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토론:삼국지 전투
마지막 의견: 11년 전 (Synparaorthodox님) - 주제: 틀에 나타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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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나타난 문제
편집- 틀에 나타난 전투가 정말로 중요한 전투인가? 장판 전투의 경우는 역사적 중요성은 그다지 없습니다.
- 대전과 전투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 적벽 대전이라 부르지만, 규모나 중요성을 따지자면 관도 대전이 훨씬 더 규모도 크고 중요한 전투입니다(적벽 대전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데 적벽 대전은 "대전"이라 부르고, 관도 대전은 "전투"(또는 싸움)으로 부르네요. 이러한 용어의 정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원문을 따르느냐, 아니면 의미의 전달을 중시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흔히 황건적의 난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황건지란(황건의 난) 또는 황건란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견 남겨 주십시오. --Knight2000 2007년 8월 28일 (화) 15:24 (KST)
- 님의 의견을 봤습니다. 제가 전에 전투들을 대폭 추가한 것은 영문판에서 본 것을 그냥 추가한 것입니다. 그리고 님이 말씀하신 대전과 전투의 차이를 전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네요. '대전'은 삼국의 흥망성쇠의 향방이 달려있고 규모와 중요성이 큰 전투입니다. 적벽 대전이 바로 조조군과 유·손 연합군이 모두 싸운 전투로 이 싸움으로 삼국의 틀이 잡혔죠. 그러나 관도 전투는 삼국의 한 축인 조조와 기타 세력인 원소와의 북방 쟁탈전이었습니다. 이것 역시 중요하다고 보지만,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관도 전투로 그냥 써도 무방하다 봅니다.
- 황건적의 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서 황건지란이라 부른다고 한국에서도 황건지란이라 잘 부르지 않습니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대로 황건적의 난이라고 해야 합니다. -- 윤성현 2007년 8월 30일 (목) 02:23 (KST)
- 적벽 대전은 역사적으로 삼국의 성립과 관련이 있지만, 그것보다는 중국 대륙의 통일이 약50년 늦추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중요하게 봅니다(역사서에 적벽 대전에 대한 내용이 거의 나오지를 않기 때문에 다른 관점의 해석이 힘듭니다). 관도 대전은 사실상 그 이후로 중국 대륙이 군웅의 할거가 아닌 위나라를 중심으로 재편되기 때문에 중요하게 봅니다(한나라 영토의 6할, 인구의 7할을 위나라가 점유. 동관전투 후 한나라 영토의 7할, 인구의 8할을 점유). 실제로 삼국에서 “중국”이라고 자칭한 나라는 위나라뿐입니다. 촉한이나 오가 “중국”이라 자칭했다면, 아마도 진수가 삼국지에서 뭐라고 한 마디 했겠죠. 게다가 촉한이나 오는 고구려나 백제보다도 국력이 약한 나라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또한 삼국지연의와는 달리 삼국지에서는 고구려에 대한 내용이 촉한에 대한 내용보다 더 많습니다). --Knight2000 2007년 8월 30일 (목) 15:25 (KST)
- “'대전'은 삼국의 흥망성쇠의 향방이 달려있고 규모와 중요성이 큰 전투”라고 하셨는데, 실제로 삼국의 틀이 잡힌 때는 동관전투 이후입니다(엄밀히 말하자면,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한 뒤). 적벽대전 이후에도 여전히 최소한 왕이 군주로 있는 나라는 위나라뿐이었죠. 유비나 손권은 여전히 “공”의 신분이었습니다. 더구나 “일정한 영역을 확보한” 군웅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유비는 군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미흡합니다(확보한 지역이라고는 강릉군 하나입니다. 형주의 나머지 지역은 조조의 영역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적벽 대전을 기회로 군웅(형주 전체를 점유)이 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삼국의 흥망성쇠 전체를 논하기에는 더욱 힘들어지죠. 이렇듯이 삼국의 흥망성쇠를 논하기에는 적벽대전이 너무 이른 시기입니다(다만 삼국의 성립만을 논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그런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관도 대전은 아예 중국 전체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할 만큼 중요한 전투입니다. --Knight2000 2007년 8월 30일 (목) 15:36 (KST)
- 관도 싸움은 '조조가 원소를 막았다'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원소는 관도 싸움 이후에도 건재했고, 이 전투를 시작으로 원씨의 세력이 약해지고 조씨의 세력이 강해지긴 했습니다만, 조씨가 원씨에게 우세를 보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후의 원씨의 몰락 과정의 전초라는 의미에서 관도 싸움이 중요하다면, 아예 이후 70년간 중국 분열의 단초가 되는 적벽 싸움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0년 12월 25일 (토) 16:23 (KST)
- 관도전투와 적벽대전을 모두 틀에서는 “전투”로 통일하겠습니다. 저는 둘다 대전으로 보지만, 많은 분이 적벽대전으로 보는 것 같네요. 그래서 우선 “전투”임은 확실히 맞으므로, 그렇게 해 두고, 나중에 다시 논의를 하도록 하죠. 또한 영문판에 있던 내용도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Knight2000 2007년 8월 30일 (목) 15:45 (KST)
