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불상응행법 (아비달마구사론)
이 문서는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주요 논서인 《아비달마구사론》에서 설명하고 있는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에 대해 다룬다. 심불상응행법에 대한 전체적 · 일반적 내용은 '심불상응행법 문서'에서 다루고 있다.
설일체유부의 논사였다가 후에 대승불교로 전향하여 유식유가행파의 논사가 되었던 세친(世親, Vasubandhu: 316~396)은 설일체유부의 논사였을 때의 자신의 저서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에서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이란 마음과 상응하지 않으며 또한 물질(색)도 아닌 법으로 5온 가운데 행온(行蘊)에 속한 법들의 그룹이라고 정의하고 있다.[1][2]
그리고, 세친은 심불상응행법에 속한 법으로 득(得) · 비득(非得) · 동분(同分) · 무상과(無想果) · 무상정(無想定) · 멸진정(滅盡定) · 명(命) · 생(生) · 주(住) · 이(異) · 멸(滅) · 명신(名身) · 구신(句身) · 문신(文身)의 14가지를 들고 있다.[1][2][3]
정의
편집《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心不相應行何者是耶。頌曰。
心不相應行 得非得同分
無想二定命 相名身等類
論曰。如是諸法心不相應非色等性。行蘊所攝。是故名心不相應行。—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 p. 22a. 한문본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이란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불상응행법이란,
득(得)과 비득(非得)과 동분(同分)과
무상과(無想果)와 두 가지 정(定)과 명(命)과
네 가지 상(相)과 명신(名身) 등의 종류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이와 같은 온갖 법은 마음과도 상응하지 않으며, 색 등의 자성도 아닌 것으로 행온(行蘊)에 포섭된다. 그렇기 때문에 심불상응행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 190쪽. 한글본
위의 인용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친은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을 마음과 상응하지 않으며 또한 물질(색)도 아닌 법으로 5온 가운데 행온(行蘊)에 속한 법들의 그룹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속하는 법들로는 득(得) · 비득(非得) · 동분(同分) · 무상과(無想果) · 무상정(無想定) · 멸진정(滅盡定) · 명(命) · 생(生) · 주(住) · 이(異) · 멸(滅) · 명신(名身) · 구신(句身) · 문신(文身)의 14가지를 들고 있다.
심불상응행법에 속한 14가지의 법들은 유정과 비유정의 존재양태에 관한 관념 또는 물질(색)과 마음(심소)과 마음작용(심소)의 여러 상태[分位]에 관한 관념을 추상화시켜 얻은 개념이다. 설일체유부에서는 자신들의 대명제 또는 기본논거인 '식유필경(識有必境: 인식이 있다면 반드시 그 대상이 있다)' 또는 '유소연식(有所緣識: 대상이 있는 인식, 즉 대상이 있으므로 인식[이 있다], 즉 대상없이 인식은 생겨나지 않는다)'에 근거하여 이들 추상적인 개념들을 각기 개별적 실체[別法]로 인정하고 있다.[4] 이에 대해 경량부에서는, 심불상응행법에 속한 법들은 다만 소의신의 상속상에 나타나는 제 상태를 개념적으로 언표 또는 가설한 것(prajñapti)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하여 이 법들이 실법(實法)이 아닌 가법(假法)이라고 보고 있으며, 세친도 대체로 이러한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세친은 《구사론》에서 이들 14가지 법들에 대한 해설과 더불어 이들의 가실(假實)문제에 대한 설일체유부와 경량부 사이의 대론을 싣고 있다.[2]
개별 법의 설명
편집《아비달마구사론》에서는 14가지 불상응행법을 들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아비달마구사론》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1) 득(得)
편집득(得)은 획득[獲]과 성취(成就)를 말하며, 획득[獲]은 아직 획득하지 않았거나 이미 상실한 것을 지금 획득하는 것이며 성취(成就)는 이미 획득한 것을 상실하지 않는 것이다. 득은 자상속(自相續)과 택멸 · 비택멸의 2가지 멸에 대해서만 존재한다.[5][6]
(2) 비득(非得)
편집비득(非得)은 득(得)의 반대를 말한다. 즉, 불획(不獲)과 불성취(不成就)를 말한다.[5][6]
(3) 동분(同分)
편집동분(同分)은 중동분(衆同分)이라고도 하며, 유정으로서의 동등함[類等] 즉 동류상사성(同類相似性)을 말한다. 무차별 동분과 유차별 동분이 있는데, 전자는 유정의 '유정으로서의 동분' 즉 비유정(非有情: 초목, 흙, 돌 등)이 아닌 유정(有情: 동물, 인간, 데바 등의 의식과 감정을 지닌 생물)이라는 측면에서의 유사성 또는 보편성이고, 후자는 온갖 유정의 3계(三界) · 9지(九地) · 5취(五趣) · 4생(四生) · 4종(四種: 바라문 등의 4종성) · 남 · 여 · 근사(近事, 재가자) · 필추(苾芻, 출가자) · 학(學) · 무학(無學) 등의 각기 다른 한 종류의 유정으로서의 동등함 즉 동류상사성이다.[7][8]
(4) 무상과(無想果)
편집무상과(無想果)는 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 색계 제4선의 제3천인 광과천)에 태어나면 그곳에 사는 동안에는 능히 미래의 심법 · 심소법을 차단하여 생기하지 않게 하는 법이 작용하는데 그 법을 무상과라고 한다.[9][10]
(5) 무상정(無想定)
편집무상정(無想定)은 능히 심 · 심소로 하여금 소멸되게 하는 선정으로, 다음 생에서 무상유정천(광과천)에 태어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11][12]
이생(異生: 즉 범부)이나 외도는 무상(無想, 즉 무상과)에 집착하여 그것을 참된 해탈이라 집착하고 출리상(出離想)을 일으켜 그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무상정을 닦는다. 무상(無想, 즉 무상과)를 획득하는 것으로는 정성이생(正性離生, 즉 견도위)에 들 수 없다. 성자는 무상(無想, 즉 무상과)을 참된 해탈이나 참된 출리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무상정을 수행하지 않는다. 성자는 무상정을 마치 깊은 구덩이[深坑]와 같다고 보아 거기에 들어가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11][12]
(6) 멸진정(滅盡定)
편집멸진정(滅盡定)은 무상정과 마찬가지로 능히 심 · 심소로 하여금 소멸되게 하는 선정이다.[13][14]
무상정의 경우 해탈을 구하기 위하여 출리상을 작의[出離想作意]하는 것을 '바라는 결과를 획득하는 최우선의 방편으로 삼아 행하지[為先]'만, 멸진정은 정주(靜住: 마음이 산란을 떠나 고요히 머무는 것)를 구하기 위하여 지식상을 작의[止息想作意]하는 것을 '바라는 결과를 획득하는 최우선의 방편으로 삼아 행한다[為先]'.[13][14]
