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경
강덕경(姜徳景, 1929년~1997년 2월 2일)은 대한민국의 인권운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다. 경남 진주 출신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근로정신대로 일본 도야마의 한 군수공장에 보내져 중노동과 배고픔을 피해 도망치다 붙잡혀 위안소로 끌려갔다. 1992년 말 나눔의 집에 거주하며[1] 미술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미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위안부'로서의 경험을 주제로 한 작품을 남겼다.[2]
강덕경 姜徳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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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 |
출생 | 1929년 |
사망 | 1997년 |
활동 정보 | |
관련 활동 | 인권운동 |
생애
편집강덕경은 192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재혼하여 할머니 집에서 살았다.[3] 1944년 요시노 학교 재학 중이던 14살 때 일본인 교사가 후지코시 군수공장에서 일하도록 권유했다. "우리 일본인 선생님이 돈 벌 수 있다고 꼬드기는 바람에 좋다고, 부산에서 150명이 연락선을 탔지요."라고 증언했다.[4] 7개월 뒤 배고픔을 피해 탈출했다가 붙잡혀 일본군 성노예 생활이 시작되었다.[5]
강덕경은 1946년 1월 한국 해방 이후 1년만에 귀국했다. 그동안 아기를 낳아 집으로 데려왔지만 어머니에게 쫓겨났다. 부산의 카톨릭 고아원으로 남겨두기로 결심했다. “그때 아이에 대한 애정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6] 부산의 식당에서 일하다가 아이를 찾아갔지만 폐렴으로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다. “내가 아이의 모습을 실제로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 말이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말했다.[6] '위안부' 경험은 또한 평생동안 건강 문제도 남겼다. 생식 기관이 손상되어 평생 대부분의 돈을 의료비로 쏟아 부었다.[7]
강덕경은 긴 투병 끝에 폐암으로 1997년에 사망했다.[2]
활동
편집1991년 김학순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한 후 자신의 경험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김복동, 김순덕과 함께 나눔의 집으로 이사했다. 강덕경은 일본 정부와 군부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위안부'로 당한 고문에 개입한 사실을 부인하는 사실에 분노했다.[8] 성노예 문제와 '위안부'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 방송과 매체 인터뷰를 통해 저항하고 관심을 촉구했다. 제네바의 유엔 인권 이사회와, 일본 시민 단체의 초청으로 일본 의회에서 증언하는 등 활발한 활동가 중 하나였다.[2]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인 사과를 강력히 요구하며 수요집회에 충실하고 열정적으로 참석했다.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나빠져서 집중 치료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면서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96년 암 투병 후반기에는 수요일마다 병원 구급차로 시위에 참석했다.[2]
강덕경은 예술 치료 프로그램을 통해 나눔의 집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녀의 작품은 세계적으로 전시되어 '위안부'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2] 빼앗긴 순정을 포함한 작품 30점이 나눔의 집 전시실에 전시되었다.[9]
각주
편집- ↑ “정대협”. 《www.womenandwar.net》. 2018년 4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3월 13일에 확인함.
- ↑ 가 나 다 라 마 “Northeast Asia History Network”. 《contents.nahf.or.kr》 (영어). 2018년 4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3월 13일에 확인함.
- ↑ Won-chul, Jung, 편집. (2000). 《A Collection of Paintings from Comfort Women》 [A Collection of Paintings from Comfort Women]. Korea.
- ↑ “네 할머니의 증언 '일본놈들, 병든 여성 자궁을 총으로 팍 쐈어'”. 《www.pressian.com》. 2018년 3월 13일에 확인함.
- ↑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운동사랑방 - 인권하루소식내용보기”. 《sarangbang.or.kr》. 2018년 3월 13일에 확인함.[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
- ↑ 가 나 “일본군 ‘위안부’ 이후 소녀의 50년”. 《한국일보》. 2018년 3월 13일에 확인함.
- ↑ “참세상 :: 고 강덕경 할머니가 걸어온 길”. 《참세상》. 2018년 4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3월 13일에 확인함.
- ↑ Estrin, James. “Korea's Comfort Women: The Fight to Be Heard”. 《Lens Blog》 (영어). 2018년 2월 2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3월 13일에 확인함.
- ↑ “나눔의 집, 정신대 강덕경할머니 별세 - 불교신문”. 2018년 4월 2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18년 3월 1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