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다라노코니키시 젠코

(부여선광에서 넘어옴)

구다라노코니키시 젠코(百濟王善光 또는 百濟王禪廣) 또는 선광왕(禪廣王 또는 善光王, 621년 ~ 693년)은 백제의 왕족으로,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義慈王)의 아들이며 풍왕의 형제였다. 본래 이름은 부여선광(扶餘禪廣, 扶餘善光)으로, 일본 정착 후 지토 천황으로부터 구다라노코니키시씨(百濟王氏)를 사성받았다.

간무 천황의 외가는 무령왕의 후손인 고야조신가문의 딸 다카노노 니가사로, 간무 천황 역시 백제계인 선광의 후손들 중에서 후궁들을 간택하였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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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의 손자이자 의자왕의 아들로, 부여효, 부여태는 그의 형이고, 부여융, 부여연, 풍왕은 그의 형 또는 동생이라는 설이 있다. 그의 본명은 부여용 또는 부여선광이다. 일명 여용, 여선광 등으로 부른다. 오오치씨 족보와 토요타씨 족보에 의하면 그는 풍왕의 아들이라 한다.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의하면 그는 부여 풍(夫餘豊)과 함께 631년일본에 왔다가 660년 백제가 멸망하자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체류하였다 한다.

부여풍은 부흥군을 이끌고 나당 연합군과 싸우다 참패해서 고구려로 도망했고, 자신은 왜국에 그대로 정착하였다. 왜국 정부는 선광을 중용하였고 왕족으로 예우하여 주었다.[1] 선광의 자손들은 일본 오오사카에서 백제계 사람들이 많이 사는 히라가타(당시의 가타노)로 터전을 옮겼다. 선광의 후손 경복이 무쓰노 군의(지금의 도쿄) 지방장관으로 있을 때는 쇼우무 천황의 치세였다.[1]

664년 3월 텐지 천황으로부터 나니와(難波, 지금의 오사카)에 거처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생활하였다. 일본 정착 후 지토 천황으로부터 구다라노코니키시씨를 사성받고 해당 가문의 선조가 되었다. 생전 관직은 종3위 정광사(正廣肆)에 이르렀고, 693년 1월에는 지토 천황으로부터 정광삼(正廣參) 정삼위(正三位)의 관위(官位)와 조위품(弔慰品)을 받았다.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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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부 히라카타시에는 백제 왕족 선광왕의 신주를 모신 사당 구다라오 신사가 세워졌다. 후일 간무 천황의 생모는 무령왕의 후손인 다카노노 니가사(高野新笠)이고, 자신의 비빈(妃嬪)도 의자왕의 아들인 부여선광(夫餘禪廣)의 후손인 구다라노코니키시에서 맞아들였다.[2]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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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
武王
의자왕
義慈王
부여융[3]
扶餘隆
은고
恩古
부여태
扶餘泰[4]
부여교기
扶餘翹岐
부여효
扶餘孝
부여연
扶餘演
부여풍
扶餘豊
부여용
扶餘勇
부여충승
扶餘忠勝
부여충지
扶餘忠志
부여선광
扶餘善光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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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지 천황지토 천황으로부터 왕족으로 인정받고 일본 황족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 지토 천황이 그에게 수여한 백제왕은 작위가 아니라 성씨로 보고 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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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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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7. 히라가타의 백제사사적(百濟寺寺跡)과 백제왕 신사
  2. 부여계의 성지, 히라노 신사 프레시안 2009.01.21
  3. 장남은 부여융 아니면 부여효이다.
  4. 의자왕의 차남이 확실하며 나머지 순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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