무상정이 색계의 제4정려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멸진정은 오로지 유정(有頂) 즉 바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만 존재한다.[13][14]
무상정은 이생(즉 범부)이나 외도가 닦는 선정이고, 멸진정은 성자가 닦는 선정이다. 무상정의 이숙과는 색계 제4선 광과천으로, 여기서는 소의신을 갖기 때문에 무상(無想)에 들더라도 존재가 소멸된다는 두려움이 없으므로 이생(즉 범부)도 획득할 수 있지만, 멸진정은 그 이숙과가 무색계의 유정천 즉 비상비비상천이기 때문에 무상에 들게 되면 존재가 소멸된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이생(즉 범부)은 결코 획득할 수 없다. 그리고 유정천의 견소단의 혹(惑)을 끊지 못한 자는 멸진정을 일으킬 수 없는데, 유정천의 견혹은 유루지로써는 끊을 수 없고 오로지 무루지로써만 끊을 수 있기 때문에 멸진정은 오로지 성도(聖道)의 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한다.[13][14]
(7) 명(命)
편집명(命)은 명근(命根)이라고도 하며, 3계의 목숨을 말한다. 즉, 명(命) 또는 명근(命根)이란 능히 체온[煖]과 의식[識]을 유지하게 하여 유정으로 하여금 상속하게 하고 지속하게 하는 원인[因]이 되는 어떤 개별적인 법이다.[15][16]
(8) 생(生)
편집생(生)은 온갖 유위법으로 하여금 능히 일어나게[起] 하는 성질을 말한다.[17][18]
(9) 주(住)
편집주(住)는 온갖 유위법으로 하여금 능히 안주하게[安] 하는 성질을 말한다.[17][18]
(10) 이(異)
편집이(異)는 온갖 유위법으로 하여금 능히 쇠퇴하게[衰] 하는 성질을 말한다.[17][18]
(11) 멸(滅)
편집멸(滅)은 온갖 유위법으로 하여금 능히 허물어지게[壞] 하는 성질을 말한다.[17][18]
(12) 명신(名身)
편집명신(名身)은 말의 의미를 드러나게 하는 힘으로서의 불상응행 중 하나로, 색(물질) · 성(소리) · 향(냄새) · 미(맛) 등과 같은 상(想, saṃjñā: 명사적 개념적 단어)를 말한다.[19][20]
(13) 구신(句身)
편집구신(句身)은 말의 의미를 드러나게 하는 힘으로서의 불상응행 중 하나로, 뜻을 드러내는 '제행은 무상하다'와 같은 문장을 말한다.[19][20]
(14) 문신(文身)
편집문신(文身)은 말의 의미를 드러나게 하는 힘으로서의 불상응행 중 하나로, 예를 들어 산스크리트어의 a · i · ka · kha와 같은 음소[字, aksara]를 말한다.[19][20]
같이 보기
편집참고 문헌
편집- 곽철환 (2003).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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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권오민 (1991). 《경량부철학의 비판적 체계 연구》. 동국대학원 철학박사 학위논문.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K.955, T.1558). 《아비달마구사론》.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955(27-453), T.155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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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운허. 동국역경원 편집, 편집. 《불교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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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星雲. 《佛光大辭典(불광대사전)》 3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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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중국어) 세친 조, 현장 한역 (T.1558).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대정신수대장경. T29, No. 1558,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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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
편집-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2a04 - T29n1558_p0022a09.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心不相應行何者是耶。頌曰。
心不相應行 得非得同分
無想二定命 相名身等類
論曰。如是諸法心不相應非色等性。行蘊所攝。是故名心不相應行。" - ↑ 가 나 다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90-191 / 1397. 심불상응행법(心不相應行法)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이란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심불상응행법이란,
득(得)과 비득(非得)과 동분(同分)과
무상과(無想果)와 두 가지 정(定)과 명(命)과
네 가지 상(相)과 명신(名身) 등의 종류이다.95)
心不相應行 得非得同分
無想二定命 相名身等類
논하여 말하겠다. 이와 같은 온갖 법은 마음과도 상응하지 않으며, 색 등의 자성도 아닌 것으로 행온(行蘊)에 포섭된다. 그렇기 때문에 심불상응행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95) 득(得)·비득(非得)·동분(同分)·무상과(無想果)·무상정(無想定)·멸진정(滅盡定)·명(命)·생(生) ·주(住)·이(異)·멸(滅)·명(名)·구(句)·문(文) 등의 불상응행법 열네 가지는, 이를테면 존재양태에 관한 관념을 추상화시켜 얻은 개념으로, 유부에서는 '식유필경(識有必境)'에 근거하여 이를 각기 개별적 실체[別法]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경량부에서는, 이는 다만 소의신의 상속상에 나타나는 제 상태를 개념적으로 가설한 것(prajñapti)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하였고, 세친도 대체로 이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에 이하 열네 가지 법의 해설과 더불어 이것의 가실(假實)문제에 대한 유부와 경량부 사이의 대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 ↑ 星雲, "心不相應行". 2013년 1월 11일에 확인
