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KIWI/전체기사/2024년 6호
새 봄이 조금 이르게 왔습니다. 겨울은 점점 짧아지는 느낌입니다. 아무래도 기후 변화 탓이겠지요. 없는 살림에는 따스한 겨울이 더 낫다고 하지만, 이렇게 계속 가다보면 우리 생활이 어떻게 바뀔 지 걱정이 듭니다.
지난 석달 사이 우리 커뮤니티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통신사 IP로 접속하는 사용자를 어찌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반달 행위의 대다수가 이 경로로 유입되고 있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고 토론 결과 통신사 IP의 접속은 지금과 같이 유지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기고문이 올라와 있습니다.
지난 호에 이어 위키백과 탑뷰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이 번에 눈에 띄는 것은 영화 서울의 봄, AFC 아시안컵 등입니다. 아무래도 지난 역사와 관련한 드라마나 영화가 흥행하면 그에 따라 추가적인 정보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에 맞추어 고려 에디터톤과 같은 역사 관련 에디터톤이 진행되었습니다.
새로 관리자가 되신 용인 학생님의 파란만장 위키생활 이야기도 싣습니다. 원래 관리자가 되시기 이전에 원고를 받았다가 가장 최근의 일을 반영하여 원고를 조금 더 추가로 가필하셨습니다. 위키백과에는 어려서부터 참여하여 오랫동안 활동하는 사용자가 꽤 있습니다. 용인 학생님도 아무쪼록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시길 기원합니다.
2023년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신 YellowTurtle9님의 인터뷰도 싣습니다. 새롭게 참여한 사용자가 어떻게 열성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는 지에 대한 교과서적인 답안은 아무래도 커뮤니티의 우호적인 분위기와 소통일 것입니다. 옐로우 터틀님도 이 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024년에도 많은 사업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2023년 연말부터 올해초까지 한국어 위키백과를 달군 이슈는 통신사 IP의 편집을 전면차단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통신사 IP는 스마트폰 등 무선통신망을 이용하는 기기에 이동통신사가 배정하는 IP 주소입니다. 문제는 스마트폰 등 무선기기의 네트워크를 껐다 켜는 것만으로 다른IP가 배정된다는 것입니다. 위키백과가 성장하는데는 로그인하지 않고 활동하는 IP 사용자들의 공헌 또한 컸지만, 무작위로 바뀌는 IP에 기대어 차단을 회피하거나, 문서 훼손을 이어가는 일 또한 빈번하게 나타나왔습니다.
통신사 IP 차단에 찬성하는 사용자층은 문서 훼손이 주로 통신사 IP에서 발생하고 있고, 정상적인 기여를 하는 사용자가 피로를 쉽게 느끼며, 관리자들의 관리 여력을 갉아먹는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을 차단하되 계정생성은 막지 않는 쪽을 선호하였습니다. 선의의 사용자는 회원가입을 통해 위키백과에 쉽게 합류할 것이라 보았습니다.
통신사 IP 차단에 반대하는 사용자층에서는 자유로운 접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이라는 위키백과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하였습니다. IP기여를 막고 회원 가입을 필수로 만드는 장벽은 사소한 호기심을 가지고 첫 편집을 해보려는 사용자들의 발걸음은 돌리지만, 악의를 가진 훼손자들에게는 기존과 달라질 것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픈 프록시조차 단기간 차단을 하는 것이 원칙인데, 통신사 IP에 전면적인 편집차단을 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나 대안이 충분히 검토되었는지, 차단 시의 부작용에 대한 숙고, 재단에 요청을 통한 그동안의 IP 대역 차단이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가에 대한 데이터 수집 등 객관적인 지표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동통신사 IP의 편집을 차단하되, 로그인 편집 및 계정 생성을 막지 않는다는 정책을 신설하자는 투표는 찬성 25표, 반대 17표로 유효투표수의 3/4를 넘지 않아 부결되었습니다.
발제자의 기고
안녕하세요, 이번에 통신사 IP 차단과 관련하여 의견 수렴을 주관했던 고영진입니다.
이번 통신사 IP 차단 의견 요청이 열리게 된 것은 한국 문화권에서의 반달리즘의 특수성이 주요한 원인이 있었습니다. 통신사 IP는 매번 접속할 때 마다 새로운 IP 주소를 받게 되는 특징으로서 기여의 연속성을 측정하기 힘들고, 장치를 껐다 켜는 것 만으로도 자신의 IP 주소를 바꿀 수 있어 여러 관리자들이 반달 대응에 어려움이 있었고, 심각한 경우 우리의 관리 체제를 실험하는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포르투갈어에서 IP 차단을 실시했고, 이에 대한 만족도는 적어도 조사된 사용자 층에서는 높은 것으로 알려졌고 커뮤니티 또한 더 건강해졌습니다.
제 주위에 있던 여러 관리자께서 이러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제시해 주셨는데 저는 한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과연 통신사 IP의 모든 편집을 차단하는 것이 위키백과의 건강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까?” 라는 것에 대해서 가능한 많은 사용자의 의견을 들어봐야 했다고 생각이 들었고 이에 의견 요청을 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실행함으로서 우리가 손해 보는 것도 있습니다. 선의의 사용자들은 거의 대부분 집/회사등 고정적인 IP를 통해서 기여하고 계정을 만들어서 기여하면 되기에 찬성하시는 사용자분도 많았지만, “소수의 반달 사용자들 때문에 왜 기존에 잘 기여하고 있는 다수가 피해를 입어야 하나” 라는 논리를 가진 반대하는 사용자도 많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이러한 이유는 “모두가 기여할 수 있는 자유 지식 운동"을 만들기 위해서 라는 점에서 큰 실리가 있다고 생각되며, 우리 커뮤니티는 모두가 편집할 수 있는 열린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원활한 관리 환경 조성과 건강한 커뮤니티 만들기"와 “모두가 편집할 수 있는 열린 백과사전"의 가치를 지키자는 두가지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 보여집니다. 물론 이번 의견 조사 이후 2년간 차단하자고 바로 조치하는 투표를 열었다는 것이 성급하다는 의견이 있듯, 통신사 IP 차단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데이터와 실험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때 시행하는 것이 맞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2주간 시범적으로 적용해본다, 통신사 IP 대역으로 편집하는 비율은 얼마인가 등 여러 데이터가 생기면 적용할 수 있겠습니다.
