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반 (15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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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반(金槃, 1580년~1640년)은 조선 시대 중기의 관료 겸 문신이었다.
김반
金槃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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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형조좌랑 | |
재임 | 1628년 춘3월 중순~1629년 춘2월 초순 |
임금 | 인조 이종 |
이름 | |
자 | 사일(士逸) |
호 | 허주(虛舟)·허주자(虛舟子) |
신상정보 | |
출생일 | 1580년 |
출생지 | 조선 충청도 논산군 |
거주지 | 조선 한성부 |
사망일 | 1640년 (향년 61세) |
사망지 | 조선 충청도 공주목 회덕현 |
국적 | 조선 |
경력 | 형조참의 |
당파 | 무소속 |
본관 | 광산(光山) |
부모 | 김장생(부) 창녕 조씨 부인 조어화(생모) 순천 김씨 부인(계모) 연안 이씨 측실(서모) 덕수 장씨 측실(서모) 예안 이씨 측실(서모) 신평 이씨 측실(서모) |
형제자매 | 김집(둘째 형) |
배우자 | 초배 안동 김씨 계배 연산 서씨 측실 부여 김씨 측실 함양 여씨 |
자녀 | 6남 3녀 (그들 가운데 적차남 김익희, 적3남 김익겸, 서4남 김익훈, 서6남 김익경) |
친인척 | 김만기(친적손) 김만중(친적손) 김진려(초배 빙부) 서주(계배 빙부) 김재용(첩장인) 여해천(첩장인) |
학문 활동 | |
분야 | 유교 성리학 |
서훈 | 대광보국숭록대부(증 영의정) |
자(字)는 사일(士逸), 호(號)는 허주(虛舟)·허주자(虛舟子)이다. 아버지는 성리학자 문원공 김장생이며, 문경공 신독재 김집의 아우이다. 송익필의 문인이다.
생애
편집사계 김장생의 셋째 아들로 일찍이 아버지 김장생과 둘째 형 김집이 사사했던 구봉 송익필에게 글과 학문을 배우고, 그로부터 예학을 전수받았다. 그 뒤 아버지(김장생)와 두 형(김은·김집)에게서 글을 배우다가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이후 관직에 나갔다.
그 뒤 광해군의 정치에 반대하여 사퇴하였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빙고 별제(氷庫 別提)라는 직책에 임명되었으나 불과 두달도 채 아니 되어 또다시 관직 사퇴를 선언하였으며, 그 이후 이괄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흥안군 이제를 괴뢰 군주로 천립하여 내세우고자 이괄의 난을 일으켰는데, 결국 이것이 확산되자 아버지 김장생과 함께 충청도 공주로 달려가 인조 호종을 하였다. 바로 공주행재소에서 보인 특별 정시 문과에 급제, 성균관 전적이 되었다. 이후 형조 좌랑, 사간원 정랑, 이조 정랑, 사간원 정언, 홍문관 수찬, 홍문관 교리, 홍문관 응교 등을 두루 지냈다.
그 뒤 1635년 병조참지, 사간원 대사간, 형조참의, 홍문관 부제학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왕을 호종하고, 이 과정에서 강화산성을 보위하고 있던 셋째아들(익겸)을 분신 자살 순국으로 잃는 슬픔을 겪었으며, 정축하성 이후 예조 참판, 사헌부 대사헌, 한성부 우윤, 이조 참판 등의 요직을 지냈다. 성격은 이렇다 할 유별남이 없이도 원만하여 1639년에 스스로 관직을 그만둘 때까지 공신들과 별 갈등을 겪지 않고 그저 순탄하게 관직을 역임했다. 사후 대광보국숭록대부(증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가족 관계
편집- 할아버지 : 김계휘(金繼輝)
- 아버지 : 김장생(金長生, 1548년 7월 8일 출생 ~ 1631년 8월 3일 사망)
- 어머니(생모) : 창녕 조씨(1583년 하세) 부인[1]
- 어머니(계모) : 순천 김씨(1613년 하세) 부인[2]
- 첫째 형님 : 김은(金檃, 1567년 출생 ~ 1592년? 임진왜란[3] 당시 곽재우 선생 휘하 의병대원으로 격험한 전투에 참전 중 실종)
- 첫째 형수 : 부여 서씨 부인(1570년 출생~1591년[4] 사망)
- 둘째 형님 : 김집(金集, 1574년 음력 6월 6일 출생 ~ 1656년 음력 윤 5월 13일 사망)
- 둘째 형수 : 기계 유씨 부인[5]
- 본인 : 김반(金槃, 1580년 출생~1540년 사망)
- 사별 초배 정실 본부인 : 구 안동 김씨 부인(1590년생~1611년졸) - 첨추(僉樞)를 역임한 김진려(金進礪)의 딸. 1599년 결혼. 1611년 상배.
