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연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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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연기설(十二緣起說, 영어: the twelve nidanas)은 12연기(十二緣起) · 12지연기(十二支緣起) · 12인연(十二因緣)이라고도 하며, 무명 · 행 · 식 · 명색 · 6입 · 촉 · 수 · 애 · 취 · 유 · 생 · 노사의 12지, 즉 12요소로 된 연기설(緣起說)이다.[1]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과 《연기경(緣起經)》에서 고타마 붓다는 연기법(緣起法)의 법(法)과 의(義), 즉 연기법 특히 유전연기의 정의 또는 본질[法, 初]과 그 자세한 모습 또는 뜻[義, 差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2][3][4][5]
이 경전들에 따르면, 연기법 특히 유전연기(流轉緣起)의 정의 즉 법(法)은 연(緣)과 기(起)를 뜻하는데, '연(緣)'이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此有故彼有]는 것을 의미하고, '기(起)'란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此起故彼起]는 것을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연(緣)'은 무명연행(無明緣行) · 행연식(行緣識) · 식연명색(識緣名色) · 명색연6입(名色緣六入) · 6입연촉(六入緣觸) · 촉연수(觸緣受) · 수연애(受緣愛) · 애연취(愛緣取) · 취연유(取緣有) · 유연생(有緣生) · 생연노사(生緣老死)의 일련의 인과관계적 과정을 말하고, '기(起)'는 이 과정을 통해 추(愁: 걱정) · 탄(歎: 한탄) · 고(苦: 괴로움) · 우(憂: 근심) · 뇌(惱: 번뇌, 고요하지 못함)가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다시 이러한 뜻의 '연(緣)'과 '기(起)'를 총체적으로 간략히 말하면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 또는 순수하게 큰 괴로움의 무더기 즉 5취온(五取蘊)이 형성[集]되는 것을 말한다. 5취온이 형성된다는 것은 생사윤회를 반복한다는 것을 뜻한다.[6][7][8][9]
연기법의 자세한 모습 또는 뜻[義, 差別]은 12연기의 12지 각각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을 말하는데, 예를 들어 식연명색(識緣名色)과 명색연6입(名色緣六入)의 연기관계에서 한 요소[支]를 이루고 있는 명색(名色)에 대해 명(名)은 5온 가운데 수온 · 상온 · 행온 · 식온의 4온을 말하고 색(色)은 색온을 뜻하는데 구체적으로는 4대종과 4대종으로 만들어진 소조색을 말한다는 설명과,[10][11][12][13] 촉연수(觸緣受)와 수연애(受緣愛)의 연기관계에서 한 요소[支]를 이루고 있는 수(受)에 대해, 수(受)는 낙수 · 고수 · 불고불락수의 3수로 나뉜다는 설명 등과 같은 것을 말한다.[14][15][16][13]
용어
편집인연(因緣)에서 인(因)은 결과를 낳기 위한 내적이며 직접적인 원인을 가리키고, 연(緣)은 이를 돕는 외적이며 간접적인 원인을 가리킨다.[17] 일반적으로는 양자를 합쳐 원인의 뜻으로 쓴다.[17]
연기(緣起)는 영어로는 "dependent arising (의존하여 생겨남)"[18], "conditioned genesis (조건지워진 생성)", "dependent co-arising (의존된 상호발생)"[19][20] 또는 "interdependent arising (상호의존하여 생겨남)"[21] 등으로 번역되는데, 연기(緣起)의 법칙은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그것도 없다"라고 서술된다.[1] 이 서술에서 "이것"과 "그것"의 두 항목은 서로 연기관계(緣起關係), 즉 인과관계(因果關係)에 있다고 말한다.[1] 즉, "그것"은 "이것"을 의존하여(조건으로하여) 일어나는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사제설(四諦說)인 고집멸도(苦集滅道)는 집과 고라는 연기하는 항목과 도와 멸이라는 연기하는 항목을 합하여 병렬한 것이다.[1] 여기에서 집은 고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되며, 도는 멸의 원인 또는 인연이 된다. 고집멸도는 고통의 원인이 집착 또는 갈애이며 고통을 소멸시키는 원인 또는 수단이 도라는 연기관계를 밝힌 것이다. 연기(緣起)하는 항목들로는 이들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열 두 항목을 사용하여 설명된 연기설이 12연기설이다.[1]
한역된 용어
편집팔리어 | 산스크리트어 | 인본욕생경[22] | 수행본기경[23] | 증일아함경[24] | 중아함경[25] | 장아함경[26] | 잡아함경[27] | 연기경[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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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ijjā | avidyā | 치(癡) | 무명(無明) | 무명(無明) | 치(癡) | 무명(無明) | 무명(無明) | |
saṅkhāra | saṃskāra | 행(行) | 행(行) | 행(行) | 행(行) | 행(行) | 행(行) | |
viññāna | vijñāna | 식(識) | 식(識) | 식(識) | 식(識) | 식(識) | 식(識) | 식(識) |
nāmarūpa | nāmarūpa | 명자(名字) | 명자(名字) | 명색(名色) | 명색(名色) | 명색(名色) | 명색(名色) | 명색(名色) |
saḷāyatana | ṣaḍāyatana | 6입(六入) | 6입(六入) | 6처(六處) | 6입(六入) | 6입처(六入處) | 6처(六處) | |
phassa samphassa |
sparśa saṃsparśa |
갱(更) | 갱락(更樂) | 갱락(更樂) | 각(覺) | 촉(觸) | 촉(觸) | 촉(觸) |
vedanā | vedanā | 통(痛) | 통(痛) | 통(痛) | 통(痛) | 수(受) | 수(受) | 수(受) |
taṇhā | tṛṣṇā | 애(愛) | 애(愛) | 애(愛) | 애(愛) | 애(愛) | 애(愛) | 애(愛) |
upādāna | upādāna | 수(受) | 수(受) | 수(受) | 수(受) | 취(取) | 취(取) | 취(取) |
bhava | bhava | 유(有) | 유(有) | 유(有) | 유(有) | 유(有) | 유(有) | 유(有) |
jāti | jāti | 생(生) | 생(生) | 생(生) | 생(生) | 생(生) | 생(生) | 생(生) |
jarā-maraṇa | jarā-maraṇa | 노사(老死) | 사(死) | 사(死) | 사(死) | 노사(老死) | 노사(老死) |
受와 같은 경우는 의미가 바뀌기도 했으므로 해석에 주의해야 한다.[29]
유전연기과 환멸연기
편집연기설은, 일반적으로, 세계인생의 일반적인 생멸변화(生滅變化)의 제현상의 관계항목을 보여주는 12지(支 · 항목)의 연기로 설명된 철학적인 이론 또는 담론인 것처럼 보이기 쉬우나, 연기가 설명된 본래의 목적은 그러한 일반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원인이나 조건에 의해서 고뇌가 생기고 또 어떠한 인연조건(因緣條件)에 의해서 고뇌를 면할 수가 있는가 하는, 인생의 현실을 실제적으로 이해하고 또 그 현실을 초극(超克)하는 방법과 길을 분명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30]
유전연기
편집연기설이 문제로 하고 있는 현상은 선악업(善惡業)과 그 과보(果報)로서의 고락과 같은 종교적 · 윤리적인 가치관계의 현상이다.[30] 그 경우 현상이 가치적으로 악화하는, 즉 고(苦)가 생기(生起)하는 연기관계를 유전연기(流轉緣起) 혹은 연기의 순관(緣起의 順觀) 혹은 순연기(順緣起)라고 한다.[30][31]
연기의 순관은 구체적으로는 "무명(無明)에 연(緣)해서 행(行)이 있고 행에 연해서 식(識)이 있으며 식에 연해서 명색(名色)이 있고 명색에 연해서 6입(六入)이 있으며 6입에 연해서 촉(觸)이 있으며 촉에 연해서 수(受)가 있고 수에 연해서 애(愛)가 있고 애에 연해서 취(取)가 있으며 취에 연해서 유(有)가 있고 유에 연해서 생(生)이 있으며 생에 연해서 노사(老死) · 수비고우뇌(愁悲苦憂惱)의 갖가지 고(苦)가 생긴다"라는 정형적(定型的)인 글로 표현되어 있다.[30]
한편, 연기의 순관은 현실의 노사(老死) 등의 고(苦)에서 소급해서 고의 근본으로서의 무명에 이른다고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며 그것이 본래의 모습이라고도 하는 견해가 있지만, 불교 경전에 설명된 정형적인 글로는 무명에서 고가 생겨나는 연기가 설명되어 있다.[30]
유전연기를 보다 현대적인 용어로 간략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 영적 무지(무명 = 무상 · 고 · 무아 · 공 · 연기 · 중도에 밝지 않음 = 마야 즉 환영 즉 망상에 잡혀 있음)가 원인이 되어 그릇된 멘탈 형성물(행 = 업)이 일어난다.
- 멘탈 형성물이 원인이 되어 의식(식 = 고정관념 = 분별심 = 분리 의식 = '나'라는 의식 = 자아 의식)이 일어난다.
- 그릇된 의식이 원인이 되어 그릇된 이름과 형상(명색)이 일어난다.
- 그릇된 이름과 형상이 원인이 되어 그릇된 감각기관(6입 = 6근)과 그 대상(6경)이 일어난다.
- 그릇된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원인이 되어 그릇된 접촉(촉)이 일어난다.
- 그릇된 접촉이 원인이 되어 그릇된 감각(수)이 일어난다.
- 그릇된 감각이 원인이 되어 그릇된 감각의 추구(애)가 일어난다.
- 그릇된 감각의 추구가 원인이 되어 온갖 집착과 번뇌(취)가 일어난다.
- 온갖 집착과 번뇌가 원인이 되어 물질계(욕계)에 묶인 삶(유)이 일어난다.
- 물질계에 묶인 삶이 원인이 되어 물질계로 태어남(생)이 일어난다.
- 물질계로 태어남이 원인이 되어 늙음과 죽음(노사)이 일어난다.
- 이리하여 불행 즉 추(愁: 걱정) · 탄(歎: 한탄) · 고(苦: 괴로움) · 우(憂: 근심) · 뇌(惱: 번뇌, 고요하지 못함)가 있다.
환멸연기
편집현상(現象)이 가치적으로 악화되는 과정인 순관에 대응해서 현상이 순화(純化)되고 정화(淨化)하는, 즉 고뇌의 유전(流轉)이 멸해지고 이상의 열반계(涅槃界)로 돌아가는 연기의 관계는 환멸연기(還滅緣起)라고 말해지며 또 이것을 연기의 역관(緣起의 逆觀) 혹은 역연기(逆緣起)라고 한다.[30][31]
연기의 역관은 구체적으로는 "무명(無明)이 멸하기 때문에 행(行)이 멸한다. 행이 멸하기 때문에 식(識)이 멸한다. 식이 멸하기 때문에 명색(名色)이 멸한다. 명색이 멸하기 때문에 6입(六入)이 멸한다. 6입이 멸하기 때문에 촉(觸)이 멸한다. 촉이 멸하기 때문에 수(受)가 멸한다. 수가 멸하기 때문에 애(愛)가 멸한다. 애가 멸하기 때문에 취(取)가 멸한다. 취가 멸하기 때문에 유(有)가 멸한다. 유가 멸하기 때문에 생(生)이 멸한다. 생이 멸하기 때문에 노사(老死) · 우비고수뇌(憂悲苦愁惱)의 갖가지 고(苦)가 멸한다"와 같이 설명된다.[30]
환멸연기를 보다 현대적인 용어로 간략히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 영적 무지(무명)를 소멸시키면 즉 반야바라밀을 깊이 행하면 즉 4념처 · 간화선 등의 수행으로 무상 · 고 · 무아 · 공 · 연기 · 중도를 깨달아가면 즉 마야 즉 환영 즉 망상을 제거해가면 그릇된 멘탈 형성물(행 = 업)이 사라진다.
- 그릇된 멘탈 형성물이 사라지면 그릇된 의식(식)이 사라진다.
- 그릇된 의식이 사라지면 그릇된 이름과 형상(명색)이 사라진다.
- 그릇된 이름과 형상이 사라지면 그릇된 감각기관(6입 = 6근)과 그 대상(6경)이 사라진다.
- 그릇된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사라지면 그릇된 접촉(촉)이 사라진다.
- 그릇된 접촉이 사라지면 그릇된 감각(수)이 사라진다.
- 그릇된 감각이 사라지면 그릇된 감각의 추구(애)가 사라진다.
- 그릇된 감각의 추구가 사라지면 온갖 집착과 번뇌(취)가 사라진다.
- 온갖 집착과 번뇌가 사라지면 물질계(욕계)에 묶인 삶(유)이 사라진다.
- 물질계에 묶인 삶이 사라지면 물질계로 태어남(생)이 사라진다.
- 물질계로 태어남이 사라지면 늙음과 죽음(노사)이 사라진다.
- 이리하여 영원한 행복 즉 고요함(열반적정)이 있다.
유전연기의 내용
편집12연기설을 구성하는 열 두 항목 각각과 이들 간의 유전연기(연기의 순관: 고통과 번뇌가 계속되게 하는 인과관계)는 다음과 같다. 아래에서 각 지분에 대한 설명은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과 《연기경(緣起經)》에 나타난 고타마 붓다의 설명, 그리고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등에 나타난 현대 학자들의 해석이다.
(1) 무명(無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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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明, 산스크리트어: अविद्या avidyā, 팔리어: avijjā, 영어: ignorance)은 무명연행(無明緣行)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무명연행은 연무명행(緣無明行)이라고도 한다. 무명연행 또는 연무명행은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行)이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함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무명은 아래의 목록에 나타난 것들을 통칭한다.[32][33] 무명에 대한 설명에서 부지(不知) 즉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는데, 불교에서 앎[知]이란 정지(正知) 즉 바른 앎을 말하는 것으로, 앎[知] 또는 정지는 여실정행(如實正行) 또는 정행(正行)과 동의어이다. 즉, 불교에서 말하는 앎[知]이란 불교의 진리 즉 4성제 · 12연기 등의 이치에 대한 이론적인 앎에 실천이 더해져서 획득하고 성취하게 된 실천적인 앎을 말한다.[34][35][36][37][38][39] 역으로 그리고 엄격히 말하자면, 바른 행위 또는 바른 실천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불교에서 정의하는 앎[知] 또는 정지(正知)가 아니다. 다만, 좀 더 완화된 입장에서 말하자면, 이론적인 앎이 실천적인 앎의 출발점 또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이론적인 앎도 실천적인 앎[知] 또는 정지(正知)의 일부이다. 즉, 유루혜인 3혜 가운데 문혜와 사혜도, 비록 세간의 정견에 포함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정견에 포함된다.
- 과거[前際]를 알지 못하는 것[不知], 미래[後際]를 알지 못하는 것, 과거와 미래[前後際]를 알지 못하는 것
- 안[內]을 알지 못하는 것, 밖[外]을 알지 못하는 것, 안팎[內外]을 알지 못하는 것
- 업(業)을 알지 못하는 것, 과보[報]를 알지 못하는 것, 업과 과보[業報, 업보]를 알지 못하는 것
- 불보[佛]를 알지 못하는 것, 법보[法]를 알지 못하는 것, 승보[僧]를 알지 못하는 것
- 고제[苦]를 알지 못하는 것, 집제[集]를 알지 못하는 것, 멸제[滅]를 알지 못하는 것, 도제[道]를 알지 못하는 것
- 원인[因]을 알지 못하는 것, 원인이 일으키는 법(法) 즉 결과를 알지 못하는 것
- 선(善)과 불선(不善)을 알지 못하는 것
- 죄가 됨[有罪]과 죄가 되지 않음[無罪], 익혀야 할 것[習]과 익히지 않아야 할 것[不習], 열(劣: 저열한 것)과 승(勝: 뛰어난 것), 염오(染污)와 청정(清淨), 그리고 이들의 분별(分別: 식별하는 것, 식별력)과 연기관계[緣起]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이들 모두를 남김없이 즉 완전히 알지 못하는 것[皆悉不知]
- 6촉입처(六觸入處)[40] 즉 6입(六入) 즉 6처(六處) 즉 6근(六根)을 여실히 즉 실답게 관찰하고 알지 못하는 것[不如實覺知], 즉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 · 신근 · 의근의 6근을 진리[實]와 계합[如]하는 상태에 있게끔 제어[覺知]하지 못하는 것
-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것[不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보지 못하는 것[不見],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의 앎[知: 실천적 앎]에 대해서라도 '간격없이 동등함[無間等]' 즉 '완전한 계합'이 없는 것[無無間等],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어리석고 컴컴한 것[癡闇],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밝음이 없는 것[無明],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크게 어두운 것[大冥]
-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무명은 다음을 뜻한다.[41][42] 앞의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에서는 무명에 대한 설명에서 부지(不知) 즉 '알지 못하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는 반면, 《연기경》에서는 무지(無知) 즉 '앎이 없는 것'이라는 낱말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 과거[前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無知], 미래[後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과거와 미래[前後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안[內]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밖[外]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안팎[內外]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업(業)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이숙(異熟)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업과 이숙[業異熟]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불보[佛]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법보[法]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승보[僧]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고제[苦]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집제[集]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멸제[滅]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도제[道]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원인[因]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결과[果]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원인이 일으켜 생겨나는 온갖 법(法)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선(善)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불선(不善)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죄가 됨[有罪]에 대해 앎이 없는 것, 죄가 되지 않음[無罪]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반드시 닦아 익혀야 하는 것[應修習]에 대해 앎이 없는 것, 결코 닦아 익혀서는 안 되는 것[不應修習]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저열한 것[下劣]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뛰어난 것[上妙]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흑(黑) 즉 흑업(黑業: 나쁜 행동, 악업)에 대해 앎이 없는 것, 백(白) 즉 백업(白業: 착한 행동, 선업)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위에서 언급한 것들에 있어서 차이와 분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有異分]에 대해 앎이 없는 것
- 연(緣), 이생(已生: 생겨나서 지금 존재하는 것) 혹은 6촉처(六觸處: 6입, 6처, 6근)에 대해 여실히 통달하는 앎이 없는 것[如實通達無知], 즉 연(緣), 이생(已生) 혹은 6촉처(六觸處)를 진리[實]에 계합[如]하는 상태에 있게끔 제어[通達]하지 못하는 것[無知]
-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여실한 앎이 없는 것[如實無知],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바른 견해가 없는 것[無見],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현관이 없는 것[無現觀],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어리석은 것[愚癡],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밝음이 없는 것[無明],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몹시 캄캄한 것[黑闇]
-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무명은 명(明), 즉 지혜가 없는 것으로, 연기의 도리를 알고 있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현실적으로는, 올바른 인생관 · 세계관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1]
(2) 행(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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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行, 산스크리트어: संस्कार saṃskāra, 팔리어: saṅkhāra, 영어: (mental) formations)은 무명연행(無明緣行)과 행연식(行緣識)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무명연행은 연무명행(緣無明行)이라고도 하며 행연식은 연행식(緣行識)이라고도 한다. 무명연행 또는 연무명행은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行)이 있다는 뜻이고, 행연식 또는 연행식은 행(行)이 있으므로 식(識)이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합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행(行)은 신행(身行) · 구행(口行) · 의행(意行)의 3행(三行)을 뜻한다.[43][44] 3행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신업 · 구업 · 의업의 3업(三業, 산스크리트어: trīṇi karmāṇi)과 동의어이다.[45][46]
무명연행(無明緣行) 또는 연무명행(緣無明行), 즉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行)이 있다는 것은 무명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 3행(三行), 즉 그릇된 신업 · 구업 · 의업의 3업(三業)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이미 발생한 그릇된 3업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무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행(行)은 부파불교의 업감연기(業感緣起)에서 업(業) 또는 업력(業力)에 해당하고, 업 또는 업력이 저장되는 곳은 무표색과 의근이다.[47][48] 행(行)은 대승불교의 아뢰야연기(阿賴耶緣起)에서 아뢰야식에 보관된 종자, 그 중에서도 특히 업종자에 해당한다.[49][50][51]
-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행(行)은 신행(身行) · 어행(語行) · 의행(意行)의 3행(三行)을 뜻한다.[52][53] 3행은 몸과 말과 뜻으로 짓는 신업 · 구업 · 의업의 3업(三業, 산스크리트어: trīṇi karmāṇi)과 동의어이다.[45][46]
무명연행(無明緣行) 또는 연무명행(緣無明行), 즉 무명(無明)이 있으므로 행(行)이 있다는 것은 무명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 3행(三行), 즉 그릇된 신업 · 구업 · 의업의 3업(三業)을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이미 발생한 그릇된 3업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무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발생한 그릇된 3업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무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과거[前際], 미래[後際], 또는 과거와 미래[前後際]를 알지 못하는[不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안[內], 밖[外], 또는 안팎[內外]을 알지 못하는[不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업(業), 과보[報], 또는 업과 과보[業報, 업보]를 알지 못하는[不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불보[佛], 법보[法], 또는 승보[僧]를 알지 못하는[不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고제[苦], 집제[集], 멸제[滅], 또는 도제[道]를 알지 못하는[不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원인[因] 또는 원인이 일으키는 법(法) 즉 결과를 알지 못하는[不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선(善)과 불선(不善)을 알지 못하는[不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죄가 됨[有罪]과 죄가 되지 않음[無罪], 익혀야 할 것[習]과 익히지 않아야 할 것[不習], 열(劣: 저열한 것)과 승(勝: 뛰어난 것), 또는 염오(染污)와 청정(清淨), 또는 이들에 대한 분별(分別: 식별하는 것, 식별력)과 연기관계[緣起]를 알지 못하는[不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또는 이들 모두를 남김없이 즉 완전히 알지는 못한 상태[皆悉不知]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6촉입처(六觸入處)[40] 즉 6입(六入) 즉 6처(六處) 즉 6근(六根)을 여실히 즉 실답게 관찰하고 알지 못한 상태[不如實覺知]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참조: 4념처) 즉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 · 신근 · 의근의 6근을 진리[實]와 계합[如]하는 상태에 있게끔 제어[覺知]하지 못한 상태[不如實覺知]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알지 못하는 상태[不知], 또는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보지 못하는 상태[不見], 또는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의 앎[知: 실천적 앎]에 대해서라도 '간격없이 동등함[無間等]' 즉 '완전한 계합'이 없는 상태[無無間等], 또는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어리석고 컴컴한 상태[癡闇], 또는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밝음이 없는 상태[無明], 또는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크게 어두운 상태[大冥]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이미 발생한 그릇된 3업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무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연기경》에 의거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과거[前際], 미래[後際], 또는 과거와 미래[前後際]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안[內], 밖[外], 또는 안팎[內外]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업(業), 이숙(異熟), 또는 업과 이숙[業異熟]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불보[佛], 법보[法], 또는 승보[僧]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고제[苦], 집제[集], 멸제[滅], 또는 도제[道]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원인[因], 결과[果], 또는 원인이 일으켜 생겨나는 온갖 법(法)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선(善)과 불선(不善)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죄가 됨[有罪]과 죄가 되지 않음[無罪]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반드시 닦아 익혀야 하는 것[應修習]과 결코 닦아 익혀서는 안 되는 것[不應修習]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저열한 것[下劣]과 뛰어난 것[上妙]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흑(黑) 즉 흑업(黑業: 나쁜 행동, 악업)과 백(白) 즉 백업(白業: 착한 행동, 선업)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위에서 언급한 것들에 있어서 차이와 분별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有異分]에 대해 앎이 없는[無知] 상태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연(緣), 이생(已生: 생겨나서 지금 존재하는 것) 혹은 6촉처(六觸處: 6입, 6처, 6근)에 대해 여실히 통달하는 앎이 없는 상태[如實通達無知]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참조: 4념처) 즉, 연(緣), 이생(已生) 혹은 6촉처(六觸處)를 진리[實]에 계합[如]하는 상태에 있게끔 제어[通達]하지 못하는 상태[無知]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혹은,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여실한 앎이 없는 상태[如實無知], 또는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바른 견해가 없는 상태[無見], 또는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현관이 없는 상태[無現觀], 또는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어리석은 상태[愚癡], 또는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밝음이 없는 상태[無明], 또는 위에 열거한 모두 가운데 어느 하나에 대해서라도 몹시 캄캄한 상태[黑闇]이기 때문에 몸, 말 또는 뜻으로 짓는 그릇된 3업이 발생한 것이다.
