녕변군
녕변군(寧邊郡, 표준어: 영변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동남부에 있는 군이다. 1428년(조선 세종 10년) 평안도의 연산부와 무산현을 병합하여 영변대도호부라 하면서 생성되었으며, 평안도병마절도사가 한동안 녕변의 지방관직을 겸직하였다. 1895년(고종 32년) 영변도호부에서 영변군으로 개편되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녕변군"이라 부름에 따라 현재에 이르고 있다. 1896년에 13도제가 시행되면서 평안북도에 속했고, 1897년부터는 평안북도관찰사영의 소재지이자 1921년 신의주로 평안북도청이 이전될 때까지 평안북도의 도청 소재지였다.
영변군의 위치 | |
현황 | |
---|---|
국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면적 | 504 km2 |
총인구 | 113,852[1] 명 (2008) |
읍 | 1개 |
리 | 26개 |
지리
편집평양에서 북쪽으로 약 80km 거리에 있다. 청천강의 북안에 있으며, 그 지류인 구룡강이 군내를 가로지르고 있다. 최고봉은 북부에 있는 향적산(805m)이다. 구릉에 둘러싸인 지형이다.
역사
편집고대에는 고구려·발해의 영역이었고 고려시대에는 연주(연산부)·무주로 불렸다. 1012년에는 고려의 강감찬이 거란과 싸웠고, 1216년에는 김취려가 금나라군과 싸웠다.
조선시대에는 연산도호부·무산현이 설치되었고 1428년에 양자를 아울러 영변대도호부가 놓여졌다. 1428년(세종 10년) 조선 세종의 명으로 부사(府使)와 판관(判官)을 두고, 병마도절제사로 하여금 부사를 겸임하게 하였다. 이후 한동안 평안도병마절도사가 영변대도호부사직을 겸직하였다. 이듬해 3월 26일에는 조선 세종의 명으로 서반 토관직(土官職)을 설치하여 변민(邊民)을 이주시키고, 큰 진(鎭)을 설치하였다. 1624년에는 이괄의 난의 무대가 되었다.
1895년, 부군제(23부제)에 의해 평양부 영변군으로 개편되었다. 이듬해인 1896년에 13도제가 시행되면서 평안북도에 속했고, 1897년에 평안북도의 관찰사영(도청)이 정주에서 영변으로 이전하였다. 1921년에 신의주로 이전될 때까지, 영변은 평안북도의 도청 소재지였다.
1952년 12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행정 구역 재편에 의해 구장군·향산군이 분할되었다. 1980년대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핵관련 시설의 건설이 시작되면서 북핵 문제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지명이 되었다.
행정 구역
편집현재 녕변군의 행정 구역은 녕변읍(寧邊邑)과 팔원로동자구(八院勞動者區), 26리로 구성되어 있다.
|
|
산업
편집예부터 견직물의 생산지로 알려졌다.
관광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조선중앙통계국,2008년 인구 조사,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