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노 후히토
후지와라노 후히토(일본어: 藤原 不比等, 659년 ~ 720년)은 아스카 시대 및 나라 시대 초기 공경대신이다.
덴지 천황의 총신인 후지와라노 가마타리의 차남으로, 후히토의 자손만이 덴지 천황에게 받은 후지와라씨를 사용하고 태정관까지 오를 수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후지와라씨 선조로 여긴다. 후히토(不比等)라는 이름은 「다른 데에 비할바 없이 우수하다」라는 의미다. 후히토와 그 아들 네 명(후지와라 4형제)이 후지와라 씨 번영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후히토의 두 딸 역시 각각 몬무 천황과 쇼무 천황과 결혼하여 외척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후히토 사후 쇼무 천황의 황후가 된 고묘시는 황족 출신만이 황후가 된다는 전례를 깬 최초의 예가 되었다. 몬무 천황(재위: 683년-707년) 때, 오사카베 황자(忍壁皇子), 후지와라 후히토, 아와타 마히토(粟田真人), 시모쓰케노 고마로(下毛野古麻呂) 등이 율령 선정을 담당하여 700년에 령이 거의 완성되고 남은 율의 조문 작성이 이루어져 다이호 원년(701년) 8월 3일, 다이호 율령이 완성되었다.[1]
가계
편집각주
편집- ↑ 연민수 (1998). 《일본역사》. 보고사. 47쪽. ISBN 89-86142-81-3.
그 사이 701년(大宝 1년)에는 다이호(大宝) 율령이 완성되었다. 이것은 몬무천황의 명으로 오사카베 친왕(刑部親王)을 총재로 하여 후지와라노 후히토(藤原不比等)등이 당의 율령에 일본 고래의 관습을 가미하여 제정한 것으로 완성된 이듬해부터 시행되었다.
같이 보기
편집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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