"心不相應行: 梵語 citta-viprayukta-sajskāra,巴利語 citta-vippayutta-dhamma。乃俱舍家、唯識家等對於一切諸法所立五位分類中之第四位。又作心不相應行蘊、非色非心不相應行法、非色不相應行蘊、心不相應法、不相應行法、不相應行、不相應。指不屬於色、心二法,與心不相應之有為法之聚集。依小乘說一切有部之義,在色、心及心所之外,另有與心不相應之實法,其體係有為法,又為五蘊中之行蘊所攝,故稱心不相應行。經部、唯識等則主張不相應行乃於色心之分位所假立者,並非實法。
心不相應行之數,大小乘均有異說。小乘俱舍家舉出得、非得、同分、無想果、無想定、滅盡定、命根、生、住、異、滅、名身、句身、文身等十四種不相應行法。順正理論卷十二加上和合性,而立十五不相應行法之說。品類足論卷一則舉出得、無想定、滅定、無想事、命根、眾同分、依得、事得、處得、生、老、住、無常性、名身、句身、文身等十六法。此外,分別部及犢子部等,將隨眠亦計為不相應法。大乘唯識家中,瑜伽師地論卷三舉出得、無想定、滅盡定、無想異熟、命根、眾同分、生、老、住、無常、名身、句身、文身、異生性、流轉、定異、相應、勢速、次第、時、方、數、和合及不和合等二十四種不相應行法,大乘阿毘達磨集論卷一除去不和合而立二十三不相應行法之說。大乘五蘊論則舉出得、無想等至、滅盡等至、無想所有、命根、眾同分、生、老、住、無常、名身、句身、文身、異生性等十四法。〔俱舍論卷四、卷十九、入阿毘達磨論卷上、顯揚聖教論卷二、卷十八、成唯識論卷一、卷二、大毘婆沙論卷二十二、卷四十五、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二、俱舍論光記卷四、成唯識論演祕卷二末〕(參閱「五位七十五法」089、「五位百法」)" - ↑ 권오민 1991, 21. 식유필경(識有必境) 또는 유소연식(有所緣識)쪽
"이같은 점은 어떤 의미에서 인식에는 반드시 그것에 상응하는 외계의 실재적인 대상이 있어야 한다(有所緣識 혹은 識有必境)고 주장하는 유부철학의 가장 현저한 특징을 나타내는 내용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8)
木村泰賢, 小乘佛敎思想史論, p.227. 참고로 흔히 유부철학의 핵심을 三世實有 法體恒有로 천명하지만 일본의 加䕨宏道는 차라리 이같은 有所緣識 다시말해 '대상없이 인식은 생겨나지 않는다'를 그것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라고 하였다.('三世實有·法體恒有の呼稱のおこり', 인도불교학연구22-1). 필자도 이에 적극 동조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有所緣識은 바로 유부(諸)法(實)有論의 가장 기본적인 논거이기 때문이다."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2a09 - T29n1558_p0022a26. 득(得)과 비득(非得)
"於中且辯得非得相。頌曰。
得謂獲成就 非得此相違
得非得唯於 自相續二滅
論曰。得有二種。一者未得已失今獲。二者得已不失成就。應知非得與此相違。於何法中有得非得。於自相續及二滅中。謂有為法若有墮在自相續中有得非得。非他相續。無有成就他身法故。非非相續。無有成就非情法故。且有為法決定如是。無為法中唯於二滅有得非得。一切有情無不成就非擇滅者。故對法中傳說。如是誰成無漏法。謂一切有情。除初剎那具縛聖者及餘一切具縛異生。諸餘有情皆成擇滅。決定無有成就虛空。故於虛空不言有得。以得無故非得亦無。宗明得非得相翻而立故。諸有得者亦有非得。義准可知。故不別釋。" - ↑ 가 나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91-193 / 1397. 득(得)과 비득(非得)
"이 중에서 바야흐로 득(得)과 비득(非得)의 상에 대해 분별해 보아야 하리라.96) 게송으로 말하겠다.
득(得)이란 말하자면 획득[獲]과 성취이며,
비득은 이와 서로 반대되는 것이니,
득과 비득은 오로지
자상속(自相續)과 두 가지의 멸(滅)에만 있을 뿐이다.
得謂獲成就 非得此相違
得非得唯於 自相續二滅
논하여 말하겠다. 득(得)에는 두 가지의 종류가 있으니, 첫 번째는 아직 획득하지 않았거나 이미 상실한 것을 지금 획득하는 것[獲, prātilambha]이고, 둘째는 획득하여 상실하지 않는 성취(成就, samanvāgama)이다. 그리고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니, 비득(非得)은 이와 서로 반대되는 것임을.97)
어떠한 법에 대해서 득과 비득이 있는 것인가? 자신의 상속(相續)과 두 가지 멸(滅)에 대해서만 있으니, 이를테면 유위법으로서 만약 자신의 상속 중에 떨어져 존재[墮在]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는 득과 비득이 있다. 그러나 타인의 상속 중에 [존재하는 법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으니, 다른 이의 법을 성취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98) 또한 비상속(비유정)에 [존재하는 법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으니, 비유정의 법을 성취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유위법의 경우는 결정적으로 이와 같다. 무위법 중에서는 오로지 두 가지 멸(택멸과 비택멸)에 대해서만 득과 비득이 있다. 즉 일체 유정으로서 비택멸을 성취하지 않은 자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법(對法) 중에 전(傳)하여 설(說)하는 바가 이와 같으니, "누가 무루법(즉 비택멸)을 성취하는가? 이를테면 일체의 유정이다"고 하였던 것이다.99) 그리고 초찰나의 구박(具縛)의 성자와 그 밖의 일체의 구박의 이생을 제외한 그 밖의 모든 유정은 다 택멸을 성취한다.100) 나아가 결정코 허공(虛空)을 성취하는 일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허공에 대해서는 득이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득이 없기 때문에 비득도 역시 없는 것이다. 즉 [유부]종에서는 득과 비득은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설정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득이 있는 모든 것에는 비득 역시 있으니, 이러한 뜻에 준하여 알 수 있기 때문에 [허공의 비득에 대해서는] 별도로 해석하지 않는다."
96) 득(prāpti)과 비득(aprāpti)은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득이 한 개인(유정)으로 하여금 자신이 상속 한 유위제법이나 택멸 비택멸의 무위법과 적극적으로 관계[合·持]시키는 힘이라면, 비득은 그러한 제법과 소극적으로 관계[離·失]시키는 힘을 말한다. 다시 말해 유부에서는 유정들로 하여금 지옥 등의 악과(惡果)를 얻게 하고 천상의 선과(善果)를 얻게 하는 등 3계·9지·5취·4생·범성(凡聖)·유루 무루의 차별을 있게 하는 힘(所得諸法의 生因)을 개별적인 실체(別法, prthag dharma)로 상정하여 그 실재성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만약 이러한 득의 실재성을 부정하게 되면 범성(凡聖)의 차별은 물론 번뇌의 이단(已斷)·미단(未斷)을 구별 할 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즉 번뇌단멸의 획득은 그것을 획득하게 하는 힘(불상응행)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97) 즉 이전에 아직 획득하지 않았거나 획득하여 이미 상실한 법의 비득을 일컬어 '불획(不獲)'이라 하고, 이미 상실한 법의 비득을 일컬어 '불성취'라고 한다.
