 진봉하여 경양궁(景陽宮)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만력 39년(1611년), 황귀비 왕씨는 독한병에 걸렸고, 그 해 9월 13일(10월 18일),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서거하였다.
시호, 능호
편집황귀비 왕씨 사후에 온숙단정순의황귀비(溫肅端靖純懿皇貴妃)로 시호를 올렸고, 태창제 즉위 후에는 시호를 개시하여 효정온의경양정자참천윤성황태후(孝靖溫懿敬讓貞慈參天胤聖皇太后)로 추존하였다. 능묘는 정릉(定陵)이며, 신주는 봉자전(奉慈殿)에 모셔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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