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산문
성주산문(聖住山門) 또는 성주산파(聖住山派)는 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에 성립된 선종 구산의 하나이다.[1][2]
성주산은 충청남도 보령군 미산면 성주사 옛터가 그것이다. 신라 문성왕 8년(846) 개산하였으며, 개산조는 무염(無染)이다.[3]
무염은 태종무열왕의 8대손이며 설악산 오색석사(五色石寺)에서 법성(法性)에 의하여 득도하였다.[3] 그 뒤 부석사 석증(釋證)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웠다.[3] 헌덕왕 13년(821)에 당나라에 가서 마조의 문하 마곡보철(麻谷寶澈)로부터 심법을 얻었다.[3] 문성왕 8년(846)에 귀국하여 왕자 흔(昕)에 의하여 충남 남포(藍浦) 오합사(烏合寺)에 주석하여 선풍을 날렸는데 문성왕이 사액(賜額)을 성주사(聖住寺)로 내렸다.[3] 경문왕 · 헌강왕 두 왕의 국사가 되어 무설토(無舌土)의 정전문법(正專門法)을 열어서 종지를 선양하였다.[3] 진성여왕 2년(888) 향년 88세로 시적하여 대랑혜(大朗慧)란 시호를 받았다.[3]
문하에 승량(僧亮) · 보신(普愼) · 순차(詢叉) · 심광(心光) 등 2,000여 인이 있어 종풍을 유지 현양하여 성주산문의 한파를 이루었다.[3]
각주
편집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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