98) 나에게는 나의 번뇌와 나의 업 등에 대한 득과 비득이 존재하지만, 타인의 번뇌와 업 등은 결코 나와 관계(득)되거나 이미 관계되었다가 상실되는 일(비득)은 없는 것이다.
99) 이는 『발지론』 권제19(대정장26, p. 1022상 ; 한글대장경176, p. 466)의 "등각지(等覺支)를 성취하는 모든 이, 그들은 무루법도 성취하는가? 답: 등각지를 성취하는 모든 이, 그들은 무루법도 성취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무루법을 성취하더라도 등각지를 성취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이를테면 제 이생이다"에서 뜻을 빌려온 것으로, 무루법에 대해서는 성취(득)와 불성취(비득)가 있을 수 있다는 논증이다.
100) '초찰나의 구박(具縛)의 성자'란 견도 제1찰나인 고법지인(苦法智忍)의 단계에 들어간 성자로서, 아직 욕계 수혹 중의 1품도 끊지 못한 자를 말한다. 즉 이러한 단계에 있는 성자는 능단(能斷)의 무루도와 소단 (所斷)인 이혹(理惑)의 번뇌가 병존하기 때문에 아직 일체의 번뇌의 속박을 떠나지 못하였으므로 '구박'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단계에서는 택멸은 미래 생상(生相)으로서는 존재할지라도 현행하지 않기 때문에 성취 운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밖의 일체의 구박의 이생'은 어떠한 견·수혹도 끊지 못한 이생범부를 말하며, 그들을 '제외한 그 밖의 모든 유정'이란 견도 제2찰나 고법지(苦法智) 이후의 성자와 유루 6관행으로써 수혹의 일부를 끊은 범부의 행자를 말한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5권. p. T29n1558_p0024a07 - T29n1558_p0024a18. 동분(同分)
"同分者何。頌曰。
同分有情等
論曰。有別實物名為同分。謂諸有情展轉類等。本論說此名眾同分。此復二種。一無差別。二有差別。無差別者。謂諸有情有情同分。一切有情各等有故。有差別者。謂諸有情界地趣生種姓男女近事苾芻學無學等各別同分。一類有情各等有故。復有法同分。謂隨蘊處界。若無實物無差別相名同分者。展轉差別諸有情中。有情有情等無差別。覺及施設不應得有。如是蘊等等無差別覺及施設如理應知。"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5권. pp. 210-211 / 1397. 동분(同分)
"동분(同分)이란 무엇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동분이란 유정의 동등함이다.1)
同分有情等
논하여 말하겠다. 또 다른 개별적 실체[別實物]가 존재하니, 이름하여 동분(同分)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를테면 온갖 유정이 존재로서의 동등함[類等]을 갖고 전전(展轉)하는 것을 말하는데, 본론(本論)에서는 이를 중동분(衆同分)이라고 이름하였다.2) 여기에는 다시 두 가지의 종류가 있으니, 첫 번째는 유차별 동분이며, 둘째는 무차별 동분이다. 무차별 동분이란 이를테면 온갖 유정의 '유정으로서의 동분'을 말하니, 일체의 유정에는 각기 [유정으로서의] 동등함이 있기 때문이다. 유차별 동분이란 이를테면 온갖 유정의 3계(界)·9지(地)·5취(趣)·4생(生)·4종(種,바라문 등의 4종성)·성(姓)·남·여·근사(近事, 재가자)·필추(苾芻, 출가자)·학(學)·무학(無學) 등의 각기 다른 동분을 말하니, 한 종류의 유정으로서 각기 동등함이 있기 때문이다.3) 다시 법동분이 있으니, 이를테면 온(蘊)·처(處)·계(界)에 따른 것을 말한다.4) 만약 동분이라 이름하는 실체[實物]로서의 무차별상(즉 보편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전전(展轉)하여 차별된 온갖 유정 사이에는 유정과 유정이 동등하여 어떠한 차별도 없다는 인식[覺]도, 시설(施設)도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5) 이와 마찬가지로 온(蘊) 따위에 대해서도 [이 온과 저 온은] 동등하여 어떠한 차별도 없다는 인식과 시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마땅히 참답게 알아야 할 것이다.
1) 여기서 동분(sabhāgat )이란 온갖 유정을 유정이게끔 하는 동류상사성(causes of resemblance between living beings, similarity), 혹은 보편성(common characteristic of sentient beings), 내지는 비유정과 차별시키는 고유성·특수성을 말하는 것으로, 유부에서는 이를 자성을 지닌 개별적 실체[別實物]로 간주하고 있다.
2) 여기서 '본론'이란 『발지론』 권제2(대정장 26, p. 926중). 『품류족론』 권제1(대정장 26, p. 692하) 에도 나온다. 즉 송문에서는 제한된 자수(字數)로 인해 동분이라 하였으나, 완전한 명칭은 중동분(衆同分, nikāya-sabhāgat )이다.
3) 무차별(abhinna) 동분은 유정으로서의 보편성 즉 보다 높은 보편이라 할 수 있고, 유차별(bhinna) 동분은 각각의 유정의 차별에 따라 욕계, 인간, 크샤트리야, 샤캬(族姓), 남자, 필추(출가자), 무학(아라한)으로 서의 보편성 즉 낮은 보편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전자는 인업(引業, 구역은 總報業)에 의해 생겨나고, 후자는 만업(滿業, 구역은 別報業)에 의해 생겨난다.(『현종론』 권제7, 한글대장경 200, p. 167-168)
4) 동분은 오로지 유정에만 존재하지만, 유정의 소의가 되는 5온·12처·18계와 같은 법은 일체 유정에 공통되는 것이기 때문에 법동분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비유정 동분을 세우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주9)를 참조 할 것.
5) 즉 유부에서는 이러한 유정의 동류상사성인 동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개별적인 제 유정을 보편적 존재 [無差別相]로서 인식[覺, buddhi]할 수도 없고, 그것을 다른 유정과 차별시켜 언급[施設, prjñāpti]할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개별적인 실체[別實物]로서 실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과 축생, 남자와 여자 등을 분별하는 데에는 각각의 동류상사성인 동분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5권. p. T29n1558_p0024b12 - T29n1558_p0024b28. 무상과(無想果)
"無想者何。頌曰。
無想無想中 心心所法滅 異熟居廣果
論曰。若生無想有情天中。有法能令心心所滅名為無想。是實有物。能遮未來心心所法令暫不起如堰江河。此法一向是異熟果。誰之異熟。謂無想定。無想有情居在何處。居在廣果。謂廣果天中有高勝處如中間靜慮名無想天。彼為恒無想為亦有想耶。生死位中多時有想。言無想者。由彼有情中間長時想不起故。如契經說。彼諸有情由想起故從彼處沒。然彼有情如久睡覺。還起於想。從彼沒已必生欲界。非餘處所。先修定行勢力盡故。於彼不能更修定故。如箭射空力盡便墮。若諸有情應生彼處必有欲界順後受業。如應生彼北俱盧洲必定應有生天之業。"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5권. pp. 215-216 / 1397. 무상과(無想果)
"무상(無想)이란 무엇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무상과(無想果)란 무상천(天) 중에서
심·심소법이 소멸한 것으로
이숙과이며, 광과천(廣果天)에 있는 것이다.