본 의견 수렴에 참여해 주신 모든 사용자분들께 감사드리며, 더 건강하고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년 12월 문서 탑뷰는 영화 서울의 봄의 흥행으로 관련된 단어들이 순위권에 등장하였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의 하루를 재구성한 작품의 영향으로 그 때 그시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1979~80년 사이에 한국에서 벌어졌던 민주화운동인 서울의 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군부세력인 하나회가 어떤 사건들을 일으켰는지 주요 사건과 인물에 대해 기록된 위키백과 문서들을 소개합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총격으로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김재규는 자유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처단하였다는 주장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권력암투과정에서 충동적으로 일으킨 범행이라는 설, 유신정권 선포 직후부터 은밀히 준비된 쿠데타였다는 설, 미국 정부가 박정희 대통령 시해를 은밀히 조장했다는 설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일시적으로 권력공백이 발생하였고, 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면서 서울의 봄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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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건 | 134 | 2005 | 748 | 83,300 |
박정희 | 49 | 2004 | 7,705 | 260,395 |
김재규 | 71 | 2004 | 864 | 39,766 |
서울의 봄은 1979년 10.26 사건의 발생에서부터 신군부의 5·17 쿠데타까지 민주화 운동 일어났던 기간으로 체코의 프라하의 봄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두 사건 모두 군대의 무력 진압으로 끝났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979년 12월 6일에 긴급조치가 해제되고, 재야인사들이 복권되면서 개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민주화를 이룩할 것이라는 기대가 일었습니다. 1980년 신학기가 시작되지 대학에서는 어용 교수 퇴진과 병영집체훈련을 거부하는 학원민주화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침내 1980년 5월 20일에 국회를 열어 계엄령을 해제하고, 유신헌법 개정논의를 하기로 합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국회가 열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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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 4 | 2008 | 110 | 5,674 |
최규하 | 68 | 2005 | 868 | 62,375 |
김영삼 | 81 | 2003 | 2,929 | 282,100 |
김대중 | 133 | 2002 | 5,222 | 331,375 |
1979년 12월 12일에 최규하 대통령의 승인없이 하나회가 벌인 쿠테타로 정승화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을 강제로 연행하고, 이에 대해 반발하는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에 대해 하극상을 감행하고, 무력으로 제압하여 연행하였습니다. 12월 13일 새벽 육군참모총장 연행에 대해 대통령의 사후 재가를 받아내며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의중대로 사건은 마무리 됩니다. 이후 12·12 군사 반란에 비판적인 장성들이 내쫒기거나 한직으로 좌천되면서 정권 장악을 위한 도구로 군이 변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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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영화) | 20 | 2023 | 180 | 9,619 |
12·12 군사 반란 | 9 | 2005 | 683 | 62,788 |
하나회 | 14 | 2005 | 417 | 55,427 |
전두환 | 7 | 2004 | 4,409 | 277,383 |
노태우 | 19 | 2004 | 1,467 | 173,457 |
장세동 | 110 | 2005 | 297 | 16,125 |
수도방위사령부 | 106 | 2011 | 255 | 15,316 |
노재현 | 92 | 2009 | 124 | 6,190 |
정승화 | 21 | 2005 | 478 | 30,003 |
장태완 | 12 | 2008 | 435 | 16,845 |
정병주 | 56 | 2010 | 215 | 10,738 |
김오랑 | 114 | 2009 | 160 | 7,384 |
1980년 4월말부터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장을 겸임하는 전두환에 대한 학생 운동권과 정치권의 경계가 형성되었습니다. 5월 13일부터 대학생들은 거리로 나와 가두시위를 벌였고, 5월 15일에는 서울역에 대학생 10만명이 결집하였습니다. 철야농성을 할 지, 쿠테타의 빌미를 줄 수 있으므로 해산 할지에 대해 갑론을박 끝에 이날 오후8시 해산을 결정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서울역 회군이라고 부릅니다. 이틀 뒤인 5월 17일 최규하 대통령에게 전두환이 비상계엄 전국확대, 국회해산, 비상기구설치를 강요하면서 중앙청에 군인들이 도열한 가운데 비상계엄령 전국확대가 통과됩니다. 다음날 새벽 국회가 탱크로 봉쇄되고, 학생·정치인·재야인사가 연행되면서 서울의 봄은 꺾이고 맙니다.
한편 비상계엄으로 대학에 계엄군이 배치되고 휴교령이 내렸음에도 전남대학교에서는 계엄령 확대와 휴교령에 반발하는 학생 수백명이 모였고, 공수부대의 대검·곤봉을 통한 과격진압으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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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쿠데타 | 40 | 2009 | 395 | 43,226 |
5·18 광주 민주화 운동 | 6 | 2004 | 2,504 | 149,485 |
2024년 1월 문서 탑뷰는 카타르에서 열린 2023년 AFC 아시안컵 관련 페이지들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1월31일까지는 16강이 진행중이었기에 그 시점의 문서순위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손으로 아시아 스포츠 국가 대표팀의 근황을 갱신할 수 있습니다.
