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성현
공성현(功城縣)은 지금의 연천군 연천읍을 중심으로 남북국 시대에 있던 옛 행정구역의 명칭으로 지금 연천군의 모체(母體)이다.
유래
편집고구려시대에 공목달현(工木達縣)[1]으로 처음 등장하는데 공목달은 웅섬산(熊閃山)으로도 쓴다. 공목은 곰의 고어(古語)인 고마(固麻)의 다른 표기로 熊과 대응되고 달이 산의 고구려어로 "곰 산"이라는 뜻에서 공목달과 웅섬산은 같은 표기이다.[2] 공성의 "공(功)"자는 공목의 "곰"을 차자(借字)한 것이다.[2] 이와 같은 예는 웅진(熊津)이라고도 불렸던 충청남도 공주시의 이름 유래에서도 볼 수 있다.
역사
편집- 백제 : 건국초기 북부변경지대로 말갈과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 광개토왕~장수왕 대 :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고 이때부터 공목달현(工木達縣)이 되었다.
- 553년 : 진흥왕 14년에 신라영토에 편입되었다.
- 757년 : 남북국 시대 신라 경덕왕 16년 행정체제 개편으로 공성현(功城縣)으로 개명하고 철성군(鐵城郡:철원)의 영현이 되었다.
- 940년 : 고려 태조 23년 주州로 승격되어서 장주(獐州)로 개명하였다.
- 1018년 : 고려 문종 23년 고려의 경기(京畿)가 인근의 3개 도로부터 23개 군현을 편입하면서 장주도 개성부에 편입되어 경기도에 넘어왔다.
- 1310년 : 충선왕 원년에 연주(漣州)로 개명하였다. 이때부터 연천이 되었다.
- 1413년 : 조선 태종 13년에 현감이 설치되었다.
- 1414년 : 조선 태종 14년에 마전현과 합병되어서 마련현(麻漣縣)이 되었다가 재분할되었다.
- 1895년 : 23부제의 실시와 더불어 현(縣)이 폐지됨에 따라 한성부 관할 연천군이 되었다가 13도제 실시로 경기도에 속하게 되었다.
- 1906년 : 대한제국 광무 11년에철원군으로부터 관인면이 편입되었다.
- 1914년 4월 1일 :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마전군, 적성군전역, 삭녕군의 태반과 양주군 영근면(지금의 전곡읍)을 합병해 지금의 연천군이 되었다.
연천 외의 공성현
편집고려시대에는 연천 외에도 경상북도 상주에 공성현(功城縣)이 있었고, 이 지역은 현재 상주시 공성면이다.
조선시대에는 함경북도에 공성(功城)과 한자가 다른 공성현(孔城縣)이 있었다. 이 곳은 나중에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가 되었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功成縣, 本高句麗功木達縣, 景德王改名, 今獐州 35卷-志4-地理2-17>.三國史記
- ↑ 가 나 [땅이름] 공목달·웅섬산 / 허재영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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