無想無想中 心心所法滅 異熟居廣果
논하여 말하겠다. 만약 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 : 색계 제4선의 제3천인 광과천) 중에 태어나면 어떤 법이 있어 능히 심·심소로 하여금 소멸되게 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무상과(無想果)라고 한다. 이것은 실유의 존재[實有物] 즉 실체로서 능히 미래의 심·심소법을 차단하여 잠시 생기하지 않게 하니, 마치 강물을 막는 방죽과도 같다. 이러한 법은 한결같이 바로 이숙과(異熟果)이다. 무엇의 이숙인가? 이를테면 무상정(無想定)의 이숙과이다. 그렇다면 무상의 유정은 어떠한 처소에 거주하는 것인가? 광과천(廣果天)에 거주한다. 이를테면 광과천 중에는 중간정려의 그것처럼 높고 뛰어난 곳[高勝處]이 있으니, 이것을 무상천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16) 그곳은 항상 무상(無想)이라 해야 할 것인가, 역시 유상(有想)이라 해야 할 것인가? 생사위(生死位) 중에서는 다시(多時)에 걸쳐 유상이지만 그럼에도 무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곳의 유정은 그 중간의 기나긴 시간 동안 상(想)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니,17) 계경에서 "그곳의 제 유정은 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곳에서 몰(歿)하게 된다"고 설한 바와 같다. 그래서 그곳의 유정은 마치 오래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것처럼 다시 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몰하고서는 반드시 욕계에 태어나지 그 밖의 다른 처소에는 태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찍이 닦은 정행(定行)의 세력이 다하였기 때문이며, 그곳에서는 능히 다시 선정을 닦을 수 없기 때문으로, 이는 마치 허공으로 발사된 화살은 그 힘이 다하면 바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그리고 만약 제 유정으로서 마땅히 그 곳에 태어나는 자는 반드시 욕계의 순후수업(順後受業)을 갖아야 할 것이니, 이는 마치 응당 그러한 북구로주(北俱盧洲)에 태어나는 자는 반드시 하늘(즉 6欲天)에 태어나는 업을 갖아야 하는 것과 같다.18)
16) 광과천(bṛhat-phala-deva)이란 색계 제4선의 8천 중 제3천으로, 여기에는 대범천이 거주하는 초정려 의 범보천(梵輔天)처럼 고대누각이 있다.(본론 권제8, p.365 참조) 참고로 케시미르 대논사들은 초정려의 범 보천과 대범천을 하나로 간주하듯이 무상천과 광과천을 하나로 간주하지만, 외국사는 제4정려에 9천을 세워 무상천을 광과천과는 다른 곳으로 생각한다.(『대비바사론』 권제154, 한글대장경 124, p. 91)
17) 무상천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500대겁을 중간의 기나긴 시간이라고 하였다. 곧 생사위 중의 '다시 (多時)'란 무상천에 태어나는 순간과 죽어 욕계에 태어나기 직전의 순간을 말한다.
18) 순후수업(順後受業)이란 현세에 업을 짓고 미래 제3생, 혹은 그 이후에 과보를 초래하는 업으로서, 무상정인 광과천(미래생)의 세력이 다하고 나면 반드시 욕계에서의 생(제3생)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북구로주는 인취(人趣) 4주(洲) 중의 1주로서 여기에 태어난 이는 다음 생은 반드시 욕계천에 태어나게 된다." - ↑ 가 나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5권. p. T29n1558_p0024b29 - T29n1558_p0024c20. 무상정(無想定)
"無想定其相云何。頌曰。
如是無想定 後靜慮求脫 善唯順生受 非聖得一世
論曰。如前所說有法能令心心所滅名為無想。如是復有別法能令心心所滅名無想定。無想者定名無想定。或定無想名無想定。說如是聲。唯顯此定滅心心所與無想同。此在何地。謂後靜慮。即在第四靜慮非餘。修無想定為何所求。謂求解脫。彼執無想是真解脫。為求證彼修無想定。前說無想是異熟故。無記性攝。不說自成。今無想定一向是善。此是善故。能招無想有情天中五蘊異熟。既是善性為順何受。唯順生受。非順現後及不定受。若起此定後雖退失。傳說現身必還能起。當生無想有情天中。故得此定必不能入正性離生。又許此定唯異生得非諸聖者。以諸聖者於無想定如見深坑不樂入故。要執無想為真解脫。起出離想而修此定。一切聖者不執有漏為真解脫及真出離故。於此定必不修行。" - ↑ 가 나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5권. pp. 216-218 / 1397. 무상정(無想定)
"무상정의 상은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이와 마찬가지인 무상정은
마지막 정려로서, 해탈을 구하려는 것이며
선이며, 오로지 순생수업(順生受業)이며
성자의 것이 아니며, 일세(一世)의 그것만을 획득한다.
如是無想定 後靜慮求脫
善唯順生受 非聖得一世
논하여 말하겠다. 앞에서 설하였듯이 어떤 법이 있어 능히 심·심소로 하여금 소멸되게 하는 것을 이름하여 무상(無想)이라고 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다시 별도의 법이 있어 능히 심·심소로 하여금 소멸되게 하는 것을 일컬어 무상정(無想定)이라고 하는데, 무상자(無想者)의 선정이기 때문에 '무상정'이라고 이름하였으며, 혹은 선정이 무상(無想)이기에 '무상정'이라 이름하였다.19) 그리고 게송에서 '이와 마찬가지인'이라고 하는 말을 설한 것은, 오로지 심과 심소를 소멸하는 이러한 선정이 무상[과]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무상정은 어떠한 지(地)에 존재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마지막 정려' 즉 제4정려에만 있는 것으로,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20)
무상정을 닦는 것은 무엇을 구하기 위해서인가? 이를테면 해탈(解脫)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즉 그들은 무상정을 참된 해탈이라 집착하여 그것을 증득하기 위하여 무상정을 닦는 것이다.
