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3월 독일 국가의회 선거
1933년 3월 독일 총선은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에 임명되면서 의회를 해산함으로써 치러진 바이마르 공화국의 마지막 총선이다.
1933년 3월 독일 총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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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편집수상에 임명된 히틀러는 재선거를 실시한다. 그리고 나치당이 장악한 정부는 사회민주당과 독일 공산당에 탄압을 자행하고, 돌격대와 친위대가 사민당과 공산당 후보들을 공격하고 당사에 난입하며 테러를 자행해도 나치당 정부는 이를 방관할 뿐이었다. 중앙당 계열 신문에서 이를 비판하자 중앙당까지 탄압하기 시작했다.
선거 6일 전인 1933년 2월 27일,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 일어나자, 나치당 정부는 이를 공산당의 소행으로 몰면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 듯 선동했고,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설득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에른스트 텔만 공산당 당수를 포함한 공산당 간부 4000여명을 체포한다.
선거 결과
편집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의석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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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 17,277,180 | 43.91% | 288석 | 92석 |
사회민주당 | 7,181,629 | 18.25% | 120석 | 1석 |
독일 공산당 | 4,848,058 | 12.32% | 81석 | 19석 |
독일 중앙당 | 4,424,905 | 11.25% | 73석 | 3석 |
독일 국가인민당 (흑백적 투쟁전선) | 3,136,760 | 7.97% | 52석 | 1석 |
바이에른 인민당 | 1,073,552 | 2.73% | 19석 | 1석 |
독일 인민당 | 432,312 | 1.1% | 2석 | 9석 |
기독사회인민서비스 | 383,999 | 0.98% | 4석 | 1석 |
독일 국가당 | 334,242 | 0.85% | 5석 | 3석 |
독일 농민당 | 114,048 | 0.29% | 2석 | 1석 |
농업연맹 | 83,839 | 0.21% | 1석 | 1석 |
독일인-하노버인당 | 47,743 | 0.12% | 0석 | 1석 |
사회투쟁커뮤니티 | 3,954 | 0.01% | 0석 | 신당 |
노동자농민투쟁커뮤니티 | 1,110 | 0.00% | 0석 | – |
무효표 | 311,698 | – | – | – |
합계 | 39,655,029 | 100% | 647석 | 63석 |
유효표 | 44,685,764 | 88.74% | – | – |
나치당과 독일 국가인민당은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공산당 의원들을 체포한 채 전권위임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바이마르 공화국은 사실상 무너지고 나치 독일이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