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응
심응(沈應, 1433년 ~ 1504년[1])은 조선 전기의 무신이자, 공신이다.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공로로 적개공신에 책록되었다. 화천부원군 좌의정 소요정 심정(沈貞)의 아버지이고 좌의정 심수경(沈守慶)의 증조 할아버지이다.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시호는 양호(襄胡)이다.
심응
沈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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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부원군 (豊山府院君) | |
신상정보 | |
출생일 | 1433년 |
출생지 | 조선 |
사망일 | 1504년 (72세) |
사망지 | 조선 |
국적 | 조선 |
학력 | 1460년(세조 6년) 무과에 장원 급제 |
부친 | 심치 |
모친 | 증 정부인 박씨 |
배우자 | 증 정경부인 대구 서씨 |
자녀 | 심원(아들) 심형(아들) 심정(아들) 심의(아들) |
친인척 | 박화(외조부) 서문한(장인) 심실(숙부) 심주(사촌) 심사손(손자) 심사순(손자) 심수경(증손자) 심일장(고손자) 심일취(고손자) 심일매(서고손자) 심일준(서고손자) 심일운(서고손자) |
종교 | 유교(성리학) |
생애
편집남원부사를 지내고 호조판서에 추증된 심치(沈寘)의 아들이다. 1460년(세조 6년) 무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책록되고, 절충 장군(折衝將軍) 행 용양위 호군(行龍驤衛護軍)에 제수되었다.[2] 성종 때, 첨지중추부사, 가선대부(嘉善大夫) 회령부사를 거쳐[3], 풍산군(豊山君)에 봉해졌으며, 1484년(성종 15년)에는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4] 사후에는, 아들 심정(沈貞)이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록됨에 따라, 영의정에 추증되고, 풍산부원군(豊山府院君)으로 진봉되었다. 적개공신(敵愾功臣)으로서 양호(襄胡)의 시호를 받았다.
가계
편집- 할아버지 : 심귀령(沈龜齡) - 좌명공신 풍천군(豐川君), 의흥삼군부 도총제, 지의흥부사
- 아버지 : 심치(沈寘) - 남원부사, 증호조판서
- 어머니 : 증 정부인 박씨 - 용구현령 박화(朴華)의 딸
- 숙부 : 심실(沈實) - 군수
- 숙모 : 청송 심씨 - 소헌왕후의 숙부 의흥삼군부 도총제 심인봉(沈仁鳳)의 딸, 청성백 심덕부(靑城伯 沈德符)의 손녀
- 사촌 : 심주(沈胄) - 상호군
- 장인 : 서문한(徐文翰)
- 외조부 : 박화(朴華)
참조
편집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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