-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행(行)은 행위와 그 행위 경험의 축적(蓄積)을 뜻한다.[1] 달리 말해, 행(行) 즉 업(業) 또는 업력(業力)이란 경험과 경험치를 의미한다. 또는, 다른 학자에 따르면, 행(行) 즉 업(業) 또는 업력(業力)은 조건지워진 상태 또는 현상을 의미하는데 특히 정신적인 기질 또는 성향을 의미한다.[54] 또한 현대의 승려 비쿠 보디(Bhikkhu Bodhi)에 따르면, 행은 능동적인 측면에서 의지적인 행위도 의미하는데 그 이유는 정신적인 기질 또는 성향은 의지적인 행위의 결과로서 형성되고 또 현재의 의지적인 행위는 미래의 의지적인 행위를 일으키는 인과 연이 되기 때문이다.[55]
(3) 식(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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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識, 산스크리트어: विज्ञान vijñāna, 팔리어: viññāṇa, 영어: consciousness)은 행연식(行緣識)과 식연명색(識緣名色)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행연식은 연행식(緣行識)이라고도 하며 식연명색은 연식명색(緣識名色)이라고도 한다. 행연식 또는 연행식은 행(行)이 있으므로 식(識)이 있다는 뜻이고, 식연명색 또는 연식명색은 식(識)이 있으므로 명색(名色)이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합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식(識)은 안식신(眼識身) · 이식신(耳識身) · 비식신(鼻識身) · 설식신(舌識身) · 신식신(身識身) · 의식신(意識身)의 6식신(六識身)을 뜻한다.[56][57]
여기서 신(身, 산스크리트어: kāya)은 이 단어의 일반적 의미인 몸 즉 신체의 뜻의 명사로 사용된 경우가 아니라, 복수 · 집합을 뜻하는 복수형 접미사 '~들'로서 사용된 경우이다. 따라서, 안식신은 안식들 또는 안식들의 집합을 뜻하는데, 온갖 시각적 의식들의 집합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이식신 · 비식신 · 설식신 · 신식신은 각각 온갖 청각적 · 후각적 · 미각적 · 촉각적 의식들의 집합을 말하며, 의식신은 온갖 정신적 의식들의 집합을 말한다. 그리고 6식신(六識身)은 이들 6가지 식신(識身) 즉 이들 6가지 식(識)들의 집합을 말한다.[58][59] 이들 6가지 식신(識身)들은 일반적으로 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 신식 · 의식이라고 불리며, 6식신(六識身)은 6식(六識)이라고 불린다.
초기불교에서의 6식은 곧 마음[心, 산스크리트어: citta, 팔리어: citta]을 말하는 것으로, 부파불교에서 마음 즉 6식은 심의식 또는 심 · 의 · 식이라고도 한다. 부파불교에서는 6식은 하나의 마음의 6가지 다른 모습 또는 작용일 뿐이라고 보며, 이러한 견해를 심체일설 또는 식체일설이라 한다.[60][61] 대승불교에서도 마음을 심의식 또는 심 · 의 · 식이라고도 하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초기불교의 6식은 더 심층의 의식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에 따라 마음이 6식에 말나식과 아뢰야식이 더해진 8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교학을 가지고 있다.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는 8식은 그 체가 각각 별도라는 심체별설 또는 식체별설의 견해와 8식의 체는 하나라는 심체일설 또는 식체일설의 견해가 둘 다 존재한다.[62][63][64]
행연식(行緣識) 또는 연행식(緣行識), 즉 행(行)이 있으므로 식(識)이 있다는 것은 그릇된 행, 즉 그릇된 3행(三行), 즉 그릇된 신업 · 구업 · 의업의 3업(三業)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 6식신, 즉 그릇된 시각적 · 청각적 · 후각적 · 미각적 · 촉각적 · 정신적(제6의식의) 마음(의식)들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하며, 또한 이미 발생한 그릇된 시각적 · 청각적 · 후각적 · 미각적 · 촉각적 또는 정신적(제6의식의) 마음(의식)이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그릇된 행 즉 신업 · 구업 · 의업 가운데 그릇된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를 때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항은, 마음(의식)은 행위[行, 業] 또는 운동을 바탕하여 발생한다는 것이다. 근원적 연기관계에서 볼 때, 마음(의식)이 행위를 낳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마음(의식)을 낳는다는 것이다. 즉,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정이 행하는 행위 즉 몸 · 말 또는 뜻으로 행하는 행위는 단순히 행위 자체에 그치지 않으며 반드시 그 유정 속에서 어떤 마음(의식)을 낳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식(識)은 안식(眼識) · 이식(耳識) ·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 의식(意識)의 6식신(六識身) 즉 6식(六識)을 뜻한다.[65][66]
-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식(識)은 안(眼) · 이(耳) · 비(鼻) · 설(舌) · 신(身)의 전5식(前五識)에 의한 감각작용과 제6의식에 의한 지각(知覺) · 추리(推理) · 기억(記憶) · 판단(判斷) 등 일체의 의식작용 및 이러한 작용을 하는 주체적 존재를 총칭하는 것으로서, 과거의 모든 행위[行]가 잠재의식이 되어서 작용하게 된 것이다.[1]
(4) 명색(名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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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名色, 산스크리트어: nāmarūpa, 팔리어: nāmarūpa, 영어: name and form)은 식연명색(識緣名色)과 명색연6입(名色緣六入)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식연명색은 연식명색(緣識名色)이라고도 하며 명색연6입은 연명색6입(緣名色六入)이라고도 한다. 식연명색 또는 연식명색은 식(識)이 있으므로 명색(名色)이 있다는 뜻이고, 명색연6입 또는 연명색6입은 명색(名色)이 있으므로 6입(六入) 즉 6처(六處) 즉 6근(六根)이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합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명색(名色)은 명(名)과 색(色) 즉 정신과 물질 또는 마음[心]과 육체[身]를 통칭한다. 명(名) 즉 정신 또는 마음[心]은 5음(五陰) 가운데 수음 · 상음 · 행음 · 식음의 4무색음(四無色陰)을 말한다. 색(色) 즉 물질 또는 육체[身]는 5음(五陰) 가운데 색음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4대종과 4대종의 소조색을 말한다.[67][68] 여기서, 색음 · 수음 · 상음 · 행음 · 식음의 5음(五陰)은 색온 · 수온 · 상온 · 행온 · 식온의 5온(五蘊)의 구역(舊譯)이다. 그리고, 대상을 제외하고 유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만 볼 때, 여기서의 마음[心] 또는 정신[名] 즉 4무색음은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마음작용(심소법)을 합한 개념이다. 육체[身] 또는 물질[色]은 안 · 이 · 비 · 설 · 신의 5근을 말한다.
식연명색(識緣名色) 또는 연식명색(緣識名色), 즉 식(識)이 있으므로 명색(名色)이 있다는 것은 그릇된 식, 즉 그릇된 마음, 즉 그릇된 6식, 즉 그릇된 시각적 · 청각적 · 후각적 · 미각적 · 촉각적 · 정신적(제6의식의) 마음(의식)들이 있기 때문에 심신(心身)의 그릇된 상태, 즉 '정신[名]과 육체[色]'의 그릇된 상태, 즉 '마음 · 마음작용 · 육체'의 그릇된 상태, 즉 심신의 부조화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미 발생한 심신(心身)의 그릇된 상태 즉 심신의 부조화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그릇된 식 즉 시각적 · 청각적 · 후각적 · 미각적 · 촉각적 · 정신적(제6의식의) 마음(의식)들 가운데 그릇된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명색(名色)은 명(名)과 색(色)을 통칭한다. 명(名)은 5온 가운데 수온 · 상온 · 행온 · 식온의 4무색온(四無色蘊)을 말하고, 색(色)은 5온 가운데 색온(色蘊)을 말하는데 이것은 곧 제소유색(諸所有色) 즉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말하며, 구체적으로 4대종과 4대종의 소조색을 말한다.[69][70]
-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명색(名色)은 정신적인 것[名]과 물질적인 것[色]으로서 이 현상세계의 존재를 가리킨다.[1]
(5) 6입(六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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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입(六入, 산스크리트어: ṣaḍāyatana, 팔리어: saḷāyatana, 영어: six sense gates, six sense bases)은 6처(六處) · 6입처(六入處) · 내6입(內六入) · 내6입처(內六入處) · 6내입처(六內入處) · 6정(六情) · 제입(諸入) · 6촉입처(六觸入處) · 6촉처(六觸處) · 6갱락처(六更樂處) 또는 6근(六根)이라고도 한다.[71] 6입은 명색연6입(名色緣六入)과 6입연촉(六入緣觸)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명색연6입은 연명색6입(緣名色六入)이라고도 하며 6입연촉은 연6입촉(緣六入觸)이라고도 한다. 명색연6입 또는 연명색6입은 명색(名色)이 있으므로 6입(六入) 즉 6처(六處) 즉 6근(六根)이 있다는 뜻이고, 6입연촉 또는 연6입촉은 6입 즉 6처 즉 6근이 있으므로 촉(觸)이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합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에서는 6입(六入)을 6입처(六入處)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소경(小經)에 나타난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6입처는 안입처(眼入處) · 이입처(耳入處) · 비입처(鼻入處) · 설입처(舌入處) · 신입처(身入處) · 의입처(意入處)의 6내입처(六內入處)를 말한다.[72][73]
입처(入處)라는 낱말은 입(入)과 처(處)가 합쳐서 이루어진 낱말이다. 입(入)은 섭입(涉入: 거두어들임) 또는 촉입(趨入: 재촉하여 들임)의 뜻으로 6근(六根)과 6경(六境)이 서로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가리킨다. 처(處)는 소의(所依) 즉 발동근거 · 의지처 · 도구라는 뜻으로, 6경에 대하여 6식이 생겨날 때 6근이 소의 즉 발동근거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입처(入處)는 6식의 수동적 작용이라는 입장에서는 6근과 6경이 서로를 거두어 들여서 6식이 생겨나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또한, 6식의 능동적 작용이라는 입장에서는, 입처(入處)는 6식이 6근을 통해 6경을 거두어들임으로써 6경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74][75][76] 여기서 '인식한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앎 또는 요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대상과 관련된 여러 가지 마음작용들이 일어나는 것도 포함하는 말이다.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르면, 처(處)는 생장문(生長門)을 뜻하는 것으로, 마음과 마음작용이 생겨나게 하고 증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을 뜻한다.[77][78] 즉, 6근은 6식 즉 마음의 단순한 인식도구가 아니다. 6근은 마음의 인식도구일 뿐만 아니라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마음작용을 현행하게 하고 그 세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6근 가운데 의근(意根)의 경우 이러한 점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나타난 낱말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6내입처(六內入處): 6가지 내적인 입처(入處). 6식이 6경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6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어떤 것
- 안입처(眼入處): 눈[眼]이라는 입처. 안식의 입처. 안식이 색경(색깔과 형태)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안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 이입처(耳入處): 귀[耳]라는 입처. 이식의 입처. 이식이 성경(소리)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이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 비입처(鼻入處): 코[鼻]라는 입처. 비식의 입처. 비식이 향경(냄새)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비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 설입처(舌入處): 혀[舌]라는 입처. 설식의 입처. 설식이 미경(맛)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설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 신입처(身入處): 몸[身]이라는 입처. 신식의 입처. 신식이 촉경(감촉)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신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 의입처(意入處): 뜻[意]이라는 입처. 의식의 입처. 의식이 법경(법, 정신적 존재, 즉 명색의 명)을 비롯한 6경을 인식할 때 사용하는 인식도구이자 의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것
명색연6입(名色緣六入) 또는 연명색6입(緣名色六入), 즉 명색(名色)이 있으므로 6입(六入)이 있다는 것은 심신(心身)의 그릇된 상태 즉 심신의 부조화가 있기 때문에 6입 즉 6처 즉 6근의 그릇된 상태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6식 즉 마음이 6경을 인식할 때 6근이 인식도구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생겨나기도 하고 혹은 마음과 마음작용을 생겨나게 하고 증장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때로는 그릇된 방향으로 생겨나게 하고 증장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명색연6입(名色緣六入) 또는 연명색6입(緣名色六入)은 또한 이미 발생한 6입 즉 6처 즉 6근의 그릇된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심신(心身)의 그릇된 상태 즉 심신의 부조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 연기경
《연기경》에서는 6입(六入)을 6처(六處)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 경전에 나타난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6처는 안내처(眼內處) · 이내처(耳內處) · 비내처(鼻內處) · 설내처(舌內處) · 신내처(身內處) · 의내처(意內處)의 6내처(六內處)를 말한다.[79][80]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나타난 낱말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6내처(六內處): 6가지 내적인 처(處). 6식의 내적인 처(處). 6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6가지 내적인 어떤 것
- 안내처(眼內處): 눈[眼]이라는 내적인 처(處). 안식의 내적인 처(處). 안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
- 이내처(耳內處): 귀[耳]라는 내적인 처(處). 이식의 내적인 처(處). 이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
- 비내처(鼻內處): 코[鼻]라는 내적인 처(處). 비식의 내적인 처(處). 비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
- 설내처(舌內處): 혀[舌]라는 내적인 처(處). 설식의 내적인 처(處). 설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
- 신내처(身內處): 몸[身]이라는 내적인 처(處). 신식의 내적인 처(處). 신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
- 의내처(意內處): 뜻[意]이라는 내적인 처(處). 의식의 내적인 처(處). 의식과 그 관련 마음작용이 생겨나고 증장되게 하는 내적인 것
-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6입(六入)은 6처(六處) 또는 6근(六根)이라고도 하며 6개의 감각기관으로서 이 감각기관을 통해 식(識)이 작용하게 되어 명색을 인식한다.[1][81]
(6) 촉(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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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觸, 산스크리트어: sparśa, 팔리어: phassa, 영어: contact)은 6입연촉(六入緣觸)과 촉연수(觸緣受)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6입연촉은 연6입촉(緣六入觸)이라고도 하며 촉연수는 연촉수(緣觸受)라고도 한다. 6입연촉 또는 연6입촉은 6입(六入) 즉 6처(六處) 즉 6근(六根)이 있으므로 촉(觸)이 있다는 뜻이고, 촉연수 또는 연촉수는 촉(觸)이 있으므로 수(受)가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합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촉(觸)은 안촉신(眼觸身) · 이촉신(耳觸身) · 비촉신(鼻觸身) · 설촉신(舌觸身) · 신촉신(身觸身) · 의촉신(意觸身)의 6촉신(六觸身)을 말한다.[82][83]
여기서 신(身, 산스크리트어: kāya)은 이 단어의 일반적 의미인 몸 즉 신체의 뜻의 명사로 사용된 경우가 아니라, 복수 · 집합을 뜻하는 복수형 접미사 '~들'로서 사용된 경우이다.[58][59] 그리고 촉(觸)은 마음작용들 가운데 하나로 근(根) · 경(境) · 식(識) 3사(三事)의 화합을 말한다.[84][85]
따라서,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나타난 낱말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6촉신(六觸身): 6가지 촉(觸)들, 6가지 촉(觸)의 집합; 6촉(六觸)은 6근 · 6경 · 6식의 화합들을 말하고, 6촉신(六觸身)은 이러한 화합들의 집합을 총칭한다. 6촉과 6촉신은 사실상 같은 말이며, 6촉은 6촉신의 줄임말이라 할 수 있다. 6근 · 6경 · 6식의 화합의 상태는 6식 즉 인식대상에 대한 6가지 인식 또는 요별 가운데 개별 또는 다수가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 안촉신(眼觸身): 안촉(眼觸)들, 안촉(眼觸)의 집합; 안촉(眼觸)은 안근 · 색경 · 안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안식 즉 인식대상의 색경(색깔과 크기와 모습)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눈으로 대상의 색깔과 크기와 모습을 보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 이촉신(耳觸身): 이촉(耳觸)들, 이촉(耳觸)의 집합; 이촉(眼觸)은 이근 · 성경 · 이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이식 즉 인식대상의 성경(소리)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귀로 대상의 소리를 듣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 비촉신(鼻觸身): 비촉(鼻觸)들, 비촉(鼻觸)의 집합; 비촉(鼻觸)은 비근 · 향경 · 비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비식 즉 인식대상의 향경(냄새)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코로 대상의 냄새를 맡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 설촉신(舌觸身): 설촉(舌觸)들, 설촉(舌觸)의 집합; 설촉(舌觸)은 설근 · 미경 · 설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설식 즉 인식대상의 미경(맛)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혀로 대상의 맛을 감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 신촉신(身觸身): 신촉(身觸)들, 신촉(身觸)의 집합; 신촉(身觸)은 신근 · 촉경 · 신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신식 즉 인식대상의 촉경(촉감)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몸으로 대상의 촉감을 감촉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 의촉신(身觸身): 의촉(身觸)들, 의촉(身觸)의 집합; 의촉(身觸)은 의근 · 법경 · 의식의 화합을 말한다.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의식 즉 인식대상의 법경(정신적 측면)에 대한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의식으로 대상의 정신적 측면을 감지 또는 요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의식 즉 제6의식은 의근을 통해 단지 법경만을 요별하지 않으며 의근을 통해 5경에 대해서도 요별하는데, 이 경우 의촉은 의근 · 6경 · 의식의 화합을 말하는 것으로, 이러한 화합의 상태는 인식대상에 대한 제6의식의 전체적 · 종합적 인식 또는 요별이 현행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즉 제6의식이 대상을 전체적 · 종합적으로 감지 또는 요별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6입연촉(六入緣觸) 또는 연6입촉(緣六入觸), 즉 6입(六入)이 있으므로 촉(觸)이 있다는 것은, 촉은 마음과 항상 같이 일어나는 마음작용(변행심소 또는 대지법)으로, 그 자체로서는 바르지도 그릇되지도 않은, 선도 불선도 아닌 무기이지만, 6입 즉 6처 즉 6근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촉의 그릇된 상태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진리에 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 · 신근 · 의근의 6근, 즉 진리에 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 눈 · 귀 · 코 · 혀 · 몸 · 뜻이 있기 때문에 '그릇된 상태의 근 · 경 · 식 3사화합'이 생겨난다. 특히, 마지막의 의근 또는 뜻은 6식이 과거로 낙사한 것, 즉 과거 경험의 총체를 말한다. 이와 같이 과거의 행위들은 누적이 되어 현재의 6근의 상태를 형성하고 6근의 작용의 발동근거가 되는데, 현재의 그릇된 상태의 6근은 '그릇된 상태의 3사화합'이 생겨나게 한다. 그리고 '그릇된 상태의 3사화합'은 대상에 대한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에 대한 진실한 인식 즉 대상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인식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초기불교를 비롯한 불교 일반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전도(顚倒)라고 하고, 부파불교(상좌부와 설일체유부)와 대승불교의 교학(아비달마)에서는 비리작의(非理作意: 그릇된 작의, 팔리어: ayoniso-manasikāra) 또는 비여리작의(非如理作意)라 하고, 특히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에서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상태라고 하고 선종에서는 망상(妄想)이라고 한다.
고타마 붓다는 《디가 니까야》 제22경 〈대념처경〉에서 열반을 증득하기 전의 상태 즉 유전연기의 상태 즉 무명에 바탕하여 비리작의에 처해 있는 상태 즉 4성제의 집제의 상태와, 환멸연기를 통해 즉 37도품 · 6바라밀 등의 수행을 통해 점차 무명을 극복하여 비리작의를 짓는 상태를 여리작의(如理作意: 바른 작의, 팔리어: yoniso-manasikāra)를 짓는 상태로 변형함으로써 마침내 열반을 증득한 후의 상태 즉 4성제의 멸제의 상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다시 비구들이여, 이런 갈애는 어디서 일어나서 어디서 자리 잡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의근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형상은 …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의근의 대상인] 법(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안식은 … 이식은 … 비식은 … 설식은 … 신식은 … 의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
다시 비구들이여, 그런 이 갈애는 어디서 없어지고 어디서 소멸되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의근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형상은 …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의근의 대상인] 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안식은 … 이식은 … 비식은 … 설식은 … 신식은 … 의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 각묵스님 옮김(2015) 《디가 니까야》 제2권 제22경 〈대념처경〉 초기불전연구원. pp.531~535.
편집자가 용어 일부 변경[86]
위의 인용문에서 고타마 붓다는 18계를 말씀하고 있는데, 18계는 곧 일체법이다. 즉 5온이고 12처이며 일체의 만물이다. 고타마 붓다는 일체법이 조금의 변경도 없이 그대로 번뇌이며 그대로 열반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번뇌와 보리, 윤회와 열반, 생멸과 진여 사이에 일호의 간격도 없는 것이 제법실상이라는 것이다. 일호의 간격도 없으니 번뇌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고 보리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으므로, 번뇌도 없고 보리도 없으며, 윤회도 없고 열반도 없으며, 생멸도 없고 진여도 없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해, 무명도 없고 무명의 다함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비리작의 즉 망상이 있으면 이들 사이에 간격이 생기고 점점 벌어져 번뇌도 있고 보리도 있으며, 윤회도 있고 열반도 있으며, 생멸도 있고 진여도 있게 된다. 달리 말해, 번뇌와 보리, 윤회와 열반, 생멸과 진여가 분리된다. 이 때문에 선종에서는 다만 망상을 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중관학파에서는 윤회와 열반 사이에 간격이 없는 것을 승의제 또는 진제라고 하고 간격이 있는 것을 속제라고 한다. 간격이 있거나 더 벌어지는 것을 선종에서는 특유의 용어로 분별심이라고 한다. 그래서 분별심이 없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비리작의 즉 망상이 있을 때, 그만큼 보리 · 열반 · 진여와 분리된 번뇌 · 윤회 · 생멸은 단지 심리의 일부인 논리 공간의 개념 즉 철학적 이해로서만이 아니라 실제의 현실로서 존재하고 현실의 삶에서 6근을 통해 마음이 실감하는 그만큼의 실제의 추(愁: 걱정) · 탄(歎: 한탄) · 고(苦: 괴로움) · 우(憂: 근심) · 뇌(惱: 번뇌, 고요하지 못함)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지고 상속하는 것은 엄격한 인과의 법칙, 즉,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 혹업고의 3도의 법칙, (동시인과이건 이시인과이건) 연기의 법칙을 따른다. 유전연기는 이와 같이 간격이 점점 더 벌어지는 실제의 과정 즉 점점 더 제법실상에서 멀어져 가는 현실의 과정 즉 점점 더 그릇되어 가는 현실의 삶, 즉, 출세간의 마음을 획득하지 못하여 3유에서 윤회하는 삶을 밝힌 것이다.
6입연촉(六入緣觸) 또는 연6입촉(緣六入觸)은 또한 이미 발생한 촉(觸)의 그릇된 상태 즉 '그릇된 상태의 3사화합'이 있다면, 즉 그릇된 상태의 안촉 · 이촉 · 비촉 · 설촉 · 신촉 · 의촉이 이미 발생한 상태라면, 즉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미 발생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6입 즉 6처 즉 6근의 그릇된 상태 즉 진리에 계합하도록 제어되지 못한 상태의 6근의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불교의 수행이란 그 형태가 어떠한 것이건 그 모두는 6근 즉 몸과 마음을 비리작의를 일으키는 상태에서 여리작의를 일으키는 상태로 변화시킴으로써 열반과 계합하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37도품은 초기불교의 수행법을 총칭하는 것인데 37도품 중 대표적인 것이 4념처 수행이다. 고타마 붓다는 열반에 들어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살아 계실 때는 부처님을 의지하여 머물렀는데, 여래께서 이미 열반하시고 나면 무엇을 의지하여 머물러야 합니까? "라는 물음에 대해 유훈으로 "4념처를 의지하여 마음을 매우 철저히 바르게 다스림으로써 머물러라(依四念處嚴心而住)"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4념처, 간화선, 또는 염불과 같은 수행을 통해 비리작의를 일으키는 상태를 여리작의를 일으키는 상태로 6근 즉 몸과 마음을 변화시켜가는 매일의 노력이야말로 진정 의지하여야 할 의지처라고 뜻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 |
T12n0377_p0901a12║爾時阿難聞佛語已,身心戰動,情識恾然,悲 |
” |
-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촉(觸)은 안촉(眼觸) · 이촉(耳觸) · 비촉(鼻觸) · 설촉(舌觸) · 신촉(身觸) · 의촉(意觸)의 6촉신(六觸身) 즉 6촉(六觸)을 뜻한다.[88][89]
- 현대의 해석
(7) 수(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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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受, 산스크리트어: vedanā, 팔리어: vedanā, 영어: sensation, feeling)는 촉연수(觸緣受)와 수연애(受緣愛)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촉연수는 연촉수(緣觸受)라고도 하며 수연애는 연수애(緣受愛)라고도 한다. 촉연수 또는 연촉수는 촉(觸)이 있으므로 수(受)가 있다는 뜻이고, 수연애 또는 연수애는 수(受)가 있으므로 애(愛)가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합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수(受)는 고수(苦受) · 낙수(樂受) ·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의 3수(三受)를 말한다.[90][91] 부파불교와 대승불교 등 불교 일반에 따르면, 수(受)는 마음작용들 가운데 하나로 촉(觸) 즉 '근경식 3사화합'을 바탕으로 하여 일어난다.[92][93]
촉연수(觸緣受) 또는 연촉수(緣觸受), 즉 촉(觸)이 있으므로 수(受)가 있다는 것은 촉(觸)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수(受)의 그릇된 상태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있기 때문에 그릇된 상태의 고수 · 낙수 · 불고불락수의 3수(三受)가 생겨난다는 것을 말한다. 그릇된 상태의 3수는 전도된 상태의 3수를 말하는 것으로 고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낙 또는 불고불락의 대상이라 여기고, 낙이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고 또는 불고불락의 대상이라 느끼고, 불고불락이라고 느껴야 할 대상을 고 또는 낙의 대상이라 느끼는 것을 말한다.