AFC 아시안컵은 아시아 축구 연맹(AFC)이 주관하는 국가대항축구대회입니다. 1956년부터 2004년까지 4년마다 열리다가 2007년부터 홀수년 개최로 바뀌어 현재에 이릅니다. 지난 17번의 대회 동안 9개국이 우승컵을 들어올렸습니다. 이번 아시안컵은 아시아에서 강호로 여겨졌던 대한민국, 일본, 이란, 호주, 우즈베키스탄이 모두 토너먼트에 떨어지고, 카타르와 요르단의 결승전 끝에 3:1로 카타르가 지난대회에 이어 2연속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카타르가 아시아의 새로운 강팀으로 떠오를 지 주목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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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아시안컵 | 2 | 2006 | 673 | 33,141 |
2023년 AFC 아시안컵 | 13 | 2015 | 822 | 41,642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1956년 첫 대회와 두번째 대회를 연이어 우승한 후 오랫동안 우승컵을 들어올리지 못했습니다. 2015년 호주에서 열린 대회에서 오랜만에 결승에 진출했지만 2-1로 호주에 아쉽게 패하였습니다.
2023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하였지만, 조별리그에서 요르단과 2:2, 말레이시아와 3:3으로 비기며 경기운영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었습니다. 16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 8강에서 호주와 연장전을 치르고 간신히 4강에 오른 대표팀은 요르단과 다시 조우한 후 2:0으로 패하고 맙니다.
2월 15일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되며, 새로운 사령탑과 함께 다음 월드컵 예선과 아시안컵 우승을 기약해야하는 대표팀에게는 조직력 재건이라는 무거운 과제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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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AFC 아시안컵 성적 | 156 | 2019 | 161 | 67,488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67 | 2005 | 9,609 | 88,949 |
위르겐 클린스만 | 81 | 2006 | 397 | 78,607 |
대한민국 국가대표 감독 선임 위원장을 맡아 벤투 감독을 선임하는데 기여한 것으로 알려진 김판곤 전 위원장이 2022년부터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을 맡아 43년만의 AFC 아시안컵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운명의 장난인지 조별리그 E조에서 고국인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만난 그는 정규시간 2:2 동점에 이어 후반 추가 시간에 한 골씩 더 주고받으며 3:3으로 비겼습니다. 토너먼트에는 가지 못했지만, 조국을 상대로 선전을 한 김판곤 감독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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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 164 | 2007 | 198 | 33,896 |
김판곤 | 9 | 2009 | 157 | 13,894 |
이번 아시안컵에서 가장 많은 연봉인 3000만 유로를 받는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한국과의 16강전에서 한 행동으로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 힘겨운 경기를 치르고 올라온 대한민국보다 체력적 여유가 있었지만 후반1분의 첫골 이후 침대축구로 일관한 것이 독이되었을까요? 후반 종료 1분전 조규성의 골으로 연장전으로 끌려간 사우디아라비아 대표팀은 승부차기에서 2-4로 패배하며 한국 대표팀을 8강에 보내주고 맙니다. 승부차기가 끝나기 전에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경기장에서 조기퇴장하면서 책임감과 경기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비난이 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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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 109 | 2006 | 415 | 45,810 |
로베르토 만치니 | 58 | 2010 | 228 | 20,131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은 이번 아시안컵 8강에서 탈락하였습니다. 조별리그에서 한 수 아래로 평가받으며 베트남과 이라크에 2골, 인도네시아에 1골을 내준 수비불안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16강에서 바레인을 만나 3:1로 승리했지만, 내준 1골은 자책골이었습니다. 결국 2월 3일 아시아의 또다른 강호 이란에 2:1로 패배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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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118 | 2005 | 1,269 | 74,824 |
중학교 생활과 함께해온 위키백과
-나의 파란만장한 위키백과 이야기-
안녕하세요,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5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활동해오던 용인 학생이라 합니다. 먼저 독자기고 이벤트를 열어주시고 제 글을 기고문으로 선정해주신 여러 한국 위키미디어 협회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제 글쓰기 실력이 많이 부족하고, 위키백과 경험 또한 많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최대한 제 위키백과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예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처음 위키백과에 가입한 것은 2018년이었습니다. 제게 처음 휴대전화가 생긴 이후, 인터넷을 탐험하던 중 위키백과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위키백과 생활은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처음 위키백과를 편집 했던 시절은 순수하게 제가 좋아하는 분야에서의 사소한 오타를 고치거나, 주변 도로 문서를 만들었었습니다. 제가 문서를 편집하며 오르는 기여수가 초등학생이던 저에게 많은 성취감을 주었던 것은 덤이었어요. 그렇게 2018년 8월 8일 이후 위키백과에 익숙해지며 1년이 조금 넘게 지나 많은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2019년 말, ZEM이라는 제한 앱의 위키백과 기능 추가로 학생 사용자가 차차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제 또래 사용자가 많아지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학생 사랑방"이라는 곳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매우 어렸던 저에게, 대단한 분들이 계시던 사랑방은 너무 높은 장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위키백과 특유의 정적이고 지적인 분위기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 사용자도 동일하게 느껴졌었을 겁니다. 당시 많은 학생 사용자가 '학생 사랑방'에 유입되었고, 많은 학생 사용자의 모임이 존재했으며, 저는 그 당시 '학생 사랑방'에서의 일종의 대장(?) 행세를 하다가 유쾌한 경험은 아니지만 차단이 되었었기도 했습니다.
2020년 초, 여러 사용자분들에 의해 ZEM 유입 사용자들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었고 그것이 "학생 캠프"와 그 전 "학생 사랑방"을 대체하는 "학생 캠프 대화방"이었습니다. 학생 캠프를 통해 여러 ZEM 사용자의 위키백과 적응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다중계정 악용"이나 "과도한 친목질"이 많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정책 미숙지로 인한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 과정에서 많은 기존 사용자 분들이 피로감을 겪었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분들이 학생 사용자들의 위키백과의 적응을 도와주셨고, 비록 ZEM은 위키백과 서비스를 종료했고, "학생 캠프"는 비활성화가 되었으며, 많은 학생 사용자분들이 떠났지만, 남은 사용자 분들 중 일부는 관리자가 되셨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기에 학생 사용자의 유입은 결코 효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애니메이션 문서가 제작 및 활성화가 되었고 학생 사용자의 유입과 함께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한 온라인 시대는 한국어 위키백과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사용자분들의 노력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학생 사용자 중 한명으로서 저희 학생 사용자들을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늦었지만 감사를 드립니다.