나아가 앞에서 무상[과]는 바로 이숙과라고 설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무기성에 포섭된다는 사실은 논설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의 무상정은 바로 한결같이 선성(善性)이니, 이것은 바로 선이기 때문에 무상유정천(無想有情天) 중의 오온의 이숙을 능히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21)
이것이 이미 선성이라면, [그 과보는] 어떠한 수(受)에 따르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오로지 순생수(順生受 : 미래 즉 다음 생에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일 뿐으로, 순현수(順現受)나 순후수(順後受), 순부정수(順不定受)가 아니다. 만약 이러한 무상정을 일으켰다가 그 후 비록 물러남이 있을지라도, 전(傳)하여 설(說)하기를 현신(現身)에 반드시 다시 그것을 능히 일으켜 당래(當來) 무상유정천 중에 태어나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22) 따라서 이러한 무상정을 획득하면 반드시 능히 정성이생(正性離生, 즉 견도위)에 들 수 없는 것이다.23)
또한 이러한 선정은 오로지 이생만이 획득하는 것이라고 인정되니, 온갖 성자들이 획득하려는 바가 아니다. 즉 모든 성자는 무상정을 마치 깊은 구덩이[深坑]와 같다고 보아 거기에 들어가는 것을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생은 무상(無想)에 집착하여 그것을 참된 해탈이라 여기고 출리상(出離想)을 일으켜 이러한 선정을 닦는 것이지만, 일체의 성자는 유루에 집착하여 그것을 참된 해탈이나 참된 출리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선정을 필시 수행하지 않는 것이다.
19) 전자는 한정복합어[依主釋]에 의한 해석이고, 후자는 동격복합어[持業釋]에 의한 해석이다.
20) 즉 제4정려 이하의 지(下地)에는 희수·낙수·고수·우수 등 다양한 수(受)의 행상이 거칠게 작용하여 심상(心想)을 제거 소멸하기 어렵지만 제4정려에는 오로지 그 행상이 미세한 사수(捨受)만이 있어 단멸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색계에 없는 이유는, 이 같은 선정을 추구하는 이생·외도는 심·심소의 단멸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에서 무상정의 이숙과라고 한 무상과는 광과천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결과인 무상과가 최후의 정려라고 해야하지 않겠는가. 『현종론』 권제7(한글대장경200, p. 173)에서는 이 같은 난문을 제기하고, 이를 참된 해탈의 출리도(出離道)라고 여기는 이생이 닦는 선정[異生定]이라고만 해명하고 있다. 즉 무상정은 외도·이생들이 이를 참된 해탈이라고 여기고 닦는 것이기 때문에 최후의 정려라는 것이다.
21) 무상천의 유정은 무상(無想)인 동안은 오온을 취하지 않지만, 처음 태어날 때와 죽을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심 심소를 일으키기 때문에 오온을 갖추게 된다. 다시 말해 무상정은 선성이기 때문에 무상유정천 즉 무상과의 원인(이숙인)이 되어 능히 오온의 이숙과를 초래하여 무상유정천 다음 생에 그 과보를 받게되므로 순생수업(順生受業)이다.
22) 유부(有部) 비바사사(毘婆沙師)의 정의(正義)는 무상정에서는 결코 퇴전(退轉)함이 없다는 것이지만, 비유자(譬喩者)의 경우는 물러남이 있다고 하였다(『대비바사론』 권제152, 한글대장경124, p. 36-37). 즉 논주 세친은 유부의 정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의 '전설'로 설하고 있는 것이다.
23) 즉 무상정은 이생만이 닦는 선정으로, 이 선정에 들게되면 다음 생에는 반드시 500대겁 동압 무상천에 태어나기 때문에 이 사이 무루지를 수득(修得)할 수 없는 것이다." - ↑ 가 나 다 라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5권. pp. T29n1558_p0024c26 - T29n1558_p0025a23. 멸진정(滅盡定)
"滅盡定其相云何。頌曰。
滅盡定亦然 為靜住有頂
善二受不定 聖由加行得
成佛得非前 三十四念故
論曰。如無想定滅定亦然。此亦然聲為例何義。例無想定心心所滅。如說復有別法能令心心所滅名無想定。如是復有別法能令心心所滅名滅盡定。如是二定差別相者。前無想定為求解脫。以出離想作意為先。此滅盡定為求靜住。以止息想作意為先。前無想定在後靜慮。此滅盡定唯在有頂。即是非想非非想處。此同前定性唯是善非無記染。善等起故。前無想定唯順生受。此滅盡定通順生後及不定受。謂約異熟有順生受。或順後受。或不定受。或全不受。謂若於下得般涅槃。此定所招何地幾蘊。唯招有頂四蘊異熟。前無想定唯異生得。此滅盡定唯聖者得。非異生能起。怖畏斷滅故。唯聖道力所能起故。現法涅槃勝解入故。此亦如前。非離染得。由何而得。由加行得。要由加行方證得故。又初得時唯得現在。不得過去不修未來。要由心力方能修故。第二念等乃至未捨亦成過去。世尊亦以加行得耶。不爾。云何。成佛時得。謂佛世尊盡智時得。佛無一德由加行得。暫起欲樂現在前時。一切圓德隨樂而起故。佛眾德皆離染得。" - ↑ 가 나 다 라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5권. pp. 219-222 / 1397. 멸진정(滅盡定)
"멸진정(滅盡定)은 그 상이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멸진정도 역시 그러한 것으로
정주(靜住)를 위한 것이고, 유정(有頂)이고
선이고, 두 가지의 수(受)와 부정(不定)이며
성자가 추구하는 바로서, 가행(加行)에 의해 획득된다.
滅盡定亦然 爲靜住有頂
善二受不定 聖由加行得
[부처님은] 가행이 아니라 성불할 때 획득하니
삼십사 찰나[念]가 걸리기 때문이다.