촉연수(觸緣受) 또는 연촉수(緣觸受)는 또한 이미 발생한 수(受)의 그릇된 상태 즉 전도된 3수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촉(觸)의 그릇된 상태 즉 '그릇된 상태의 3사화합', 즉 현행하는 인식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 즉 그릇된 상태의 안촉 · 이촉 · 비촉 · 설촉 · 신촉 · 의촉의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부파불교와 대승불교의 교학에서 수(受) 즉 3수(三受)는 더욱 세밀하게 탐구되어 심수 · 신수의 2수(二受), 낙수 · 고수 · 희수 · 우수 · 사수의 5수(五受) 또는 5수근(五受根) 등의 여러 가지 분류로 재분류되어 불교의 번뇌론과 수행론과의 관련하에 논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5수 가운데 낙수와 희수는 색계의 제3정려인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와 관련되어 논의되고 있다. '이희묘락지'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희수[喜]를 떠나고 묘한 낙수[樂]가 있는 장소'이다.[94][95][96] 또한 제4정려인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염(念)을 버린 청정한 장소'인데 '염을 버린 상태[捨念]'는 3수 또는 5수 가운데 사수(捨受)를 뜻한다.[93][97][98]
-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수(受)는 낙수(樂受) · 고수(苦受) · 불고불락수(不苦不樂受)의 3수(三受)를 뜻한다.[99][100]
-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수(受)는 6입과 명색과 식의 접촉 위에서 생기는 고락 등의 감수작용이다.[1]
(8) 애(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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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愛, 산스크리트어: तण्हा tṛṣṇā, 팔리어: taṇhā, 영어: craving, desire, thirst)는 수연애(受緣愛)와 애연취(愛緣取)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수연애는 연수애(緣受愛)라고도 하며 애연취는 연애취(緣愛取)라고도 한다. 수연애 또는 연수애는 수(受)가 있으므로 애(愛)가 있다는 뜻이고, 애연취 또는 연애취는 애(愛)가 있으므로 취(取)가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합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애(愛)는 욕애(欲愛) · 색애(色愛) · 무색애(無色愛)의 3애(三愛)를 말한다.[101][102]
애(愛)는 애착(愛著) · 탐(貪) 또는 집착(執著)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대상에 대한 그릇된 좋아함[欲]을 말하는 것으로 특히 그 대상에 들러붙러 떠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103][104][105][106] 애(愛)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에는 사랑이라는 뜻이 있으며 12연기설에서 말하는 애(愛)는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독교 등에서 말하는 사랑은 불교의 자비(慈悲)에 해당한다.[106] 그리고 불교에서도 애(愛)라는 낱말이 이러한 사랑 또는 자비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103][104] 부파불교의 5위 75법과 대승불교의 5위 100법의 법체계에 따르면 12연기설의 애(愛) 즉 탐(貪)은 그 성질이 불선(不善)으로, 본질적으로 번뇌이다. 이에 비해 자비의 자(慈)는 무진(無瞋)의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이고,[107][108][109][110][111][112] 비(悲)는 불해(不害)의 마음작용의 본질적 성질로서,[113][114][115][116][117][118] 둘 다 본질적으로 선(善)이다. 불교에서는 탐(貪)으로서의 애(愛: 갈애, 애착, 집착)는 증(憎: 증오, 미워함)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즉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애(愛: 갈애, 애착, 집착)가 증(憎: 증오, 미워함)을 낳기도 하며 반대로 증(憎: 증오, 미워함)이 애(愛: 갈애, 애착, 집착)를 낳기도 한다.[106] 그러나 자비 또는 사랑으로서의 애(愛)에는 이러한 면이 없다.
그리고 12연기설의 12지 가운데 제1지분인 무명(無明)과 제8지분인 애(愛)와 제9지분인 취(取)는 선 · 불선 · 무기의 3성에 따라 살펴보면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 불선 또는 번뇌이다. 이에 비해 나머지 지분들은 그 성질이 무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지분들은 선이 될 수도 있고 불선이 될 수도 있다. 즉 바른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그릇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즉 청정한 상태에 있을 수도 있고 오염된 상태에 있을 수도 있다. 12연기의 유전연기는 이들 지분들이 그릇된 상태로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다루고 있는 것이며, 반면 12연기의 환멸연기는 이들 지분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에 대해 특히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무명(無明) · 애(愛) · 취(取)는 그 성질이 본질적으로 불선 즉 악이기 때문에 이들이 바른 상태로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다만 이들을 끊음으로써 더 이상 마음이 이들과 계합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을 뿐이다.[119] 따라서 환멸연기에서 이들 3가지 지분은 변형[轉依]의 대상이 아니라 단멸(斷滅) 즉 원리(遠離: 멀리 떠남)의 대상이다.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나오는 욕애(欲愛) · 색애(色愛) · 무색애(無色愛)는 다음을 뜻한다.[106]
- 욕애(欲愛): 욕계의 애, 욕계의 법 즉 욕계의 사물을 애착하여 그 결과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욕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
- 색애(色愛): 색계의 애, 색계의 법 즉 색계의 사물을 애착하여 그 결과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색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
- 무색애(無色愛): 무색계의 애, 무색계의 법 즉 무색계의 사물을 애착하여 그 결과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것, 무색계를 떠나지 못하는 것
《마하지관》 제4권과 《천태사교의》와 《삼장법수》에 따르면,[120][121][122] 외적 대상인 색(色) · 성(聲) · 향(香) · 미(味) · 촉(觸)의 5경(五境)은 그 자체로는 갈애, 탐욕 또는 집착이 아니다.
- 5경은 그 자체로는 탐욕 · 집착 또는 갈애가 아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맛[味]이 들어있는데 이 맛은 능히 수행자[行人]로 하여금 반드시[須] 탐욕 · 집착 또는 갈애를 일으키게 한다. 비유하자면 마치 가짜 스승[陶師]이 사람들을 끌어들이지만 결국 아무런 성취도 얻을 수 없는 것처럼 5욕도 이와 같아서 항상 사람을 끌어들여서 온갖 마경(魔境)에 들어가게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5경이 지닌 맛에 의해 불러일으켜지는 5욕은 꾸짖을 만한 것[訶] 즉 항상 지켜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된다.
수연애(受緣愛) 또는 연수애(緣受愛), 즉 수(受)가 있으므로 애(愛)가 있다는 것은 수(受)의 그릇된 상태가 있기 때문에 번뇌 또는 불선인 애(愛)가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의 사물들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전도된 3수(三受)로부터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수연애(受緣愛) 또는 연수애(緣受愛)는 또한 이미 발생한 애(愛) 즉 3계의 어떤 사물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있다면,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의 각각을 떠나지 못하는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수(受)의 그릇된 상태 즉 전도된 고수 · 낙수 · 불고불락수의 하나 혹은 다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애(愛)는 욕애(欲愛) · 색애(色愛) · 무색애(無色愛)의 3애(三愛)를 뜻한다.[123][124]
-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애(愛)는 갈애(渴愛)라고 하여 맹목적인 애념(愛念)을 말한다. 고락 등의 감수작용이 강하면 그만큼 애증(愛憎)의 염(念)도 강해진다. 즉, 쾌락이 크면 그 쾌락을 가지려는 염이 강해지고, 고통이 크면 그 고통을 피하려는 염이 강해진다.[1]
(9) 취(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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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取, 산스크리트어: upādāna, 팔리어: upādāna, 영어: attachment)는 애연취(愛緣取)와 취연유(取緣有)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애연취는 연애취(緣愛取)라고도 하며 취연유는 연취유(緣取有)라고도 한다. 애연취 또는 연애취는 애(愛)가 있으므로 취(取)가 있다는 뜻이고, 취연유 또는 연취유는 취(取)가 있으므로 유(有)가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합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취(取)는 욕취(欲取) · 견취(見取) · 계취(戒取) · 아취(我取)의 4취(四取)를 말한다.[125][126] 이 가운데 계취는 계금취(戒禁取)라고도 하며, 아취는 아어취(我語取)라고도 한다.[127][128]
취(取)의 한자어 문자 그대로의 뜻은 가짐 또는 취함인데,[129] 모니어 모니어윌리엄스(Monier Monier-Williams)의 《산스크리트어-영어 사전》에 따르면 취(取)의 산스크리트어 원어 우파다나(upādāna)의 일반적인 의미는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취하는 행위(the act of taking for one's self),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전용(轉用: 쓸 곳에 쓰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려서 씀)하는 행위(appropriating to one's self), 받아들임(accepting), 허용함(allowing), 취함(taking), 획득함(acquiring) 등이 있고, 불교 용어로서는 '갈애 즉 탐욕이 원인이 되어 존재를 꽉 붙잡는 것 또는 집착하는 것으로 유 즉 새로운 태어남들의 원인이 되는 것(grasping at or clinging to existence caused by tṛṣṇā, desire, and causing bhava, new births)'이라고 정의되어 있다.[130] 이 후자의 불교 용어로서의 정의는 애연취(愛緣取)와 취연유(取緣有)의 의미를 합쳐서 취(取, upādāna)를 정의한 것이다.
현대의 불교 사전들에 따르면, 취(取)라는 낱말의 일반적인 의미는 집지(執持: 잡아서 가짐, 잡아서 지님, 잡은 후 버팀, 잡은 후 유지함[131]) · 집취(執取: 잡아서 가짐, 잡아서 취함, 잡은 후 받아들임, 잡은 후 의지함[132])인데, 좁은 뜻으로는 집착(執著: 꽉 붙잡은 후 들러붙음,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함)이라는 번뇌를 뜻하고, 넓은 뜻으로는 모든 번뇌(煩惱)를 뜻한다. 즉, 후자의 넓은 뜻으로는 취(取)는 번뇌의 다른 말인데, 4취(四取)라고 할 때의 취(取)는 이 후자의 뜻이다. 그리고 어떤 번뇌를 취(取)라고 할 때는 마음이 해당 번뇌의 대상을 그릇되이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한다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표현이다.[133][134][135]
4취(四取)는 모든 번뇌를 취(取)의 뜻에 초점을 맞추어 4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즉 대상을 그릇되이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한다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모든 번뇌를 4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설명하기 좋은 순서대로 말하면, 대체로 견취(見取)는 그릇된 견해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 계취(戒取) 또는 계금취(戒禁取)는 그릇된 계율과 그릇된 금지조항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 욕취(欲取)는 욕계의 사물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고, 아취(我取) 또는 아어취(我語取)는 색계 · 무색계의 사물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다. 구체적으로는 4취는 다음과 같다.[133][134]
- 4취
4취(四取, 산스크리트어: catvāry upādānāni, 팔리어: cattāri upādānāni)는 모든 번뇌, 정확히 말하면 108번뇌를 취(取)의 관점에서 욕취(欲取) · 견취(見取) · 계취(戒取) · 아취(我取)의 4그룹으로 분류한 것이다. 욕취에 34번뇌, 견취에 30번뇌, 계취에 6번뇌, 아취 또는 아어취에 38번뇌가 있어서 총 108번뇌를 이룬다.[133][134][136] 4취를 구역에서는 4수(四受)라고도 한다.[137]
- ① 욕취
욕취(欲取, 산스크리트어: kāmopādāna, 팔리어: kāmopādāna)는 욕계의 5욕(五欲)의 대상을 그릇되이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로, 달리 말하면, 욕계의 색 · 성 · 향 · 미 · 촉의 5경에 들러붙어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이다. 욕취에는 욕계의 6경 가운데 6번째인 법경(정신적 사물)에 대한 취(取)가 제외되는데, 이것은 4취 가운데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에 소속된다.
구체적으로, 욕취에 속한 번뇌들이란 욕계의 탐(貪) · 진(瞋) · 만(慢) · 무명(無明) · 의(疑) · 10전(十纏)을 말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욕취에 속한 번뇌들 중 탐 · 진 · 만 · 무명 · 의는 근본번뇌에 속하고 10전은 수번뇌에 속한다. 10전은 무참(無慙) · 무괴(無愧) · 질(嫉) · 간(慳) · 회(悔) · 면(眠) · 도거(掉擧) · 혼침(惛沈) · 분(忿) · 부(覆)를 말한다.[138][139]
설일체유부의 번뇌론에서 모든 근본번뇌는 견고소단(見苦所斷) · 견집소단(見集所斷) · 견멸소단(見滅所斷) · 견도소단(見道所斷) · 수도소단(修道所斷)의 5부(五部)의 관점에서 나뉘는데, 각각의 근본번뇌마다 5부 모두가 있는 경우도 있고 특정한 몇 부(部)만 있는 경우도 있다. 욕취에 속한 탐(貪) · 진(瞋) · 만(慢) · 무명(無明) · 의(疑) · 10전(十纏)을 5부에 따라 나누면, 욕계의 탐 · 진 · 만 · 무명에는 모두 5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총 20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의는 견소단의 번뇌이므로 수도소단을 제외한 4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4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10전은 수번뇌인데 비록 수번뇌에 대해서도 5부 분별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108번뇌를 헤아릴 때는 수번뇌는 5부로 나누는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140][141][142][143] 따라서 그대로 10가지의 번뇌가 되므로, 총 34가지의 번뇌가 있게 된다. 이들 34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34사(三十四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34번뇌가 욕취에 속한다.
- ② 견취
견취(見取, 산스크리트어: drsty-upādāna, 팔리어: ditthi-upādāna)는 3계의 그릇된 견해를 그릇되이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번뇌로서의 견(見) 즉 염오견 즉 그릇된 견해를 이루는 5견(五見) 가운데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견(見取見)의 4견을 말한다. 즉, 욕계의 4견, 색계의 4견, 무색계의 4견을 통칭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4견을 포함한 5견(五見)은 모두 근본번뇌에 속한다.
견취에 속한 3계의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 견취견을 5부에 따라 나누면 총 30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이들 30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30사(三十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30번뇌가 견취에 속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유신견(有身見)은 현행의 결과, 즉 4성제 가운데 고(苦), 즉 5취온에 대해 미혹하여 생겨난 견해이기 때문에 5부 가운데 오직 견고소단이다. 따라서 3계 각각에 유신견이 있으므로 유신견으로는 총 3가지의 번뇌가 있다.
변집견(邊執見)도 또한 5취온이라는 현행의 결과에 대해 영원한 것 혹은 영원히 소멸되는 것으로 주장하는 견해이기 때문에 5부 가운데 오직 견고소단이다. 따라서 3계 각각에 변집견이 있으므로 변집견으로는 총 3가지의 번뇌가 있다.
사견(邪見)은 인과를 부정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곧 4성제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견고소단 · 견집소단 · 견멸소단 · 견도소단의 4부가 존재한다. 따라서 3계 각각에 사견이 있으므로 사견으로는 총 12가지의 번뇌가 있다.
견취견(見取見)은 유신견 · 변집견 · 사견 등의 저열한 견해를 진리라고 주장하는 견해이기 때문에 견고소단 · 견집소단 · 견멸소단 · 견도소단의 4부가 존재한다. 따라서 3계 각각에 견취견이 있으므로 견취견으로는 총 12가지의 번뇌가 있다.
이상의 설명대로, 유신견에 3가지, 변집견에 3가지, 사견에 12가지, 견취견에 12가지의 번뇌가 있어서 견취는 총 30가지의 번뇌로 이루어져 있다.[144] (참고로 5견과 의는 모두 견소단의 번뇌이다. 5견과 의의 구체적인 5부 분별에 대해서는 '견소단(見所斷)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 ③ 계취·계금취
계취(戒取) 또는 계금취(戒禁取, 산스크리트어: śīla-vratopādāna, 팔리어: sīla-bbata-upādāna)는 3계의 그릇된 계율이나 그릇된 금지조항을 그릇되이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번뇌로서의 견(見) 즉 염오견 즉 그릇된 견해를 이루는 5견(五見) 가운데 계금취견(戒禁取見)을 말한다. 즉, 욕계의 계금취견, 색계의 계금취견, 무색계의 계금취견을 통칭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계금취견을 포함한 5견(五見)은 모두 근본번뇌에 속한다.
계금취에 속한 3계의 계금취견을 5부에 따라 나누면 총 6가지의 번뇌가 있게 되고, 이들 6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6사(六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6번뇌가 계금취에 속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계금취견(戒禁取見)은 한편으로는 자재천 등이 5온과 세계의 참된 원인이 아님에도 그것을 참된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현행의 결과, 즉 4성제 가운데 고(苦), 즉 5취온에 대한 바른 관찰이 있을 때, 즉 고제현관(苦諦現觀)이 있을 때 바로 끊어지는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견고소단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계금취견은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고행이 참된 길이 아닌데 그것을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참된 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그릇된 견해이기 때문에 견도소단이다. 따라서 3계 각각에 계금취견이 있으므로 계금취견으로는 총 6가지의 번뇌가 있다.[144] (참고로 5견과 의는 모두 견소단의 번뇌이다. 5견과 의의 구체적인 5부 분별에 대해서는 '견소단(見所斷)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 ④ 아취·아어취
아취(我取) 또는 아어취(我語取, 산스크리트어: ātma-vādopādāna, 팔리어: atta-vādupādāna)에서 아취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나를 취하는 것'으로 '나에 대한 집착'을 뜻한다. 아어취의 문자 그대로의 뜻은 '나에 대한 말을 취하는 것'으로 '(계속하여) 나에 대해 말하는 집착'을 뜻한다. 아취 또는 아어취는 색계 · 무색계의 사물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로, 달리 말하면, 색계 · 무색계의 소의신의 뛰어난 상태를 '나'라고 여겨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즉, 색계 · 무색계의 소의신의 뛰어난 상태를 그릇되이 좋아하여[惡欲] 취한 후 그것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성격의 번뇌들을 통칭한다.
구체적으로는, 색계와 무색계의 탐(貪) · 만(慢) · 무명(無明) · 의(疑)를 말한다. 번뇌를 근본번뇌와 수번뇌로 구분할 때, 이들은 모두 근본번뇌에 속한다. 욕취의 경우와는 달리 아취 또는 아어취에는 진(瞋)이 포함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진(瞋)은 욕계에만 존재하는 번뇌이기 때문이다.[145]
아취 또는 아어취에 속한 색계와 무색계의 탐(貪) · 만(慢) · 무명(無明) · 의(疑)를 5부에 따라 나누면, 색계와 무색계의 탐 · 만 · 무명에는 모두 5부가 존재하기 때문에 색계에 15가지 번뇌가 있고 무색계에 15가지의 번뇌가 있어 총 30가지의 번뇌가 있다.
의는 오직 견소단의 번뇌이기 때문에 5부 가운데 수도소단이 제외되므로 색계에 4가지가 있고 무색계에 4가지가 있어서 총 8가지의 번뇌가 있다.
따라서, 아취 또는 아어취에는 총 38가지의 번뇌가 있게 된다. 이들 38번뇌를 전통적인 표현으로 38사(三十八事)라고 한다. 즉, 108번뇌 중 38번뇌가 아취 또는 아어취에 속한다. (참고로 5견과 의는 모두 견소단의 번뇌이다. 5견과 의의 구체적인 5부 분별에 대해서는 '견소단(見所斷)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애연취(愛緣取) 또는 연애취(緣愛取), 즉 애(愛)가 있으므로 취(取)가 있다는 것은 번뇌 또는 불선인 애(愛)가 있기 때문에 108번뇌, 즉 근본번뇌와 수번뇌를 합한 온갖 번뇌 또는 불선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계의 사물들에 들러붙어서 떠나지 못하는 상태인 욕애(欲愛) · 색애(色愛) · 무색애(無色愛)의 3애(三愛)가 원인이 되어서 그러한 들러붙음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또한 더욱 고착화되는 것을 말한다.
애연취(愛緣取) 또는 연애취(緣愛取)는 또한 이미 발생한 취(取) 즉 3계의 갖가지 번뇌가 있고 3계의 사물에 아주 확고히 들러붙어 있어서 이들로부터 떠나는 것이 거의 기대도 되지 않는 상태가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욕애(欲愛) · 색애(色愛) 또는 무색애(無色愛)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취(取)는 욕취(欲取) · 견취(見取) · 계금취(戒禁取) · 아어취(我語取)의 4취(四取)를 뜻한다.[127][128]
-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취(取)는 집착(執着) 또는 번뇌(煩惱)를 의미하는데, 제8지분인 애(愛)를 연하여 일어나는, 대상에 대한 강한 취사선택(取捨選擇)의 행동이다.[1] 다른 학자에 따르면, 취(取)는 번뇌가 강화되고 이에 따라 아집(我執) 즉 번뇌장(煩惱障)이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146] 아집(我執)은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는 견해로,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뜻에서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한다.
(10) 유(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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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有, 산스크리트어: bhava, 팔리어: bhava, 영어: becoming)는 취연유(取緣有)와 유연생(有緣生)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취연유는 연취유(緣取有)라고도 하며 유연생은 연유생(緣有生)이라고도 한다. 취연유 또는 연취유는 취(取)가 있으므로 유(有)가 있다는 뜻이고, 유연생 또는 연유생은 유(有)가 있으므로 생(生)이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합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유(有)는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의 3유(三有)를 말한다.[147][148]
3유(三有)는 세계라는 측면에서는 3계를 뜻하고, 유정이라는 존재의 측면에서는 욕계의 유정 · 색계의 유정 · 무색계의 유정을 뜻한다. 유정이란 명색의 화합체 즉 5온의 화합체를 말하는 것으로, 유전연기의 관점에서는 취(取) 즉 온갖 번뇌에 물들어 있는 5온, 즉 5취온을 말한다. 따라서, 유전연기의 관점에서는 유(有)는 5취온을 말하며, 달리 말하면, 번뇌로 인해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 즉 윤회할 수 밖에 없는 상태의 삶을 말한다.[149][150][151][152]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의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5온으로 하여금 5취온이 되게 하는 근본 요인은 욕탐(欲貪)이다. 고타마 붓다는 "5온이 곧 취(取: 구역에서는 受라고도 함)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5온이 취(取)와 다른 것도 아니다. 5온에 욕탐(欲貪)이 있으면 5온이 곧 5취온이 된다[非五陰即受 亦非五陰異受 能於彼有欲貪者 是五受陰]"고 말하고 있다.[153][154][155][156]
취연유(取緣有) 또는 연취유(緣取有), 즉 취(取)가 있으므로 유(有)가 있다는 것은 욕취(欲取) · 견취(見取) · 계취(戒取) · 아취(我取)의 4취(四取) 즉 108번뇌에 물든 상태가 있기 때문에 5취온이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즉, 갖가지 번뇌가 있기 때문에 욕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색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무색계의 유정으로서의 존재이건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취연유(取緣有) 또는 연취유(緣取有)는 또한 이미 발생한 유(有) 즉 욕유(欲有) · 색유(色有) 또는 무색유(無色有)로서의 존재가 있고 이러한 존재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취(取)가 존재한다는 것, 즉 갖가지 번뇌에 물든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이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었으며, 5취온의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유(有)는 욕유(欲有) · 색유(色有) · 무색유(無色有)의 3유(三有)를 뜻한다.[157][158]
-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유(有)는 현존재 또는 현재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애(愛)와 취(取)의 행위가 잠재의식화되는 것에 의해, 즉 자신의 성품 · 마음 · 습관 · 체질의 일부가 되는 것에 의해 현존재인 유(有)가 규정된다.[1]
(11) 생(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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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生, 산스크리트어: jāti, 팔리어: jāti, 영어: birth)은 유연생(有緣生)과 생연노사(生緣老死)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유연생은 연유생(緣有生)이라고도 하며 생연노사는 연생노사(緣生老死)라고도 한다. 유연생 또는 연유생은 유(有)가 있으므로 생(生)이 있다는 뜻이고, 생연노사 또는 연생노사는 생(生)이 있으므로 노사(老死)가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들은 모두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합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생(生)은 각각의 중생(衆生)이 각각의 몸의 종류로 한 번의 생을 넘어 화합하여 태어나서는, 음(陰)을 득하고, 계(界)를 득하고, 입처(入處)를 득하고, 명근(命根)을 득하는 것을 말한다.[159][160]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나오는 각 낱말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 각각의 중생[彼彼衆生]은 유정(有情)의 구역(舊譯)으로,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3유의 세계 가운데 어느 하나에서 소의신을 가지고 살고 있는 개개의 유정을 말한다.
- 각각의 몸의 종류[彼彼身種類]는 중동분(衆同分) 즉 유정의 동류상사성(同類相似性)을 말한다.
- 한 번의 생을 넘어 화합하여 태어나는 것[一生超越和合出生]은 5온의 화합이 한 번의 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상속(相續)되고 유전(流轉)하는 것을 말한다.
- 음(陰)을 득하는 것[得陰]은 5온이 갖추어지는 것을 말한다.
- 계(界)를 득하는 것[得界]은 18계가 갖추어지는 것을 말한다.
- 입처(入處)를 득하는 것[得入處]은 12처가 갖추어지는 것을 말한다.
- 명근(命根)을 득하는 것[得命根]은 생에서 생으로 윤회할 때 즉 5온이 생에서 생으로 상속되고 유전할 때 전생(前生)에 쌓은 원인에 따라 일정한 수명을 부여받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또한 그 수명 동안 살아가는 것 즉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한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란, 그 생애 동안 무명(無明)에서 유(有) 즉 5취온으로 이어지는 유전연기를 행하거나 무명(無明)을 단멸시키고 나아가 유(有) 즉 5취온을 5무루온으로 변형시키는 환멸연기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유연생(有緣生) 또는 연유생(緣有生), 즉 유(有)가 있으므로 생(生)이 있다는 것은 욕유 · 색유 · 무색유의 3유 가운데 어느 하나의 존재, 즉 5취온의 상태가 있으므로, 즉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는 상태가 있으므로 태어남이 생겨난다는 것 즉 다른 일생을 받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것은 5취온은 죽음으로 그냥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생으로 상속되고 유전된다는 것을 뜻한다.