- “서촉 공방”을 “익주 공방”으로 고쳤습니다. 서촉이 촉 전체(익주+한중+천수)를 뜻하는지, 촉의 서부(익주)를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고, 또한 촉이라는 지역인지 촉한이라는 나라인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일단 삼국지연의나 삼국지에 나온 대로 “익주”로 칭하겠습니다. --Knight2000 2007년 8월 30일 (목) 15:50 (KST)
- 한나라의 행정 구역상 익주는 한중을 포괄합니다. 따라서 익주 공방이라고 하는 것보다 더 좁은 개념인 서촉 내지 서천이 좋다고 봅니다. 유비의 입촉 분쟁에서, 동천(東川)인 한중 일대는 빠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Hun99 2008년 5월 2일 (금) 00:08 (KST)
- 실제의 전투인 양인전투는 빼면서 삼국지연의에만 나타난 동탁토벌전은 표에 버젓이 존재하는군요.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내용보다 실제 역사를 더 중요시하는 입장이라 그 두개를 병기했습니다. 양인전투를 표에서 뺄거면 동탁토벌전도 같이 빼든가 아니면 둘다 존치시키시기 바랍니다.118.36.192.59 (토론) 2013년 6월 3일 (월) 16:54 (KST)
- 이건 현재의 동탁토벌전의 항목의 내용의 문제일 뿐입니다. 제 생각이지만, 동탁 토벌전은 형양 전투(동탁 대 조조 · 위자 · 포신), 하양진 전투(동탁 대 왕광), 양인 전투 - 낙양 전투(동탁 대 원술 - 손견) 그리고 이후의 동탁과 주준의 싸움 등을 포괄하는 넓은 전역을 묘사하는 항목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면 양인 전투는 자연스레 동탁 토벌전의 하위 항목이 되면서 틀에서는 빠지게 될 것입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3년 6월 4일 (화) 13:58 (KST)
- 그렇게 하시려면 우선 동탁토벌전의 내용을 정사에 나온대로 싹 갈아 엎으시고 나서 하시기 바랍니다.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을 베었다는 말도 같지도 않은 논리를 마치 진짜 역사인것 마냥 맹신하는 사람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서입니다. 동탁 토벌전에 대해서는 정사의 내용을 먼저 기술하고 연의의 내용을 부가적으로 넣어주시기 바랍니다.118.36.192.59 (토론) 2013년 6월 4일 (화) 18:54 (KST)
- 그건 귀하도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항목 자체로는 반동탁 연합군 항목의 내용을 갈아엎되 틀에는 양인 전투(정사)/동탁 토벌전(삼국지연의)로 하지 않고, 동탁 토벌전만을 남기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여깁니다. 애시당초 이 표는 큰 전역과 전역에 포함되는 전투가 섞여 있는 인상을 줍니다. 예를 들면 제갈량의 북벌이 있는데 그 북벌에 포함되는 가정 전투도 있고, 관도 대전의 부록이라 할 수 있는 여남 전투도 독립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이런 것을 싹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는 양인 전투 외에 하양진 전투 · 형양 전투 등이 한데 모여서 동탁과 반동탁 연합군 사이의 전역을 이루는데, 양인 전투만을 따로 떼어서 다루는 것은 동탁과 반동탁 연합군 간의 전역 전체를 보는 데에 오히려 양인 전투의 주역만을 부각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3년 6월 4일 (화) 23:29 (KST)
- 그러고 보니 비슷한 내용을 서술하는 반동탁 연합군 항목이 이미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동탁 토벌전 항목에서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다루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 각 항목의 내용으로 보건대 틀에는 반동탁 연합군을 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는 배경까지는 사서의 서술을 따라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반동탁 연합군 항목에도 삼국지연의의 내용이 좀 남아 있는데(실제로는 이유는 동탁의 모신이 아니며, 손견이 동탁을 무찌르는 게 조조가 형양에서 지는 것보다 나중입니다) 이건 차후 손보는 분이 있겠죠.--Synparaorthodox (토론) 2013년 6월 4일 (화) 23:43 (KST)
- 반동탁 연합군과 동탁 토벌전을 병합하자는 토론을 동탁 토벌전 항목의 토론에 열었으니 관심 있는 분은 와 주시길 바랍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3년 6월 4일 (화) 23:48 (KST)
- 그렇게 하시려면 우선 동탁토벌전의 내용을 정사에 나온대로 싹 갈아 엎으시고 나서 하시기 바랍니다. 관우가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을 베었다는 말도 같지도 않은 논리를 마치 진짜 역사인것 마냥 맹신하는 사람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서입니다. 동탁 토벌전에 대해서는 정사의 내용을 먼저 기술하고 연의의 내용을 부가적으로 넣어주시기 바랍니다.118.36.192.59 (토론) 2013년 6월 4일 (화) 18:54 (KST)
- 이건 현재의 동탁토벌전의 항목의 내용의 문제일 뿐입니다. 제 생각이지만, 동탁 토벌전은 형양 전투(동탁 대 조조 · 위자 · 포신), 하양진 전투(동탁 대 왕광), 양인 전투 - 낙양 전투(동탁 대 원술 - 손견) 그리고 이후의 동탁과 주준의 싸움 등을 포괄하는 넓은 전역을 묘사하는 항목이 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면 양인 전투는 자연스레 동탁 토벌전의 하위 항목이 되면서 틀에서는 빠지게 될 것입니다.--Synparaorthodox (토론) 2013년 6월 4일 (화) 13:58 (K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