成佛得非前 三十四念故
논하여 말하겠다. 앞의 무상정과 마찬가지로 '멸진정도 역시 그러하다' 한 것에서 '역시 그러하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예(例)로 삼은 것인가? 무상정의 심·심소의 소멸을 예로 삼은 것이니, 이를테면 '다시 어떤 개별적인 실체[別法]가 있어 능히 심·심소법으로 하여금 소멸되게 하는 것을 무상정이라고 이름한다'고 설하였듯이, 이와 마찬가지로 다시 어떤 개별적인 법이 있어 능히 심·심소법으로 하여금 소멸되게 하는 것을 멸진정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선정의 차별상은 이러하다. 앞의 무상정의 경우 해탈을 구하기 위하여 출리상(出離想)의 작의(作意)를 우선으로 삼았지만, 이러한 멸진정은 정주(靜住, nta vih ra : 마음이 산란을 떠나 고요히 머무는 것)를 구하기 위하여 지식상(止息想)의 작의를 우선으로 삼았다. 또한 앞의 무상정이 마지막 정려(즉 제4정려)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멸진정은 오로지 유정(有頂) 즉 바로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에만 존재하는 것이다.26)
그리고 이것은 앞의 선정(무상정)과 마찬가지로 그 성(性)은 오로지 선(善)으로, 무기나 염오가 아니니, 선과 등기(等起)하기 때문이다.27)
앞 의 무상정은 오로지 순생수(順生受), 다시 말해 미래 다음 생에 그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지만, 이러한 멸진정은 순생수·순후수(順後受), 그리고 부정수(不定受) 모두와 통한다. 즉 이숙에 근거하여 볼 때 순생수이기도 하고, 혹은 순후수, 혹은 부정수이기도 하며, 혹은 그 과보를 완전히 받지 않는 경우[不受]도 있으니,28) 이를테면 만약 하지(下地)에서 반열반을 획득하는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29)
이러한 선정에 의해 초래되는 [이숙과]는 어떠한 지(地)의 몇 가지 온인 것인가? 오로지 유정지(有頂地)의 네 가지 온의 이숙과만을 초래한다.30)
또한 앞의 무상정은 오로지 이생이 획득하는 바였지만, 이러한 멸진정은 오로지 성자만이 획득하는 것이다. 즉 온갖 이생은 능히 멸진정을 일으킬 수 없으니, 그들은 단멸(斷滅)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31) 멸진정은 오로지 성도(聖道)의 힘에 의해서만 능히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며, 32) 현법열반(現法涅槃)의 승해로써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33)
이러한 멸진정 역시 앞의 무상정과 마찬가지로 이염득(離染得)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에 의해 획득되는 것인가? 가행(加行)에 의해 획득된다. 요컨대 가행에 의해 비로소 증득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증득할 때에는 오로지 현재만을 획득하고, 과거는 획득하지 않으며, 미래도 수득(修得)하지 않으니, 요컨대 심력(心力)에 의하여 비로소 능히 수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2 찰나 따위 이후 내지 아직 그것이 버려지지 않았을 때에는 과거도 역시 성취한다.34)
세존께서도 역시 가행으로써 획득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획득한 것인가? 성불(成佛) 즉 보리(菩提)를 증득할 때 획득한다. 이를테면 불(佛) 세존께서는 진지(盡智)를 성취할 때, 다시 말해 일체의 번뇌가 이미 다하였다는 것을 알 때 획득한다. 즉 부처님의 어떠한 공덕도 가행에 의해 획득되는 것은 없으니,35) 잠시 욕락(欲樂)을 일으켜 현재전할 때 일체의 원만한 덕성[圓德]이 그러한 욕락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부처님의 온갖 공덕은 모두 이염득인 것이다.
26) 유정(有頂, bhav gra)은 비상비비상처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욕·색·무색의 3유(有) 중 가장 높은 꼭대기이기 때문에, 혹은 거기서 생을 받은 소의신은 최상의 업에 의해 낳아진 것이기 때문에 유정(有頂)이라 고 한다. 즉 일체의 마음을 염배(厭背)하거나, 혹은 가장 꼭대기 끝자리의 마음[邊際心]을 끊어야 비로소 능히 이러한 뛰어난 해탈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멸진정은 유정지에만 존재하는 것이다.(『현종론』 권제7, 한글대장경200, p. 175 참조)
27) 멸진정은 무심정이기 때문에 무심의 상태에서는 선·악 어느 것으로도 기표(記票)할 수 없을지라도 선의 가행력에 의해 인기된 것이기 때문에 등기선(等起善)이다.
28) 멸진정은 이숙과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과보를 향수(享受)하는 일과 시기가 결정되어 있지 않다.
29) 하지에서 이러한 선정을 일으키고서 상지에 태어나지 않으면 바로 반열반한다. 즉 아라한이 멸진정을 얻어 욕계에서 반열반하는 경우, 이러한 멸진정에는 그 과보가 없는 것이다.
30) 멸진정은 유정(有頂) 즉 무색계의 비상비비상처에 포섭되기 때문에 그 과보도 역시 그곳의 유정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색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4온의 이숙이라 하였다.
31) 앞의 무상정의 이숙과는 색계 제4선 광과천으로, 여기서는 소의신을 갖기 때문에 무상(無想)에 들더라도 존재멸무의 두려움이 없을 것이지만, 멸진정의 경우 그 이숙과가 무색계의 유정천 즉 비상비비상천이기 때 문에 무상에 들게 되면 멸무의 두려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이생은 결코 획득할 수 없다.
32) 유정천의 견소단의 혹(惑)을 끊지 못한 자는 멸진정을 일으킬 수 없다. 그리고 유정천의 견혹은 유루지로써는 끊을 수 없고 오로지 무루지로써만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오로지 성도(聖道)의 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즉 유루 6행관의 도는 하지를 추(酥)·고(苦)·장(障)이라 관하고 상지를 정(靜)·묘(妙)·리(離)로 관하여 번뇌를 끊는 것인데, 유정천에는 더 이상 상지가 없기 때문에 유루도로써는 멸진정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다.
33) 현법열반이란 지금 여기서의 열반을, 승해(勝解, adhimukti)는 뛰어난 이해를 의미한다. 물론 멸진정 과 열반은 그 체가 다르지만 멸진정을 닦은 자만이 현법의 열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생은 멸진정을 획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34) 이염득이 아니라 가행득이라는 점은 앞의 무상정의 경우와 동일하며, 따라서 3세의 획득 성취에 있어 서도 무상정의 경우와 동일하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5권. p. T29n1558_p0026a22 - T29n1558_p0026b01. 명근(命根)
"命根者何。頌曰。
命根體即壽 能持煖及識
論曰。命體即壽。故對法言。云何命根。謂三界壽。此復未了。何法名壽。謂有別法能持煖識說名為壽。故世尊言。
壽煖及與識 三法捨身時
所捨身僵仆 如木無思覺
故有別法。能持煖識相續住因說名為壽。"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5권. p. 231 / 1397. 명근(命根)
"명근(命根)이란 무엇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명근의 본질은 바로 목숨[壽]으로서
능히 체온[煖]과 의식[識]을 유지하는 것이다.