유연생(有緣生) 또는 연유생(緣有生)은 또한 이미 발생한 생이 있다면, 즉 생사윤회를 벗어나지 못하여 받은 삶이 있다면, 즉 자신이 3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라면, 반드시 그 원인이 되는 유(有)가 존재한다는 것, 즉 5취온의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순대고취(純大苦聚)의 상태의 즉 5취온의 상태의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생(生)은 각각의 유정(有情)이 각각의 유정의 종류로 갖가지 생에서 6취[趣] 가운데 태어나서는 온(蘊)을 일으켜 나타내고, 계(界)를 득하고, 처(處)를 득하고, 모든 온(蘊)을 득하고, 명근(命根)이 생기고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161][162]
-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생(生)은 유(有)에 의해서 있게 된다.[1]
(12) 노사(老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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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老死, 산스크리트어: jarā-maraṇa, 팔리어: jarā-maraṇa, 영어: aging (old age), decay and death)는 생연노사(生緣老死)의 연기관계에서 한 지분을 이루고 있는데, 생연노사는 연생노사(緣生老死)라고도 한다. 생연노사 또는 연생노사는 생(生)이 있으므로 노사(老死)가 있다는 뜻이며, 또한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최종적으로 순대고취(純大苦聚) 즉 5취온이 형성[集]되어 생사윤회가 반복되는 것을 뜻한다.
- 잡아합경
《잡아함경》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노사(老死)는 노(老)와 사(死) 즉 늙음과 죽음을 통칭하는 말이다.[163][164]
노(老) 즉 늙음은 털이 하얗게 세고 정수리가 벗겨지며, 가죽이 늘어지고 5근[根]이 문드러지며, 4지[支]가 약해지고 등이 굽어지며, 머리를 떨어뜨리고 끙끙 앓으며, 숨이 짧아져 헐떡이며,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몸이 검게 변하며, 온몸에 저승꽃이 피며, 정신이 희미해져 멍청히 있으며, 거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지는 것을 말한다.[163][164]
사(死) 즉 죽음은 각각의 중생(衆生)이 해당되는 무리로부터 사라지고 천이(遷移)하며, 몸이 무너지고, 수(壽)가 다하고, 따뜻한 기운[火]이 떠나고, 명(命)이 소멸하여, 음(陰: 5온)을 버릴 때가 온 것을 말한다.[163][164]
생연노사(生緣老死) 또는 연생노사(緣生老死), 즉 생(生)이 있으므로 노사(老死)가 있다는 것은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것으로, 열반에 이른 상태가 아닌 한 생사윤회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미 발생한 노사(老死) 즉 늙음과 죽음이 있다면, 반드시 그 기본 전제가 되는 생(生) 즉 태어남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기관계를 통해 순대고취(純大苦聚)의 상태의 즉 5취온의 상태의 생사윤회가 반복된다는 것을 뜻한다.
- 연기경
《연기경》의 고타마 붓다의 설명에 따르면, 노사(老死)는 노(老)와 사(死) 즉 늙음과 죽음을 통칭하는 말이다.[165][166]
노(老) 즉 늙음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변하며, 피부가 늘어지고 쭈그러지며, 온몸이 쇠약해지고 제 모습을 잃어가며, 몸과 등은 구부러지고 굽으며, 검버섯이 몸의 여기저기에 피어나며, 숨결은 가빠지며, 몸의 모양은 구부정해져서 지팡이에 의지하며, 정신은 혼미하고 몸은 파리하여 줄어들고 쇠퇴하며, 5근[諸根]이 노화하여 기능을 상실해가며,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우며, 몸의 형태가 무너져 가는 것을 말한다.[165][166]
사(死) 즉 죽음은 각각의 유정(有情)이 해당되는 무리로부터 마침내 사라지고 없어지며, 수(壽)와 온기[煖]를 버리고, 명근(命根)이 다하여 없어지고, 모든 온(蘊: 5온)을 버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 그 운용[運]이 다한 것을 말한다.[165][166]
- 현대의 해석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노사(老死)의 고(苦)가 유(有)와 생(生)에 의해서 있게 된다.[1]
같이 보기
편집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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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각주
편집-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차 카 타 파 하 거 너 더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근본불교의 사상 > 12인연,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12인연: 十二因緣 12인연은 12연기·12지연기(十二支緣起)라고도 하며 12지, 즉 12항목으로 된 연기의 설(說)을 의미한다. 연기의 법칙의 구체적 내용은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그것도 없다"라고 하는 '이것'과 '그것'의 두 개 항목에 대해서 그 두 가지가 연기관계(緣起關係)에 있다고 하는 상태를 표시한 것이며 4체설(四諦說)의 고집멸도(苦集滅道)도 고·집, 멸·도라는 연기(緣起)하는 두 가지 항목을 두 가지씩 병렬한 것이다. 그 밖에도 갖가지 항목의 것이 있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서 설명된 것이 12항목으로 이루어진 십이지연기설이다. 그 12지의 내용을 보면, (1) 무명(無明)이란 명(明), 즉 지혜가 없다는 것, 현실적으로는 연기의 도리를 올바르게 알 지혜가 없고 올바른 인생관·세계관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2) 행(行)이란 행위와 그 행위 경험의 축적(蓄積)을 말하는 것으로서, 만일 무명에 의하여 야기된 행위라면 필연적으로 고뇌에로 이끌어갈 그릇된 행(行)이 된다. (3) 식(識)이라 함은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전5식(前五識)에 의한 감각작용과 제6의식에 의한 지각(知覺)·추리(推理)·기억(記憶)·판단(判斷) 등 일체의 의식작용 및 이러한 작용을 하는 주체적 존재를 총칭하는 것으로서, 과거의 모든 행위(行)가 잠재의식이 되어서 작용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4) 명색(名色)은 정신적인 것(名)과 물질적인 것(色)으로서 이 현상세계의 존재를 가리킨다. (5) 6입(六入)은 6처(六處)·6근(六根)이라고도 하며 6개의 감각기관으로서 이 감각기관을 통해 식(識)이 작용하게 되어 명색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6입과 명색과 식과의 접촉이 (6) 촉(觸)이며, 그 접촉 위에서 생기는 고락 등의 감수작용이며, (7) 수(受)이다. (8) 애(愛)는 갈애(渴愛)라고 하여 맹목적인 애념(愛念)을 말한다. 감수작용이 강하면 애증(愛念)의 염(念)도 그만큼 강한 것이다. (9) 취(取)는 집착을 말하는 것으로서 애증의 염(念)에서 일어나는 강한 취사선택(取捨選擇)의 행동이며, 이러한 애(愛)·취(取)라는 행위가 잠재적으로 되는 데에 현존재, 즉 (10) 유(有)가 규정되며 그것에 의해서 (11) 생(生)이, (12) 노사(老死)의 고(苦)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a11 - T02n0099_p0085b20
"(二九八) 如是我聞。 一時。佛住拘留搜調牛聚落。 爾時。世尊告諸比丘。我今當說緣起法法說.義說。諦聽。善思。當為汝說。 云何緣起法法說。謂此有故彼有。此起故彼起。謂緣無明行。乃至純大苦聚集。是名緣起法法說。 云何義說。謂緣無明行者。彼云何無明。若不知前際.不知後際.不知前後際。不知於內.不知於外.不知內外。不知業.不知報.不知業報。不知佛.不知法.不知僧。不知苦.不知集.不知滅.不知道。不知因.不知因所起法。不知善不善.有罪無罪.習不習。若劣.若勝.染污.清淨。分別緣起。皆悉不知。於六觸入處。不如實覺知。於彼彼不知.不見.無無間等.癡闇.無明.大冥。是名無明。 緣無明行者。云何為行。行有三種。身行.口行.意行。緣行識者。云何為識。謂六識身。眼識身.耳識身.鼻識身.舌識身.身識身.意識身。緣識名色者。云何名。謂四無色陰。受陰.想陰.行陰.識陰。云何色。謂四大.四大所造色。是名為色。此色及前所說名是為名色。緣名色六入處者。云何為六入處。謂六內入處。眼入處.耳入處.鼻入處.舌入處.身入處.意入處。緣六入處觸者。云何為觸。謂六觸身。眼觸身.耳觸身.鼻觸身.舌觸身.身觸身.意觸身。緣觸受者。云何為受。謂三受。苦受.樂受.不苦不樂受。緣受愛者。彼云何為愛。謂三愛。欲愛.色愛.無色愛。緣愛取者。云何為取。四取。欲取.見取.戒取.我取。緣取有者。云何為有。三有。欲有.色有.無色有。緣有生者。云何為生。若彼彼眾生。彼彼身種類一生。超越和合出生。得陰.得界.得入處.得命根。是名為生。緣生老死者。云何為老。若髮白露頂。皮緩根熟。支弱背僂。垂頭呻吟。短氣前輸。柱杖而行。身體黧黑。四體班駮。闇鈍垂熟。造行艱難羸劣。是名為老。云何為死。彼彼眾生。彼彼種類沒.遷移.身壞.壽盡.火離.命滅。捨陰時到。是名為死。此死及前說老。是名老死。是名緣起義說。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59-462 / 2145
"298.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수의 조우라고 하는 마을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연기법(緣起法)에 있어서 그 법에 대한 설명[法說]과 뜻에 대한 설명[義說]을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무엇이 연기법의 법에 대한 설명인가?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느니라. 이것을 연기법의 법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느니라.
무엇이 연기법의 뜻에 대한 설명인가?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고 한다면 그 어떤 것을 무명(無明)이라 하는가? 만일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알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안을 알지 못하고 밖을 알지 못하고 안팎을 알지 못하며, 업(業)을 알지 못하고 과보(果報)를 알지 못하고 업과 과보를 알지 못하며,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법을 알지 못하고 승가를 알지 못하며,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발생을 알지 못하며, 소멸을 알지 못하고 길을 알지 못하며, 인(因)을 알지 못하고 인이 일으키는 법을 알지 못하며, 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죄가 있고 죄가 없음과 익히고 익히지 않음과 못나고 뛰어남과 더럽고 깨끗함과 연기에 대한 분별을 모두 알지 못하며, 6촉입처를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빈틈없고 한결같음[無間等]이 없어 어리석고 컴컴하며, 밝음이 없고 크게 어두우면 이것을 무명이라고 하느니라.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행(行)이라고 하는가? 행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몸의 행[身行]·입의 행[口行]·뜻의 행[意行]이니라.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식(識)이라고 하는가? 6식신(識身)을 이르는 말이니, 안식신(眼識身)·이식신(耳識身)·비식신(鼻識身)·설식신(舌識身)·신식신(身識身)·의식신(意識身)이니라.
식을 인연하여 명색(名色)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명(名)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네 가지 형상[色]이 없는 음(陰)이니, 즉 수음(受陰)·상음(想陰)·행음(行陰)·식음(識陰)이니라. 어떤 것을 색(色)이라고 하는가? 4대(大)와 4대로 만들어진 것을 색이라고 말한다. 이 색과 앞에서 말한 명을 합해 명색이라고 하느니라.
명색을 인연하여 6입처(入處)가 있다 하니, 어떤 것을 6입처라고 하는가? 6내입처(內入處)를 일컫는 말이니, 안입처(眼入處)·이입처(耳入處)·비입처(鼻入處)·설입처(舌入處)·신입처(身入處)·의입처(意入處)이니라.
6입처를 인연하여 접촉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접촉[觸]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6촉신(觸身)이니, 안촉신(眼觸身)·이촉신(耳觸身)·비촉신(鼻觸身)·설촉신(舌觸身)·신촉신(身觸身)·의촉신(意觸身)이니라.
접촉을 인연하여 느낌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느낌[受]이라고 하는가? 3수(受)를 이르는 말이니, 괴롭다는 느낌·즐겁다는 느낌·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느낌을 인연하여 애욕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애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애(愛)이니, 욕애(欲愛)·색애(色愛)·무색애(無色愛)이니라.
애욕을 인연하여 취함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취함[取]이라고 하는가? 4취(取)이니, 탐욕에 대한 취함[欲取]·소견에 대한 취함[見取]·계에 대한 취함[戒取]·나에 대한 취함[我取]이니라.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존재[有]라고 하는가? 3유(有)이니, 탐욕의 존재[欲有]·빛깔의 존재[色有]·빛깔이 없는 존재[無色有]이니라.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태어남[生]이라고 하는가? 만일 이러저러한 중생들이 이러저러한 몸의 종류로 생겨나, 뛰어넘고 화합하고 태어나서 음(陰)을 얻고, 계(界)를 얻고, 입처(入處)를 얻고, 명근(命根)을 얻으면 이것을 태어남이라고 하느니라.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늙음[老]이라고 하는가? 만일 털이 하얗게 세고 정수리가 벗겨지며, 가죽이 늘어지고 감각기관이 문드러지며, 사지가 약해지고 등이 굽으며, 머리를 떨어뜨리고 끙끙 앓으며, 숨이 짧아져 헐떡이고 앞으로 쏠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몸이 시커멓게 변하고 온몸에 저승꽃이 피며, 정신이 희미해져 멍청히 있고 거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지면 이것을 늙음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죽음[死]이라고 하는가? 이러저러한 중생들이 이러저러한 종류로 사라지고, 옮기며, 몸이 무너지고, 수(壽)가 다하며, 따뜻한 기운이 떠나고, 명(命)이 소멸하여 음(陰)을 버릴 때가 이르면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이 죽음과 앞에서 말한 늙음을 합해 늙음과 죽음이라고 한다. 이것을 연기의 뜻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 현장(玄奘)이 한역한 『연기경(緣起經)』 을 참조하라."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K.736, T.124). 《연기경》. 한글대장경 검색시스템 - 전자불전연구소 / 동국역경원. K.736(19-668), T.124(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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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 현장 한역 (T.124). 《연기경(緣起經)》. 대정신수대장경. T02, No. 124. CBE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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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외부 링크가 있음 (도움말)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a12 - T02n0099_p0085a16. 연기법의 정의 또는 본질[法, 初]
"爾時。世尊告諸比丘。我今當說緣起法法說.義說。諦聽。善思。當為汝說。 云何緣起法法說。謂此有故彼有。此起故彼起。謂緣無明行。乃至純大苦聚集。是名緣起法法說。"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0 / 2145. 연기법의 정의 또는 본질[法, 初]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연기법(緣起法)에 있어서 그 법에 대한 설명[法說]과 뜻에 대한 설명[義說]을 말하리라.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무엇이 연기법의 법에 대한 설명인가?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느니라. 이것을 연기법의 법에 대한 설명이라고 하느니라."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b14 - T02n0124_p0547b21. 연기법의 정의 또는 본질[法, 初]
"爾時世尊告苾芻眾。吾當為汝宣說緣起初差別義。汝應諦聽極善思惟吾今為汝分別解說。苾芻眾言。唯然願說。我等樂聞。佛言。云何名緣起初。謂依此有故彼有。此生故彼生所謂無明緣行。行緣識。識緣名色。名色緣六處。六處緣觸。觸緣受。受緣愛。愛緣取。取緣有。有緣生。生緣老死。起愁歎苦憂惱是名為純大苦蘊集。如是名為緣起初義。"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p. 1-2 / 4. 연기법의 정의 또는 본질[法, 初]
"그 때 세존께서 필추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들에게, 연기의 처음[緣起初]과 그 차별된 이치[差別義]를 말하겠다. 그대들은 반드시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내가 이제 그대들을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리라.”
여러 필추들은 말하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디 말씀하여 주십시오. 저희들은 듣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을 연기의 처음이라고 하는가. 이는 이것이 있으므로 해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김으로 해서 저것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무명(無明)은 행(行)의 연(緣)이 되고, 행은 식(識)의 연이 되고, 식은 명색(名色)의 연이 되고, 명색은 6처(處)의 연이 되고, 6처는 촉(觸)의 연이 되고, 촉은 수(受)의 연이 되고, 수는 애(愛)의 연이 되고, 애는 취(取)의 연이 되고, 취는 유(有)의 연이 되고, 유는 생(生)의 연이 되고, 생(生)은 노사(老死)의 연이 되어서, 걱정ㆍ한탄ㆍ괴로움ㆍ근심ㆍ번뇌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을 순수하게 큰 괴로움의 온[純大苦蘊]이 집(集)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것을 연기의 처음 이치[緣起初義]라고 한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a28 - T02n0099_p0085b02.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p. 460-461 / 2145.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08 - T02n0124_p0547c12.
- ↑ 가 나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3 / 4.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b06 - T02n0099_p0085b07.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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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봉수 (1993). 《원시불교 원전의 이해》. 서울: 불광출판부. 31쪽.
- ↑ 가 나 다 라 마 바 사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사상 > 근본불교의 사상 > 순관·역관,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 ↑ 가 나 미륵 조, 현장 한역 & T.1579, 제52권. p. T30n1579_p0587c25 - T30n1579_p0588a10. 유전(流轉)
"復次云何流轉。謂諸行因果相續不斷性。是謂流轉。又此流轉差別多種。或有種子流轉。謂有種子不現前諸法。或有自在勢力流轉。謂被損種子現行諸法。或有種果流轉。謂有種子種不被損現行諸法。或有名流流轉。謂四非色蘊。或有色流流轉。謂諸內外十有色處及與法處所攝諸色。又有欲界流流轉。謂欲纏諸行。又有色界流流轉。謂色纏諸行。又有無色流流轉。謂無色纏諸行。又有樂流流轉。謂樂受及彼所依處。如是苦流流轉不苦不樂流流轉當知亦爾。又有善流流轉。謂諸善行。又有不善流流轉。謂諸不善行。又有無記流流轉。謂諸無記行。又有順流流轉。謂順緣起。又有逆流流轉。謂逆緣起。"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a16 - T02n0099_p0085a25. 무명(無明)
"謂緣無明行者。彼云何無明。若不知前際.不知後際.不知前後際。不知於內.不知於外.不知內外。不知業.不知報.不知業報。不知佛.不知法.不知僧。不知苦.不知集.不知滅.不知道。不知因.不知因所起法。不知善不善.有罪無罪.習不習。若劣.若勝.染污.清淨。分別緣起。皆悉不知。於六觸入處。不如實覺知。於彼彼不知.不見.無無間等.癡闇.無明.大冥。是名無明。"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0 / 2145. 무명(無明)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고 한다면 그 어떤 것을 무명(無明)이라 하는가? 만일 과거를 알지 못하고 미래를 알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며, 안을 알지 못하고 밖을 알지 못하고 안팎을 알지 못하며, 업(業)을 알지 못하고 과보(果報)를 알지 못하고 업과 과보를 알지 못하며, 부처님을 알지 못하고 법을 알지 못하고 승가를 알지 못하며, 괴로움을 알지 못하고 발생을 알지 못하며, 소멸을 알지 못하고 길을 알지 못하며, 인(因)을 알지 못하고 인이 일으키는 법을 알지 못하며, 착함과 착하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죄가 있고 죄가 없음과 익히고 익히지 않음과 못나고 뛰어남과 더럽고 깨끗함과 연기에 대한 분별을 모두 알지 못하며, 6촉입처를 사실 그대로 깨달아 알지 못하고, 이러저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며, 빈틈없고 한결같음[無間等]이 없어 어리석고 컴컴하며, 밝음이 없고 크게 어두우면 이것을 무명이라고 하느니라." - ↑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1c07 - T31n1602_p0481c08. 무치(無癡)
"無癡者。謂正了真實為體。能斷癡障為業。如前乃至增長無癡為業。如經說無癡善根。"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 K.571, T.1602, 제1권. p. 18 / 293. 무치(無癡)
"치(無癡)95) 심소는 진실을 바르게 아는 것을 체성으로 삼고, 능히 어리석음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으며,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무치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무치의 선근”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95) 무치(無痴, amoha) 심소는 모든 사리를 밝게 이해하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c27. 무치선근(無癡善根)
"云何無癡。謂癡對治。以其如實正行為性。"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4 / 12. 무치선근(無癡善根)
"어떤 것이 무치(無癡)인가. 이는 우치를 대치하는 것이니, 진실대로 바르게 행하는 것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 T.1613, p. T31n1613_p0852b01 - T31n1613_p0852b03. 무치선근(無癡善根)
"云何無癡。謂癡對治。如實正行為性。如實者略。謂四聖諦廣。謂十二緣起。於彼加行。是正知義。業亦如無貪說。"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 K.619, T.1613, p. 8 / 24. 무치선근(無癡善根)
"무엇을 어리석지 않음[無癡]이라고 하는가?
어리석음을 다스리고, 여실(如實)하고 바르게 행동함[正行]을 성질로 한다. 여실하게란 간략하게 말하면 4성제(聖諦)이고, 넓게 말하면 12연기(緣起)이다. 이들에 대해서 행위를 더하는 것이 바로 앎[正知]의 뜻이다. 행동양식은 또한 탐욕 없음[無貪]에서 말한 것과 같다."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b22 - T02n0124_p0547c04. 무명(無明)
"云何名為緣起差別。謂無明緣行者。云何無明。謂於前際無知。於後際無知。於前後際無知。於內無知。於外無知。於內外無知。於業無知。於異熟無知。於業異熟無知。於佛無知於法無知於僧無知。於苦無知於集無知於滅無知於道無知。於因無知於果無知。於因已生諸法無知。於善無知於不善無知。於有罪無知於無罪無知。於應修習無知於不應修習無知。於下劣無知於上妙無知。於黑無知於白無知。於有異分無知。於緣已生或六觸處。如實通達無知。如是於彼彼處如實無知。無見無現觀。愚癡無明黑闇。是謂無明。"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2 / 4. 무명(無明)
"무엇을 연기의 차별된 것이라고 하는가. 즉 무명은 행(行)의 연이 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무명인가. 무명이란 다음과 같은 것을 말한다. 즉 과거에도 앎[知]이 없고 미래에도 앎이 없고 과거와 미래에도 앎이 없으며, 안에도 앎이 없고 밖에도 앎이 없고 안과 밖에도 앎이 없으며, 업(業)에도 앎이 없고 이숙(異熟)에도 앎이 없고 업과 이숙에도 앎이 없으며, 부처에도 앎이 없고 법에도 앎이 없고 승가에도 앎이 없다.
그리고 고제(苦諦)에도 앎이 없고 집제(集諦)에도 앎이 없고 멸제(滅諦)에도 앎이 없고 도제(道諦)에도 앎이 없으며, 원인에도 앎이 없고 결과에도 앎이 없고 원인에서 생겨난 모든 법에도 앎이 없으며, 착한 일에도 앎이 없고 착하지 못한 일에도 앎이 없으며 죄가 있음에도 앎이 없고 죄가 없음에도 앎이 없다.
또한 반드시 닦아 익혀야 하는 것에도 앎이 없고 반드시 닦아 익혀서는 안 되는 것에도 앎이 없으며, 열등한 것에도 앎이 없고 가장 미묘한 것에도 앎이 없으며, 나쁜 행동에도 앎이 없고 착한 행동에도 앎이 없고 나쁜 행동과 착한 행동에도 앎이 없으며, 인연이 생겨난 6촉처(觸處)에도 그대로 일관하여 앎이 없다.