간략한 ZEM시기 위키백과의 요약을 마치고 이제 저의 이야기를 해보자 합니다. 저는 2020년 동안 많은 학생 사용자 분들과 교류하며 위키백과의 열정을 쏟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위키백과 봇과 도구에 대한 관심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이 당시에는 오류도 많거니와 정책 위반도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의 열정을 쏟은 만큼 2019년 즈음의 그 '초심'은 점점 잃고 말았습니다. 위키백과의 많은 학생 사용자들을 보며 전 일종의 '완장'을 스스로 차고 신규 사용자를 쫓아내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부적절한 토론 태도를 일삼았었습니다. 또한 봇과 반자동 도구 사용에 대해 정책의 한계를 악용하였기도 했고요. 2021년 4월, 결국 저는 장기간 공동체에 많은 악영향을 미쳤기에 6개월 동안 차단이 되었습니다.
차단 기간 중 처음 3개월은 위키백과를 피하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이던 2021년은 현실에서도, 위키백과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입니다. 현실에서는 중학교 입학으로 많은 두려움이 있었던 시기이고, 위키백과에서도 많은 생각의 변화, 구체적으로 제가 왜 차단 되었는지에 대한 성찰을 해보았습니다. 21년 9월, Wikiwater2020님을 우연히 온라인에서 뵙게 되었고 그 분은 저에게 위키백과 복귀에 대해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 분의 많은 노력 덕분에 위키백과에 다시 돌아와 공동체에 사과를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밑바닥까지 추락한 저의 신뢰를 다시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바 입니다. 제가 공동체에 많은 악영향을 끼친 만큼 차단 이후에는 좋은 영향을 많이 끼치고자 하였습니다. 저를 많이 응원해주신 많은 사용자분들께 다시 한 번 고맙고 또 고맙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위키백과에 돌아온 이후 전 어떻게 좋은 영향을 끼칠지 고민했고, 그 답은 친절한 태도와 좋은 문서 기여라고 결론 내리게 되었습니다. 차단 이후 토론 태도를 최대한 친절하게 바꾸려 노력했고 힘들 때나 초심을 잃을 때마다 제 과거를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문서 기여는 제가 관심 있어 하는 도로 분야와 천문학 분야에 대해 여러 편집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초에는 기존에 제 문제점 중 하나였던 봇과 반자동 도구에서도 오류가 최대한 나지 않게 만들고, 정책의 범위 내에서 운용하였으며, 그 결과는 봇 플래그 부여로 결실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022년의 저는 위키백과의 신뢰를 다시 얻고자 노력, 또 노력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운이 좋게 60만 번째 문서를 생성한 사용자가 되었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얼마전, 관리자에 당선되었습니다. 선거를 통해 당선 함으로서 복귀 이후로 제가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값진 기회였습니다. 선거에서도 밝혔지만 "일반 사용자"에 입장에서 항상 보는, 그리고 다시 재기하시려는 사용자 분들께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마지막으로 그동안 절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신 많은 사용자분들께 뿌듯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그런 사용자이자 관리자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이렇듯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금껏 활발히 활동하고 심지어 관리자가 된 것은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파란만장한 위키백과 생활 중 깨달은 것이 다수 있었는데 그중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키워드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초심"입니다. 위키백과에서 처음 편집할 때, 그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초심을 잃으면 다른 사용자가 보이지 않고 분쟁만 일으킬 뿐입니다. 절대 편집하실 때 초심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친절"입니다. 설사 문서에 관해 토론 중 분쟁이 발생하고 계속 특정 사용자와 트러블이 발생할 지라도 항상 선의로 바라보며 좋은 토론태도를 유지하십시오. 친절한 분위기 유지는 위키백과의 신규 사용자 유입을 끌어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신뢰"입니다. 위키백과는 서로 협업하며 쌓아가는 백과사전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자신이 설사 공동체의 신뢰를 잃었을지라도 자신이 잘하는 분야서 노력하며 공동체의 신뢰를 다시 쌓아가길 바랍니다.
위키백과, 어느덧 제 삶의 한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많은 편집자들이 있고, 진지하지만 때로는 부드러운 분위기는 저와 위키백과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만들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위키백과에 큰 영향, 그것이 설사 좋지 않은 쪽일지라도 그것을 이해하고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실 분들이 많은 따뜻한 온정이 있는 곳이 바로 위키백과입니다.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도 위키백과를 편집하고, 다른 사용자분들과 토론하며 겪은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또는 아직 위키백과를 편집하시지 않고 보고만 계신 분들도 존재할 것입니다. 이 곳, 위키백과는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이고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설사 자신이 조금 실수를 할지라도 응원과 도움의 손길을 주실 많은 분들이 존재합니다. 기여하는 것을 두려워 마시고 사소한 일이라도 위키백과에 도움을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2년말부터 한해 동안 위키백과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통해 2023년 올해의 위키인 신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YellowTurtle9님과 서면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위키의 첫 1년을 보낸 신인의 시선에서 본 위키백과는 어떤 곳일까요? 함께 알아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2023년 올해의 위키인 신인 부문을 수상하신 소감은?
