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미산문(須彌山門) 또는 수미산파(須彌山派)는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성립된 선종 구산의 하나이다.[1][2]

황해도 해주군 수미산 광조사(廣照寺)가 수미산문의 본산이었다. 9산 중에서 최후에 개산되었으며 고려 태조 15년(932)에 개산하였다.[3]

개산조 이엄(利嚴)은 고려 태조의 왕사로서 해동 사무외대사란 칭호를 받은 바 있다.[3]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탄생하여 12세에 가야갑사(伽耶岬寺) 덕량(德良)대덕으로부터 득도하여 진성여왕 9년(895)에 입당, 동산양개(洞山良介)의 제자 운거도응(雲居道膺)에 구법하였다.[3] 효공왕 14년(910)에 귀국하여 영각산(靈覺山)에 주석하였다.[3] 그 뒤 고려 태조해주수미산광조사를 세워 주지로 모셨다.[3]

이엄수미산에서 동산(洞山)의 종풍을 내세워 그 문도가 한없이 배출되었으니 현조(玄照) 등이 사법전승하였다.[3]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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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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