- 재혼 계배 정실 본부인: 연산 서씨 부인(1596년생~1637년졸) - 증 참판 서주(徐澍)의 딸. 1612년 재혼. 1637년 상배.
- 측실 : 부여 김씨 첩실 - 김재용(金渽溶, 1576년[10] 음력 윤 5월 20일 출생 ~ 1634년 음력 9월 6일 하세)의 딸.
- 측실 : 함양 여씨 첩실 - 여해천(呂海天, 1575년[11] 음력 3월 26일 출생 ~ 1638년 음력 4월 10일 하세)의 딸.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1583년 당시 아버지 김장생 선생이 초배 창녕 조씨를 질병으로 인하여 상배.
- ↑ 1584년 김장생과 결혼. 1613년 하세할때까지 아버지 김장생 선생과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음.
- ↑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郭再祐) 선생의 의병대의 의병대원으로 참전하였으나 격험 전투 지역에서 참전 중 실종.
- ↑ 서진남(徐震男, 1521년 ~ 1588년, 진사 서관(徐寬, 1497년 ~ 1568년.)의 아들.)의 서녀. 1581년 결혼. 10년 후 1591년 당시 김은(金檃)과의 사이에서 소생(자녀)도 없이 질병으로 인하여 사망.
- ↑ 유홍 부부의 여식.
- ↑ 첫째 형님 김은(金檃)에게 출계.
- ↑ 친가 생부: 김익희(金益熙, 김반의 차남)
- ↑ 1646년 당시 김익희(金益熙)의 삼남(셋째 아들)인 김만준(金萬埈)을 김익렬(金益烈)에게 양자(양아들)로 출계(입양)하였으니, 1616년 당시 첫째 형님 김은(金檃)에게 양자(김은 양아들 김익렬)로 출계(입양)한, 장남 김익렬(金益烈, 김은 양아들 김익렬.)에게 양자(김익렬 양아들 김만준)로 훗날 1646년 당시 출계.
- ↑ 김반(金槃)의 친손자이자 김은(金檃)의 양손자인 김만준(金萬埈)은, 김반(金槃)의 차남(둘째 아들)인 김익희(金益熙)의 삼남(셋째 아들)이기도 한 친손 김만준(金萬埈, 생부 김익희(金益熙)의 셋째 아들(삼남)로 출생하여 백부 김익렬(金益烈)의 양자(김익렬 양아들 김만준)로 출계.)을 자식이 없었었던 첫째 형님 김은(金檃, 가계법적으로 김만준(金萬埈)의 양할아버지.)에게 양자(김은 양아들 김익렬)로 출계(입양)한, 원래의 친가 촌수로 장남 김익렬(金益烈)에게 출계(김은 양손자 김만준).
- ↑ 1519년(중종 13)의 진사 출신의 김열(金烈, 김렬, 1491년 ~ ?)의 친서손자 김재용(金渽溶, 1576년 ~ 1634년).
- ↑ 1555년(명종 10)의 진사 출신의 여세윤(呂世潤, 1520년 ~ ?)의 친서손자 여해천(呂海天, 1575년 ~ 163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