이와 같이 그 곳곳마다 철저하게 앎도 없고 식견도 없고 확실히 진리를 아는 것[現觀]도 없어서, 어리석고 무지하고 우매한 것, 이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a25 - T02n0099_p0085a26. 행(行)
"緣無明行者。云何為行。行有三種。身行.口行.意行。"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0 / 2145. 행(行)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행(行)이라고 하는가? 행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몸의 행[身行]·입의 행[口行]·뜻의 행[意行]이니라." - ↑ 가 나 星雲, "三行". 2013년 3월 10일에 확인
"三行: (一)指身、口、意三業。中觀論有「起三行」之語,即為起動三業之謂。(參閱「三業」638)
(二)三行又指:(一)福行,即行十善等福,能招感天上、人間之果。(二)罪行,又稱非福行。即行十惡等罪,能招感三惡道之苦。(三)不動行,又稱無動行。即修有漏之禪定,能招感色界、無色界之果。因禪定不動,感果不動,福行罪行,非如異變,故稱不動。〔大智度論卷八十八〕 p550" - ↑ 가 나 星雲, "三業". 2013년 3월 10일에 확인
"三業: 梵語 trīni-karmāni。(一) 身口意三業。(一)身業,指身所作及無作之業,有善有惡,若殺生、不與取、欲邪行等為身惡業;若不殺、不盜、不淫,即為身善業。(二)口業,又作語業,指口所作及無作之業,有善有惡,若妄語、離間語、惡語、綺語等為口惡業;若不妄語、不兩舌、不惡語、不綺語則為口善業。(三)意業,指意所起之業,有善有惡,若貪欲、瞋恚、邪見等為意惡業;若不貪、不瞋、不邪見則為意善業。此外,另有非善非惡、無感果之力的無記之身口意三業。〔別譯雜阿含經卷五、大毘婆沙論卷一一三、集異門足論卷六、大乘法苑義林章卷三末〕(參閱「業道」5502)" - ↑ 운허, "業感緣起(업감연기)". 2013년 3월 10일에 확인
"業感緣起(업감연기): 세계에 있어서 일체의 만상은 다 우리들의 업에 의하여 생긴다는 도리. 이는 불교의 원시적 실천상의 근본 교리로 대개 소승에서 주장하는 『구사론(俱舍論)』ㆍ『바사론(婆沙論)』 등에서 말한 것. 불교에서는 처음부터 중생과 세계는 중생들 제각기의 업력에 의하여 생겨지는 것이라 하므로, 마음의 자유ㆍ부자유는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음. 우리들은 각기 뜻을 결정하고, 그 결정을 동작과 말로 발표하여 업력이 되고 업력에 의하여 잠재세력도 되는 것이니, 이들의 세력은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그 결과를 불러온다고 함. 그리하여 인생이나 세계가 모두 이 업이 결과라 함. 인생과 세계가 천차만별임에 따라 업도 차별이 없지 않음. 여기에 미(迷)의 세계와 오(悟)의 세계가 있음. 업감연기는 흔히 미의 세계를 설명하는 것임. 중생에게는 6취의 차별이 있어, 다 각각 주체인 중생과 중생이 의지하여 사는 국토가 있는데, 사람으로 말하면 몸과 세계임. 그런데 중생의 몸인 정보(正報)는 부모가 종극(終極)의 원인이 아니고 전세에서 자기가 뿌린 업력(業力)의 종자에 의하여 지금 이 과보를 받은 것임. 그 순서는 사유(死有)ㆍ중유(中有)ㆍ생유(生有)ㆍ본유(本有)의 차례로서 끝없는 옛적부터 번뇌로 업을 짓고, 업에 의하여 윤회전생(輪廻轉生)하며 그치지 못하는 것임. 또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전세의 업에 의하여 좌우될 뿐 아니라, 국토도 물질의 원소들이 모이고 흩어지고 하여 세계를 이룩하는 것도 업력에 의한 것이라 함." - ↑ 星雲, "業感緣起". 2013년 3월 10일에 확인
"業感緣起: 為緣起論之一。謂世間一切現象與有情之生死流轉,皆由眾生之業因所生起者。小乘諸宗派皆持此說,尤以說一切有部為然。有情眾生之果報有正報與依報之別,正報中有美醜、智愚等諸種差別,依報中有山川、草木等差別。此等果報之苦厭樂愛,千態萬狀,一一皆由業力之所感。有情眾生以身、語、意,日夜造作,所行善惡諸事雖於剎那間即幻滅,然所造之業必於現世或來世招感相應之結果;即因各類業力之複雜關係,遂形成此世界千差萬別之現象。解釋此等差別世界之一切現象,即十二緣起,小乘諸部立之為業感緣起說。其後,主張唯識之諸宗更進而立賴耶緣起之說,並以阿賴耶識為業感緣起之根本。〔大毘婆沙論卷二十三、俱舍論卷十三、順正理論卷二十七〕(參閱「十二因緣」337、「業」5494) p5501" - ↑ 운허, "賴耶緣起(뢰야연기)". 2013년 3월 10일에 확인
"賴耶緣起(뢰야연기): 법상종(法相宗)에서 우주의 삼라만상은 아뢰야식으로 연기(緣起)한다는 학설. 아뢰야식에는 모든 법을 내는 종자가 있다. 여기에는 선천적으로 있는 본유종자(本有種子)와 현행하는 모든 법이 후천적으로 새로이 훈부(熏付)한 신훈종자(新熏種子)가 있다. 이 두 가지 종자가 화합하여 차츰차츰 온갖 차별의 현상을 일으킨다. 이 연기론은 개인적이며 상대적인 유심론(唯心論)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생 각자의 아뢰야식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중생 각자의 아뢰야식으로 상속하여, 그 각자의 아뢰야식으로부터 모든 중생은 제각기 자기의 우주 만상을 변현한다 하고, 각자의 우주가 교섭함을 말할 적에는 공변(共變)ㆍ불공변(不共變)의 학설을 말한다. 산하대지(山河大地)와 같은 것은 각자의 공통한 변현이고, 각자의 심식(心識)ㆍ승의근(勝義根) 등은 각자의 독특한 변현이라 한다. 여기에는 공중(共中)의 공(共)ㆍ공중의 불공(不共)ㆍ불공중의 공ㆍ불공중의 불공이 구별이 있다. 이상은 미계(迷界)의 생기(生起)를 말한 것이다. 오계(悟界)의 생기에 대해서는 유루(有漏)의 제8식 가운데 이미 선천적으로 무루(無漏)의 종자를 간직하였고, 이 무루의 종자는 중생이 모든 불ㆍ보살의 교법을 듣는 힘을 증상연(增上緣)으로 하고 발전하여 마침내 무루의 증과를 얻는다고 함. ⇒유식소변(唯識所變)ㆍ유심연기(唯心緣起)" - ↑ 星雲, "賴耶緣起". 2013년 3월 10일에 확인
"賴耶緣起: 為四種緣起之一。法相宗之唯識說,主張一切萬法皆由阿賴耶識緣起。又作阿賴耶緣起、唯識緣起。賴耶,阿賴耶之略,意譯為藏,乃種子之義;意即微細不可知之一大藏識,能藏一切諸法之種子,係一切有情之根本所依。世間萬象皆為此藏識所執持之種子所現行,此稱「種子生現行」;於此同時,彼種子所現行之法,又於藏識中新薰其種子,此稱「現行薰種子」。如是,由本有種子、現行、新薰種子等三法之輾轉相生,互為因果而有「種子生現行,現行薰種子」之關係。(參閱「阿賴耶識」3676) p6315" - ↑ 星雲, "四種緣起". 2013년 3월 10일에 확인
"四種緣起: 為華嚴宗所歸納之四種緣起思想。華嚴宗之教理係以「緣起」為主,而於所判立五教之中,除頓教外,分別各說一緣起,即:於小乘教說業感緣起,於大乘始教說賴耶緣起,於大乘終教說如來藏緣起,於圓教說法界緣起。而唯獨頓教因是無相離言之宗,不更涉教相之教,故無緣起之說。
(一)業感緣起,謂惑、業、苦三道輾轉輪迴而因果相續。蓋「惑」為心之病,「業」為身之惡,「苦」為生死之果報;以心之病為緣而造身之惡,由身之惡為因而感生死之果;如此惑、業、苦三道輾轉,互為因果,故稱業感緣起。所謂三世因果、十二因緣觀即由此而來。
(二)賴耶緣起,即業感緣起之所緣而生者。賴耶,阿賴耶之略稱,其梵語 ālaya 意譯為「藏」,乃「種子」之義;意即微細不可知之一大藏識,為一切有情之根本所依;而一切千差萬別之現象皆為此藏識所執持之種子所現行,此稱「種子生現行」,於此同時,彼種子所現行之萬法,又於藏識中新熏其種子,此稱「現行熏種子」。如是,故知由本有種子、現行、新熏種子等三法之輾轉相生,而有「種子生現行,現行熏種子」之關係。賴耶緣起,謂由藏識所執持之本有種子遇緣生現行,次由所現行之萬法新熏種子於藏識中,而後更遇緣,則自種子再生現行,自現行再熏種子,如此經由本有種子、現行、新熏種子三法輾轉輪迴、互為因果而無窮始終。
(三)如來藏緣起,又作真如緣起。即賴耶緣起之所緣而生者。謂眾生之生死流轉、還滅涅槃,皆依含真如之如來藏佛性。即一味平等之真如,乃為無始無終不增不減之實體,為染淨之緣所驅而生種種之法。其實體有真如門、生滅門二義。就真如門而言,如來藏乃一味平等之體;就生滅門而言,如來藏由染緣而現六道,由淨緣而出四聖。蓋以「真如之體」為因,「因緣之用」為緣,而生「生滅之相」。由此三法而得生滅之果,即現行之賴耶識。
(四)法界緣起,由上可知如來藏體為真如,若更有所生即非真如;而如是一切萬法為由一如來藏變現者,則論其萬法互相融通,可為一大緣起,此即稱法界緣起,緣起之義理即窮極於此,乃為華嚴一宗之特色。具體而言,法界緣起即謂法界之事法,無論有為無為、色心依正、過去未來等,盡成一大緣起,而無任何單獨存在者,故以一法成一切法,以一切法起一法。就諸法之勢力而言,具有一(一法)多(一切法)相入之義;就諸法之體性而言,具有一多相即之義。華嚴宗乃以此相入相即之妙義,闡釋法界萬有相融無礙之極理。(參閱「緣起」6126、「緣起論」6129) p1821"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04 - T02n0124_p0547c05. 행(行)
"云何為行。行有三種。謂身行語行意行。是名為行。"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2 / 4. 행(行)
"그리고 무엇이 행(行)인가. 행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신체에 관한 행[身行]과 말에 관한 행[語行]과 마음의 작용에 관한 행[意行]을 말한다. 이것을 행이라고 한다." - ↑ David Kalupahana, 《A History of Buddhist Philosophy》.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2, page 71.
- ↑ Bodhi, Bhikkhu (trans.) (2000). 《The Connected Discourses of the Buddha: A Translation of the Samyutta Nikaya》. Boston: Wisdom Publications. ISBN 0-86171-331-1. p. 45:
- Saṅkhāra is derived from the prefix saṃ (=con), "together," and the verb karoti, "to make." The noun straddles both sides of the active-passive divide. Thus saṅkhāras are both things which put together, construct and compound other things, and the things that are put together, constructed, and compounded.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a26 - T02n0099_p0085a28. 식(識)
"緣行識者。云何為識。謂六識身。眼識身.耳識身.鼻識身.舌識身.身識身.意識身。"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0 / 2145. 식(識)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식(識)이라고 하는가? 6식신(識身)을 이르는 말이니, 안식신(眼識身)·이식신(耳識身)·비식신(鼻識身)·설식신(舌識身)·신식신(身識身)·의식신(意識身)이니라." - ↑ 가 나 星雲, "身". 2012년 9월 27일에 확인
"身:
(一)梵語 kāya。音譯迦耶。屬六根之第五,即身根。指觸覺器官之皮膚及其機能。然有部主張,身根乃眼所不能見之精妙物質(淨色),亦即指勝義根而言。然通常所說身與心並稱為身心,身與語(或口)、意並稱身語意(或身口意)之「身」則係指身體、肉體而言。
(二)集合之意。即附加於語尾,表示複數之語,如六識身。
(三)梵語 śarīra。身骨、遺骨之意。(參閱「舍利」3495)" - ↑ 星雲, "六識". 2013년 3월 10일에 확인
"六識: 梵語 sadvijñāna。十八界中之六識界。指眼、耳、鼻、舌、身、意等六種認識作用。即以眼、耳、鼻、舌、身、意等六根為依,對色(顯色與形色)、聲、香、味、觸、法(概念及直感之對象)等六境,產生見、聞、嗅、味、觸、知等了別作用之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等。識、境、根三者必須同時存在。阿毘達磨佛教認為,此六識乃心之作用,其體乃唯一之心,六識不同時作用。大乘唯識家則在六識之外,另立末那、阿賴耶二識,而認其均能同時作用。〔俱舍論卷二、品類足論卷一、成唯識論卷五〕(參閱「六根」1284、「根」4131) p1312" - ↑ "오형근. 《월간불광》, 〈유식학과 인간성: (3) 심의식(心意識)사상의 개요 Archived 2014년 3월 17일 - 웨이백 머신〉. 불광출판사. 2013년 1월 19일에 확인.
"소승불교시대에 저술된 품류족론(品類足論)과 아비담심론(阿毘曇心論) 등에 의하면 『심(心)은 곧 의(意)이며, 의(意)는 또 식(識)으로서 그 체성(體性)은 서로 같으며 이름만 다를 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의하면 소승불교시대에는 심의식(心意識)이라는 명칭이 서로 표현만 다를 뿐 그 체성은 동일한 것으로 보았으며 동시에 이러한 심의식 사상이 일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전체 소승사상을 통해 본다면 인간의 심성은 그 체성이 각기 다르며 활동도 다르게 한다는 학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체로 인간의 심체(心體)는 유일한 것이며 그 활동하는 작용만 다를 뿐이라고 주장한 학설이 대부분이었다. 그 대표적인 학설은 소승불교를 최종적으로 종합하여 정리하였다는 세친론사(世親, AD. 4세기)의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에 잘 나타나 있다.
아비달마구사론에 의하면 『심의식의 3가지 이름은 그 표현의 뜻이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그 체성은 유일하다<心意識三名 所 異 而體是一>』라고 하였다. 이에 의하여 소승불교는 우리 인간의 심체(心體)를 하나로 본 것이 지배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 - ↑ 星雲, "八識". 2013년 3월 10일에 확인
"八識: 梵語 astau vijñānāni。瑜伽行派與法相宗五位法中之心法。即眼、耳、鼻、舌、身、意、末那、阿賴耶,共八識。其中眼等六識隨所依根而立名;末那識即為意,依其自性而立名;阿賴耶識依攝持諸法因果之義,亦即從自性而立名。或稱眼等五識為前五識,意識為第六識,末那識為第七識,阿賴耶識為第八識。又眼至末那乃阿賴耶所生、轉易故,總稱為轉識或七轉識;對此,阿賴耶為七轉諸法之因,故稱根本識、種子識。又有分八識為三能變,阿賴耶識名為初能變,末那識為第二能變,前六識為第三能變。
若就其性而言,眼等之前六識以了別為其性,緣色等六境,通善等三性;末那識以恒審思量為其性,乃有覆無記性,唯緣阿賴耶識之見分為自之內我;阿賴耶識為無覆無記性,以微細之行相緣自所變之器界、種子及有根身。地論家以阿陀那(末那識)為妄識,阿賴耶為真識;攝論家則以阿賴耶為妄識,別立第九無垢淨識;唯識家則謂識僅限八種,且此諸識皆為依他起性,即非真常淨識。〔入楞伽經卷八剎那品、成唯識論卷七、大乘法苑義林章卷一末〕(參閱「識」6697) p316" - ↑ 星雲, "識". 2013년 1월 19일에 확인
"識: 梵語 vijñāna,巴利語 viññāna。音譯作毘闍那、毘若南。vijñāna 為 vi(分析、分割)與 jñāna(知)之合成語,乃謂分析、分類對象而後認知之作用。雖至後世時,心(梵 citta,巴同)、意(梵 mano,巴同)、識三語彙分別使用,然於初期時皆混合使用。依唯識宗之解釋,吾人能識別、了別外境,乃因識對外境之作用所顯現,故於此狀態之識稱為表識、記識(梵 vijñapti,音譯作毘若底)。
於大、小乘佛教皆立有六識說。六識各以眼、耳、鼻、舌、身、意等六根為所依,對色、聲、香、味、觸、法等六境,產生見、聞、嗅、味、觸、知之了別作用,此即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等六種心識。喻如「六窗一猿」,六識之體為一,而起作用之門戶則六,概係六識說最初之意義。六識中,第六之意識稱為第六識,後世更賦予六識、意識、分別事識、四住識、攀緣識、巡舊識、波浪識、人我識、煩惱障識、分段死識等十名,稱為六識十名。
除以上六識外,唯識宗另舉末那識與阿賴耶識(即阿梨耶識),成立八識說。其中從眼識至身識之五識(與六識說相同),總稱為前五識。至第六意識,稱為前六識。至第七末那識(即第七識,或單稱七識),稱為前七識(或單稱七識)。前七識以阿賴耶識為所依,而緣各境轉起,故稱為七轉識或轉識。而前六識能清晰識別對象,故稱為了別境識。第七末那識稱思量識,第八阿賴耶識稱異熟識。據護法之唯識說,八識中第六與第七識具有執著虛妄之對象為我或為法之遍計性,故稱「六七能遍計」。而前五識與第八阿賴耶識因無我、法之執著,故稱此為「五八無執」。復次,印度之無相唯識派認為八識之體性皆同,故主張八識體一之說。但有相唯識派及唯識宗則謂其體性各別,而主張八識體別說;且二識乃至八識同時並起,同時轉起(俱轉),稱為八識俱轉。然而,小乘有部宗等不主張二識並起,異於前說。
攝論宗(真諦所創)於八識外另立第九阿摩羅識(菴摩羅識),成立九識說。阿摩羅識別名無垢識、真如識、真識,即所謂淨識,依此而言,第八阿梨耶識被解作妄識或真妄和合識。地論宗、天台宗亦有人主張此說。
真言宗立十識,即於八識之外別立二種:(一)多一識心,為生滅門之所依,相當於了知差別現象界之後得智。(二)一一識心,為真如門之所依,相當於體悟平等一如真理之根本智。
據真諦譯之世親所著攝論釋卷五謂,因阿梨耶識變異所生之識,共有:身識、身者識、受者識、應受識、正受識、世識、數識、處識、言說識、自他差別識與善惡兩道生死識等十一種差別。於此,「顯識論」舉出顯識與分別識二種,其中因阿梨耶識所顯現之顯識復分為:身識、塵識、用識、世識、器識、數識、四種言說識、自他異識與善惡生死識等九識;而分別識為虛妄分別之主體,又可分成有身者識與受者識二種,其看法大致與真諦所說相符。
又楞伽經卷一說三識,即:(一)真識,相當於阿摩羅識,或相當於阿梨耶識。(二)現識,相當於顯現萬法之阿賴耶識,或阿陀那識(即末那識)。(三)分別事識,即七轉識,或前六識。然真識之說僅見於楞伽經,而不見於梵本及其他譯本。按智吉祥賢之楞伽經註謂,現識為前五識,分別事識則為第六意識。
據大乘起信論所說,由於阿梨耶識中之根本無明在阿梨耶識上起動妄念,以至認識對象而生起執著心,其相狀可分為:(一)業識,起動業作之始相。(二)轉識,因業識作用,所生見照的主觀作用之相。(三)現識,轉識成為客觀之境所現之相。(四)智識,執著現識為實在之相。(五)相續識,對現識執著不斷之相。上記五種識總稱為五意,或五識;相當於三細六粗中之前五者。此外,依無明能起動阿梨耶識,而展開迷界之相狀,如風吹大海成浪,故喻稱為識浪。〔雜阿含經卷三十六、大毘婆沙論卷九、卷二十三、俱舍論卷二、卷九、釋摩訶衍論卷二、大乘義章卷三、成唯識論述記卷五末、俱舍論光記卷四、宗鏡錄卷五十、十住心論卷十〕(參閱「末那識」1941、「阿摩羅識」3671、「阿賴耶識」3676)" - ↑ "오형근. 《월간불광》, 〈유식학과 인간성: (3) 심의식(心意識)사상의 개요 Archived 2014년 3월 17일 - 웨이백 머신〉. 불광출판사. 2013년 1월 19일에 확인.
"이상과 같이 세친론사는 심의식을 매우 합리적으로 해석하여 정신 활동의 내용을 종래의 이론보다 훨씬 깊고 넓게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심의식 사상은 대승불교에 이어지면서 유식학에서는 소승적인 사상을 대폭 개혁하고 또 그 사상을 대승적으로 크게 증보 하였다.
그리고 심의식을 각각 분리시켜 오늘날의 팔식사상으로 조직화하였던 것이다. 유식학에서 심의식 사상을 가장 중요시 하고 있는 경전과 논전의 예를 들면 해심밀경(解心密經)의 심의식상품(心意識相品)을 비롯하여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아비달마집론(阿비達磨集論) 등 여러 경론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경론에 의하면 심(心)과 의(意)와 식(識) 등은 그 활동과 역할하는 작용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체성도 각기 다르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소승불교에서 대체로 심의식의 체성을 동일하다고 본 것에 대하여 대승불교의 유가유식학파(瑜伽唯識學派)에서는 다르다고 본 것이다. 그리하여 불교에는 심체(心體)의 동일설과 심체의 구별설을 말하는 심체일설(心體一說)과 심체별설(心體別說)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06 - T02n0124_p0547c08. 식(識)
"行緣識者。云何為識。謂六識身。一者眼識。二者耳識。三者鼻識。四者舌識。五者身識。六者意識。是名為識。"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p. 2-3 / 4. 식(識)
"행은 식(識)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식인가.
식이란 6식신(識身)을 말하니, 첫째는 안식(眼識), 둘째는 이식(耳識), 셋째는 비식(鼻識), 넷째는 설식(舌識), 다섯째는 신식(身識), 여섯째는 의식(意識)이다. 이것을 식이라고 한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a28 - T02n0099_p0085b02. 명색(名色)
"緣識名色者。云何名。謂四無色陰。受陰.想陰.行陰.識陰。云何色。謂四大.四大所造色。是名為色。此色及前所說名是為名色。"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p. 460-461 / 2145. 명색(名色)
"식을 인연하여 명색(名色)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명(名)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네 가지 형상[色]이 없는 음(陰)이니, 즉 수음(受陰)·상음(想陰)·행음(行陰)·식음(識陰)이니라. 어떤 것을 색(色)이라고 하는가? 4대(大)와 4대로 만들어진 것을 색이라고 말한다. 이 색과 앞에서 말한 명을 합해 명색이라고 하느니라."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08 - T02n0124_p0547c11. 명색(名色)
"識緣名色者。云何為名。謂四無色蘊。一者受蘊。二者想蘊。三者行蘊。四者識蘊。云何為色。謂諸所有色。一切四大種。及四大種所造。此色前名總略為一。合名名色。"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460 / 4. 명색(名色)
"식은 명색(名色)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명(名)인가.
명이란 4무색온(無色蘊)을 말하니, 첫째는 수온(受蘊), 둘째는 상온(想蘊), 셋째는 행온(行蘊), 넷째는 식온(識薀)이다.
그리고 무엇이 색(色)인가. 이는 존재하고 있는 모든 색(色)을 말하니, 모든 색은 4대(大) 및 4대로 이루어진 것[四大種所造]이다.
이 색(色)과 앞에서 말한 명(名)을 하나로 통합하여 명색이라고 하니, 이것을 명색이라고 한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b02 - T02n0099_p0085b04. 6입(六入)
"緣名色六入處者。云何為六入處。謂六內入處。眼入處.耳入處.鼻入處.舌入處.身入處.意入處。"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6입(六入)
"명색을 인연하여 6입처(入處)가 있다 하니, 어떤 것을 6입처라고 하는가? 6내입처(內入處)를 일컫는 말이니, 안입처(眼入處)·이입처(耳入處)·비입처(鼻入處)·설입처(舌入處)·신입처(身入處)·의입처(意入處)이니라." - ↑ 星雲, "六入". 2013년 3월 11일에 확인
"六入: 又作六處。指眼、耳、鼻、舌、身、意等六根,或色、聲、香、味、觸、法等六境。六根為內之六入,六境為外之六入,總稱十二入,亦作十二處。入者,涉入、趨入之義;處者,所依之義。此六根六境互相涉入而生六識,故稱入;六根六境為生六識之所依,故稱處。〔大乘義章卷四、法界次第卷中之下〕 p1240" - ↑ 운허, "六入(육입)". 2013년 3월 11일에 확인
"六入(육입):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6근(根)과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닿임ㆍ법(法)의 6경(境)을 구역에서는 6입, 신역에서는 6처(處)라 함. 이 6근ㆍ6경을 합하여 12입 또는 12처라 함. 그 중에서 6경을 외육입(外六入), 6근을 내육입(內六入). 12인연 중의 6입은 내육입. 입(入)은 거두어들이는 뜻. 6근ㆍ6경은 서로 거두어들여 6식(識)을 내는 것이므로 6입이라 하고, 처(處)는 소의(所依), 6근ㆍ6경은 6식을 내는 소의가 되므로 6처라 함. ⇒육처(六處)" - ↑ 운허, "六處(육처)". 2013년 3월 11일에 확인
"六處(육처): 육입(六入)이라고도 함. 12인연의 하나. 중생의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6근을 구족하고 모태(母胎)에서 나오는 위(位)를 말함. ⇒십이인연(十二因緣)ㆍ육입(六入)"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1권. p. T29n1558_p0005a02 - T29n1558_p0005a04. 처(處)의 뜻: 생장문(生長門)
"心心所法生長門義是處義。訓釋詞者。謂能生長心心所法故名為處。是能生長彼作用義。"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1권. p. 37 / 1397. 처(處)의 뜻: 생장문(生長門)
"심(心)·심소법(心所法)이 생장(生長)하게 되는 문(門, ya-dvara)의 뜻, 이것이 바로 '처(處, ayatana)'의 뜻이다. 즉 이 말을 해석하면, 능히 심과 심소법을 생장시키기 때문에 이를 일컬어 '처'라고 하였으니, 이는 바로 능히 그러한 심·심소법의 작용을 생장시킨다는 뜻이다."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12 - T02n0124_p0547c14. 6입(六入)
"名色緣六處者。云何六處。謂六內處。一眼內處。二耳內處。三鼻內處。四舌內處。五身內處。六意內處。是謂六處。"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3 / 4. 6입(六入)
"명색은 6처(處)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6처인가.