이 상을 수상하도록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2022년 12월에 위키백과에 가입한 후 축구, 역사 등 여러 분야들의 문서들을 수정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출처들에서 찾은 정보들을 기반으로 여러 문서들을 업데이트하면서 문서에 유의미한 활동을 했구나라는 생각에 엄청난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문서 작성도 좋았지만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문서들을 보강하면서 제가 기입하고자 했던 정보를 넘어 그동안 몰랐던 다른 정보들을 더 알게 되는 과정 또한 좋았습니다. 이렇게 여러 문서들에 알찬 정보들을 작성하면서 위키백과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라는 것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위키백과에 입문한 시기가 대학교 졸업논문을 작성하는 시기랑 겹치는 바람에 가입한 직후부터 많은 문서들을 다듬지는 못했지만 2023년에 제가 활동한 부분들을 긍정적으로 보아주신 위키백과 공동체의 유저님들 덕분에 정말 감사하게도 2023년 올해의 위키인 신인 부문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위키백과 공동체의 유저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2023년을 넘어 2024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신인상을 받은 것에 흠이 가지 않도록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편집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Q. 위키라는 매체를 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아마 2015년 즈음에 영어 위키백과’를 만나며 처음으로 위키라는 매체를 접했던 것 같습니다. 세계사에 관심이 많아 세계사 정보들을 찾곤 했었는데 서양 문헌들과 논문들을 원문 그대로 접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이러한 지식들을 영어 위키백과에서 주로 찾았습니다. 이 시점에 한국어 위키백과도 알게 되었는데 한국어 위키백과는 영어 위키백과보다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역사 관련 문서들이 적어서 네이버 지식백과와 영어 위키백과를 주로 활용했었습니다.
위키백과에 많이 접속하긴 했지만 위키백과에 "편집을 할 수 있다"라는 것은 몰라서 위키백과에 가입해 편집 활동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결과 위키백과 공동체에 늦게 입문하게 되었지만 한편으로 위키백과에 필요한 편집 방식들을 위키백과를 처음 접했을 때보다 더 많이 알게 된 상황에서 위키백과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어 일장일단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위키에서 활동하면서 어려웠던 부분에는 어떤 점이 있으셨나요?
토론이 예상했던 것보다 길어질 경우, 타 유저님과 편집 분쟁을 겪었던 경우 등이 떠오르지만 제가 알지 못하는 분야 관련 문서들을 수정해야 될 경우, 업데이트가 2024년 현재 시점에 비해 아주 느린 문서들을 수정해야 하는 경우가 지금도 그렇지만 위키생활을 하는데 있어 제일 어려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스포츠 분야의 문서들을 주로 편집하고 있지만 간혹 비스포츠 분야들의 문서들을 수정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해당 문서들은 스포츠 문서들과는 전개 방식이 다르고 또 문서에서 개별적으로 총의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 이러한 경우들 또한 고려해야 해서 편집을 했다가 다른 유저님들과 갈등의 소지가 생길까, 아니면 제가 혹여 잘못된 정보들을 입력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혹여 위키백과의 정책과 지침들에 맞지 않는 편집을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니 막상 해당 분야에 관해 편집을 하는 것을 주저하게 됩니다.
그리고 업데이트가 아주 느린 문서들을 최신 정보들을 담은 문서로 편집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될지, 그리고 새로운 정보 관련 출처들을 어디에서 찾아야될지 등 문서에 맞는 전략적 접근 방법들을 복잡하게 생각해야 되서 문서 편집에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어려움을 느낍니다. 저는 주로 다른 언어판 위키백과에 있는 내용들을 번역해서 한국어 위키백과로 가져오고 있는데 대한민국에 관련된 문서들을 수정할 때는 교차검증할 수 있는 내용들이 다른 언어판 위키백과에도 잘 없다보니 이러한 문서들을 편집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Q. 위키활동을 하면서 도움을 받으신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일이셨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22년 송년회입니다. 위키백과에 가입한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위키백과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리고 앞으로 편집할 여러 내용들에 관련해서 명확하게 생각이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위키백과는 인터넷에 있는 다른 위키들과는 달리 오프라인 모임들을 진행한다는 것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편집을 하기 전에 위키백과가 어떠한 곳인지 등을 알기 위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송년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송년회에서 이사장님, 국장님을 포함해 많은 위키백과의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앞서 가지고 있었던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었고 많은 분들에게 편집을 위해 갖춰야 할 생각, 마음에 관해 많은 조언들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들과 대화하면서 제가 편집하고 싶어하는 분야와 관련해서 많은 분들이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비슷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송년회에서 많은 분들과 대화하고 서로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저는 제가 위키백과에 편집을 해도 괜찮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앞으로도 송년회에서 만난 분들과 여러 문서들을 알차게 보강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생기는 오프라인 모임에 최대한 참석해야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송년회 덕분에 위키백과에서 활동하는 것에 관한 의문을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고 이후 위키백과에서 많은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2022년 송년회가 위키활동을 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새로이 위키미디어 프로젝트에 참여할 신인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새롭게 위키미디어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게 될 분들에게 두 가지 요소들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사용자 토론, 문서 토론 등 여러 토론들을 통해 소통을 적극적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위키백과를 넘어 다른 위키백과들을 보면 타 유저님들과의 소통 없이 자신의 편집을 고집하면서 편집 분쟁을 일으키는 경우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통적 태도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프로젝트에 참가한 유저들이나 참가하지 않았던 유저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상처를 받아 위키공동체에 흥미를 잃은 분들이 위키공동체를 떠나는 경우들까지 초래할 수 있습니다. 항상 편집 분쟁이 있을 때 저는 "타인이 쓴 것이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 틀린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자신이 쓴 서술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먼저 타인이 작성한 서술을 존중해야 하며 행여 편집의 방향에 관해 의견차가 생겼을 때는 자신이 가진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서로 만족할 수 있는 서술 방향점을 찾아야 합니다. 편집 분쟁의 상황 외에도 자신이 이전에는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고 프로젝트에 같이 참여할 유저님들을 새롭게 모집할 수 있다는 이점들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프로젝트에 참가하진 않지만 같은 분야의 문서들을 편집하는 다른 유저님에게 궁금한 부분에 관해 질문이나 의견을 구하는 글을 보내는 것을 저는 적극적으로 권장합니다. 위키백과는 다른 위키들과는 달리 민주적인 위키라는 점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로 문서 속 내용을 작성할 때는 반드시 작성한 내용에 관해 명확한 출처를 출처 문법을 통해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키백과 문서들을 보면 알찬글, 좋은글들처럼 위키백과에서 지향하는 바를 지킨 문서들을 볼 수 있지만 비록 사실인 정보를 적었을지라도 출처가 없거나 개인적인 사견이 들어가거나 추측성 서술이 들어간 문장들이 많이 있는 문서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출처를 적지 않은 문장들은 정확성에 관계 없이 위키백과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위키백과에 해가 되는 편집이며 명확한 기본 자료가 없기 때문에 해당 서술이 지워지고 다른 서술로 대체될 때 자신이 작성한 서술이 지워지는 것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지양되어야 할 서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작성이 귀찮은 일이고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시각 편집기를 활용할 경우 손쉽게 출처를 문서에 추가할 수 있습니다. 출처를 추가하며 정확한 서술들을 문서에 추가할 때 위키미디어 프로젝트들이 성공적으로 끝날 확률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자신있게 생각합니다.