命根體卽壽 能持煖及識
논하여 말하겠다. 명근의 본질은 바로 목숨[壽]이다. 그래서 대법(對法)에서 말하기를, "무엇을 일러 명근이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삼계의 목숨이다"고 하였던 것이다.63)
이 또한 잘 알지 못하겠으니, 어떠한 법을 일컬어 목숨이라고 하는가? 이를테면 어떤 개별적인 법으로서 능히 체온[煖]과 의식[識]을 유지하는 것을 일컬어 목숨이라고 한다. 그래서 세존께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던 것이다.
목숨과 체온과, 그리고 의식
이 세 가지의 법이 몸을 버리게 될 때
그것이 버려진 몸은 나자빠지니
어떠한 생각도 없는 나무둥치와도 같다.64)
그러므로 어떤 개별적인 법이 있어 능히 체온과 의식을 유지하여 [유정으로 하여금] 상속하게 하고 지속하게 하는 근거를 설하여 목숨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63) 여기서 대법은 『발지론』 권제14(대정장26, p. 993중;한글대장경176, p. 331). '명근은 욕계계(繫) 내지 무색계계이다. 무엇이 욕계계의 명근인가 하면 욕계계의 목숨을 말한다. 내지 무엇이 무색계계의 명근인가 하면 무색계계의 목숨을 말한다.'
64) 『잡아함경』 권제21 제568경(대정장2, p. 150중)" - ↑ 가 나 다 라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5권. p. T29n1558_p0027a12 - T29n1558_p0027a17. 유위4상(有爲四相)
"諸相者何。頌曰。
相謂諸有為 生住異滅性
論曰。由此四種是有為相法。若有此應是有為。與此相違是無為法。此於諸法能起名生。能安名住。能衰名異。能壞名滅。性是體義。" - ↑ 가 나 다 라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5권. p. 240 / 1397. 유위4상(有爲四相)
"온갖 상(相)이란 무엇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상(相)이란 말하자면 온갖 유위가
생(生)·주(住)·이(異)·멸(滅)하는 성질이다.
相謂諸有爲 生住異滅性
논하여 말하겠다. 이러한 네 가지 종류가 바로 유위의 상(相)이니,90) 법으로서 만약 이러한 상을 갖은 것이라면 응당 마땅히 유위라고 해야 할 것이며, 이와 상위되는 것이라면 바로 무위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 가운데] 제법을 능히 일어나게 하는 것을 '생(生, jāti)'이라 이름하고, 능히 안주하게 하는 것을 '주(住, sthiti)'라고 이름하며, 능히 쇠퇴하게 하는 것을 '이(異, anyathātva)'라고 이름하고, 능히 허물어지게 하는 것을 '멸(滅, anityatā)'이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본송에서 말한] '성질'이란 바로 체(體)의 뜻이다.91)
90) 이는 유위를 유위이게 하는 네 가지 특징적 근거[相, lakṣaṇa]로서, 유위제법을 생성·지속·변이·소멸하게 하는 원리를 추상화시켜 얻은 개념이다. 따라서 이러한 네 가지 상을 갖지 않은 것이 무위이다.
91) 범본이나 『석론(釋論)』에는 이 구절이 없다. 참고로 『현종론』 권제7(대정장29, p. 808하 ; 한글대장경200, p. 185)에서는 " [이러한 유위의 상은 바로] 유위의 성질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상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顯彼性故得彼相名)"고 논설하고 있다." - ↑ 가 나 다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5권. p. T29n1558_p0029a09 - T29n1558_p0029a15. 명신(名身)·구신(句身)·문신(文身)
"名身等類其義云何。頌曰。
名身等所謂 想章字總說
論曰。等者等取句身文身。應知此中。名謂作想。如說色聲香味等想。句者謂章。詮義究竟。如說諸行無常等章。或能辯了業用德時相應差別。此章稱句。文者謂字。如說[褒-保+可]阿壹伊等字。" - ↑ 가 나 다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5권. p. 257 / 1397. 명신(名身)·구신(句身)·문신(文身)
"[불상응행법 총론에서 언급한] 명신(名身) 등의 종류는 그 뜻이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명신(名身) 등이란, 이른바
상(想)·장(章)·자(字)의 총설(總說)이다.134)
名身等所謂 想章字總說
논하여 말하겠다. 여기서 '등'이란 구신(句身)과 문신(文身)을 두루 취한다는 말이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여기서 명(名)이란 이를테면 색·성·향·미 등의 상(想)을 설하는 것과 같은 작상(作想)을 말하며,135) 구(句)란 뜻을 드러내는 구경(究竟)인 문장[章]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테면 '제행은 무상하다'는 따위의 문장을 설하는 것과 같다. 혹은 [이것에 의해] 동작[業用] 성질[德] 시제[時]의 상응과 차별을 능히 이해하게 되니, 이러한 문장을 '구'라고 칭한 것이다. 그리고 문(文)이란 문자[字] 즉 음소를 말하니, 이를테면 아(, ā)·아(阿, a)·일(壹, i)·이(伊, ī) 등의 문자를 설하는 것과 같다.
134) 본 게송에서는 말의 의미를 드러나게 하는 힘으로서의 불상응행을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는 명신(名 身)·구신(句身)·문신(文身) 세 가지가 있다. '명(nāma)'이란 물질·소리·향기 등과 같은 명사적 개념적 단어[想, saṃjñā]를, '구(pada)'란 '제행은 무상하다'와 같은 문장[章, vākya]을, '문(vyañjana)'이란 a·i·ka·kha와 같은 문자[字, aksara] 즉 음소를 말하며, 이러한 세 가지 존재의 집합[總說, samukta]을 명신 등이라고 한다. 즉 유부에서는 이러한 존재가 개별적으로 실재함으로 해서 세계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다고 하였는데, 경부에서는 예외 없이 이를 가설로서만 인정하고 있다.
135) 작상의 '상(saṃjñā)'은 10대지법의 하나. 이를테면 책상이라는 명칭은 그것을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갖는데, 이같이 상(想)을 떠올리게 하는 명사적 단어를 '명(名)'이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