6처란 6내처(內處)를 말하니, 첫째는 안내처(眼內處), 둘째는 이내처(耳內處), 셋째는 비내처(鼻內處), 넷째는 설내처(舌內處), 다섯째는 신내처(身內處), 여섯째는 의내처(意內處)이다. 이것을 6처라고 한다." - ↑ 운허, "六處(육처)". 2013년 2월 8일에 확인
"六處(육처): 육입(六入)이라고도 함. 12인연의 하나. 중생의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6근을 구족하고 모태(母胎)에서 나오는 위(位)를 말함. ⇒십이인연(十二因緣)ㆍ육입(六入)"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099_p0085b04 - T02n0099_p0085b06. 촉(觸)
"緣六入處觸者。云何為觸。謂六觸身。眼觸身.耳觸身.鼻觸身.舌觸身.身觸身.意觸身。"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촉(觸)
"6입처를 인연하여 접촉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접촉[觸]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6촉신(觸身)이니, 안촉신(眼觸身)·이촉신(耳觸身)·비촉신(鼻觸身)·설촉신(舌觸身)·신촉신(身觸身)·의촉신(意觸身)이니라." - ↑ 운허, "觸(촉)". 2013년 3월 11일에 확인
"觸(촉): (1) 대지법(大地法)의 하나. 대상에 접촉하는 것. 근(根)과 경(境)과 식(識)을 화합시키는 작용. (2) 5경(境)의 하나. 몸에 닿는 대상. 굳은 것(堅)ㆍ축축한 것(濕)ㆍ더운 것(煖)ㆍ흔들리는 것(動)ㆍ매끄러운 것(滑)ㆍ껄끄러운 것(灄)ㆍ무거운 것(重)ㆍ가벼운 것(輕)ㆍ찬 것(冷)ㆍ배고픈 것(飢)ㆍ목마른 것(渴) 등의 11로 나눔. (1)은 인식 주체에게 일어나는 작용인데 비해 (2)는 몸으로 대하는 물질적인 색법(色法)을 말함." - ↑ 星雲, "觸". 2013년 3월 11일에 확인
"觸: (一)梵語 sparśa,巴利語 phassa。為心所(心之作用)之一。俱舍宗以其為十大地法、七十五法之一,唯識宗視為五遍行、百法之一。指境(對象)、根(感官及其機能)、識(認識)三者和合時所產生之精神作用;亦即指主觀與客觀接觸之感覺而言。
此時之根、境、識各分為六種,則觸亦有六觸(六觸身,身為複數之意)。例如由眼根、色境、眼識三者和合而產生之觸為眼觸,如由耳、鼻、舌、身、意產生耳觸乃至意觸。此為說一切有部所立三和合生觸之義,即根、境、識和合時,能生其他心所。經量部則唯以根、境、識三者和合名為觸,無有別體,名三和成觸。
於六觸中,前五觸所依之根為有對(二物有相互為障之性質),故稱有對觸。第六觸之意觸,以名(增語)為對象,故稱增語觸;此增語觸對第(二)項中所說之以身根為對象之所觸而言,此為能觸。
又隨染淨等相應法之別而有八種觸,即與無漏相應之明觸、與染污相應之無明觸、與有漏善及無覆無記相應之非明非無明觸,及無明觸中與愛相應之愛觸、與恚相應之恚觸,以及隨受之不同而產生樂受之順樂受觸、生苦受之順苦受觸、生不苦不樂受之順不苦不樂受觸。
此外,十二緣起之第六支為觸,又稱觸支,有部依分位緣起釋為嬰兒期之「觸」。即於嬰兒期根、境、識三者和合而未了知苦樂差別之位。〔雜阿含經卷十三、大毘婆沙論卷二十三、俱舍論卷四、卷九、卷十、大乘義章卷四〕
(二)梵語 sprastavya,巴利語 photthabba。五境之一,十二觸之一,十八界之一,俱舍七十五法之一,唯識百法之一。即被觸之對象,故亦譯為「所觸」。指身根感覺之對象,即所觸之對境,稱為觸境,乃五境、六境之一。共有十一觸:即地、水、火、風四大種,與滑、澀、重、輕、冷、饑、渴等十一種。其中四大種為能造之觸,後七種為所造之觸。〔大毘婆沙論卷一二七、俱舍論卷一、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一、品類足論卷一〕 p6802" - ↑ 변경 없는 원문: {}는 편집자가 변경한 부분
다시 비구들이여, 이런 갈애는 어디서 일어나서 어디서 자리 잡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거기서 자리 잡는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는{의근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형상은 …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마노{의근}의 대상인] 법(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눈의 알음알이{안식}은 … 귀의 알음알이{이식}은 … 코의 알음알이{비식}은 … 혀의 알음알이{설식}은 … 몸의 알음알이{신식}은 … 마노의 알음알이는{의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일어나서 여기서 자리 잡는다.
....
다시 비구들이여, 그런 이 갈애는 어디서 없어지고 어디서 소멸되는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 있으면 거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된다. 그러면 세상에서 어떤 것이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인가? 눈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귀는 … [코는 … 혀는 … 몸은 … 마노는{의근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형상은 … 소리는 … 냄새는 … 맛은 … 감촉은 … [마노{의근}의 대상인] 법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눈의 알음알이{안식}은 … 귀의 알음알이{이식}은 … 코의 알음알이{비식}은 … 혀의 알음알이{설식}은 … 몸의 알음알이{신식}은 … 마노의 알음알이는{의식은} 세상에서 즐겁고 기분 좋은 것이다. 여기서 이 갈애는 없어지고 여기서 소멸된다. - ↑ "嚴". 네이버 한자사전. 2024년 5월 18일에 확인.
嚴 엄
엄할 엄
부수 口 (입구, 3획)
모양자 吅(부르짖을 훤) + 𠪚(험준할 음)
1. 엄하다(嚴--: 매우 철저하고 바르다)
2. 혹독하다(酷毒--)
3. 엄격하다
4. 엄밀하다
5. 지독하다(至毒--)
6. 빈틈없다
7. 심하다(甚--: 정도가 지나치다)
8. 급하다(急--), 절박하다(切迫--)
9. 존경하다(尊敬--)
10. 엄숙하다(嚴肅--)
11. 모질다
12. 계엄(戒嚴), 경비(警備)
13. 아버지, 부친(父親)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14 - T02n0124_p0547c17. 촉(觸)
"六處緣觸者。云何為觸。謂六觸身。一者眼觸。二者耳觸。三者鼻觸。四者舌觸。五者身觸。六者意觸。是名為觸。"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3 / 4. 촉(觸)
"6처는 촉(觸)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촉인가.
촉이란 6촉(觸)을 말하니, 첫째는 안촉(眼觸), 둘째는 이촉(耳觸), 셋째는 비촉(鼻觸), 넷째는 설촉(舌觸), 다섯째는 신촉(身觸)여섯째는 의촉(意觸)이다. 이것을 촉이라고 한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b06 - T02n0099_p0085b07. 수(受)
"緣觸受者。云何為受。謂三受。苦受.樂受.不苦不樂受。"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수(受)
"접촉을 인연하여 느낌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느낌[受]이라고 하는가? 3수(受)를 이르는 말이니, 괴롭다는 느낌·즐겁다는 느낌·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 ↑ 운허, "受(수)". 2013년 3월 11일에 확인
"受(수):
[1] 【범】 Vedanā 정신 작용의 하나. 구사(俱舍)에서는 10대지법(大地法)의 하나. 유식(唯識)에서는 5변행(遍行)의 한. 곧 감각을 말함. 바깥 경계를 마음에 받아들이는 정신 작용. 이에 고수(苦受)ㆍ낙수(樂受)ㆍ사수(捨受)가 있다. ⇒삼수(三受)
[2] 12연기의 하나. 수지(受支)를 말함." - ↑ 가 나 星雲, "受". 2013년 3월 11일에 확인
"受: (一)梵語 vedanā,巴利語同。又譯為痛、覺。可分為二:(一)心所之名,為五蘊之一。俱舍宗以受為一切心遍起的心所之一,乃十大地法之一;唯識宗則認為是五遍行之一。「受」係根(感官)、境(對象)、識(認識之主體)三者和合之觸(即接觸感覺)而生。換言之,受,即領納之意,亦即領納違、順、俱非等之觸,及外界之對象,以此而感受苦、樂等感覺之精神作用。故「受」為外界影響於生理、情緒、思想等,所產生之痛癢、苦樂、憂喜、好惡等感受,由此有利(順)、不利(違)、無利害關係(俱非)等境界,產生相應之苦、樂等主觀感受,而引起遠離違境、追求順境等一連串愛欲活動。
對受之解釋,諸論有異,如:(1)據俱舍論卷一載,領納所隨之觸,稱為受。(2)據順正理論卷二載,領納所緣之境,稱為執取受;領納所隨之觸,稱為自性受。(3)據阿毘達磨藏顯宗論卷二載,就領納所緣而論受之義,謂一切之心、心所皆稱為受,特別是指領納隨觸。(4)據五事毘婆沙論卷下等載,領納所緣之境,稱為受。(5)據成唯識論卷三、成唯識論述記卷三末等載,受不能緣俱生之觸,故領納順、違等境界之相,為其本義;此說有駁斥前列四說之意。
關於受之分類,有諸種說法。據雜阿含經卷十七記載,受有:一受、二受、三受、四受、五受、六受、十八受、三十六受、百八受、無量受等。(1)一受,受之自相雖有苦、樂、捨等三種,然苦受屬於苦苦,樂受屬於壞苦,捨受屬於行苦;一切皆苦,故稱一受。(2)二受,心受、身受合稱二受。眼識乃至身識等前五識之感受屬肉體之受,故稱身受。第六意識之感受屬精神之受,故稱心受。大毘婆沙論卷一一五列有諸家對心受、身受之解釋,如:1.無分別為身受,有分別為心受。2.緣自相之境為身受,緣自相、共相之境為心受。3.緣現在之境為身受,緣三世之境、無為之境為心受。4.緣實有之境為身受,緣實有與假有之境為心受。5.於境一往取為身受,於境數數取為心受。6.於境暫緣即了為身受,於境推尋乃了為心受。7.依色而緣色為身受,依非色而緣色、非色為心受。8.世友論師謂一切之受皆為心受,而無身受。(3)三受,依受之自相而有所分別。即領納愛、非愛及非上記二種之觸,而生起苦、樂、捨等三種感覺。1.樂受,對可愛境之感受。2.苦受,對不可愛境之感受。3.捨受,又作不苦不樂受、非苦樂受。乃對非可愛、非不可愛境之感受。(4)四受,依界繫不同而有所分別。1. 欲界繫受,又稱有味著受,屬於自體愛相應之受。2.色界繫受。3.無色界繫受。4.不繫受。後三項,又稱無味著受,屬於不相應之受。(5)五受,又稱五受根。依身、心受之自相而有別。1.樂受,又稱樂根。指五識相應之身悅,及第三靜慮的意識相應之心悅。2.喜受,又稱喜根。指初二靜慮及欲界的意識相應之心悅。3.苦受,又稱苦根。指五識相應之身不悅。4.憂受,又稱憂根。指意識相應之心不悅。5.捨受,又稱捨根。指身、心之非悅、非不悅。(6)六受,又稱六身受、六受法。指經由六根,六識得以覺知六境,復由根、境、識等和合之六觸,產生眼觸所生之受乃至意觸所生之受。(7)十八受,又稱十八意近行受。計有六喜意近行、六憂意近行、六捨意近行等。謂喜、憂、捨等三受以意識為近緣,各活動於色、聲等六境,乃有十八受。(8)三十六受,又稱三十六師句。謂前項十八意近行各有染品、善品之別,如六喜意近行之中,有順染受之耽嗜依及順善受之出離依。(9)百八受,謂前項三十六受各有過去、現在、未來三世之別。(10)無量受,由上述各家所說之此受、彼受等,可知受之相復有無量之別。〔雜阿含經卷十三、法蘊足論卷九、卷十、發智論卷十四、成實論卷六、卷八、俱舍論卷十、瑜伽師地論卷五十三、大乘義章卷七、雜集論述記卷三、卷五〕
(二)為十二緣起之一支,稱為受支。為幼年少年時期對苦、樂等相之了知。說一切有部基於分位緣起說認為幼年少年時期雖覺知苦、樂等相,然尚未生起淫愛,此期之位即稱為受;此係以五蘊為體,而非以受為體。於唯識大乘之看法,則以無明及行為「能引支」,識乃至受之五支為「所引支」;又以無明及行為「能熏」,識等五支為「所熏」之種子。亦即識、名色、六處、觸等,由於無明、行而影響阿賴耶識之種子,稱為受。〔中阿含卷二十四大因經、長阿含卷十大緣方便經、瑜伽師地論卷五十六、卷九十三、成唯識論述記卷八本〕
(二)為取(梵 upādāna)之舊譯。乃煩惱之異名。(參閱「取」3092) p3096" - ↑ 운허, "九地(구지)". 2012년 10월 17일에 확인. 구지(九地) 중 (4)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4) 이희묘락지(離喜妙樂地). 색계 제3선천. 2선(禪)의 희락을 여의고 마음이 안정되어 묘한 즐거움이 있는 곳." - ↑ 星雲, "三禪天". 2013년 3월 3일에 확인
"三禪天: 指色界四禪天中之第三天。又作第三靜慮、第三禪。因離第二禪之喜,更生靜妙之樂,故又稱離喜妙樂地。其為僅有之意識,有樂、捨二受與之相應。此地意識怡悅之相,至極靜妙,故立樂受。於色界十八天中,少淨、無量淨、遍淨等三天即為三禪天。於三地中,屬於無尋無伺地。〔長阿含經卷二十、順正理論卷二十一、俱舍論卷八〕(參閱「色界」2545) p686" - ↑ 운허, "九地(구지)". 2012년 10월 17일에 확인. 구지(九地) 중 (5)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5) 사념청정지(捨念淸淨地). 색계 제4선천. 앞의 즐거움을 여의고 청정 평등한 사수(捨受)의 생각에 안주하는 곳."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17 - T02n0124_p0547c18. 수(受)
"觸緣受者。云何為受。受有三種。謂樂受苦受不苦不樂受。是名為受。"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3 / 4. 수(受)
"촉은 수(受)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수인가.
수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즐거움의 느낌[樂受]ㆍ괴로움의 느낌[苦受)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을 말한다. 이것을 수라고 한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b07 - T02n0099_p0085b08. 애(愛)
"緣受愛者。彼云何為愛。謂三愛。欲愛.色愛.無色愛。"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애(愛)
"느낌을 인연하여 애욕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애욕이라고 하는가? 이른바 3애(愛)이니, 욕애(欲愛)·색애(色愛)·무색애(無色愛)이니라." - ↑ 가 나 운허, "愛(애)". 2013년 3월 11일에 확인
"愛(애): 【범】 tṛṣṇā (1) 12인연의 하나. 애지(愛支). 『구사론』에서는 남녀 16~17세 이후에 애욕이 생기기 시작하나 아직 음욕을 만족함에 이르지 못한 때,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는 다음 생을 받을 인연이 될 탐번뇌(貪煩惱)라 함. 모두 임종시에 일어나는 탐애(貪愛). (2) 남녀의 성욕에 근거하여 서로 사랑하는 연애ㆍ처자애(妻子愛)ㆍ명리애(名利愛) 등. 좋지 못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염오애(染汚愛)라 함. (3) 불ㆍ보살 등이 중생을 구제하려는 것같이 아무 데도 치우치지 아니한 대자비심으로서 순전한 정에서 일어나는 사랑. 이것은 불염오애(不染汚愛). ⇒애지(愛支)" - ↑ 운허, "愛支(애지)". 2013년 3월 11일에 확인
"愛支(애지): 【범】 taṇhā 12인연의 하나. 욕(欲)이라고도 번역. 갈애(渴愛)하는 뜻. 항상 만족함을 구하여 그치지 않는 능동성(能動性). ⇒애(愛)" - ↑ 가 나 다 라 星雲, "愛". 2013년 3월 11일에 확인
"愛: (一)梵語 trsnā, tosayati, priya,巴利語 piya 之意譯。又作愛支。十二因緣之一。意為貪戀執著於一切事物。基督教向來被視為愛的宗教,佛教中則以「慈悲」為中心,而不直言「愛」字。佛陀曾喻示有關愛者,增支部經典即謂:「愛可生愛,亦可生憎;憎能生愛,亦能生憎。」故佛教言愛言憎,恰若手心、手背,為一體之兩面。愛之愈深,則憎怨之可能愈大。
於南傳之法句經二一二偈中有言:「從愛生憂患,從愛生怖畏;離愛無憂患,何處有怖畏?」繼於同偈之中,又從「愛」轉變,而依次列出親愛(巴 pema)、欲樂(巴 rati)、愛欲(巴 kāma)、渴愛(巴 tanhā)等四種。所謂愛,乃指對與自己有親族血緣關係之情愛而言;所謂親愛,乃對他人之友情;所謂欲樂,則是對某一特定人物之愛情;所謂愛欲,專指建立於性關係之情愛;所謂渴愛,指因過份執著以致於癡病之愛情。此五階段皆屬人類之愛,其本質皆以自愛為前提,由自愛出發而至性愛,更甚者,以自愛為主而形成變態情愛乃至於渴愛,此中層次逐漸加深,而未曾更變其型態。渴愛乃人類之愛的本體,由此種愛乃產生苦惱,更由此苦惱而生悲(梵 karunā,巴同),悲之原意即為痛苦。人類不僅能感受自己之痛苦,亦能感受他人之苦惱,若對所有苦惱之人,皆以親切、友情待之,則可稱為慈(梵 maitreya),而慈乃由「友」(梵 mitra)演變而來者,其意即含深刻之友情,故慈悲實為愛之代名詞。慈悲之極致為「無緣大慈」,意指吾人於毫無條件、毫無意識下,而能予任何人幸福,此亦稱大愛,為佛教待人態度之最高表現。〔雜阿毘曇心論卷八、瑜伽師地論卷九十三、成唯識論述記卷八〕
(二)梵語 anunaya-sajyojana。愛結之略稱。九結之一。又作隨順結。即指於境染著之貪煩惱。大毘婆沙論卷五十(大二七‧二五八上):「云何愛結?謂三界貪。然三界貪於九結中總立愛結,七隨眠中立二隨眠,謂欲界貪,名欲貪隨眠;色、無色界貪,名有貪隨眠。於餘經中,立為三愛,謂欲愛、色愛、無色愛。」是以三界之貪,總稱為愛結。又集異門足論卷四謂,欲愛、色愛、無色愛等三愛,於諸欲中,諸貪等貪,執藏防護,耽著愛染,稱為欲愛;於諸色中,諸貪等貪,執藏防護,耽著愛染,稱為色愛;於無色中,諸貪等貪,執藏防護,耽著愛染,稱無色愛。又謂欲愛、有愛、無有愛之三愛,於諸欲中諸貪等貪,執藏防護,耽著愛染,稱為欲愛(梵 kāma-trsnā);色、無色界諸貪等貪,執藏防護,耽著愛染,稱為有愛(梵 bhava-trsnā);欣無有者於無有中諸貪等貪,執藏防護,耽著愛染,稱為無有愛(梵 vibhava-trsnā)。此外,勝鬘經一乘章說五住地惑中,亦舉出欲愛住地、色愛住地、有愛住地等三名。北本大般涅槃經卷十三謂四諦中之集諦為愛,而有二種、三種、四種、五種等之別,凡此種種,皆以貪名為愛。〔大毘婆沙論卷四十八、卷四十九、卷五十六、卷一七三、成實論卷九貪相品、入阿毘達磨論卷上、俱舍論卷二十一〕
(三)梵語 preman 或 priya。即以不染污心愛樂法或愛師長之謂。大毘婆沙論卷二十九謂,愛有二種,染污謂貪,不染污謂信。俱舍論卷四(大二九‧二一上):「愛謂愛樂,體即是信,然愛有二,一有染污,二無染污。有染謂貪,如愛妻子等;無染謂信,如愛師長等。」此明不染污之愛,其體是信。〔北本大般涅槃經卷十六、順正理論卷十一、成唯識論卷六〕
(四)悉曇字 (ai)。又作翳、嘢、藹。悉曇十二韻之一,五十字門之一。據方廣大莊嚴經卷四載(大三‧五六○上):「唱愛字時,出勝威儀聲。」上引之勝威儀聲,其梵語 airyāpatha-śreyān-śabda 即含有此音「ai」。另據瑜伽金剛頂經釋字母品,謂此愛字有自在、自相、聖道勝等義。〔北本大般涅槃經卷八、大日經卷五布字品、悉曇藏卷五〕 p5457"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8c26. 무진선근(無瞋善根)
"云何無瞋。謂瞋對治。以慈為性。"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4 / 12. 무진선근(無瞋善根)
"어떤 것이 무진(無瞋)인가. 이는 진심(瞋心)을 대치하는 것이니, 자애로운 마음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 T.1613, p. T31n1613_p0852a28 - T31n1613_p0852a29. 무진선근(無瞋善根)
"云何無瞋。謂瞋對治。以慈為性。謂於眾生。不損害義。業如無貪說。"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 K.619, T.1613, p. 8 / 24. 무진선근(無瞋善根)
"무엇을 성내지 않음[無瞋]이라고 하는가?
성냄을 다스리고 불쌍하게 여기는 것[慈]을 성질로 한다. 중생에 대해서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업은 무탐에서 말한 것과 같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1c04 - T31n1602_p0481c06. 무진(無瞋)
"無瞋者。謂於諸有情心無損害慈愍為體。能斷瞋障為業。如前乃至增長無瞋為業。如經說無瞋善根。"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 K.571, T.1602, 제1권. p. 17 / 293. 무진(無瞋)
"무진(無瞋)94) 심소는 모든 유정에 대하여 마음에서 훼손하려는 것이 없고 사랑하고 연민히 여기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성냄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무진을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무진의 선근”이라고 말한 바와 같다.
94) 무진(無瞋, adveṣa) 심소는 성내는 마음을 없애는 능력의 심리작용이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612, p. T31n1612_p0849a05. 불해(不害)
"云何不害。謂害對治。以悲為性。"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 K.618, T.1612, p. 4 / 12. 불해(不害)
"어떤 것이 불해(不害)인가. 이는 해(害)를 대치하는 것이니, 연민을 자성으로 삼는 것이다." - ↑ 안혜 조, 지바하라 한역 & T.1613, p. T31n1613_p0852b22 - T31n1613_p0852b23. 불해(不害)
"云何不害。謂害對治。以悲為性。謂由悲故。不害群生。是無瞋分。不損惱為業。" - ↑ 안혜 지음, 지바하라 한역, 조환기 번역 & K.619, T.1613, p. 9 / 24. 불해(不害)
"무엇을 해치지 않음[不害]이라고 하는가?
해침을 다스리고, 중생을 슬퍼함[悲]을 성질로 한다. 중생을 슬퍼하기 때문에 여러 중생들을 해치지 않으니, 이것은 성내지 않음에 속하는 부분이다. 괴롭히지 않음을 업으로 삼는다." - ↑ 무착 조, 현장 한역 & T.1602, 제1권. p. T31n1602_p0481c24 - T31n1602_p0481c26. 불해(不害)
"不害者。謂由不惱害諸有情故悲哀惻愴愍物為體。能斷害障為業。如前乃至增長不害為業。如經說由不害故知彼聰叡乃至廣說。" - ↑ 무착 지음, 현장 한역 & K.571, T.1602, 제1권. p. 19 / 293. 불해(不害)
"불해(不害)102) 심소는 온갖 유정을 괴롭히거나 해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유정을 슬퍼하고 측은하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것을 체성으로 삼는다. 능히 해(害)의 장애를 끊음을 업으로 삼고, 앞에서와 같이 나아가서 불해를 증장함을 업으로 삼는다. 경전에서 “불해로 인하여 그 밝고 지혜로움을 알고..... (나아가 자세히 말함)”라고 말한 바와 같다.