12월 30일 신도림역 가온 대회의실에서 열린 위키미디어 송년회에서는 올해의 위키인 시상과 오픈 피시볼 토론이 진행되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오픈 피시볼 토론에서 오간 내용을 독자분들에게 공유합니다.
이동통신사 IP 차단에 대해서는 송년회 현장에서는 찬성과 유보의 의견이 다수였습니다. 저장전에 특정 문자열을 입력하게 하는 캡차를 IP 기여를 할 때 요구한다는 발상도 나왔습니다. 통신사 IP를 통한 문서 훼손에 대해서는 10명 내외의 소수의 훼손자들이 계속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단기차단이 의미를 잃어간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통신사 IP 차단을 해도 다른 방식으로 문서 훼손을 해 나갈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특히 스포츠 경기가 재난 등 빠르게 갱신되는 정보에 고의적으로 틀린 정보를 1회성으로 삽입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대처가 어렵다는 한탄도 나왔습니다.
파노라마의 자유에 대해서는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있는 그림이나 건물 등의 저작물에 대한 사진 촬영에 대한 한국의 법률이 모호하며 이 부분에 대해서 공용 등에서 마찰이 있었습니다. 대체로 한국국민들은 저작권 개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편이므로 법률개정은 어려움이 있으며, 공용에서 한국에 대한 사진이 삭제되지 않도록 적절한 방어를 할 필요가 있어보입니다.
사용자 권한은 삭제자, 관리자, 문서 이동자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았습니다.
삭제자 권한에 대해서는 삭제된 문서의 열람이 가능하다는 부분 때문에 관리자 선거에 준하는 과정을 거쳐야 권한부여가 된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한국어 위키백과 커뮤니티에서는 굳이 삭제만 전담하는 권한을 관리자보다 기준을 낮추어 도입하는 것에 대해 커뮤니티가 동의하지 않고 있기에 도입을 위한 총의를 모으는 것에 현실적인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관리자 권한에 대해서는 비활동 관리자 권한 회수 등이 진행되면서 관리자에 대한 무게감이 이전보다는 완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의 관리자 권한 남용 사례로 인해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관리자 간 친목이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원활한 관리활동을 위해 관리자 교류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서 이동자 권한에 대해서는 단순히 이름 덮어쓰기만 하고 삭제된 문서의 열람이나 복구가 가능하지 않기에 선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문서이름 덮어쓰기를 위해 문서이동요청을 많이 하는 사용자를 위해 도입하는 쪽이 좋겠다고 보았습니다.
제목 선택하기는 위키백과의 많은 분쟁을 유발하는 주요한 공간입니다. 특히 스포츠인 인명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한국어권에서의 통용 명칭이 실제 출신지 언어의 표기가 아닌 영어권 표기를 따르는 경향성에 대한 문제가 크게 나타납니다. 팀을 이적하며 등록명이 바뀌거나 이름의 일부만 등록하거나, 혹은 오타로 잘못 등록하는 등의 부분에 대해 어떤식으로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교환을 하였습니다.
정치적인 사유로 지명이 바뀌거나 어법이 바뀌는 경우, 부모가 여러 국적인 혼혈인 경우, 예명이 더 널리 알려진 경우 등 기존에 고려하지 못했던 다양한 통용 표기가 부딪히는 사례가 나타납니다. 이에 대해서 제목 선택하기를 새로이 정책으로 정비해야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2023년 12월 초겨울에 위키탐방자들이 강원도 서부를 대표하는 두 도시 춘천과 원주를 다녀왔습니다. 강원도 하면 설악산, 동해바다를 먼저 떠올리지만 서부지역의 두 도시 또한 그에 못지 않은 다양한 문화유산과 관광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춘천과 원주 중 선호하는 곳을 골라서 지정된 장소를 탐방하였습니다. 이번 위키탐방 표지 사진은 Trainholic님이 원주에서 밤을 보내면서 찍은 강원감영 후원의 야경입니다. 다른 분들이 촬영한 춘천과 원주의 색다른 사진들도 아래와 같이 소개합니다.
춘천시
Yellow Turtle님은 춘천시 옆을 흐르는 북한강의 하중도에 있는 레고랜드를 Twotwo2019님은 북한강변에 있는 애니메이션 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Sadopaul님이 방문한 국립춘천박물관 내부는 천정이 뚫린 원형로비가 웅장한 느낌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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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랜드 정문, YellowTurtl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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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춘천박물관 내부, Sado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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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박물관, Twotwo2019
원주시
원주시에 다녀온 세 사용자 분이 방문한 곳 중 인상깊은 장소는 Aspere님이 방문한 문학인 박경리 생가, Trainholic님이 방문한 한옥식으로 지어진 옛 천주교의 대안리 공소, *Youngjin님이 방문한 원주 김두한 가옥 등 근현대사와 관련된 장소의 건물들이 나름의 자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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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문학공원 생가, Asp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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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리 공소, Trainho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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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한 가옥, *Youngjin
아래의 링크에서 2023년 겨울 탐방 사진을 모두 둘러보세요
1월 15일, 겨울의 평일에 청소년 탐방자들은 경기도 용인시의 에버랜드를 방문하였습니다.
이번 탐방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판다인 푸바오, 루아바오, 후이바오 3자매의 사진도 담아왔다고 합니다. 특히 푸바오는 2024년 3월까지만 대중에게 공개하고 4월 중으로 중국 스촨성으로 되돌아간다하니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작년에 태어난 루아바오, 후이바오 쌍둥이 자매는 아직 세상이 낯설어보이네요.
그외에도 청소년 탐방자와 인솔자들이 함께 담아온 에버랜드 속 놀이기구와 예쁜 풍경들을 함께 즐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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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국으로 돌아가는 푸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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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자매 판다 루아바오, 후이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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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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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부스 (바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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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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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익스프레스 입구
청소년 위키탐방 속 모든 사진은 아래의 갤러리에서 확인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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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가》 중 부자유친 부분
옛한글 문헌 전자화 프로젝트 5번째 회차인 2023년 하반기 활동에서는 11명의 사용자가 8개 문헌을 한국어 위키문헌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타자하였습니다. 《안락국전》과 같은 불교설화에서 조선시대의 백과사전인 《만보전서언해》와 《재물보》, 중국 고전인 맹자의 한글풀이인 《맹자언해》, 대한제국 말기에 만들어진 《보통학교학도용 국어독본》까지 다양한 시대와 분야를 망라하는 다양한 서적의 내용이 새로 한국어 위키문헌에 본문이 수록되었습니다.
- 전자화된 문헌 읽어보기
문학
백과사전
교과서
2024년 새해의 첫 에디터톤은 한반도의 역사속 왕국인 고려를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고려시대는 불교가 융성하여 다양한 불교미술이 꽃피운 시기이면서 북망민족이 세운 국가인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와 전쟁이 이어진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가까운 역사인 조선보다는 적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에디터톤에서는 Jjw님이 5개의 위키백과 문서를 새로 작성하여 13점으로 우승하였습니다. 특별한 기여를 한 사용자 분들은 위키문헌에 제왕운기 전문을 작성한 Aspere님, 고려시대의 불상과 석탑 사진을 올려주신 Trainholic님이 있었습니다.
- 흥미로운 문서
이 중 Trainholic님이 작성한 원주 평장리 석조불두는 기구한 사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평장리와 교향리를 잇는 탑고개의 자연암반을 조각하고 위에 따로 불상의 머리 부분인 불두를 올려놓았습니다. 수백년간 고개를 수호해오던 불상에 닥친 시련은 국도 확장이었습니다. 1980년대 42번 국도 확장에 불상이 방해가 되자 몸체를 어디엔가 묻어버렸고, 교향리 마을 주민들이 공사 현장에서 간신히 건진 석조불두를 마을회관 앞에 안치하여 수십년간 마을을 지켜왔습니다. 30여년만에 석조불두의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본래의 몸체를 찾기위해 발굴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본래의 몸체는 찾아내지 못하였습니다. 대신할 자연석 몸체를 새로이 구해 본래 불상머리가 있었던 탑고개 근처에 새로이 자리를 마련하여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비록 본래의 몸체는 잃어버렸지만 옛 도로의 한적한 위치에서 고개를 지나는 사람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2월 5일부터 3월 10일까지 한 달간 한국어 위키백과에서 토막글 개선 에디터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물, 사회, 역사, 경제, 과학기술, 교통 등 다양한 분야의 짧은 토막글 문서를 참여자의 손으로 튼실한 문서로 만들어가는 활동입니다. 2월 17일에 진행된 오프라인 모임에서는 교통경찰과 1970년대 문서가 개념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확장되었습니다.
이번 토막글 에디터톤에서 주목할만한 문서는 아나고라니님이 수정한 리구리아주 문서입니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부족한 대한민국이 아닌 지역의 지리 문서를 알차게 보완해주셨습니다.
리구리아주는 이탈리아반도의 서쪽해안의 가장 북쪽에 길게 늘어져있는 주로 제노바를 청사 소재지로 합니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고대 리구레스 족이 거주하였던 이 곳은 알프스 산맥과 아펜니노산맥 사이의 좁은 지역을 따라 도시가 형성되었기에 산악과 해안을 따라 지어진 아름다운 소도시가 많습니다. 또한 중세 시대에 지중해의 상업을 주름잡았던 제노바 공화국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기에 상업이 융성한 지역이기도 하였습니다.
토막글 개선 에디터톤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과 참여자의 활동은 아래의 링크로 보실수 있습니다.
2024년 설 연휴에는 한국어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언어를 함께 수록해 나가는 위키낱말사전 챌린지가 진행되었습니다!
위키낱말사전은 한국어사전처럼 낱말에 대한 간단한 뜻풀이를 기록하는 위키백과의 자매프로젝트입니다. 때론 몇페이지에 이르는 긴 설명보다 한줄에서 세줄 정도되는 낱말의 짧은 정의가 필요할 때가 많은데요. 이번 설에는 참여자들의 기여 챌린지로 낱말들을 새로이 채워넣었습니다. 하루에 최소 4개의 낱말을 편집하면 일일출석이 완료되는 방식으로 누가누가 더 많은 낱말을 채우는지 경쟁을 한 그 결과는?
7일동안 9명의 참여자가 264개의 낱말을 편집하였습니다. 참가자별로 편집한 낱말을 살펴보면 스스로의 관심분야와 관련된 낱말을 쌓아올렸습니다.