102) 불해(不害, ahiṁsā) 심소는 남에게 해(害)를 끼치지 않는 심리작용이다. 모든 유정에 대해서 손해와 괴로움을 주지 않는 무진(無瞋) 심소를 체성으로 삼고, 해롭게 함을 다스리고 연민히 여겨 고통을 없애주고자 함을 업으로 삼는다." - ↑ 권오민 2003, 215–229쪽
"[아비달마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모든 번뇌는 실유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소멸할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은 유위법이기 때문에 찰나찰나 생겨나는 순간 소멸하지만(이를 無常滅이라고 한다), 이것은 열반을 의미하는 번뇌의 단멸이 아니다. 왜냐하면 소멸하는 순간 동류의 또 다른 번뇌가 상속함으로써 우리들 경험상에 '번뇌'라고 하는 지속된 심리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번뇌를 끊는다' '번뇌를 끊어라'고 말하지 '번뇌를 소멸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번뇌를 끊는다'고 함은, 마음이 더 이상 번뇌의 온갖 심소心所와 동시생기(俱生)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더 이상 마음의 상속상에 획득되지 않게 될 때, '번뇌가 단멸斷滅되었다'고 한다. 이 때 전자의 수행도를 무간도無間道라 하고, 후자의 수행도를 해탈도解脫道라고 한다. 예컨대 전자가 도둑을 잡아 문 밖으로 쫓아내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것을 확인하고 문을 닫아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불교의 궁극적 지향점인 적정안온의 열반은 바로 이 같은 번뇌의 단멸에서 증득되는 것으로, 그것은 오로지 더 이상 번뇌를 수반하는 일이 없는 지혜의 힘, 무루 간택력簡擇力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에 '택멸'이라고도 한다. 온갖 번뇌를 비롯한 모든 존재(諸法)의 참다운 관찰만이 중생을 열반으로 이끌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아비달마의 목적이었다. 아비달마 논사들은 오로지 4제에 대한 통찰과 무루 간택력에 따른 예지만이 그들을 번뇌 단멸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이유에서 그들은 번뇌의 단멸을 변지遍知라고 하였다. 변지(parijna, 구역에서는 永斷)는 말 뜻대로라면 바로 4제의 진리성에 대해 두루 아는 것이지만, 그 결과 번뇌가 영원히 끊어지기 때문에 번뇌의 단멸을 '변지'라고 일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열반이 그러하듯이 번뇌의 단멸이라는 측면에서 98수면 각각의 끊어짐을 변지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견소단의 경우 이계離繫의 득得을 증득하고, 3계 9지의 최후인 비상비비상처 즉 유정지有頂地의 5부의 번뇌를 완전히 끊었으며, 자부自部·자품自品의 동류인과 타부他部·타품他品의 변행인이 되는 번뇌를 멸하였을 때에만, 수소단의 경우 이와 함께 욕·색·무색계의 번뇌를 모두 끊어 그것을 초월한 때에만 변지라고 한다." - ↑ 佛門網, "五欲". 2013년 5월 20일에 확인
"五欲:
出處: 明,一如《三藏法數》字庫
解釋:
五欲===﹝出天台四教儀集註﹞ 止觀云:五塵非欲,而其中有味,能起行人須欲之心,故言五欲常能牽人,入諸魔境故也。(五塵者,色塵、聲塵、香塵、味塵、觸塵也。) 〔一、色欲〕,謂男女形貌端莊,及世間寶物玄黃朱紫種種妙色,能令眾生樂著無厭,故名色欲。 〔二、聲欲〕,謂絲竹環珮之聲,及男女歌詠等聲,能令眾生樂著無猒,故名聲欲。 〔三、香欲〕,謂男女身香,及世間一切諸香,能令眾生樂著無猒,故名香欲。 〔四、味欲〕,謂種種飲食肴膳等美味,能令眾生樂著無厭,故名味欲。 〔五、觸欲〕,謂男女身分柔軟細滑,寒時體溫,熱時體涼,及衣服等種種好觸,能令眾生樂著無厭,是名觸欲。
頁數: 出天台四教儀集註
出處: 丁福保《佛學大辭典》
解釋:
五欲===(名數)色聲香味觸之五境也。是為起人之欲心者,故名欲。是為污真理者,故名塵。止觀四曰:「五塵非欲,而其中有味能生行人貪欲之心,故言五欲。」智度論十七曰:「哀哉眾生,常為五欲所惱,而求之不已。此五欲者,得之轉劇,如火炙疥。五欲無益,如狗咬炬。五欲增爭,如鳥競肉。五欲燒人,如逆風執炬。五欲害人,如踐惡蛇。五欲無實,如夢所得。五欲不久,如假借須臾。世人愚惑,貪欲五欲,至死不捨。為之後世受無量苦。」【又】一財欲,二色欲,三飲食欲,四名欲,五睡眠欲。見華嚴大疏鈔二十七,三藏法數二十四。
出處: A Digital Edition of A Glossary of Dharmarakṣa translation of the Lotus Sutra by Seishi Karashima, 1998
解釋:
五欲 (wŭyù) ( “the five desires (arising from the objects of the five senses)” ) Cf. 五樂(wŭlè) ;
{《漢語大詞典》1.376a(大智度論)} ; {《大漢和辞典》1.512b(大智度論)} ;
Dharmarakṣa: {76a9} 如来………教諸萌類滅三界火、婬、怒、癡縛、色、聲、香、味、細滑之法、三處五欲(p)
{K.79.8-}
Kumārajīva: {not found at L.13b11}
Dharmarakṣa: {76a9} 五欲燒人(p)
{K.79.8-}
Kumārajīva: {L.13b11} 愛
Dharmarakṣa: {97c15} 其人適(v.l. 這)見 第一安隱 蒙寶之恩 獲致於斯 有無極財 藏滿豐盈 又以五欲 而自娯樂(v)
{K.213.6} kāmaguṇa~ pañca~
Kumārajīva: {L.29b13} 五欲
出處: 明,一如《三藏法數》字庫
解釋:
五欲===﹝出華嚴經隨疏演義鈔﹞
〔一、財欲〕,財即世間一切貲財也。謂人以財物為養己之資,故至貪求,戀著不捨,是為財欲。 〔二、色欲〕,色即世間青黃赤白及男女等色也。謂人以色悅情適意,故至貪求戀著,不能出離三界,是為色欲。(三界者,欲界、色界、無色界也。) 〔三、飲食欲〕,飲食即世間肴膳眾味也。謂人必假飲食資身活命,故至貪求樂著無厭,是為飲食欲。 〔四、名欲〕,名即世間之聲名也。謂人因聲名能顯親榮己,故至貪求樂著,而不知止,是為名欲。 〔五、睡眠欲〕,睡眠即情識昏昧而睡眠也。謂人之睡眠,亦有時節,若怠惰放縱,樂著無厭,是為睡眠欲。
頁數: 出華嚴經隨疏演義鈔" - ↑ 제관 록 & T.1931, p. T46n1931_p0780b10 - T46n1931_p0780b17. 5욕(五欲)
"第二訶五欲。一訶色。謂男女形貌端嚴。脩目高眉丹。脣皓齒。及世間寶物。玄黃朱紫種種妙色等。二訶聲。謂絲竹環珮之聲。及男女歌詠聲等。三訶香。謂男女身香。及世間飲食香等。四訶味。謂種種飲食肴膳美味等。五訶觸。謂男女身分柔軟細滑。寒時體溫。熱時體涼。及諸好觸等。" - ↑ 지의 설, 관정 기 & T.1911, 제4권. p. T46n1911_p0043c10 - T46n1911_p0044c06. 5욕(五欲)
"第二呵五欲者。謂色聲香味觸。十住毘婆沙云。禁六情如縶狗鹿魚蛇猿鳥。狗樂聚落鹿樂山澤。魚樂池沼。蛇樂穴居。猿樂深林。鳥樂依空。六根樂六塵。非是凡夫淺智弱志所能降伏。唯有智慧堅心正念。乃能降伏。總喻六根。今私對之。眼貪色色有質像如聚落。眼如狗也。耳貪聲聲無質像如空澤。耳如鹿也。鼻貪香如魚也。舌引味如蛇也。身著觸如猿也。心緣法如鳥也。今除意但明於五塵。五塵非欲而其中有味。能生行人須欲之心。故言五欲。譬如陶師人客延請不得就功。五欲亦爾。常能牽人入諸魔境。雖具前緣攝心難立。是故須呵。色欲者所謂赤白長短明眸善睞。素頸翠眉皓齒丹脣。乃至依報紅黃朱紫諸珍寶物惑動人心。如禪門中所說。色害尤深令人狂醉。生死根本良由此也。如難陀為欲持戒。雖得羅漢習氣尚多。況復具縛者乎。國王耽荒無度。不顧宗廟社稷之重。為欲樂故身入怨國。此間上代亡國破家多從欲起。赫赫宗周褒姒滅之。即其事也。經云。眾生貪狼於財色。坐之不得道。觀經云。色使所使為恩愛奴。不得自在。若能知色過患則不為所欺。如是呵已。色欲即息。緣想不生。專心入定。聲欲者即是嬌媚妖詞。婬聲染語。絲竹絃管。環釧鈴珮等聲也。香欲者。即是鬱茀氛氳。蘭馨麝氣。芬芳酷烈郁毓之物。及男女身分等香。味欲者。即是酒肉珍肴。肥瘦津膩。甘甜酸辣。酥油鮮血等也。觸欲者。即是冷暖細滑。輕重強軟。名衣上服。男女身分等。此五過患者。色如熱金丸執之則燒。聲如毒塗鼓聞之必死。香如憋龍氣嗅之則病。味如沸蜜湯舌則爛。如蜜塗刀舐之則傷。觸如臥師子近之則齧。此五欲者得之無厭。惡心轉熾如火益薪。世世為害劇於怨賊。累劫已來。常相劫奪摧折色心。今方禪寂復相惱亂。深知其過貪染休息。事相具如禪門中(云云)。上代名僧詩云。遠之易為士近之難為情。香味頹高志聲色喪軀齡。 ○觀心呵五欲者。如色欲中滋味無量。謂常無常。我無我。淨不淨。苦樂空有。世第一義皆是滋味。故大論云。色中無味相凡夫不應著。若謂色是常是見依色。若色無常。亦常亦無常。非常非無常。是見皆依色。乃至非如去。非不如去。非邊非無邊等。是見皆依於色。悉是諍競執謂是實。戲論破智慧眼。互相是非。為色造業。適有此有即有生死。如是觀者增長於欲非是呵欲。今觀色有無等六十二見。皆依無明。無明無常生滅不住。速朽之法念念磨滅。無我無主寂滅涅槃。無明既爾。從無明生若有若無等。悉皆無常寂滅涅槃。既無主我。誰實誰虛。終不於色起生死業業謝果亡。是為呵色入空而得解脫。呵色既爾餘四亦然。是名三藏析法呵五欲也。中論指此云不善滅戲論也。若摩訶衍呵色欲者。體知諸見皆依無明。無明即空諸見亦即空。故金剛般若云。須陀洹者名為入流。實不入流。不入色聲香味觸故。所以者何。若有色可析可名入色。色即是空無色可入。故名不入。既無流可入即無業果。是名善滅戲論。呵色既爾餘四亦然。復次呵色即空者。但入色空不能分別種種色相。云何能度一切眾生。眾生於色起種種計。即是種種集招種種苦。苦集病多。道滅之藥亦復無量。若欲化他豈可證空而不觀察。是故知空非空。從空入假。恒沙佛法悉令通達。若不如此猶名受入色空。今深呵色空不受不入。廣分別色。雖復分別但有名字。名字即空故稱為假。呵色既爾。餘四亦然。又呵色二邊。如大品云。色中無味相凡夫不應著。色中無離相二乘不應離。破色無明有無等見。是呵其味。破其沈空是呵其離。若定有味不應有離若定有離不應有味。味不定故非味。離不定故非離。不著二邊即是非味非離顯色中道實相。故釋論云。二乘為禪故呵色事。不名波羅蜜。菩薩呵色即見色實相。見色實相即是見禪實相。故名波羅蜜到色彼岸。到色彼岸即是見色中道。分別色者即是見色俗。即色空者是見色真。如是呵色盡色源底。成三諦三昧發三種智慧。深呵於色為止觀方便。其意在此。呵色既然餘四亦爾。"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19 - T02n0124_p0547c20. 애(愛)
"受緣愛者。云何為愛。愛有三種。謂欲愛色愛無色愛。是名為愛。"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3 / 4. 애(愛)
"수는 애(愛)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애인가.
애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욕애(欲愛)ㆍ색애(色愛)ㆍ무색애(無色愛)를 말한다. 이것을 애라고 한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b08 - T02n0099_p0085b09. 취(取)
"緣愛取者。云何為取。四取。欲取.見取.戒取.我取。"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취(取)
"애욕을 인연하여 취함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취함[取]이라고 하는가? 4취(取)이니, 탐욕에 대한 취함[欲取]·소견에 대한 취함[見取]·계에 대한 취함[戒取]·나에 대한 취함[我取]이니라." - ↑ 가 나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20 - T02n0124_p0547c22. 취(取)
"愛緣取者。云何為取。謂四取。一者欲取。二者見取。三者戒禁取。四者我語取。是名為取。" - ↑ 가 나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3 / 4. 취(取)
"애는 취(取)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취인가.
취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금취(戒禁取)ㆍ아어취(我語取)를 말한다. 이것을 취라고 한다." - ↑ "取",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3월 12일에 확인.
"取: 가질 취
1. 가지다, 손에 들다
2. 취하다(取--)
3. 의지하다(依支--), 돕다
4. 채용하다(採用--), 골라 뽑다
5. 받다, 받아들이다
6. 이기다
7. 다스리다
8. 멸망시키다(滅亡---)
9. 장가들다
10. 어조사(語助辭)
11. 인연(因緣)의 하나
12. 춘추(春秋)의 필법(筆法)
단어 뜻풀이: ①십이인연(十二因緣)의 한 가지. 애(愛)에 따라 일어나는 집착(執着) ②번뇌(煩惱). 집착(執着)
회의문자: 又(우☞손)와 耳(이☞귀)를 뜻하는 글, 손으로 귀를 떼다→떼다, 옛날 전쟁(戰爭)에서 적을 잡으면 증거물(證據物)로 그 왼쪽 귀를 잘라내어 가져 왔다는 데서 '취하다'를 뜻함" - ↑ Sanskrit and Tamil Dictionaries, "upadana". 2013년 3월 12일에 확인
"upadana:
(mwd) = Cologne Digital Sanskrit Lexicon
(cap) = Capeller's Sanskrit-English Dictionary
(otl) = Cologne Online Tamil Lexicon
(cpd) = Concise Pahlavi Dictionary
1 (mwd) upadAna 1 (for 2. see col. 2) or n. a present , offering. = 2. %{upa-dA} above L.
2 (mwd) upadAna 2 n. ib.
3 (mwd) upAdAna n. the act of taking for one's self , appropriating to one's self MBh. Mn. &c. ; perceiving , noticing , learning , acquiring (knowledge) Hit. Vop. ; accepting , allowing , including ; employment , use Sa1h. Sarvad. Kap. ; saying , speaking , mentioning , enumeration Veda1ntas. Ka1s3. Siddh. ; abstraction , withdrawing (the organs of sense from the outer world) L. ; (with Buddh.) grasping at or clinging to existence (caused by %{tRSNA} , desire , and causing %{bhava} , new births) ; (with Ra1ma1nujas) preparation (of perfumes , flowers &c. as one of the five elements of worship) Sarvad. ; cause , motive , material cause ; material of any kind Sa1m2khyak. Veda1ntas. Kap. &c. ; offering , present L.
4 (cap) upAdAna n. taking, acquiring, appropiating; non-exclusion, addition; enumeration, mention; the material cause (ph.)." - ↑ "執持",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3월 12일에 확인.
"執持:
執 잡을 집
1. 잡다 2. 가지다 3. 맡아 다스리다 4. 처리하다(處理--) 5. 두려워하다 6. 사귀다 7. 벗, 동지(同志) 8. 벗하여 사귀는 사람
持 가질 지
1. 가지다, (손에)쥐다, 잡다 2. 지니다 3. 버티다, 견디어내다, 대립하다(對立--) 4. 보전하다(保全--), 보존하다(保存--) 5. 지키다, 유지하다(維持--) 6. 균형(均衡)이 깨지지 아니하다, 형편(形便)에..." - ↑ "執取", 《네이버 한자사전》. 2013년 3월 12일에 확인.
"執取:
執 잡을 집
1. 잡다 2. 가지다 3. 맡아 다스리다 4. 처리하다(處理--) 5. 두려워하다 6. 사귀다 7. 벗, 동지(同志) 8. 벗하여 사귀는 사람
取 가질 취
1. 가지다, 손에 들다 2. 취하다(取--) 3. 의지하다(依支--), 돕다 4. 채용하다(採用--), 골라 뽑다 5. 받다, 받아들이다 6. 이기다 7. 다스리다 8. 멸망시키다(滅亡---) 9. 장가들다 10. 어조사(語助辭)..." - ↑ 가 나 다 星雲, "四取". 2013년 3월 12일에 확인
"四取: 梵語 catvāry upādānāni,巴利語 cattāri upādānāni。取,即執持、執取之意。狹義係指執著之煩惱;廣義而言,為煩惱之異名。即將三界中之百八煩惱,分為四種類別。關於取之意義,據大毘婆沙論卷四十八載,有執持、收採、選擇三義;煩惱能熾燃有情之業火,且其行相猛利,如毒刺能傷法身慧命,故稱取。另據俱舍論卷二十載,煩惱能取諸有之果,故稱為取。四取即: (一)欲取(梵 kāmopādāna,巴同),即對欲界五欲之境所生起之貪執。亦即於欲界煩惱中,除五見外,執取其餘之貪、瞋、慢、無明、疑及十纏,再配於四諦修道之五部,則欲取計有三十四事。(二)見取(梵 drsty-upādāna,巴 ditthi-upādāna),即執著邪心分別之見為真實。亦即執取五見中之身、邊、邪、取等四見,再配於三界之四諦,計有三十事,以三界苦諦之下各有身、邊、邪、取等四見,集、滅、道等三諦則各有邪見、見取見等二見。(三)戒禁取(梵 śīla-vratopādāna,巴 sīla-bbata-upādāna),即執著非正因、非正道為正因、正道。亦即執取五見中之戒禁取見,於三界之苦、道二諦中皆各有此見,故計有六事。此戒禁為聖道修行之怨敵,使修行者由此而誑惑,如使在家眾妄計自餓等法為生天之道;使出家眾執著可愛之境,而捨離清淨道。或如外道之妄計雞、狗等戒,故於五見之中,唯獨別立此一見。(四)我語取(梵 ātma-vādopādāna,巴 atta-vādupādāna),即緣一切內身所起之我執。亦即執取色界、無色界之貪、慢、無明、疑等四煩惱,再配於色、無色二界中四諦修道之五部,計有三十八事。綜合上記之四取,總成一○八事,稱為四取百八事。
此外,四取中之欲、見二取,僅執現在而不取未來,故屬斷見;戒禁、我語二取,以其執取未來,故屬常見。又前二取為在家人所執,亦為在家、出家者起煩惱之因;後二取為出家人所執,亦為在家、出家者修行之因。又欲取、戒禁取為所成,見取、我語取為能成。然經部則以「貪」為四取之體性。〔集異門足論卷八、順正理論卷五十三、阿毘達磨藏顯宗論卷二十七、大乘阿毘達磨雜集論卷七、俱舍論光記卷二十、俱舍論頌疏卷二十〕 p1704" - ↑ 운허, "四取(사취)". 2013년 3월 12일에 확인
"四取(사취): 3계의 번뇌를 네 가지로 나눈 것. 욕취(欲取)ㆍ견취(見取)ㆍ계금취(戒禁取)ㆍ아어취(我語取). 이것은 12인연 중의 취지(取支)를 자세히 구별한 것이니, 취(取)는 집취(執取)ㆍ집지(執持)의 뜻으로, 3계의 허망한 상(相)에 집착하여 6취(趣)의 생(生)을 취하므로, 번뇌를 취(取)라 함." - ↑ 佛門網, "四取". 2013년 6월 7일에 확인
"四取:
出處: A Dictionary of Chinese Buddhist Terms, William Edward Soothill and Lewis Hodous
解釋:
catuh-parāmarśa, the four attachments, i. e. desire, (unenlightened) views, (fakir) morals, and ideas arising from the conception of the self. Also, the possible delusions of the 四住地. Also, seeking fame in the four quarters.
出處: 陳義孝編, 竺摩法師鑑定, 《佛學常見辭彙》
解釋:
欲取、見取、戒取、我語取。欲取是貪欲取著色聲香味觸等五塵之境;見取是妄計取著五蘊之法為我見邊見等;戒取是取著執行非理之禁戒;我語取是取著發自我見我慢等之說法。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即「四種執取」,另譯為「四受」,1.執著欲貪(欲取、欲受)。2.執著「有我」的言論(我語取、我受、我取)。3.執取(與解脫無關的)禁戒與禁忌(戒禁取、戒受)。4.執著邪見(見取、見受)。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瑜伽八十九卷十頁云:復次當知依於二品,建立四取。一、在家品。二、外道法中諸出家品。當知此中若所取,若能取,若所為取,如是一切總說為取。問:何所取?答:欲、見、戒禁、我語是所取。問:何能取?答:四種欲貪是能取。問:何所為取?答:為得諸欲,及為受用,故起初取。由貪利養,及以恭敬、增上力故,或為詰責他所立論,或為免脫他所征難,起第二取。奢摩他支,為所依止,為所建立,為欲往趣世間離欲,乃至非想非非想處三摩缽底,起第三取。為欲隨說分別所計作業受果所有士夫,及為隨說流轉還滅士夫之相,起我語取。如是四取,依於二品,謂受用欲諸在家品,及惡說法毗奈耶中諸出家品。由佛世尊每自稱言,我為諸取,遍知永斷正論大師故。於此法誓修行者,雖帶煩惱,身壞命終,而不於彼建立諸取。所以者何?彼於諸欲無所顧戀而出家故,於見、戒、禁及以我語無執受故。惡說法者有二差別:一、於見愛展轉發起怨諍論者,二、能證入世間定者。依於見愛展轉發起怨諍論者,建立見取;依能證入世間定者,立戒禁取。二品為依,執著我語故。依俱品,立我語取。此中見者,謂六十二,如前應知。邪分別見之所受持身護語護,說名為戒。隨此所受形服飲食威儀行相,說名為禁。諦故、住故,論說有我,名為我語。執有實物,說名諦故;執可安立,說名住故。又於此中欲愛為緣,建立欲取。依止智論利養恭敬等愛為緣,建立見取。定愛為緣,立戒禁取。有無有愛為緣,立我語取
二解 大毗婆沙論四十八卷三頁云:有四取,謂欲取、見取、戒禁取、我語取。問:此四取以何為自性?答:以百八事為自性。謂欲取以欲界三十四事為自性,即貪五,瞋五,慢五,無明五,疑四,纏十。見取以三界三十事為自性,即欲、色、無色界見各有十。戒禁取以三界六事為自性,即欲、色、無色界戒、禁、取各二。我語取以色、無色界三十八事為自性,即貪十,慢十,無明十,疑八。由此四取以百八事為自性。已說自性,所以今當說。問:何故名取?答:以三事故,說名為取:一、執持故,二、收采故,三、選擇故。又以二事,故名為取:一、能熾然業,二、行相猛利。能熾然業者,取令五趣有情業火恆熾然故。行相猛利者,諸取行相極勇捷故。問:取是何義?答:薪義是取義,如緣薪故,火得熾然。有情亦爾,煩惱為緣,業得熾盛。復次,纏裹義是取義,如蠶作繭,自纏自裹,乃至於中而自取死。有情亦爾,起諸煩惱,自纏自裹,而於其中傷失慧命,展轉乃至墮諸惡趣。復次,傷害義是取義。如利毒刺,數刺其身,身便損壞。有情亦爾,煩惱毒刺,數刺法身,法身便壞。
三解 法蘊足論十卷二十七頁云:何等四取?一、欲取,二、見取,三、戒禁取,四、我語取。云何欲取?謂欲界系,除諸見餘結縛、隨眠、隨煩惱纏,是名欲取。云何見取?謂有身見、邊執見、邪見、見取,如是四見,是名見取。云何戒禁取?謂有一類,取戒,取禁,取戒禁,為能清淨,能解脫,能出離,能超苦樂至超苦樂處,是名戒禁取。云何我語取?謂色無色界系,除諸見餘結縛、隨眠、隨煩惱纏,是名我語取。
四解 集異門論八卷六頁云:四取者:一、欲取,二、見取,三、戒禁取,四、我語取。云何欲取?答:除欲界系諸見及戒禁取,諸餘欲界繫結縛、隨眠、隨煩惱纏,是名欲取。云何見取?答:謂四見:一、有身見,二、邊執見,三、邪見,四、見取。如是四見,合名見取。云何戒禁取?答:如有一類於戒執取,謂執此戒,能清淨,能解脫,能出離,能超苦樂至超苦樂邊;或於禁執取,謂執此禁,能清淨,能解脫,能出離,能超苦樂至超苦樂邊;或於戒、禁俱執取,謂執此戒、禁,俱能清淨,能解脫,能出離,能超苦樂至超苦樂邊,是名戒禁取。云何我語取?答:除色無色界系諸見及戒禁取,諸餘色無色界繫結縛、隨眠、隨煩惱纏,是名我語取
五解 入阿毗達磨論下一頁云:取有四種:謂欲取、見取、戒禁取、我語取。即欲瀑流加無明,名欲取,有三十四物,謂貪、瞋、慢、無明各五,疑四,纏十。即有瀑流加無明,名我語取,有四十物,謂貪、慢、無明各十,疑八,及惛沈、掉舉。諸見中除戒禁取,餘名見取,有三十物。戒禁取名戒禁取,有六物。由此獨處,聖道怨故,雙誑在家出家眾故。於五見中,此別立取,謂在家眾由此誑惑,計自餓、服氣及墜山巖等為天道故。諸出家眾由此誑惑,計捨可愛境,受杜多功德,為淨道故。薪義是取義,能令業火熾然相續而生長故。如有薪故,火得熾然。如是有煩惱故,有情業得生長。又猛利義是取義。或纏裹義是取義,如蠶處繭,自纏而死。如是有情四取所纏,流轉生死,喪失慧命。
出處: 丁福保《佛學大辭典》
解釋:
(名數)一欲取,於色聲香味等五塵之境,貪欲取著也。二見取,於五蘊之法妄計取著我見邊見等也。三戒取,如外道之狗戒牛戒,取著修行非理之戒禁也。四我語取,我語者發自我見我慢等我見之所說法,取著於此我見我慢謂之我語取。見佛性論。俱舍論攝百八之煩惱為四取:一欲取,欲界之鈍使也,四諦修道五部各有貪瞋痴慢無明之五者,合為二十。四諦各有一疑,合前為二十四。再加十纏,為三十四物。是名欲取。二見取,三界各有十二見,苦諦下有身等五見,集滅二諦下各有邪見見取二者,合前為九,道諦下有邪見,見取,戒禁取三者,即為十二見。三界合為三十六見。此中除三界二戒禁取見(即苦諦下與道諦下之二者)之六見,其餘三十見,名為見取。三戒禁取,即前之六見也,又名惑取。四我語取,上二界之鈍使也。色界五部下各有貪慢無明三者,三五為十五。四諦下各有一疑,與前成為十九,無色界亦同之,合為三十六。是名我語取。我語者,身我之語也。上界之煩惱,不取於外境,緣身我就身我之語而起煩惱也。此四者總名為取者。以此煩惱能取執內外之法故也。俱舍論二十曰:「能取所有,故立取名。」又曰:「能為依執,故名取。」【又】勝鬘經以四住地之惑為四取。百論疏四末曰:「勝鬘經以四住地為四取,故云有漏業為因,四取為緣,生三界內。」【又】婆沙論以馳求四方名為四取。百論疏四末曰:「四取者,婆沙云:四方馳求名為四取。」梵Catur- pra%mars/a。
出處: 明,一如《三藏法數》字庫
解釋:
四取===﹝出佛性論﹞
〔一、欲取〕,欲即貪欲,取即取著。謂於彼欲界色聲香味觸五塵之境,貪欲取著,故名欲取。
〔二、見取〕,邪心分別,名之為見。所謂身見、邊見等。因見取著,故名見取。(身見者,於五陰等法,妄計為身也。邊見者,於斷、常二見中,隨執一邊也。)
〔三、戒取〕,謂於非戒中,謬以為戒,取著成行,故名戒取。如外道雞狗等戒是也。(雞狗戒者,外道妄計我身前世從雞中來,故今學寒雞獨立為行;若妄計從狗中來,即噉糞穢等是也。)
〔四、我語取〕,華嚴鈔云:我見我慢,名為我語。云何此二獨名我語?由此二種說有我故。又云:隨假言說,起於我執,隨執取著,故名我語取。(我見者,於五陰等法中,不了虛假,妄計有我也。我慢者,謂以我為勝,而輕慢於他也。)
頁數: 出佛性論
出處: 佛教漢梵大辭典, 平川彰 Buddhist Chinese-Sanskrit Dictionary, Akira Hirakawa
解釋:
catvāry upādānāni.