그 중 2024 설 위키낱말사전 기여왕은 90개의 낱말을 편집한 Bykim2012님입니다! 증권용어와 시사용어를 중심으로 위키낱말사전에 새로운 낱말들을 추가해주셨습니다. Bykim2012님이 작성한 단어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서학개미
명사
어원: 한자 西學 + 개미
- 1. 해외(주로 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소액 투자자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 한국 주식 투자자는 동학개미라고 함.
- 예문: 설연휴에도 서학개미의 매수세가 미국주식에 몰렸다.
모든 참가자가 편집한 낱말은 아래의 링크에서 둘러보실 수 있습니다.
2024년 2월 24일 신도림역 가온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국 위키미디어 협회 2024년 정기총회에서는 2023년 사업 결과보고와 결산, 2024년 사업계획 및 예산에 대해 논의하고 의결하였습니다.
2023년 진행사업에 대한 사업평가 결과를 성취된 사업, 보완이 필요한 사업, 방향 전환이 필요한 사업의 3유형으로 분류하여 성과를 보고하고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지에 대해 브리핑 하였습니다. 2024년 사업계획에서 달라지는 주요한 부분은 사무실 마련, 채용된 신규 매니저가 있습니다. 금년도에는 협회의 기초자산과 재단의 지원금으로 협회의 사무실을 마련할 계획이며, 증원된 사무국의 인력으로 커뮤니티 지원 및 조직 강화, 국내외 협력 강화, 자매프로젝트 및 전문문서 편집지원을 다각적으로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2024년 1월 13일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와 상호협력에 대한 협약서를 체결하였습니다.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는 의사결정능력장애인들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과 관련된 후견제도와 신탁제도를 연구하는 곳입니다. 협회는 위키미디어운동의 취지에 공감하는 단체에 부여되는 재단의 얼라이언스 그랜트에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가 참여하는 것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또한 협회와 한국후견신탁연구센터는 장애당사자들이 위키백과 등 위키미디어 프로젝트에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최하여 장애당사자들이 스스로와 관련된 지식을 인터넷 상에서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작성하는 활동 등을 통해 사회의 인식개선과 권리향상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얀 얼굴에 검은 귀와 눈주변의 검은 무늬를 가진 귀여운 대왕판다는 눈주변의 무늬 때문에 너구리인지 곰인지에 대해 오랜기간 논란이있었습니다. 마침내 1985년 유전자 분석 결과 곰과에 속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런데 곰과에 속하는 판다는 어째서 고기를 먹지 않고 대나무만 먹게된 것일까요?
그 의문에 대한 비밀은 2010년에야 대왕판다의 게놈 분석을 통해 밝혀지게 됩니다. 사람과 동물은 T1R1 유전자를 통해 고기의 감칠맛을 느끼는데 대왕판다는 그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학자들은 고기맛을 느끼지 못하는 대왕판다에게는 대나무나 고기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나무를 주식으로 삼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소화기관은 육식동물에 가깝기 때문에 대나무를 잘 소화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왕판다는 하루종일 9~14kg의 대나무를 열심이 섭취하고 느긋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5년전인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작성한 기미독립선언서가 오후2시 탑골공원에서 낭독되면서 3·1운동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3월 1일에는 서울에서만 1만여명이 참여하였지만 4월 30일까지 최소 두 달 이상 전국 방방곡곡에서 대한독립만세가 울려퍼졌습니다. 1,000번 이상의 만세운동은 일제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되었지만, 국내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해외에 조선독립의 의지를 밝힌 의의가 있습니다.
3월 1일의 다른 역사적 사건
- 1932년 - 일본 제국이 만주사변 직후부터 만주 지역에 세운 괴뢰 국가인 만주국 건국을 선언하다.
- 1936년 - 미국 네바다주와 애리조나주 경계에 있는 중력식 아치 댐인 후버 댐이 완공되다.
- 1947년 - IMF 협정이 발효되면서 국제 통화 기금이 실제 업무를 개시하다.
제6호 퀴즈의 테마는 미로찾기입니다. 구불구불 미로속 단 하나의 길은 어디로?
제5호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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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모임 지원
한국 위키미디어 협회는 대한민국에서의 위키미디어 커뮤니티 지원의 일환으로 대한민국에서 자발적으로 열리는 위키미디어 프로젝트 관련 오프라인 모임 비용을 지원합니다. 상업적 활동, 정당 활동, 종교 포교 등은 지원하지 않으며, 위키미디어 사용자의 자발적 모임의 경비를 지원할 뿐, 모임의 주최자는 한국 위키미디어 협회와 별개입니다.
온라인 에디터톤 지원
코로나19로 서로 만남이 어려운 동안 올림픽, HIV/AIDS, 케이팝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에디터톤이 진행되었습니다. 서로 먼거리에 떨어진 사람들이 같은 주제를 함께 편집하는 온라인 에디터톤은 해당 분야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분야든 5명 이상의 참가자가 모인다면 협회의 온라인 에디터톤 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어 위키미디어 커뮤니티 사용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활발한 에디터톤 개최를 부탁드립니다.
한국 위키미디어 협회는 2015년 ‘지식과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하기 위해 대한민국 지역에서 위키백과 등 위키미디어 프로젝트를 진흥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입니다.
협회는 자유 라이선스나 퍼블릭 도메인 등 무료 또는 저작자 표시 하에 자유롭게 사용가능한 교육적 콘텐츠를 수집하거나 개발하여 효과적으로 확산시키는 활동을 지원합니다.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위키미디어 커뮤니티의 참여자들이 특정 주제를 선정하여 진행하는 에디터톤, 참여자들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오프라인 모임 등을 지원합니다.
또한, 미국에 위치한 위키미디어재단의 가맹 단체로서 재단의 자원 활동가 등과 협력하여 한국어 위키미디어 커뮤니티의 의견을 조사하고, 재단과 소통하는 등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지속가능하게 하고, 지식 정보를 널리 읽히게 하는데 후원자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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