頁數: p.623" - ↑ 佛門網, "四受". 2013년 6월 7일에 확인
"四受:
出處: 漢譯阿含經辭典,莊春江編(1.4版)
解釋: 1.四種執取,即「欲受(欲取)、見受(見取)、戒受(戒禁取)、我受(我語取、我論取、我取,即執取有『真我』的言論)」。2.四種承受,即「有現作苦行後受苦報、有現作苦行後受樂報、有現作樂行後受苦報、有現作樂行後受樂報」。3.四種感受,即「欲界繫受、色界繫受、無色界繫受、不繫受」。
出處: 朱芾煌《法相辭典》字庫
解釋: 如受蘊差別中說。
二解 法蘊足論九卷十一頁云:復有四受,說名受蘊,謂欲界受,色界受,無色界受,不系受。云何欲界受?謂欲界作意相應諸受,乃至受所攝,是名欲界受。云何色界受?謂色界作意相應諸受,乃至受所攝,是名色界受。云何無色界受?謂無色界作意相應諸受,乃至受所攝,是名無色界受。云何不系受?謂無漏作意相應諸受。乃至受所攝,是名不系受。" - ↑ 운허, "十纏(십전)". 2013년 3월 12일에 확인
"十纏(십전): 탐(貪) 등의 근본번뇌에 부수되어 일어나는 열 가지 번뇌. 무참(無慙)ㆍ무괴(無愧)ㆍ질(嫉)ㆍ간(慳)ㆍ회(悔)ㆍ면(眠)ㆍ도거(掉擧)ㆍ혼침(惛沈)ㆍ분(忿)ㆍ부(覆). 여러 가지 악(惡)을 지어 중생을 얽매어 생사의 옥(獄) 중에 가두는 뜻에서 이렇게 이름." - ↑ 星雲, "十纏". 2013년 3월 12일에 확인
"十纏: 十種纏縛眾生之煩惱。乃附隨貪等根本煩惱而起,與染污心相應而造種種惡行,因其纏縛有情令不得出離生死,故謂之纏。即:(一)無慚,於諸功德及有德者無敬崇,卻忌難之,而不自知恥。(二)無愧,於罪為他人所見而不知恥。(三)嫉,於他人諸興盛事心生不喜。(四)慳,吝於惠施世間資財或出世間法財。(五) 悔,追悔於所作之過惡中而令心不安。(六)眠,令心昏懵而無力省察。(七)掉舉,令心不寂靜,無法成就諸禪觀。(八)惛沈,神識昏鈍,於善法身心無力堪住。(九)忿,於違己意之境,則發恚怒而忘失正念。(十)覆,即覆藏自己之罪過。品類足論卷一僅立八纏;大毘婆沙論卷四十七至卷五十又加忿、覆二纏,明示十纏。〔俱舍論卷二十一、大智度論卷七〕 p504"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4권. p. T29n1558_p0020a12 - T29n1558_p0020a20.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小煩惱法地名小煩惱地。此中若法小煩惱地所有名小煩惱地法。謂法少分染污心俱。彼法是何。頌曰。
忿覆慳嫉惱 害恨諂誑憍
如是類名為 小煩惱地法
論曰。如是類法唯修所斷。意識地起。無明相應。各別現行。故名為小煩惱地法。此法如後隨煩惱中當廣分別。"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4권. pp. 172-173 / 1397.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나아가 소번뇌법(小煩惱法)의 '지'를 소번뇌지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제법 가운데 어떤 법이 만약 소번뇌지에 소유되었으면 이것을 소번뇌지법이라고 이름하니, 이를테면 일부의 염오심과 함께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법이란 바로 어떠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분(忿)·부(覆)·간(慳)·질(嫉)·뇌(惱)
해(害)·한(恨)·첨(諂)·광(誑)·교(憍)
이와 같은 종류의 법을 일컬어
소번뇌지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忿覆慳嫉惱 害恨諂誑憍
如是類名爲 小煩惱地法
논하여 말하겠다. '이와 같은 종류의 법'은 오로지 수소단(修所斷)으로서 의식 지(地)에서만 일어나며, 무명과 상응하고, 각각 별도로 현행하기 때문에 이를 일컬어 '소'번뇌지법이라고 한 것이다.49) 이러한 법에 대해서는 응당 수번뇌(隨煩惱) 중에서 널리 분별하는 바와 같다.50)
49) 『구사론기』에 의하면 고덕(古德)은 6식과 통하지 않고, 5단(斷)에 통하지 않고, 3성(性)에 통하지 않고, 3계(界)에 통하지 않고, 별두기(別頭起) 즉 각기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다섯 가지의 뜻으로서 소번뇌지법을 규정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탐 등의 번뇌와는 관계없이(隨從起가 아니다) 완전히 독립적으로 하여 일어나는 자재기(自在起 혹은 自力起)의 번뇌로서, 오로지 무명과 상응할 뿐이다(즉 여기서 '소'라고 하는 말은 이와 상응하는 법이 '적다'는 뜻으로, 이러한 열 가지의 소번뇌지법은 일체의 염오법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무명과 상응할 뿐이다). 즉 여섯 가지 대번뇌지법은 그 밖의 탐 등의 번뇌에 따라 일어나고[隨從起, 혹은 相應起], 항상 동시에 함께 생기하는 것[幷頭起]이지만, 열 가지 소번뇌지법은 스스로의 힘으로서 일어나는 번뇌[自力起]로서 무명과 상응할 뿐 다른 번뇌와 함께 일어나는 일이 없으며, 또한 동시에 함께 일어나는 일[別頭起]도 없기 때문에 '소'번뇌지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50) 수번뇌(upakleśa)란 탐(貪)·진(瞋)·만(慢)·무명·견(見)·의(疑)의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나는 번뇌를 말한다. 완성된 유부교학에서는 보통 여기에 무참(無慚)·무괴(無愧)·악작(惡作)·수면(睡眠)·도거(掉擧)·혼침(昏沈)·분(忿)·부(覆)·질(嫉)·간(慳)의 10전(纏)과 뇌(惱)·회(悔)·한(恨)·첨(諂)·광(誑)· 교(憍)의 6번뇌구(垢)가 포함된다. 수번뇌는 본론 「수면품」 권제21(p.952 이하)에서, 교(憍)는 권제4(p.188)에서 설명되고 있다." - ↑ 세친 조, 현장 한역 & T.1558, 제21권. p. T29n1558_p0109c17 - T29n1558_p0109c26. 수번뇌의 5부 분별
"此垢并纏從煩惱起。是故皆立隨煩惱名。此垢及纏為何所斷。頌曰。
纏無慚愧眠 惛掉見修斷
餘及煩惱垢 自在故唯修
論曰。且十纏中無慚等五通見修斷。由此通與二部煩惱相應起故。隨與見此諦所斷相應。即說名為見此諦所斷。餘嫉慳悔忿覆并垢自在起故唯修所斷。唯與修斷他力無明共相應故名自在起。" - ↑ 세친 지음, 현장 한역, 권오민 번역 & K.955, T.1558, 제21권. p. 957 / 1397. 수번뇌의 5부 분별
"이 같이 이러한 구(垢)와 아울러 전(纏)은 번뇌로부터 생겨나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수번뇌'라는 명칭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 같은 '구'와 '전'은 어떠한 도에 의해 끊어지게 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전' 가운데 무참·무괴와 수면과
혼침·도거는 견소단·수소단이며
그 밖의 나머지와 번뇌구는
자력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오로지 수소단이다.
纏無慚愧眠 惛掉見修斷
餘及煩惱垢 自在故唯修
논하여 말하겠다. 바야흐로 10전 가운데 무참 등의 다섯 가지는 견소단과 수소단에 통하니, 이것들은 모두 2부의 번뇌와 상응하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39) 따라서 견차제소단(見此諦所斷)의 근본번뇌와 상응하여 일어난 것을 설하여 견차제소단의 수번뇌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그 밖의 나머지인 질·간·회·분·부와 아울러 번뇌구는 자력으로 일어나는 이른바 '자재기(自在起)'이기 때문에 오로지 수소단이다. 즉 오로지 타력(他力)에 의해 일어나는 수소단의 무명과 상응하기 때문에 '자재기'라고 이름한 것이다.40)
39) 수번뇌는 근본번뇌에 따라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끊어지는 것도 근본번뇌에 준하여 끊어진다. 즉 근본번뇌가 견소단이면 그것과 상응하여 일어난 수번뇌도 견소단이다.
40) 여기서 타력에 의해 일어나는 무명이란 '질' 등에 의해 인기되는 상응무명을 말한다. 다시 말해 '질' 등에 의해 인기된 무명은 타력기(他力起)이기 때문에, 그러한 무명을 인기한 '질' 등은 비록 무명과 상응할지라도 '자재기'인 것이다." - ↑ 가 나 권오민 2003, 197–204쪽.
- ↑ 星雲, "瞋". 2013년 3월 12일에 확인
"瞋: 梵語 pratigha 或 dvesa,巴利語 patigha 或 dosa 。又作瞋恚、瞋怒、恚、怒。音譯作醍鞞沙。心所(心的作用)之名。為三毒之一。係指對有情(生存之物)怨恨之精神作用。於俱舍宗屬不定地法之一,於唯識宗屬煩惱法之一。據俱舍論卷十六、成唯識論卷六所載,對違背己情之有情生起憎恚,使身心熱惱,不得平安之精神作用,名為瞋。又忿、恨、惱、嫉、害等隨煩惱,皆以瞋之部分為體,是為六根本煩惱(或十隨眠)之一。以其不屬推察尋求之性質(見),作用遲鈍,故為五鈍使之一。與貪、癡兩者,共稱為三毒(三不善根)。亦屬五蓋、十惡之一。
瞋唯屬欲界所繫之煩惱,於色界、無色界則無。貪乃從喜愛之對境所起,反之,瞋則從違逆(不順心)之對境所起。瞋,為修學佛道上最大之障害,經論中常誡之,如大智度論卷十四(大二五‧一六七中):「瞋恚其咎最深,三毒之中,無重此者;九十八使中,此為最堅;諸心病中,第一難治。」「無瞋」即對境不起害心,為對治瞋之精神作用,屬俱舍宗十大善地法之一、唯識宗善心所之一,與無貪、無癡共稱三善根,又為四無量心中之慈無量心之體。〔雜阿含經卷二十七、卷二十八、悲華經卷六、大毘婆沙論卷二十七、卷三十四、卷四十四、卷四十八、顯揚聖教論卷一、順正理論卷四十、阿毘達磨藏顯宗論卷二十五、俱舍論光記卷十六、成唯識論述記卷六末〕 p6114" - ↑ 星雲, "十二因緣". 2012년 11월 6일에 확인
"十二因緣 梵語 dvādaśāvgapratītya-samutpāda。十二種因緣生起之意。又作二六之緣、十二支緣起、十二因緣起、十二緣起、十二緣生、十二緣門、十二因生。即構成有情生存之十二條件(即十二有支)。 (一)阿含經所說根本佛教之基本教義,即:無明(梵 avidyā)、行(梵 sajskāra)、識(梵 vijñāna)、名色(梵 nāma-rūpa)、六處(梵 sad-āyatana)、觸(梵 sparśa)、受(梵 vedanā)、愛(梵 trsnā)、取(梵 upādāna)、有(梵 bhava)、生(梵 jāti)、老死(梵 jarā-marana)。據長阿含卷十大緣方便經載,緣癡有行,緣行有識,緣識有名色,緣名色有六入,緣六入有觸,緣觸有受,緣受有愛,緣愛有取,緣取有有,緣有有生,緣生有老、死、憂、悲、苦惱大患所集,是為此大苦陰緣。即此十二支中,各前者為後者生起之因,前者若滅,後者亦滅,故經中以(大一‧六七上)「此有故彼有,此生故彼生;(中略)此無故彼無,此滅故彼滅」之語,說明其相依相待之關係。即一切事物皆具有相依性,皆由因、緣所成立,故說無常、苦、無我。
在阿含經典中,除十二緣起說之外,另有十支、九支、八支、七支等緣起說,廣義而言,彼等皆含攝於十二緣起說中。又雜阿含經卷十二謂,緣起法乃永恆不變之真理,佛觀察此真理而開悟,並為眾生開示此法。又若自有情生存之價值與意義方面觀察十二緣起之意義,則指人類生存之苦惱如何成立(流轉門),又如何滅除苦惱而至證悟(還滅門)。即有情之生存(有)乃由識(精神之主體)之活動開始,識之活動成為生活經驗(行),復由活動之蓄積形成識之內容。然識之活動乃識透過感覺器官(眼、耳、鼻、舌、身、意六處)接觸認識之對象(即一切心、物〔名色〕),此係主觀上感受之事。凡夫之識以無明(對佛教真理無自覺)為內相,以渴愛(求無厭之我欲)為外相,渴愛即識之根本相,且發展而取一切為我,成為我執(取),故由此染污識之活動所薰習之識,必應經驗生、老、死等所代表之人間苦、無常苦。反之,聖者因滅無明及渴愛,故人間苦亦滅。 "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b09 - T02n0099_p0085b10. 유(有)
"緣取有者。云何為有。三有。欲有.色有.無色有。"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유(有)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가 있다 하니, 어떤 것을 존재[有]라고 하는가? 3유(有)이니, 탐욕의 존재[欲有]·빛깔의 존재[色有]·빛깔이 없는 존재[無色有]이니라." - ↑ 星雲, "三有". 2013년 3월 12일에 확인
"三有: 有,梵語 bhava,其義分類如下:(一)欲有、色有、無色有。義同三界。(一)欲有,欲界天、人、修羅、畜生、餓鬼、地獄,各隨其業因而受果報,稱為欲有。(二)色有,色界四禪諸天,雖離欲界粗染之身,而有清淨之色,稱為色有。(三)無色有,無色界四空諸天,雖無色質為礙,亦隨所作之因,受其果報,稱為無色有。〔大智度論卷三、集異門足論卷四、大毘婆沙論卷六十〕
(二)有情一生之始終分為生有、本有、死有。(一)生有,指託生之最初一剎那。(二)本有,指由生至死之間。(三)死有,指死之瞬間。小乘有部宗則以此三有,加上「中有」,而主張四有之說。〔異部宗輪論〕(參閱「四有」1688)
(三)有漏之異名。漏,為煩惱之異名。煩惱自有情眾生之六根門漏泄無窮,而令其流轉於生死之間,故謂有漏乃三有之因,為其所依、所攝。(參閱「有漏」2452)
(四)善成有、性得有、變異有。乃數論外道所立。(一)善成有,如數論之祖迦毘羅仙人,初生時具法、智、離欲、自在等四德,此四德係因善而得成就,故稱善成有。(二)性得有,如昔時梵王生娑那歌、娑難陀那、娑那多那、娑難鳩摩羅等四子,此四子十六歲時自然成就法、智、離欲、自在等四德,以無因而得,故稱自性有。(三)變異有,師身名變異,因師身故,弟子恭敬親近聽聞得智慧,因智慧得離欲,因離欲得善法,因善法得自在;如是,弟子四德從師身得,故稱變異有。此三有相當於佛法之等起善、生得善、加行善。〔金七十論卷中〕 p548"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 T.1585, 제6권. p. T31n1585_p0030a04 - T31n1585_p0030a05. 무탐(無貪)심소
"云何無貪。於有有具無著為性。對治貪著作善為業。" - ↑ 호법 등 지음, 현장 한역, 김묘주 번역 & K.614, T.1585, 제6권. pp. 288-289 / 583. 무탐(無貪)심소
"무엇이 ‘무탐(無貪)심소’25)인가? 윤회의 삶[有]26)과 그 원인[有具]27)에 대해서 탐착하지 않음을 체성으로 삼고, 탐착을 다스려서 선을 행함을 업으로 삼는다.
25) 무탐(無貪, alobha)심소는 애착심을 없애는 심리작용이다. 여기에는 5취온(取)뿐만 아니라 열반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것도 포함된다. 왜냐하면 열반에 집착하면, 그 집착이 원인이 되어 3계 윤회의 과보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26) 유(有)는 3유(有:三界)의 과보[果], 즉 윤회의 삶을 말한다.
27) 유구(有具)는 3유(有), 즉 윤회의 삶의 원인[因]이다." - ↑ 황욱 1999, 55. 무탐(無貪)심소쪽
"‘無貪’은 有와 有具에 대하여 厭離하여 애착을 없게 하고 마음속에 품지도 않으며 좋아하지도 않아 집착이 없게 하는 것으로써 體를 삼으며, 貪의 장애를 끊는 것으로서 業을 삼는다. 즉, 有179)와 具有180)에 愛着이 없음으로 性用으로 하고, 이와 반대의 貪着을 대치하며 선을 짓는 것을 業用으로 한다.181) 한편 《대승아비달마집론》에서는 有와 有具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體로 하고, 악행에 빠지지 않는데 의지가 되는 것을 業으로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182)
179) ‘有’란 三有의 果 즉 三界의 果報, 다시 말해서 ‘有情의 五蘊’을 의미한다.
180) ‘有具’란 三有를 生할 因 즉, 涅槃[→ 有에 대한 愛着이 되어야 한다]을 말한다.
181) ‘無貪’의 性用은 有과 有具에 대하여 애착을 없게 하는 작용을 말하며, 그 業用은 貪着을 對治하고 善을 짓게 하는 작용을 의미한다. 곧, 無貪은 迷惑의 세계에 살면서 생존에 집착하지 않는 심리작용을 가리킨다.
182) 《大乘阿毘達磨集論》 1(《大正藏》 31, p. 664中). “何等無貪。謂於有有具無著為體。惡行不轉所依為業。”"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T02n0099_p0014b20 - T02n0099_p0014b22쪽"世尊。此五受陰。以何為根。以何集。以何生。以何觸。 佛告比丘。此五受陰。欲為根。欲集.欲生.欲觸。"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74 / 2145 (1)쪽
"'세존이시여, 이 5수음(五受陰)은 무엇이 그것의 근본[根]입니까? [즉,] 무엇이 5수음을 모으[集]고, 무엇이 [모아진] 5수음을 생겨나[生]게 하고, 무엇이 [마음으로 하여금 생겨난] 5수음과 접촉[觸]하게 하는 것입니까?' 고타마 붓다는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이 5수음(五受陰)은 욕탐[欲, 欲貪]이 그것의 근본[根]이다. [즉,] 욕탐[欲, 欲貪]이 5수음을 모으[集]고, 욕탐[欲, 欲貪]이 [모아진] 5수음을 생겨나[生]게 하고, 욕탐[欲, 欲貪]이 [마음으로 하여금, 생겨난] 5수음과 접촉[觸]하게 한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T02n0099_p0014b24 - T02n0099_p0014b26쪽"世尊。陰即受。為五陰異受耶。 佛告比丘。非五陰即受。亦非五陰異受。能於彼有欲貪者。是五受陰。"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74 / 2145 (2)쪽
"'세존이시여, 음(陰, 蘊)이 곧 수(受, 取)입니까? 5음(五陰)과 수(受, 取)는 다릅니까?' 고타마 붓다는 그 비구에게 말하였다. '5음(五陰)이 곧 수(受, 取)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5음(五陰)이 수(受, 取)와 다른 것도 아니다. 다만 5음(五陰)에 욕탐(欲貪)이 있으면 5음(五陰)은 곧 5수음(五受陰)이다."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22 - T02n0124_p0547c23. 유(有)
"取緣有者。云何為有。有有三種。謂欲有色有無色有。是名為有。"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p. 3-4 / 4. 유(有)
"취는 유(有)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유인가.
유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욕유(欲有)ㆍ색유(色有)ㆍ무색유(無色有)을 말한다. 이것을 유라고 한다."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b10 - T02n0099_p0085b13. 생(生)
緣有生者。云何為生。若彼彼眾生。彼彼身種類一生。超越和合出生。得陰.得界.得入處.得命根。是名為生。" - ↑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생(生)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태어남[生]이라고 하는가? 만일 이러저러한 중생들이 이러저러한 몸의 종류로 생겨나, 뛰어넘고 화합하고 태어나서 음(陰)을 얻고, 계(界)를 얻고, 입처(入處)를 얻고, 명근(命根)을 얻으면 이것을 태어남이라고 하느니라." - ↑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23 - T02n0124_p0547c26. 생(生)
"有緣生者。云何為生。謂彼彼有情。於彼彼有情類。諸生等生趣。起出現蘊。得界得處得諸蘊。生起命根出現。是名為生。" - ↑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4 / 4. 생(生)
"유는 생(生)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생인가.
생이란 저들 각각의 중생이 그 중생의 무리에서 자신의 나갈 길에 따라 태어나고, 태어나서는 몸을 나타내고, 18계(界)ㆍ12처(處)ㆍ5온(蘊)을 얻게 되어 생명이 생기고 나타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생이라고 한다." - ↑ 가 나 다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T02n0099_p0085b13 - T02n0099_p0085b19. 노사(老死)
"緣生老死者。云何為老。若髮白露頂。皮緩根熟。支弱背僂。垂頭呻吟。短氣前輸。柱杖而行。身體黧黑。四體班駮。闇鈍垂熟。造行艱難羸劣。是名為老。云何為死。彼彼眾生。彼彼種類沒.遷移.身壞.壽盡.火離.命滅。捨陰時到。是名為死。此死及前說老。是名老死。" - ↑ 가 나 다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한역 & K.650, T.99, 제12권 제298경 〈법설의설경(法說義說經)〉. p. 461 / 2145. 노사(老死)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다 하니, 어떤 것을 늙음[老]이라고 하는가? 만일 털이 하얗게 세고 정수리가 벗겨지며, 가죽이 늘어지고 감각기관이 문드러지며, 사지가 약해지고 등이 굽으며, 머리를 떨어뜨리고 끙끙 앓으며, 숨이 짧아져 헐떡이고 앞으로 쏠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몸이 시커멓게 변하고 온몸에 저승꽃이 피며, 정신이 희미해져 멍청히 있고 거동하기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지면 이것을 늙음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을 죽음[死]이라고 하는가? 이러저러한 중생들이 이러저러한 종류로 사라지고, 옮기며, 몸이 무너지고, 수(壽)가 다하며, 따뜻한 기운이 떠나고, 명(命)이 소멸하여 음(陰)을 버릴 때가 이르면 이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이 죽음과 앞에서 말한 늙음을 합해 늙음과 죽음이라고 한다." - ↑ 가 나 다 현장 한역 & T.124, p. T02n0124_p0547c26 - T02n0124_p0548a04. 노사(老死)
"生緣老死者。云何為老。謂髮衰變。皮膚緩皺。衰熟損壞。身脊傴曲黑黶間身。喘息奔急。形貌僂前。憑據策杖。惛昧羸劣。損減衰退。諸根耄熟。功用破壞。諸行朽故。其形腐敗。是名為老。云何為死。謂彼彼有情。從彼彼有情類。終盡壞沒。捨壽捨煖。命根謝滅。棄捨諸蘊。死時運盡。是名為死。此死前老總略為一。合名老死。" - ↑ 가 나 다 현장 한역, 번역자 미상 & K.736, T.124, p. 4 / 4. 노사(老死)
"생은 노사(老死)의 연이 된다는 것에서, 무엇이 노인가.
노(老)란 머리카락이 빠지고 변하며, 피부는 늘어지고 쭈그러지고 온몸이 쇠약해지고 제 모습을 잃어가며, 몸과 등은 구부러지고 굽으며, 검버섯이 몸의 여기저기에 피어나고, 숨결은 가빠지고, 몸의 모양은 구부정해져서 지팡이에 의지하며, 정신이 혼미하고 몸은 파리하여 줄어들고 쇠퇴하며, 모든 감관은 노화하여 기능을 상실해가고, 모든 행동이 부자유스럽고 몸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노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이 사(死)인가.
사란 저들 각각의 중생이 그 중생의 무리에서 마침내 사라지고 없어지게 되어, 목숨과 따뜻함을 버리고 그 생명이 끊어지고 5온(蘊)도 버리고, 죽을 때가 되어 다 없어지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사라고 한다.
이러한 사와 앞에서 말한 노를 통틀어서 하나로 하여 노사라고 한다."